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개그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을 읽고 싶은 사람들의 미디어 이야기, 어거스트
💬 오늘의 어거스트
오늘은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철이 없었죠, 커피가 좋아서 에티오피아에서 유학을 했다는게."
혹시... 이 대사를 아신다면 반가워요! 당신도 피식대학 구독자군요.
💣 이번 주 에디터는 FRI 입니다

💬 오늘의 에디터 PICK
Stevie Wonder「Part Time Lover」
 기억하시나요? 일요일 밤, 주말의 끝이자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을 알렸던 개그콘서트 이태선 밴드의 엔딩곡 말입니다. 이 곡은 원래 스티비 원더가 작사, 작곡한 'Part Time Lover'라는 노래로 1985년 발매된 <In Square Circle>이라는 앨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스티비 원더는 알까요, 자신의 노래가 대한민국 땅에서 한때 월요병을 유발했다는 걸요. 그리고 가끔은 그 월요병이 그립다는 것도요.

🎩 그 많던 개그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17년 5월 31일, SBS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 (이하 웃찾사)가 폐지되고, 2020년 6월 26일, KBS 개그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 (이하 개콘)이 폐지되었습니다. 그 무대 위에 서던 공채 개그맨들은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었죠. 개그맨 송준석씨는 KBS Joy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와 "개콘을 나와서 일자리를 잃은 개그맨들이 적어도 70명"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콘이 폐지된지 벌써 6개월, 쇼호스트, 택배기사 등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영화감독이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한때 '안어벙' 캐릭터로 큰 인기를 얻었고, 지난 부천국제판스틱영화제 괴담 단편 제작지원 공모전에서 본상을 받았던 안상태는 "본인 코너를 직접 짜는 개그맨들이라 창작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넘치다 보니 영역을 넘나들며 도전하는 것"이라고 인터뷰한 적도 있죠. 그리고 TV 화면 속에서는 아니지만 본업이었던 코미디로 예전보다 더 주목받게 된 개그맨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요즘 주목하게 된 개그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유튜브로 간 개그맨들
개그맨들이 만든 유튜브 채널은 많습니다. 구독자수나 이슈로만 봤을때는 오히려 훨씬 큰 채널들이 많죠.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상황극을 기반으로 한 ASMR 영상을 업로드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고 현재 70.5만명의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권혁수의 <권혁수감성'>은 현장에서 즉석으로 애드리브하며 상황극을 하는 '애드리브 싸이퍼' 콘텐츠를 동료 개그맨, 연예인들과 함께 꾸려가고 있고요, 요즘 인기 급상승중인 김대희의 <꼰대희> 채널에서는 개콘 인기 코너 였던 '대화가 필요해'를 인기 개그맨들과 밥을 먹으며 하는 상황극으로 변주해 조회수가 366만회 (신봉선 편), 225만회 (유민상 편) 이상 나오는 등 선전하고 있습니다. 각종 먹방, 몰래카메라, 연애이야기 등으로 구독자 수 198만명을 보유한 <엔조이 커플>은 유튜버 이전에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2020년 페이스북이 선정한 아시아 크리에이터 TOP10까지 올랐었죠.

그에 반해, 오늘 이야기 할 <피식대학>은 구독자가 39.9만명이고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나오는 편도 아니며 출연자가 유명했던 개그맨들도 아닙니다. 2016년 SBS 웃찾사로 데뷔한 김민수, 2014년 KBS 29기 공채 개그맨이었던 정재형, 2016년 SBS 16기 공채 개그맨이었던 이용주. <피식대학>은 2017년 웃찾사 폐지 후에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던 김민수와 이용주가 정재형과 함께 2019년 4월에 만든 유튜브 채널입니다. 헌재는 샌드박스 소속입니다. 그들은 이 채널을 '코미디 인재 육성 및 연구의 메카 피식대학'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채널을 운영하는 세 개그맨 말고도 여러 개그맨들이 나와 열연을 펼칩니다. 피식대학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예능학과 : 피식대학 신입생들을 위한 입문용 피식영상들 
  • 풍계리민철TV : 탈북자몰카가 쏘아올린 작은공. 자본주의앞잡이 풍계리민철과 리용주pd의 자본주의 적응기 
  • 05학번이돌아왔다 : 어디선가 본듯한 용남이형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혁이형 들려주는 2000년대 이야기 
  • 헬린이브이로그-로니&스티브 : 피트니스의 본 고장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스티브쌤과 로니쌤이 알려주는 진짜 운동이야기 
  • 한사랑 산악회 : 우리네 아버지들과 산과 함께 인생도 배우고 힐링도 하는 소소한 우리네 이야기
  • 피식대학 대학생 공감 : 대학생 공감파티

이들은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곧 특별해질 것 같아요. 지금 잘 되는, 앞으로 몇 년간은 잘 될 포인트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 레트로

<피식대학>의 '05학번이즈백' 시리즈 인트로는 프리스타일의 'Y'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김민수 시점에서 아직 2000년대를 살고 있는 동대문에서 의류 업체를 운영하는 배용남(이용주), 모델이자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활동하는 혁이 형 (정재형), 나시에 선글라스를 끼고 마초적인 성격인 쿨제이(김해준), 인터넷 얼짱으로 활동중인 반유니(김진주), 밀리오레 댄스배틀 우승자 길은지(이은지) 등의 생활과 상황극을 담고 있어요. 당시 유행했던 패션, 말투, 예능 프로그램 등을 따라하며 웃음 뿐만 아니라 그 시절 향수를 느끼게 해줍니다. 그 시절을 살았던 20-30대는 공감을 하고, 그 시절을 몰랐던 10대는 그때를 궁금해하면서 웃는다고 합니다.

올해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놀면 뭐하니?' 싹쓰리, 방탄소년단의 Dynamite, 그 시절을 몰랐지만 지금은 부끄러운 문명특급의 '숨듣명' 콘텐츠가 먹혔던 것 처럼 레트로 콘텐츠의 힘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더욱이 코로나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척박하게 변해버린 지금, 그 어떤 과거도 지금보다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생이 힘들수록 과거를 추억하는 법 아니겠어요?
✌ 세계관

다른 개그맨 유튜브 채널과 비교했을때 <피식대학>의 가장 큰 차별점은 그들이 '시트콤'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05학번이즈백' 뿐 아니라 '한사랑산악회' 시리즈는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입니다. 단순히 '엘리베이터에서 방귀를 꼈을때 반응 몰카'등 같은 일회성 콘텐츠가 아닌, 진입장벽은 높지만 한번 빠지면 다음이 궁금한 이야기를 만듭니다.

게다가 캐릭터 설정은 얼마나 치밀한지, 연기가 아니라 대체 자아를 보는 듯한 연기력이 실제로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들죠. 끝도 없이 '열정!'을 외치는 한사랑 산악회 회장이자 삼천리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영남(김민수)은 유튜브에서 화제였던 전한길 강사의 사투리 모사를 완벽히 구현하고, 산악회 부회자이자 영등포 상가 번영회 부회장인 이택조(이창호)는 약수터에서 얼굴과 목을 박박 닦는 개저씨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미국에 살다가 귀국한 교포 출신 컨셉의 배용길(이용주)는 LP바 '엘비스 프레슬리'를 운영하며 차정원(카더가든)을 알바생으로 두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재고등학교 물리 교사인 정광용(정재형)은 느릿느릿한 특유 물리쌤의 말투를 그대로 가져와 세상 어디에 있을 법한 중년 남성을 잘 그려냅니다.

이들의 세계관은 '05학번이즈백' (한사랑산악회 자녀들이라는 컨셉)에도 이어지고, 배재고 물리 교사인 정광용(정재형)이 실제 2021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진행되던 시간에 무려 8시간 37분을 시험감독하는 컨셉으로 원테이크 영상까지 찍었습니다. 8시간 넘는 시간동안 메소드 연기를 펼치는 그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

👌 하이퍼 리얼리즘
많은 개그맨들이 뛰어난 콩트 소화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다 담을 수 없는 TV 속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그 연기력을 다 조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튜브에서는 주목받지 않았던 개그맨들의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과 연기력을 볼 수 있었어요. 앞서 잠시 언급했던 강유미의 RP(롤플레잉) ASMR 영상에서도 우리 주위에 있는 누군가를 완벽히 묘사하고 있죠.

<피식대학>의 'B대면 데이트'는 언젠가 한번은 만난 적 있을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화장품 다단계를 하고 있는 33세의 방재호 (정재형), 에티오피아에서 유학을 하고 온 카페 사장 34세의 최준 (김해준), 어딘가 계속 양아치같은 35세 중고차딜러,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랩을 한다고 설치면서 욕을 달고 사는 23세 임플란티드키드(김민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범상치 않은 연기력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내용이나 표현에 과함이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평소에 인지하고 있을만한 어떤 사람 유형에 대한 포인트들을 재치있게 묘사하면서 정말로 본인의 자아가 아닐까 의심하게 하는 섬세함까지...

여기에 내용을 지금은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가 대세입니다. 출산과 부부관계, 워킹맘들을 사실적으로 다뤄서 호평을 받고 있는 tvN드라마 <산후조리원>, 시월드를 완벽 고증했다는 평을 받는 카카오 TV 드라마 <며느라기>, 뻔히 맨날 TV에 나오는 연예인 뿐 아니라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과의 토크쇼로 나날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이 그 예시입니다. 

범람하는 콘텐츠에 단련된 대중들은 더이상 애매모호한 가짜를 찾지 않습니다. 사실을 보여줄거라면 숨김 없이 다, 거짓을 보여준다고 해도 사실처럼 선명하기를 원합니다.  

🙏 어디에서 뭘하든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제가 평소에 눈 여겨 보는 유튜브 채널이라 애정을 담긴 했지만, 보면 볼수록 영상이 아니더라도 모든 미디어 콘텐츠를 만들때 다 적용가능한 포인트들이더라구요. 그리고 또한, 모두 시간을 많이 들여야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 시대를 살아온 경험이 레트로가 되고, 치밀한 캐릭터 설정이 쌓여야 세계관이 되며,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지만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무언가 만들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우리 성급하지 말아요! 그리고 일요일 밤 개콘 엔딩에서 흘러나오던 이태선 밴드의 음악을 떠올리며 기억합시다. 개콘이 끝나면 월요일이 왔지만, 개콘이 사라져도 개그맨들은 남아있었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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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GUST Edited by MON, TUE, WED, THU, F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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