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잘 쓰면 음식 맛이 달라져요 ![]() 1월, 첫 번째 끼니로그: 식초, 산뜻하게 풍미 돋우는 매력 l 필자 〉 레터 작성 및 편집 : 도토리 에디터 l 목차 〉 도토리 끼니로그 〉 산을 어떻게 써야 음식이 맛있나 〉 식초의 종류와 제대로 고르는 법 〉 어글리어스 레시피 : 마파가지덮밥과 칠리가지탕수 언스플래시 Towfiqu barbhuiya 도토리 끼니로그 시작하기 전에, OX 퀴즈 한 번 내 볼게요. 혹시 님께서 답을 정확히 알고 계신다면, 이번 회차 내용을 대부분 패스하셔도 좋겠습니다. 아리송하다면, 읽고 챙기실 부분이 꽤 있을 거예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콩국수를 먹던 지난여름의 일입니다. 집에서 콩국수를 먹자고 쫄면과 콩물을 준비했는데, 놀러 온 친구가 '쫄면은 역시 간장'이라며 면을 조금 덜어서 간장과 식초, 설탕을 넣고 비비는 겁니다. 으잉? 식초? 쫄면에 초고추장을 써본 적은 있지만 식초는 낯설었습니다. 초고추장이 든 비빔쫄면이야 새콤달콤한 맛으로 먹지만, 간장 국수엔 왜? 맛을 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신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간장과 설탕이 특유의 비린 맛, 느끼한 맛 없이 은은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어요. 저만 이런 건 아닌가 봅니다. '소금의 종류와 제대로 쓰는 법'에서 소개해 드린 <소금 지방 산 열> 저자 사민 노스랏을 기억하시나요? 그녀의 주방 에피소드에도 이런 게 나옵니다. 완벽한 당근 수프를 만들었다고 맛을 보고 만족했는데, 동료 요리사가 먹어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릇에 담기 전에 식초를 한 컵 넣어!" 식초라고? 수프에 식초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시 그가 정신이 나간 건 아닐까?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한 솥 가득 끓인 수프를 망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나는 내 멋진 수프를 한 숟가락 덜어 거기에 레드 와인 식초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 맛을 본 순간 어안이벙벙해졌다. 단맛에 신맛이 섞여 끔찍한 맛이 날 줄 알았는데, 식초가 마치 프리즘처럼 수프의 섬세한 맛을 전부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버터와 오일, 양파, 육수의 맛이 모두 느껴지고 심지어 당근의 단맛과 무기질의 맛까지도 느껴졌다. 눈을 가리고 이 수프를 맛본 다음에 재료를 맞춰 보라고 한다면 100만 년이 걸려도 식초가 들어갔으리라곤 절대 깨닫지 못할 것 같았다.(<소금 지방 산 열> 103쪽) 사민 노스랏은 이렇게 말합니다. "짠맛이 풍미를 '강화'한다면 신맛은 풍미의 '균형'을 맞춘다. 소금과 지방, 설탕, 전분의 맛을 감싸는 신맛의 기능은 우리가 요리하는 모든 음식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이번주 끼니로그에서는 전통 발효 식초부터 발사믹 식초까지, 산을 잘 골라 제대로 쓰는 법을 알아봅니다. <소금 지방 산 열>과 <조선 셰프 서유구의 식초 이야기>를 주로 참고했습니다. 시작 때 낸 퀴즈의 정답은, 본문을 다 읽으신 후에 한 번 같이 볼게요. 못난이 채소 정기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글리어스에서는 가지로 만드는 맛난 요리 레시피를 두 가지 보내주셨습니다.🙂 새콤! 언스플래시 Han Lahandoe 산뜻한 신맛을 내는 재료들 식초를 비롯해 맛보았을 때 신맛이 나는 재료는 대부분 '산'에 해당합니다. 레몬즙, 라임즙 뿐만 아니라 맥주, 와인 등의 술, 커피, 초콜릿도 기분 좋은 신맛이 나는 음식입니다. 채소 중에서는 토마토가 대표적이고요. 품종이 같은 토마토라도 언제 땄느냐, 어디에 보관했느냐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그래서 레시피에 나오는 분량에 의존하지 말고, 소금간을 보듯이 신맛 또한 요리하는 중간에 계속 맛을 보면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답니다. 산 제대로 쓰는 비법 필기 노트 사민 노스랏이 <소금 지방 산 열>에 밝힌 내용을 살펴보니 저는 잘못 알던 부분이 꽤 많았어요. 알면 주방 기본기가 꽤 올라갈 것 같아요. 책에서 밑줄 그은 부분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찬찬히 읽어보시고, 몰랐던 게 있다면 꼭 메모해 두셔요.
천연발효 흑초를 생산하는 전남 보성군 비니거파크의 겨울 풍경. 비니거파크 제공. 식초의 종류와 제대로 쓰는 법 식초도 종류가 무척 많다 보니, 어떤 것으로 갖춰 둬야 할지 고민될 때가 있어요. 약간의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술만큼 다양한 식초 곡물 또는 과일의 당이 특정 미생물과 만나면 알코올 발효가 일어납니다. 이렇게 술이 만들어지는데요. 술이 초산균과 만나 발효하면 식초가 됩니다. 장미 식초, 제비꽃 식초, 석류 식초, 포도주 식초, 고추 식초 등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종류는 무궁무진합니다. 국내 식초 시장은 고가와 저가로 확 나뉘어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입니다. 지난 추석 명절에 SSG푸드마켓이 140만 원 짜리 발사믹 식초를 수입해와 판매했다는 소식을 혹시 접해보셨나요? 이렇게까지 고가는 아니더라도, 국내에서 소비되는 식초는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발사믹 같은 상대적으로 비싼 식재료가 아니면 대부분 공장에서 생산된 저렴한 양조식초입니다. 전통 방식으로 천연발효 식초를 만드는 장인이 전국 곳곳에 있지만, 수요도 많지 않고 수출도 원활하지 않다고 해요. SSG푸드마켓이 2021년 추석 명절에 선보인 140만원 짜리 발사믹 식초. SSG푸드마켓 제공 식초를 구매할 때 고려할 점 만드는 방법에 따라 식초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뉩니다. 발효를 제대로 거치느냐 안 거치느냐,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기산과 미네랄 등이 풍부한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식초의 질을 따져볼 수 있어요.
우리가 제일 흔히 먹는 식초입니다. 주정(에틸알코올)에 초산균을 넣어 속성으로 발효 시켜 만듭니다. 주정은 고구마나 타피오카 등 전분이 있는 농산물에서 뽑아낸 비교적 저렴한 원재료인데요. 여기에 물과 감미료를 더해 만든 저렴한 술이 바로 초록 병에 담겨 판매되는 소주입니다. 주정을 이용해 속성으로 만들기 때문에, 곡물이나 과일을 직접 발효시킨 식초와 달리 유기산과 미네랄 등 몸에 유익한 물질이 거의 없습니다. 과즙을 섞어 숙성한 양조식초라면 약간의 영양분이 들어있을 수는 있습니다. 상품명에 '천연' '발효' 등 명칭이 들어 있고 식품 유형이 '발효식초'로 되어 있더라도, 원재료명을 살폈을 때 '주정' 또는 '주요'가 포함되어 있다면 양조식초입니다. 깊은 풍미는 없지만 깔끔하고 균일한 맛을 냅니다. ![]() ![]() 원재료명에 '주정'이 표시되어 있는 양조식초.
인위적 물질의 개입 없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빚은 식초입니다. 순수한 곡물이나 과일을 미생물의 힘으로 알코올 발효 시켜 술을 만든 다음, 그 술덧을 다시 초산균의 힘으로 발효시킵니다. 만드는 데 오래 걸리고 풍미가 깊습니다. 과일이나 열매를 설탕에 절여 과일액을 만든 다음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거나, 과일에 막걸리를 넣거나, 맥주나 와인 등을 이용해 만들기도 합니다. ![]() ![]() 원재료명에 감100% 라고 표시되어 있는 발효식초. 어디에 무엇을 쓸까 청소나 소독에는 가격이 저렴한 합성 식초를 사용해도 되지만, 식품에는 적어도 양조식초를 쓰는 게 좋습니다. 식품을 절이는 용도로는 전통 발효식초보다 양조식초가 좋을 수도 있어요. 오랜 숙성 기간을 거친 전통 발효식초는 소스나 마리네이드로 사용하면 풍미를 돋워줍니다. 제대로 만든 발효식초에는 유산균과 효소가 살아있어서 냉국이나 초무침 등에 넣어 먹으면 좋습니다. 다만, 식초를 넣거나 바른 음식을 보관할 때는 산 때문에 인체에 유해한 내용물이 녹아 나올 수 있으니 유리나 세라믹 소재의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루미늄 용기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의 식초 이탈리아에는 포도밭과 식초 양조장으로 유명한 가문이 많습니다. 발사믹 식초는 색이 검고 진하기 때문에 적포도로 만들었을 것 같지만, 원재료가 청포도입니다. 당연히, 레드와인 식초와도 다릅니다. 레드와인 식초는 와인을 초산 발효시켜 만들고, 발사믹 식초는 청포도를 끓여 즙을 만든 다음 숙성해 만듭니다. 발사믹 식초를 구매할 때는 인증마크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IGP 또는 DOP 마크가 있다면 유럽연합이 인증하는 제품입니다. IGP는 대량 생산 방식으로 만든 발사믹 식초에, DOP는 지역성을 담아 전통 생산 방식으로 만든 발사믹 식초에 주는 인증마크입니다. 혹시, 애플사이다 식초(미국), 셰리 식초(스페인) 등도 들어보셨나요? 식초는 술을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어서, 세계 유명 식초 중에는 지역의 술에서 나오는 것이 많습니다. 국내 전통식초의 맥은 여러 장인들 손에 이어졌지만,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면 양조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편이라고 해요. 중국은 향초, 일본은 흑초를 고급화해 세계에 널리 알려왔습니다. 반면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되는 식초는 대부분 표준화된 방식으로 대량 생산한 양조식초입니다. 일상 요리에서 밀려난 전통 식초 님은 한식의 대표 요리라고 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시나요? 식초를 넣은 새콤한 음식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유구는 당시의 음식문화를 <임원경제지> <정조지> <옹치잡지> 등에 꼼꼼하게 기록했는데요.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는 한문으로 쓰인 이 기록들을 번역하고 전통음식 레시피를 복원하는 일을 합니다. 이렇게 펴낸 여러 책 가운데 식초를 중점적으로 다룬 것이 <조선 셰프 서유구의 식초 이야기> 입니다. 저자들은 서유구가 남긴 식초 제조법을 번역하고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전통 식초의 종류가 아주 다양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합니다. <정조지>에는 복숭아, 대추, 감 등 다양한 과일로 식초를 빚는 법이 나와 있어요. 대추 식초와 복숭아 식초라니, 맛이 몹시 궁금합니다. <정조지>에 나온 조선 음식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먹는 음식보다는 단맛과 매운맛이 적고 식초, 귤피, 산사 등을 사용한 신맛 음식이 많이 보인다고 해요. 식초가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물에 타서 음료로 마시라고 하거나, 의식적으로 많이 쓰라고 권하는 문화가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중동과 프랑스, 태국, 터키, 중국, 일본의 요리 문화를 살펴보면 소스에만이 아니라 고기 요리, 생선 요리, 칵테일 등에 식초가 널리 쓰이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위 책 저자들은 식초가 "건강이나 날씬한 몸매를 위해 마시는 '약'이 아니라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남겼습니다. 1월 첫째 주 레시피 by 어글리어스 어글리어스는 맛과 영양이 훌륭한 '못난이 친환경 채소' 정기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입니다. 마케터 성현 님이 간단한 제철 채소 레시피를 매주 2개씩 소개해 드려요. l 이번 주의 채소 〉 가지 l 마파가지덮밥 〉 재료 가지, 버섯, 대파, 고추장, 된장, 간장, 다진마늘
l 칠리가지탕수 〉 재료 가지, 양파, 당근, 케첩, 고추장, 간장, 올리고당, 식초
든든한 식생활, 단단한 일상 님, 식초와 산을 주제로 한 이번 주 레터 어떠셨나요? 그동안 식초를 과일 세척과 샐러드에만 썼던 저는, 앞으로 레시피를 볼 때 새콤한 맛의 활용법을 좀 더 유심히 볼 것 같아요. 그럼 앞에서 약속드린 대로, 처음에 냈던 퀴즈의 정답을 한 번 확인해 볼까요?
추가적으로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의견과 질문 남기기'를 꾹 눌러 주세요. 그럼, 다음 한 주도 잘 챙겨 드시고 다시 만나요~!🙂 끼니로그를 통해 소개하고 싶은 상품, 커뮤니티, 서비스, 행사 등이 있다면 stay.balanced.2021@gmail.com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검토 후 도토리 에디터가 연락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