〈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감독 박재범)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44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2월 15일 오늘의 큐 💡   
Q. 원령공주, 엘사, 그리고 그리샤?🐻
님,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나요? 애니메이션이 아동을 위한 장르라는 생각은 옛말이 된 지 오래! 오히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연령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환경, 사랑과 같은 대전제를 가진 명작들이 많잖아요. 숲을 지키는 원령공주(모노노케 히메)〉 속 원령공주나 아렌델을 지키는 〈겨울왕국〉의 엘사는 누가봐도 멋있지 않나요?❄️

근데 그리샤는 처음 들어보신다고요? 지금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인디즈 큐에서 보기 힘들었던 애니메이션 작품을 가지고 왔어요🙌 아주 오랜만에 탄생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입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건, 3D 기술을 최대한 배제하고 직접 만든 인형, 배경 세트를 통해 한 컷씩 촬영하여 붙이는 스톱모션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주인공 그리샤와 동생 꼴랴, 붉은 곰까지 모든 캐릭터가 영화에 나온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는 거죠. 한국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는 건 사십오년만이라고! 눈, 불, 바람, 오로라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제작했다는데요😮 엄청난 노동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만큼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 탄생했어요. 
툰드라의 그리샤처럼, 사라지는 터전 속에 머무르며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개발로 사라지는 둔촌주공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도 소개할게요.

오늘 인디즈 리뷰 속 문장처럼, 우리가 이 땅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님, 그리샤와 함께 오늘도 사랑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

수호를 구심으로 연장되는 접착력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이 영화는 인류가 명분을 위해 외면한 원점을 복기하게 한다단일의 집에서 집단을 생성하기까지 숱한 정복이 있었다마치 대를 이어 상주하는 생물이 멸종해야 이후가 온다는 듯이행성에 든 사회는 번번이 이곳의 생태계에 의존해야만 한다안일하게 주인임을 과시하려는 집단은 아직도 있다나는 이번 겨울의 유난히 긴 난기를 통과하며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개인으로서 이 행성에게 받아온 경애를 어떻게 환원하면 좋을지 고민이 곱해진 차였다그래서 이 영화가 지켜야 할 원점에 자연이 있음을보호를 위하는 그리샤로 선언한 게 더욱 소중히 읽혔다.


“초기 인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유사성을 찾으려 애썼다. (…) 낯선 천상과 일상적인 지상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우리는 하늘과 접촉하면서 인간다워졌다.”(앤서니 애브니, 『별 이야기』)

 

〈엄마의 땅그리샤와 숲의 주인〉도 접촉과 연관된 구전으로 전개된다숲을 천 년간 수호한 주인붉은 곰이 있다는 서사이다그리샤는 선조들이 절망에 맞서 그에게 도움을 청해왔다는 설화를 듣게 된다엄마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기에 그리샤는 주저하지 않고 나선다당시 아빠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라며 계획을 말린다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청소년인 그리샤가 이야기를 실제로 목격하도록 배치한다동시에 이야기를 실천하는 인물로도 그리샤를 등장시킨다곰은 그리샤가 주인을 살려야 할 덕목에 관해 강조할 뿐요청을 승낙하지 않았다그리샤는 분한 마음에 경로를 이탈하려 했다그때곰을 사냥하여 완벽히 주인을 약탈하려는 연합군의 등장에 그리샤는 곰을 호위하기로 결심한다곰은 고백한다더는 본인이 툰드라를 지키지 못할 텐데다만 너를 지켜봐 왔다고 말이다.


이 영화는 회복이 거창한 시도여야만 가능하다고 서술하지 않는다오히려 개인에게서 비롯된 신뢰의 체중을 믿으며 목도한다그리샤는 스스로의 소신에 성실했다연합군이 숲을 해할 때마다 막았으며부당한 언어는 헤집었고사랑하는 대상을 살리려 이동했다그 모든 사건은 툰드라에서 일어났다그리샤가 목격자이자 행위자로 커가는 일련은 설원만큼 우람한 경애가 있기에 가능했다. 결국 지켜본다와 지켜낸다는 사이에 든 신뢰가, 툰드라의 서사를 연장한다. 지구도 단독으로는 회복이 어렵다. 그러나 단일이 모이면 미약하게나마 거듭 이룩할 수 있다. 이 인과에 의지하며 그리샤와 행동하는 집단이 실제로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정했다.


다만, 모성이 희생으로 줄곧 교환되는 게 일부 아쉽기도 했다. 영화는 엄마가 그리샤를 대신하여 다치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 이 소회가 있음에도, 안도의 마음으로 영화를 닫은 건 순환의 상징이 있어서였다. 수호를 위해 전념한 신체와 마음은, 상흔에도 유실되지 않는다. 곰은 사체가 되었지만 명멸하는 눈이 되어, 낙하하며 그리샤를 지켜본다. (...) 겨울의 증거로 눈이 오듯 툰드라가 순환하는 증거로 그리샤가 기립하게 된 엔딩은 무척 사랑스럽다. 더불어 연합군이 순록과 친밀하지 않으면 건너기 힘든 땅에서 함몰된 끝도, 명료하게 의도를 환기하여 좋았다. 이로써 환경과 사랑은 상호 의존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체감하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양껏 의존했으니, 그 사랑을 이 행성에게 복기해줄 차례이다.

 

인디즈 김해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감독 박재범|69분|애니메이션|전체관람가


“북극성을 따라서 붉은 곰을 찾아가렴”  
눈과 얼음의 땅에서 순록과 함께 살아가는 소녀 ‘그리샤’는 원인 모를 병에 걸린 엄마를 살리기 위해 전설로 전해오는 숲의 주인을 찾아 떠난다.

북극성을 따라서 땅의 끝에 다다른 ‘그리샤’ 앞에 나타난 붉은 곰은 그녀가 선택받은 존재임을 알려주는데! 

설원의 소녀,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지키고 있다 🐱

수호하는 사람들

〈고양이들의 아파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거의 것은 무시되기 쉽다. 집 앞의 건물들이나 상가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하는 요즘의 세상에서 우리 주변의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은 쉬이 잊혀지기 마련이다. 마치 더 중요한 게 있을 것만 같다는 이유로, 항상 있었던 그것들은 마치 없어도 될 것처럼 두번째로 밀려난다.

〈엄마의 땅그리샤와 숲의 주인〉 속에서는 자연이 그러한 존재이다. 툰드라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살아있는 생명체를 금새 얼려버리는 그곳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도 쉽게 그곳을 포기한다. 그리샤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플 때 숲의 주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약을 구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고, 바자크는 가족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숲의 주인을 죽이고 툰드라를 이용하려는 블라디미르를 돕는다. 그들 또한 툰드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 속에서 툰드라는 가장 먼저 버려진다. 툰드라는 그들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속 고양이들은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속 툰드라와 겹쳐 보인다. 둔촌 아파트에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된 고양이들을 아파트의 주민들은 수년간 아끼고 사랑해왔지만, 갑작스러운 재개발이 닥쳐오자 고양이들은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둔촌 아파트의 터줏대감 같았던 고양이 주민들은 갈 곳을 잃게 된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인간의 이해관계를 알지 못하는 고양이들은 무너질 아파트에 남아 떠나가는 인간들을 무심한 듯, 어리둥절해 한다.

그럼에도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또는 선택으로 밀어냈던 것들을 도맡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속 그리샤는 어른들이 버린 툰드라를 지켜낸다. 어린 동생 꼴랴와 함께, 다소 좌충우돌의 험난한 상황들을 겪으며 이들은 어른들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툰드라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고양이들의 아파트 속 둔촌냥이 또한 그리샤와 같은 존재다. 이들은 모두가 버릴 수 밖에 없었던 둔촌 아파트의 고양이들을 살리고자 동분서주 한다. 이들로 하여금 둔촌 아파트의 고양이들은 어딘가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게 된다. 비록 선택은 고양이들의 몫일지라도, 사랑해마지 않았던 그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주는 이들로 인해 우리의 과거는 현재에 존재하게 된다. 우리가 버려왔던 과거의 가치들, 자연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공존은 그렇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타자에게 마음 쓰는 따뜻함으로, 차가운 겨울은 훈훈해지고 우리의 터전은 온기를 머금는다.

 

인디즈 임다연

〈고양이들의 아파트〉 감독 정재은|88분|다큐멘터리|전체관람가


서울 동쪽 끝, 거대한 아파트 단지. 
그곳은 오래도록 고양이들과 사람들이 함께 마음껏 뛰놀고 사랑과 기쁨을 주었던 모두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재건축을 앞두고 곧 철거될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 고양이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
"물어보고 싶어요. 여기 계속 살고 싶냐고" 
고양이들과 사람들의 행복한 작별을 위한 아름다운 분투가 시작된다!

짧고, 강렬하고, 아름답게! 🎠   
말하자면 입아플 정도로 3D 기술이 발전했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가진 고유의 매력에 이끌린다는 박재범 감독! 그의 전작들은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엄마의 땅그리샤와 숲의 주인〉처럼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박재범 감독의 지난 애니메이션 단편들을 만나보세요. 정말정말 좋답니다😭

〈더미: 노 웨이 아웃〉 감독 박재범|6분|애니메이션|2015


자동차 충돌실험에 사용되는 인체모형 인형 더미, 매일 거듭되는 충돌실험으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버려진 짝을 바라보던 인형은 결국 짝을 부축하여 찬란한 바깥세상으로의 힘겨운 비상을 시도한다. 누구도 쉽게 눈길을 주지 않을 실험용 인형을 주제로 삼은 감독의 독특한 시선과 애틋하고 완성도 있는 내러티브 전개가 돋보인다.

〈빅 피쉬〉 감독 박재범|8분|애니메이션|2017


폭풍우가 치는 바다. 아이를 삼킨 빅 피쉬를 찾아 위태로운 조각배의 노를 젓는 요나는 평온해진 바다에서 빅 피쉬를 만난다. 그리고 스스로 그의 뱃속으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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