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도저히 마음을 잡을 수 없어서 한강을 조금 걸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평소보다 높게 찰랑거리는 한강의 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스프링쿨러에서 염산이 쏟아지는데도 맨홀 뚜껑을 들고 화영 언니를 구하겠다고 달려가는 인주처럼,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기사를 쓰려고 어디든 달려가는 인경이처럼, 아직 학생인데도 100억이라는 큰 돈을 찾고 합리적으로 분배한 인혜처럼 용감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은 아씨들>은 결국 자신만의 방식으로 씩씩하고 용감하게 살아남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그래도 좋아하는 이야기들에 기댈 수 있구나. 힘든 순간에 떠올릴 수 있는 씩씩한 인물들이 늘었다는 게 위안이 되었다. 

 최근 그런 마음으로 만났던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몰입하는 즐거움으로 봤던 <작은 아씨들>에서 씩씩함과 용기를 배웠고, 일드 <첫사랑의 악마> 속 서로에게 서로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순간 속에서 함께 위로받았고요. 이따 소개할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를 보면서도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이런 미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 생각하며 부지런히 질투했습니다. 덕분에 무언가를 벅차게 좋아하는 마음을 아직 잃지 않았구나, 생각했던 요즘이기도 했네요. 벅차게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지겨워하지 않고 들어주는 모든 분들께 늘 고맙습니다. 이번 주에 봤던 위로의 문장을 하나 더 전하고 싶어요 - 매일같이 좋을 수는 없겠지만, 모두들 대체로 행복하세요! (Feat. 문상훈)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이건 봐야겠다' 하고 호다닥 달려가서 본 영화.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이상했고, 가장 충격적이었고, 가장 정신없었고, 가장 요란했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답고 벅찼던 영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운 분들이라면, 아무 정보 없이 영화관에서 가서 바로 보시는 걸 적극 추천드립니다. (보실 거라면 이 글도 읽지 말아주세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미국에 이민 와서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던 에블린이 멀티버스를 경험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저도 한줄 줄거리만 보고 '멀티버스? 뭔 소리야?' 하면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이렇게 다채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수천, 수만 가지의 세계를 그려낸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도대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 싶은 초반부를 지나, 그렇게 수없이 많은 멀티버스를 거쳐도 결국 변함없이 도달하는 메시지에서 마음이 울렁거리는데요. 결국 사랑이 승리하는 이야기. 사랑과 다정함으로 무장하고 싸우는 이야기. 어떤 나로 어떤 인생을 살든,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고 껴안고 마침내 구하는 이야기. 이 메시지에 닿기까지 이 영화가 펼쳐내는 상상 이상의 상상력을 꼭 영화관에서 만나셨으면 좋겠어요. 이동진 평론가님도 만점을 준 바로 그 작품, 바로 영화관에서 만나보세요 제발💗

 인간의 삶이 한순간에 달라지는 일이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것은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말들처럼 쉽거나 간단한 일은 아니다. 사실 변화란 건 대개 수십 년간 치아를 제대로 닦지 않아 결국 임플란트를 해 넣어야 하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게 아닐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일 이를 꼼꼼히 닦는 정도의 작고 꾸준한 노력이 전부다. 

 (중략) 처음엔 잘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다음 스텝이 있다. 언제나 그렇다. 나 같은 사람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아아, 이번엔 또 어떻게 망하려나?'를 늘 생각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면 망해도 정신적 충격이 덜한 데다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당연한 듯 다음 스텝을 도모할 수 있다. 좀 구차하긴 해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추천해 드린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막연하게 지금과는 정반대의 일을 하고 싶다, 생각하다가 결국 하고 싶은 건 정직하게 실력이 느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가 들어도 도태되는 게 아니라 장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영역. 매일매일 꾸준히 하면 어느 순간 확연히 실력이 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영역. 위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탱글한 수란을 만드는 일, 라멘의 일정한 맛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일은 그런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하루라도 쉬면 그만큼 감각이 무뎌지겠지,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분명 외면당하게 되는 날이 있겠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망해서 괴로운 순간은 있기 마련이고, 작고 꾸준한 노력이 쌓여서 변화를 실감하게 되는 날은 있겠지.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갑자기 뭐든 할 만하겠다는 작은 용기가 생겼습니다. '도대체 잘하게 되는 날이 오긴 오는 거야?' 혹은 '무슨 인생이 이렇게 허망해!' 하는 기분이 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글이에요💗

페퍼톤스 - 태풍의 눈

 비가 와서 급격히 추워졌던 월요일부터 한 주 내내 자주 들었던 곡. 비슷한 취향을 공유했던 언니랑 오랜만에 만나서 커피를 마시다가, "페퍼톤스 새 앨범 들어봤어?"라는 말을 들었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발매되자마자 들어야지! 생각했는데, 미루고 미루고 까먹다 보니 어느새 3주가 지나버렸다니. 기대하던 앨범들은 발매되자마자 들으려고 정시 카운트다운을 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현실에 밀려 그런 행복을 잃은 것 같아 스스로에게 조금 서운하더라고요. 그렇게 듣게 된 4년만의 페퍼톤스 정규 7집이 너무나 좋아서 가져왔습니다. 늘 햇살 밝은 날의 희망을 노래하던 페퍼톤스였는데, 비바람 치고 천둥번개 치는 날에도 희망을 찾는 페퍼톤스로 변화했다고 할까요. '우린 마침내 보게 될 거야', '난 아직 믿고 있어' 같은 가사들이 꽂힐 때마다 이상한 위로가 되는 곡입니다. 일교차가 큰 저녁에 듣는 걸 적극 추천드려요🍀

오디너리핏 연희 -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48-23 , 3층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를 통해 전시도 열리고, 굿즈도 파는 캐비닛클럽을 지나 꼭대기로 올라가면 있는 연희동의 카페. 루프탑을 나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연희동 뷰가 평화로운 곳. 

마세 -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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