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 지학사 티솔루션 뉴스레터 『선생님의 B 면』 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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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B 면 탐구 | 김동진 선생님
- 장소 | 어느날, 산책
- 선생님의 B 면 키워드 | 수학하는삶, 학원강사,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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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B 면을 탐구하다"
교사라는 직업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선생님이라는 '직업' 이면의 '사람'을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B 면]은 중·고등학교 교사들과의 진솔한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교사라는 개인의 B 면을 들여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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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교사(34)는 독특한 사람이다. 우선 그의 옷차림부터 그렇다. 김 교사는 스티브 잡스처럼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 '남들은 내가 무엇을 입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부터 검정 양말, 검정 바지, 검정 티셔츠, 하늘색 옥스퍼드 셔츠는 그의 유니폼이 되었다. 이날 인터뷰에도 김 교사는 까만색 티셔츠 위에 하늘색 옥스퍼드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사연을 알고 나니 평범함 속에 비범한 기운이 느껴졌다.
올해로 고등교사 5년 차인 그의 이력 역시 독특하다. 잇단 임용고시 낙방 이후 입시 전문 학원 강사로 일하던 김 교사는 2020년부터 창원문성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사범대 재학 시절 수학교육과 윤리교육을 복수전공한 그는 철학 하는 수학교사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철학을 공부하면서 김 교사는 '내가 이렇게 수학을 공부하는 게 맞나', ‘내가 이렇게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게 맞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메타인지가 생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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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김 교사와의 인터뷰는 마치 명제를 증명하는 과정 같았다. 질문이 나올 때마다 김 교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정교하게 생각을 다듬으며 답변을 구조화했다. 인터뷰 현장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는 "수학을 하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검증하는 습관이 생겼다"라면서 "생각이 말보다 앞서 나가지 않도록 경계한다"라고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수학을 풀면 정신이 맑아진다는 그는 삶이 곧 수학인 사람처럼 보였다. 김 교사는 수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 "아무도 걷지 않은 정신적 오솔길을 나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21세기 선비처럼 매일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글을 쓴다는 김 교사는 지난해 <선생님의 목소리>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책에는 수학이란 무엇인지, 공부란 무엇인지, 선생이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온 90년대생 교사의 사유가 위트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목소리로 담겨 있다. 학생들의 시험 성적에는 관심이 없지만 매년 수업 자료를 완전히 새롭게 뒤엎는다는 교사, 수학 수업에 누구보다 진심이지만 아이들과 가끔 산책하고 축구하며 '땡땡이' 치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교사, '99% 내향인'이지만 꽃꽂이를 배워서 학생들에게 꽃 선물을 해준다는 교사. 김동진 교사를 지난 10월 10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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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교사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김 교사를 만난 곳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 위치한 독립서점 '어느날, 산책'. 창원문성고 근처에 있는 서점으로 책을 좋아하는 그가 자주 찾는 곳이다. 인터뷰 장소에는 김 교사의 아내와 갓 50일 지난 아이도 동행했다. 아빠가 인터뷰하는 동안 책방의 최연소 손님은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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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사는 자신이 수학을 잘하기 시작한 것은 고2 겨울방학 때부터였다고 기억한다. 경호원을 꿈꾸는 학생이었던 그가 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2학년 1학기 때였어요. 제가 반장이었는데 선생님이 시키신 일을 하느라 마지막에 하교를 하게 됐어요. 버스 정류장에 혼자 서 있는데 공부 고민으로 수심이 깊었어요. 한 친구가 PC방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저를 본 거예요. ‘표정이 왜 이리 안 좋냐'라고 해서 ‘수학 공부가 잘 안돼서 고민이다'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말하는 거예요. ‘내가 끊어 놓고 안 듣는 인강(인터넷 강의) 있는데 들어볼래?’ 반신반의하면서 친구가 소개해 준 인강을 찾아들었는데, 와. 정말 충격이었어요. 제가 모르는 걸 정확하게 짚어서 알려주니까 모든 퍼즐이 맞춰지면서 ‘수학의 구조가 이런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수학 공부에 재미를 붙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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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위 말하는 '일타 강사' 강의였나요?”
"네. 지금도 활동하고 계신 분이에요. 그때 화면 속 강사를 보면서 ‘사람이 저런 방식으로도 멋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하나를 계속 반복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인강을 듣고 또 들었어요. 문제에 적힌 숫자까지 달달 외울 정도로요. 볼 때마다 어떤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죠. 수학교사가 돼서 어디선가 저처럼 수학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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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교사는 하나에 꽂히면 미련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집요하고 끈질기게 파고드는 사람이다. 아는 데서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사람. 사범대에 입학하면서 그의 고민은 '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수학을 가르칠 것인가'로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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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는 수학이 답을 찾는 과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교에 가니까 답을 일단 알려줘요. 그런 다음 ‘이게 왜 답인지 찾아봐'라고 하는 거예요. 이러한 답이 왜 나오는지 엄밀히 따지는 과정이 진짜 수학이라는 걸 대학에서 배웠죠. 요즘 학생들 공부하는 과정을 보면 문제지에 동그라미를 매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동그라미가 매겨지면 그 문제를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죠. 틀리면 그제야 비로소 왜 틀렸는지 답을 찾으려 노력하고요.
그래서 상위권으로 갈수록 공부를 하기 어려워져요. 10문제 풀어서 9문제 맞히면 한 문제에 대해서만 공부를 하면 되니까요. 더는 공부할 게 없어지죠. 그런데 우리가 수능을 칠 때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를 맞히기 위해 시험장에 들어가지 않잖아요. 원래 내 실력으로는 못 푸는 어려운 문제, 한눈에 보기에 감당이 안 되는 문제를 그 자리에서 풀기를 바라죠. ‘아이들이 몰랐던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게 대학 4년 내내 저를 따라다녔던 고민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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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문제를 어떻게 아는 문제로 만들 수 있을까.' 김 교사에게는 매우 절박한 질문이었다. 그는 틀린 문제를 왜 틀렸는지 분석하는 것보다 '내가 어떻게 이 문제를 맞혔는지' 복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로 제대로 아는 것인지,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러한 정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 복습하는 것이다. 김 교사가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데는 철학의 힘이 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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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호기심에 윤리교육학을 복수전공했는데 수업 시간에 철학을 배우더라고요. 철학에서는 무엇이 옳은 것이고 어떻게 해야 옳은 것인지 계속 고찰하게끔 해요. 사실 저는 뭔가에 꽂히면 열심히는 하는데 거기에 왜 꽂혔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는 아둔한 사람이었거든요.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돌이켜 생각하는 과정을 많이 겪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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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수학책과 윤리책을 둘 다 품고 다녔던 김 교사에게는 또 하나의 특이한 이력이 있다. 휴학을 하고 해외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것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범대생으로서는 흔치 않은 결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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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와서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데 한 번쯤은 정말로 배워보고 싶다는 이유로 공부를 하고 싶더라고요. 제가 영화도 반복해서 보는 걸 좋아해요. 외국 영화를 보면 한글 자막으로 눈이 가게 되는 게 너무 아쉬운 거예요. 연기자들은 그 연기를 위해 수십 년을 연습했는데 내가 보고 있는 건 한글 자막이잖아요. 제가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한번은 영어 자막을 구해서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째로 외웠어요(웃음). 그러니까 배우의 얼굴이 보이더라고요. 어학연수를 가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지금도 자막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수학도 그렇지만 그냥 좋아했을 때와 잘하게 됐을 때 좋아하는 마음의 경지에는 분명 차이가 있더라고요. 그 과정을 한 번 겪으니까 다른 것도 깊게 파게 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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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파보는 1년을 보낸 김 교사는 학교로 돌아와 임용고시에 매진한다. 매일 모나미 펜 한 자루를 다 쓰고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준비했던 임용고시에서 그는 세 번이나 고배를 마신다. 그때 심정이 어땠냐는 질문에 김 교사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가 아직도 겨울을 별로 안 좋아해요. 왜 모든 시험은 항상 겨울에 있고 불합격 소식은 겨울에 있는지. 지금도 그때 가슴이 시렸던 게 조건화돼서 찬바람 부는 11월만 되면 저도 모르게 막 가슴이 시려요. 저는 교육학 공부를 할 때 어느 학자 이야기가 나오면 그 학자가 쓴 책을 서너 권 읽어야 교육학 수험서에 요약해 놓은 한 줄 내용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시간이 참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으로 공부를 한 거죠. 시험을 합격하려면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웃음).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이 다 자산이 됐지만 당시에는 참 힘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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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임용고시 불합격 소식을 듣고 김 교사는 학원 강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대구 수성구에 있는 입시학원에서 3년 남짓 한 시간 동안 강사로 일했다.
"거창에서 버스를 타고 가서 수성구로 가는 지하철을 탔어요. 수성구에서 딱 내리면 올라가는 것도 한참 걸리거든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갔는데 완전 별세계인 거예요. 빌딩에 학원이 있는 게 아니라 학원을 위해 빌딩이 있더라고요. ‘야, 이런 데가 있구나. 나는 참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치열하게 돌아가는 곳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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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실력은 인정받았지만 학원 강사 생활은 김 교사와 잘 맞지 않았다. 특히 김 교사를 힘들게 했던 것은 학생과의 관계의 밑바탕에 '성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성적이라는 게 얼마나 무섭냐면요. 어제까지도 저랑 하하 호호 재미있게 수업하고 집에 갔던 아이가 다음 날이 되면 갑자기 없어져요. 그럼 어제 저는 왜 웃었냐는 거예요(웃음). 사람이라는 게,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을 쌓아가야 하는데 어제라는 바탕이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게 저는 견디기 어려웠어요. 다시 학교 선생님에 도전해 보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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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고시 3번, 정교사 채용 시험 3번. 5전 6기 끝에 김 교사는 그토록 원하던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김 교사는 2020년부터 모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김 교사에게 학원 강사로서의 경험이 교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다. 그는 이번에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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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성적을 매개로만 만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저 수업 준비 열심히 합니다(웃음). 대충대충 하지 않아요. 그런데 성적만이 수업의 알파요, 오메가가 돼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제가 수업 들어가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냐면요.
‘오늘 꼭 진도 다 안 나가도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가요. 진도를 다 나가기 싫다는 게 아니라, 막상 수업 들어갔는데 아이들 분위기가 너무 처져 있을 때가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수업을 해요! 아이스크림 한 번 사주고, 유튜브도 같이 보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면 그다음 수업을 할 수 있잖아요. 물론 교장 선생님은 싫어하시겠지만요(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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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사는 수학 수업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수학 수업을 더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수학이 '해볼 만했던 것', '너무 힘들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지난해부터 '뽀모도로 학습법'을 적용한 수업을 구성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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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 수업 시간에서 처음 20분 동안 수업하고 5분을 쉬어요. 그다음 20분 수업하고 5분을 쉬죠. 처음 5분 쉴 때는 아이들에게 책 소개를 해줘요. 소설, 판타지, 에세이… 다양하게 소개해요. 책에 관심 있는 친구들은 제가 소개하는 걸 들어보고 관심 없는 친구들은 엎드려서 좀 쉬라고 해요. 또 20분 수업하고 마지막 5분은 아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추천곡을 받아서 음악을 틀어줘요. 20분은 아이들이 집중을 할 수 있거든요. 뒤에 5분 쉬는 시간이 있으니까 집중도도 더 높아지고요.
수업 방식을 바꿔보니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방식이 어쩌면 제 욕심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50분 수업을 꽉꽉 채워서 해도 아이들이 50분 내내 집중해서 듣는 게 아니거든요. 중간에 5분, 10분 쉬어서 오히려 수업이 더 잘 진행될 수 있다면 저는 그것도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것도 교장 선생님이 아시면 싫어하시겠지만(웃음) 가끔 땡땡이치고 학교 주변 산책하고 축구하고 그래도 진도나 성적에는 크게 지장이 없더라고요. 제가 수업 이외의 제 모습을 보여주니까 아이들도 수업으로만 저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제 다른 모습을 봐주기 시작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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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사는 학생들이 단순히 수학 시험을 잘 보게 하는 것을 넘어 '수학 하는 삶'을 살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정의하는 '수학 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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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문제를 풀 때 이게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문제도 있고 이게 제대로 풀고 있는 건가 싶은 문제도 있는데요. 왜 어떤 문제는 확신이 들고 어떤 문제는 확신이 안 들까요? 내가 내 사고방식을 스스로 검토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문제의 해답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왜 이러한 답이 나왔는지' 추려내고 검증하는 게 수학이라고 생각해요. 숫자와 기호를 종이 위에 끄적거린다고 해서 수학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보도블록이 있잖아요. 지그재그의 면을 가진 보도블록이 얼기설기 이어져 있는데 이때 '보도블록의 각도를 재어보자'라는 건 수학을 하는 게 아니에요. '왜 지그재그로 돼있을까, 왜 얼기설기 맞춰져 있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게 수학을 하는 거죠. '보도블록은 이러한 모양으로 있어야 한다'라는 답은 이미 나와 있어요.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 찾아야죠. 사람들이 발을 뒤로 걷어차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보도블록은 뒤로 밀리게 돼요. 그렇게 되면 이격이 생기기 때문에 지그재그로 만들어 놓은 거죠. 이러한 과정을 생각하는 게 수학을 하는 거예요. 20분을 한 토막으로 해서 문제의 본질에 대해 하나의 흐름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지금 제 수업 방식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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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수학을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교사는 반대로 생각한다. 수학은 결론까지 이르는 과정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김 교사는 이러한 사고를 대학 시절 은사님에게 배웠다.
"수학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걷지 않은 정신적 오솔길을 오직 나 혼자 걸어가는 것과 같아요. 오솔길 끝에 아무것도 없어도 괜찮아요. 그냥 '오른쪽에 나무가 있네, 길이 이렇게 이어지고 있네'라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걸어가다 보면 내가 걷는 길이 하나의 흔적이 될 수도 있죠. 옛날에 어느 수학자가 어떤 추측을 했단 말이죠. 자기가 한 추측을 공책 옆에 적어놨어요. 이게 너무 설득력 있었던 나머지 몇 백 년 동안 다른 수학자들이 증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됐어요. 최근에 어떤 수학자가 그 추측이 틀렸다는 증명을 했어요. 그럼 수백 년 동안 그걸 증명하려고 애썼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나? 아니거든요. 그 모든 과정이 수학의 발전에 보탬이 됐어요. 꼭 결론까지 가지 않아도 의미있는 오솔길을 걸어갈 수 있거든요. 그걸 은사님께 배웠어요. 과정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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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수학에 진심인 김 교사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수학이 네 인생에서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한다.
"수업 시간에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자지 마라'예요. '수학 공부가 정말로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안 해도 된다, 대신 네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을 하라'라고 말해요. 만화 공부하고 싶으면 만화 공부하고, 운동하고 싶은 친구들은 수업 시간에 스쿼트를 해도 되고 팔굽혀펴기를 해도 된다고요. '너희들 인생에서 남는 걸 해라. 다만 잠은 자지 말라'라고 강조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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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니 선생님으로서의 나는 아이들의 후생을 걱정하며 산다. 학교 이후에도 계속되는 아이들의 삶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 <선생님의 목소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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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교사는 학생들에게 '나는 너희의 시험 성적에 관심이 없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 '수험 시험 응원 한마디'를 해달라는 학교 방송부의 요청에 "저는 여러분들의 수능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카메라 앞에서 말할 정도다. 이쯤 되니 궁금했다. 이렇게 말해도 학교에서 괜찮은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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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로 수업 준비도 안 하고 수업 시간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저 사람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구나'라고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세금 루팡이구나(웃음).' 그런데 저는 매해 수업 자료를 갈아엎어요. 좀 극단적이지만 혹시라도 제가 볼까 봐 수업 폴더를 아예 지워요. 그래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아니까요. 그런 노력을 알고 있으니까 제가 수능 성적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게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수능 대박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 각자가 목표로 하는 걸 응원해요. 학생의 목표가 연애라고 한다면 그 연애를 응원하니까 한밤중에 연애 상담을 해주고, 체육 선생님이 되는 게 목표라고 한다면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상담해 주는 거죠. 성적, 시험, 수능이 아니라 아이들 각자의 목표를 응원해요. 아이들이 노력한 만큼 목표가 이뤄지기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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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사를 처음으로 꿈꿨던 고3 때부터 학원 강사로 일할 때까지 김 교사는 '가르친다'라는 것의 의미를 '수업'에만 한정해서 생각했다. 돌고 돌아 교사가 되면서 김 교사는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사의 역할이 너무나 넓다"라는 것을.
"판서를 예쁘게 하고 설명을 잘하는 게 교사의 역할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주아주 작은 부분이었어요. 아이들의 표정, 컨디션, 습관을 살피면서 지각 안 하고 시간 약속 안 어기게 생활 습관 잡아주고, 아프면 병원 몇 시에 열고 병원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줘야 하고… 아이들은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고 선생님이 챙겨줘야 할 게 많다는 걸 미처 몰랐어요. 그래서 교사의 역량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잊어버리는 능력' 같아요. 내가 얘한테 무언가를 가르쳤다는 걸 잊어야 하는 거죠(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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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목소리>에서 그는 "'선생님'은 '교사'라는 공적 역할을 도맡으면서도 동시에, 먼저 겪어본 삶을 나눠주어야 하기에 사적이기도 합니다"라고 썼다. 김 교사는 특히 학생들의 생활과 인성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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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말을 한참 고르며) 저는 그런 것 같거든요. 기회라는 건 준비된 사람한테 오는 건데 그 준비라는 건 실력과 인성이 겸비돼야 해요. 세계 1위 금메달리스트가 아니고서야 적어도 인성이 그릇된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아요. 저는 제가 담당하는 학생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뭔가를 얻어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에 대한 인식이 있었으면 하고요. 학교의 목적은 역설적이게도 탈학교예요. 학교 밖에서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거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학교 밖에 나가서 좋은 어른이 될까'를 고민해 보면 어떻게 수업해야 할지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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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행복을 고민하는 그가 교사로서 꼭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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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생 때 좌표나 번호, 둘 중 하나로 불렸어요. '반장 옆에 1분단 제일 끝'이나 '오늘 6일이니까 6번'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교사가 되면 학생들 이름을 꼭 불러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학교 다녔을 때와 지금의 학교는 구조도 똑같고 교복, 체육복도 변하지 않았거든요.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매점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과거의 제 뒷모습이 겹쳐 보여서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많은 것이 바뀐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이들 마음 속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겠구나.', '내가 학생 때 바랐던 것, 학생 때 가졌던 고민들이 저기에도 숱하게 있겠구나.' 그걸 매번 느껴요. 교사로서의 초심을 잊지 않게 해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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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표현에 서툴다는 김 교사는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의 폭을 넓히기 위해 마카롱 클래스를 듣고 꽃꽂이를 배우기도 했다. 세상 무뚝뚝해 보이는 그가 꽃을 선물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꽃을 나눠줬는지 물어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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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다가 주웠다'라고 했죠(웃음). 제가 휴직 중이어서 아이들에게 얼마 전에 연락을 받았는데 '수학 시험이 어려웠다'라고 말하면서 선생님 수업이 그립다고 하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선생님 수업이 참 재미있었는데 너무 늦게 알았다고요.
한편으로는 보람이고, 한편으로는 괘씸하죠.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웃음). 아이들이 사적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선생님 중 한 명이어서 기분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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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면서 김 교사는 언성을 자주 높였다.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속에 쌓여 있는 말, 강조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선생님의 목소리> 책날개에는 김동진 교사의 '분노'를 단계별로 익살스럽게 그려놓은 그림이 있다. 한 학생의 작품이다. 아마 학생들도 김 교사의 호통에 숨겨진 말랑한 진심을 알았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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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가 되겠지만 퇴직할 때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도 김 교사는 평범하지 않은 답변을 내놓았다.
"기억에 남을 생각이 없어요. 기억에 남을 생각이 없었던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어떤 특정한 목표, 특정한 이유로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면 괴롭더라고요. 과녁이 있으면 맞히고 싶잖아요. 과녁이 없으면 아무 데나 던져도 되거든요. 저는 그냥 그 과녁을 없애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는 줏대가 없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아이들이 12년 동안 학교에서 만나는 수많은 선생님 중에 저 같은 사람 한 명 있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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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B면> 인터뷰 11월호의 주인공은 '철학 하는 수학교사' 김동진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께서도 인터뷰를 읽고 담당 과목에 맞춰 'OO 하는 삶'이란 무엇일지 잠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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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가을 힐링 음악회 (with 탁보늬 바이올리니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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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을 위한, 가을 힐링 음악회 가을을 맞아 바이올리니스트 '탁보늬' 님과 함께 특별한 클래식 콘서트를 준비해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바쁜 일상에서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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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졸업식>은 정년퇴임 예정이신 선생님의 마지막 학기를 기록하고, 인터뷰 영상을 담아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기획된 유튜브 영상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인 가능하며, ⭐11월 30일까지⭐ 출연자를 모집하고 있사오니 많은 관심과 지원, 추천도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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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호에서는 어떤 선생님의 B 면을 발견하게 될까요?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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