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조사를 토대로 유추해보면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청년은 전국적으로 61만 명에 이른다.
🔵 외로움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내 처지를 호소하거나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상태’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두고 ‘모두에게 버려졌다는 감정의 상태’라고 한다. 모두에게 버려진 이들은 대개 자기 중심적 슬픔에 빠져든다고 한다. 이 슬픔은 분노 어린 슬픔이다. 분노 어린 슬픔은 혐오로 이어진다.
- 능력주의 사회에서 누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그 구체적 대상은 늘 모호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그 분노의 표출은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진다. 요즘 우리가 목격하는 무작위 범죄는 이렇게 외로워진 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을 동원하는 정치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외로워진 사람들이 히틀러를 지지해서 만들어진 체제가 바로 전체주의였다고 말한다.
🔵 통계적으로 가장 외로운 세대는 20대다. 바우만은 그 원인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기 책임의 윤리에서 찾는다. 자기 책임의 윤리는 ‘복지’라는 국가의 보호에서 벗어나 ‘시장’에서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라는 지구적 차원의 메시지였다.
- 특히 능력주의 사회라면 더욱 국가나 사회, 타인에게 도움을 호소할 수 없게 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기 책임의 윤리로 무장한 세대일수록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고립되는 경우가 생겨난다.
🔵 젊은이들을 외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디지털 기술이 만든 격차이다. 디지털 기술은 전 세계의 부를 창출하는 핵심 수단인데, 이 기술은 극단적으로 이익을 소수에게 몰아주는 속성이 있다.
🔵 “누구도 너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말은 사회적 연대를 약화하고, 때로는 우리를 고립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누구도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온전히 책임질 수는 없다. 사회가,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