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혹은 한 해 걸러 내가 좋아하는 단어에 대한 글을 써왔다.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2016년 단어 ‘아늑'. 
2018년 단어 ‘주섬주섬’ 
2019년 단어 ‘아랑곳’

여기서 ‘좋아한다’는 내가 자주 사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그 의미에 대해 곱씹고, 천착하게 되는 단어. 
그리고 나의 지향점과 비슷한 단어. 그래서 자꾸 생각나는 단어다. 

지우, 지아, 리아. 
요즘 아가들 이름은 받침이 많이 없더라. 아무 받침도 없는 이름은 엄마, 아빠의 입술을 유려하게 빠져나가 곧장 아이의 방으로 날아간다. ‘지윤’이라는 내 이름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말하라고 하면, 뭐가 그렇게 어려운지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냈던 기억이 난다 ‘지융’, ‘티융’, ‘지욘’. 받침은 장애물이다. 결국 나는 JEE(지)로 불리웠다.

2020년 나의 단어는 ’기어이’다. ‘기어이’라는 단어를 나지막히 발화해보자. 소리보다 공기를 더 많이 섞어, 아주 낮은 소리로 읇조려 보자. ‘기어이...’ 어느 독립 투사의 아버지가 자식의 수감 소식을 듣고 내뱉을 것 같은 한마디다. ‘기어이’. 이 단어 역시 장애물이 없다. 아주 좁은 틈도 액체로 변신해 빠져나가는 고양이처럼 입술을 살짝만 움직여도 소리가 난다.

‘기어이’라는 단어의 주인공들도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

‘너가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라는 문장에서, 주인공은 주위에서 뜯어 말리는 일을 결국 해 버린 모양이다. ‘기어이’의 주체는 그래서 줄곧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다. ‘기어이’ 뒤에 따라오는 동사는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고, 주변에서 끝까지 만류한 일이다. ‘기어이’는 보통 원망의 단어다. 

‘기어이’의 주인공은 결국 해야하는 일은 해야하는 성격을 가졌나 보다. 받침이 없는 단어처럼, 장애물이 없는 의지를 가진 사람인가 보다. 어릴 때 배운 과학책의 한 페이지가 생각난다. 빨간색 공을 나무 판으로 굴리는 실험에서, 교과서는 나에게 말도 안되는 상상을 시킨다. 만약 세상에 ‘마찰’이 없다면 이 공은 어떻게 될까요? 마찰이 없으면 공은 영원히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 ‘기어이’는 그 빨간 공을 닮았다. 기어이, 일을 치르고 마는 마찰력 없는 주인공의 실행력이 빨간 공처럼 멈출줄 모르고 계속 굴러간다. 

올해 전 회사 디자이너 친구는 ‘기어이’ 퇴사를 했다. ‘이직’을 예고한 ‘퇴사’도 아니고, 잠시 쉬는 ‘퇴사’도 아닌, 회사와 영영 이별을 결심한 ‘퇴사’를 했다. 심지어 그녀는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통영으로 내려갔다. ‘기어이’ 그녀는 서울을 떠났다. 또 한 친구도 ‘기어이’ 회사를 그만 두고 유튜버가 되었다. 끼를 주체하지 못하던 그녀가 익명의 사랑에 파묻혀 행복해하는  영상을 보며, 나도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우리는 때로 ‘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너무 많은 고민을 한다. 주변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기를 말릴 때, 내가 하려는 일이 ‘나의 자리’를 찾아가는 일일 수도 있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기어이’ 나의 자리를 찾아가고 마는 일을 누군가의 반대와 걱정을 못하게 된다면, 그건 너무 참혹하니까. 

내 인생의 '기어이'를 되돌아본다면,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수능을 한 번 더 봤던 것. 신실한 집사님, 권사님 부모님의 반대를 이겨내고 '기어이' 스님을 따라 네팔에 한국어를 가르치러 갔던 것. 두 번의 '기어이' 모두 결코 후회없는 반짝거리는 변곡점이었다.

‘기어이’는 마찰이 없어지는 순간에 어울린다. 모든 고민이 끝나고 유려한 행동이 이어지는 우리 인생의 변곡점에서, ‘기어이’는 마침내 반짝 반짝 빛을 내며 등장한다. 글쓰기에 있어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오래 생각하고 단숨에 써라’. 나의 쓰기 습관과 잘 맞는 말이라서 나는 이 말을 지지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결심과 실천도 마찬가지다. 오래 생각하고 헷갈려하다가, 결심히 서는 순간 모든 건 저절로 일어난다. ‘기어이’ 그렇게 된다. 

글쓰기 모임을 준비하다가, 새로온 멤버들에게 동기 부여할 영상을 찾아봤다. 장강명 작가의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1년 이상 욕망했다면 20년 뒤에도 마찬가지일거에요. 1년 이상 하고 싶은 일은 해야되는 일이에요. 1년 넘게 쓰고 싶었다면, 우리는 써야 하는 사람인거에요’. 그렇게 ‘기어이’ 글쓰기 모임에 거금을 결제하고 모여준 사람들에게 영상을 보여줬다. 

우리의 인생은 ‘기어이’가 많아질수록 풍성해질 것이다. ‘기어이’ 무언가를 저질러도, 인생은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작은 존재다. 

그렇다면 나는 이 단어가 왜그렇게 끌리는 걸까. 우리는 언제나‘부재’하는 것을 욕망한다. 나는‘기어이’의 변곡점을 기다린다 .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리자. 그 순간이 되면, 모든 건 저절로 일어날 테니까. 

 구부러지고 두툼한 상체에 비해 다리는 너무나 가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기어이' 혼자 카누에 올라탔습니다. 할아버지는 서두르는 법이 없으니 카누는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멀어졌다가 다시 천천히 돌아왔습니다. 그 누구보다 안전하고 유려하게. (포틀랜드에서)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친구에게 '구독하기' 링크를 공유해주세요. 

* 글과 사진의 일부는 출처를 밝히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오지윤에게 있습니다.

* [보낸이 오지윤]의 글과 사진에 대한 자유로운 답장은 언제든 감사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 [보낸이 오지윤]은 일요일 밤마다 글과 사진을 보내드립니다. 

* [지난 글 읽기] 버튼을 통해 다른 글도 감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