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벚꽃 개화시기가 일주일 정도 빨라졌대. 제주 서귀포는 오늘부터 꽃이 핀다고 해. 다음주 따뜻한 남쪽 지역부터 4월 첫주까지 차례로 벚꽃이 필 예정이야. 게다가 여의도 봄꽃축제가 4년만에 완전 개방되어서 이번엔 더 많은 인파가 모이지 않을까 싶어. 나는 사람 많은 곳은 피하는 편이라 여의도에 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벚꽃 구경은 좋아해서 주로 북촌에 있는 정독도서관에서 만개한 봄을 즐기곤 해. 나처럼 각자 자신만의 벚꽃 스팟 하나씩은 있을 것 같아. 그게 어디든 계절이 변하는 순간을 잠깐이라도 지켜보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어!

옷이 가벼워진만큼 최근엔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찾게 되더라고. 이번 주에 소개할 작품은 애플TV 코미디 드라마 [테드 래소]야. 에피소드당 30분 내외인데다가 최근 시즌3가 막 시작한 참이라 정주행 하기 좋은 타이밍이야. 드라마계 아카데미라 불리는 에미상에서 2년 연속 최우수코미디시리즈 부문을 수상했으니 대중성과 완성도는 보장되겠지? 


드라마 이름이자 주인공인 ‘테드 래소’는 미국 한 대학의 미식축구 팀 감독으로, 특유의 긍정적인 리더십으로 NCAA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어 화제를 모은 인물이야. 그런 그가 갑자기 영국 프리미어리그 AFC 리치먼드의 감독으로 발탁돼. 문제는 테드 래소가 축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거야. 그런 그가 어떻게 감독이 되었을까? 바로 새로운 구단주인 ‘리베카 웰턴’의 선택이었는데, 바람으로 이혼하게 된 전 남편이 가장 아꼈던 이 축구팀을 완전히 망하게 함으로써 복수하려 했기 때문이야. 축구팀에 대한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지역 사회 안에서 테드 래소는 당연히 노골적인 야유를 받아. 하지만 자신에게 무례한 사람들의 비난조차 유머로 넘기는 그는 꿋꿋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을 파고들고 신념을 지켜나가.

테드 래소는 MBTI가 아마도 EEEE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친화력과 긍정마인드를 자랑하는 사람이야. 아마 내 옆에 있었으면 기가 빨려서 피했을 것 같긴 한데, 나처럼 그런 그를 마주하고 당황스러워하다가 마침내 감화되는 다른 캐릭터들의 변화를 지켜보는건 기분 좋은 일이었어. 이런 장르의 미덕은 사건이 벌어져봤자 결국은 해결되고 심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야. 꽤나 빠른 템포에 위트 있는 대사도 보는 내내 긴장감을 풀어줘. 무엇보다 어떻게든 테드 래소를 통해 팀을 나락으로 보내려는 리베카와 그 모든 위기를 웃으며 얼렁뚱땅 해결해버리는 테드 래소의 케미가 유쾌해. 긴장감 넘치는 스포테인먼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어. 그보단 각자 약한 면을 지닌 인물들이 어떻게 서로 마음을 모아 그 순간을 견뎌내는지 보여주는 따뜻함에 강점을 지닌 드라마거든. 그래서 (나처럼)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봐도 무방해. 장단점은 있지만 누구도 밉지 않은 개성강한 캐릭터들을 짧은 러닝타임 안에 동시 다발적으로 구축하고, 그 위에 촘촘한 대사를 올려 오로지 말로만 웃기려 한다는게 대단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해. 실제로 난 에피소드 한 편당 적어도 한번은 소리내서 웃었어.


요새 다정함에 대해 많이 생각해. 문제를 발견하는 예리한 지적이나 예민한 사람들이 갖는 세심함도 좋아하지만 그런 민감함보다 가끔은 무던한 담담함이 그리울 때가 있는 것 같아. 비판(을 가장한 비난)을 많이 할 수록 일을 잘하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거든. 하지만 때론 긍정적인 말과 태도가 훨씬 일을 잘 굴러가게 하더라고. 나도 점점 편협해져서 찰나만으로도 어떤 사람을 파악한 듯 굴 때가 있어. 싫을 수록 그 판단의 속도는 빨라지고 말이야. 하지만 내 안의 다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 ‘그럴 수도 있지’를 일부러 많이 되뇌이려고 노력해. 세뇌하다보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게 될 수 있잖아. 모든 것에 따지려 들지 않고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는거야. 테드 래소가 바로 그런 존재야. 테드 래소는 심지어 진 경기 후에도 선수들에게 금붕어가 되라고 해. 실수는 빨리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거지. 요즘 우리한테 그렇게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푸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 [테드 래소]가 웃기면서도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이유야.

소소한 관람포인트1. 배우 겸 제작자

테드 래소를 연기한 제이슨 수데이키스와 코치 비어드를 연기한 브렌든 헌트는 이 드라마의 제작자이자 작가이기도 해. 특히 제이슨 수데이키스는 SNL 작가 겸 배우 출신이야. [테드 래소] 드라마 대사들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덕여질거야.
소소한 관람포인트2. 과몰입 장인
AFC 리치먼드는 드라마 내 가상의 축구팀이야. 하지만 과몰입러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 AFC 리치먼드 공식 트위터를 운영하고 팀 굿즈도 판매하고 있어. 테드 래소가 매일 입고 다니는 패딩도 있는데 지금 겨울이었으면 살까 말까 고민했을 것 같아. 날이 풀려 다행이지 뭐야.

소소한 관람포인트3. 피파23 x 테드 래소

축구 팬들이라면 무척 상징적인 게임일 피파23에 AFC 리치먼드가 합류해서 화제를 모았어. 현지에서 얼마나 [테드 래소]가 영향력 있는 지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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