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기자 #인공지능 #제너럴리스트

[주말에 뭐 읽지]  2021-02-25 #45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모두가 손흥민이 될 수는 없다
데이비드 엡스타인 지음, 이한음 옮김
열린책들 펴냄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생후 10개월부터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아들이 골프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우즈는 전문화된 분야에서 조기교육과 재능의 결합으로 1인자가 된 사례다. 반면 ‘테니스 황제’ 페더러의 삶은 달랐다. 그의 유년기는 테니스만을 위한 삶과 거리가 멀었다. 다양한 스포츠를 접했고 또래와 크게 유리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의 부모는 오히려 그가 테니스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말리곤 했다. 충분히 다양한 분야를 체험하는 ‘샘플링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페더러는 테니스 훈련에 몰두했고, 어릴 때부터 테니스 조기교육을 받은 다른 선수들을 압도했다. 

우즈의 삶이 조기 전문화의 결과라면, 페더러의 길은 늦깎이 제너럴리스트의 행보에 빗댈 수 있다. 이 두 천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자는 간명한 메시지를 하나 던진 뒤 논의를 확장해간다. 현실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탐색을 거친 후에야 자신의 전문성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종적인 진로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행보도 궁극적으로는 도움이 되며, 오히려 한우물만 파는 편협한 전문가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입체적인 답을 내놓는다는 게 저자의 핵심 메시지다.

조기 전문화의 성과가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는 분야는 대개 규칙과 변수가 통제되는 ‘친절한 세계’인 경우가 많다. 반면 실제 현실은 변수가 통제되지 않으며 융통성 있게 적응해나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을 작가는 ‘사악한 세계’라고 부르는데, 자신의 범주(이 책에서는 ‘레인지’라고 표현)를 넓히는 게 사악한 세계에서 오류에 빠져들지 않게 한다고 설명한다.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고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전문화된 세상에서 제너럴리스트의 가치는 폄하되기 일쑤다. 현대 경영학·교육학 등에서 중시하는 ‘1만 시간의 법칙(한 가지를 제대로 해내려면 1만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이나 ‘그릿(Grit·일종의 투지와 끈기)’ 같은 가치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자주 진로를 변경하거나 다양성을 고려하는 방식은 환영받기 어렵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직무 적합도를 생각하고, 외부자의 시선을 가질 수 있으며, 익숙한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제너럴리스트의 삶이 ‘융통성 있는 열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모두가 김연아가 될 수는 없다. 모든 아이들을 손흥민처럼 키울 수도 없다. 그러나 모두가 피겨스케이팅이나 축구처럼 규격화한 세계에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규격화한 필드에서 전개되는 노동은 이제 AI의 몫이 될지 모른다. 오히려 융통성 있게 답을 구하는 것, 변수를 이해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내놓는 일이야말로 AI에 밀리지 않는 인간만의 경쟁력을 발현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김동인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곽재식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괴물 이야기가 어떤 사회상 속에서 탄생했는지 따져보면 더 많은 정황을 추측할 수 있다.”

책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적힌 조선의 괴물들을 소개하고, 시대적 배경에 따라 이야기를 해석해냈다. 예컨대 〈중종실록〉의 1527년 6월17일 기록에는 ‘생기기는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한밤중 궁궐을 배회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짐승은 군인들이 놀라 고함을 지를 정도로 몸집이 컸다. 이 일이 일어난 뒤 도성 안팎 사람들은 가위에 눌린다. 비슷한 기록이 1511년에도, 1532년에도 있다. 저자는 〈연산군일기〉를 참조해 이 짐승이 연산군이 궐내에서 키우던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반정을 통해 중종을 옹립한 세력이 이 동물을 보고 불안해한 것은, 연산군의 복수를 두려워한 마음 때문일 수 있다고 적었다. 
이 밖에도 인어·강철·용손 등 다양한 괴물에 얽힌 이야기를 적절하게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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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제니퍼 에버하트 지음, 공민희 옮김, 스노우폭스북스 펴냄

“암묵적 편견에 맞서려면 거울을 보아야 한다.”

인종 편견은 왜 생성되고,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 책에 따르면, 흑인이 위험하다는 편견을 가진 것은 경찰에 국한되지 않았다. 일반인 피실험자 다수가 흑인의 얼굴을 백인의 얼굴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라고 여겼다. 사람들은 흑인의 얼굴만 보고도 그 체구가 크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사람을 미는 동작을 취하더라도 흑인에 대해서는 특히 ‘폭력적’이라고 여긴다. 무기를 가진 인물에게 총을 쏘는 실험에서도, 대상이 흑인인 경우에는 방아쇠를 더 빨리 당겼다. 저자는 미국의 교육 방식을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택한 ‘색을 없애는’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인종 차이와 그에 따른 차별을 더 정확히 인지시켜야 인종주의에 비판적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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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버블
지야 통 지음, 장호연 옮김, 
코쿤북스 펴냄

“그러므로 아무리 안정적인 세계 인식이라도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극히 일부다. 우주는 너무 거대해서 가늠하기 어렵고, 벼룩 같은 작은 생명들은 보이지 않아서 아예 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이 책은 ‘리얼리티 버블(현실 거품)’이라고 한다. 예컨대 비둘기는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종양을 판독한다. 또 물총고기는 사람 얼굴을 구분해낸다. 우리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감각 역시 리얼리티 버블이다. 
캐나다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가 감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소개한다. 거품을 터트리듯, “우리가 지금껏 우리의 환경과 맺어온 관계들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한다. 과학책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우리는 어디에서 끝나고 시작할까’와 같은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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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
브리기테 슈스터 지음, 김목인 옮김, 책읽는수요일 펴냄

“고양이 사다리는 경이로운 건축물입니다.”

고양이 사다리라니. 고양이가 자유롭게 집을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둔 작은 계단이라니. 2년마다 ‘반려동물 불가’ 문구가 적혀 있지 않은 자취방을 찾아 헤매는 한국 ‘집사’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구조물이다. 스위스 베른에 사는 저자는 고양이 사다리가 집사와 고양이 양쪽 모두에게 실질적인 이득을 준다고 말한다. “밖으로 나가는 것에 익숙해진 고양이들은 독립적으로 건물을 드나들 수 있고, 집사들은 고양이를 들이기 위해 집에 머물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운 건 고양이가 집 밖으로 나가도 안전하다는 점이다. 고양이를 해코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이니까. 고양이 사다리는 안전하면서도 자유로운 작은 동물을 상징하는 ‘경이로운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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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당신_북클럽 신청 마감이 3일 남았습니다(2월 28일 마감 종료).
올 봄을 함께할  당신만의 친구책방을 찾아보세요. <시사IN>과 전국 30곳 동네책방이 책을 통해 세상이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준비했습니다. 

  • ① 북클럽 시작 전 함께 읽을 책 3권(아래 사진)을 원하는 곳으로 배달받습니다.
  • ② ①의 책을 내가 선택한 동네책방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습니다.
  • ③ <시사IN>이 매월 주최하는 온라인 북토크에 참여합니다.
  • ④ 북클럽을 완주하고 수료증을 받습니다(요청 시).

💥 천관율 기자의 오픈특강에서 저자 직강 북토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읽는 당신×북클럽 페이지를 참조하세요.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 갔는데 판타지 소설 한 권이 눈에 띄었습니다. 해리포터 시리즈 류 판타지 소설이었는데요. 평소 이 분야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닌데, 제목에 들어 있는 ‘종이 심장’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끌더군요.

알고 보니 이 책은 마법학교를 졸업한 소녀가 마법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습니다(판타지 애호가들은 이미 무슨 책인지 다들 아실 듯요😊). 그런데 책에 나오는 마법 유형이 흥미롭더군요. 소설 속 마법사들은 마법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인간이 만들어낸 재료, 그러니까 금속․유리․고무․플라스틱․종이 같은 재료중 하나를 골라 결합 의식을 치르게 됩니다. 뛰어난 마법사건 아니건 결합할 수 있는 재료는 딱 한 가지. 그 뒤로는 평생 그 재료를 다루는 마술을 행하며 살게 되는 건데요.

이중 가장 인기가 떨어지는 재료가 무엇일까요? 네, 아마도 짐작하셨겠지만 종이입니다. 마법학교를 다니는 동안 최첨단 금속 마법사가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던 주인공은 졸업과 동시에 시련에 직면하게 됩니다. 갈수록 희귀해지는 종이 마법사를 충원하기 위해 학교에서 최우등 졸업생인 주인공을 종이 마법 쪽으로 강제 배정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같은 소설 속 설정도, 원하는 미래를 얻지 못해 '가슴이 무너졌'던 주인공이 종이 마법을 배우면서 알게 되는 새로운 세계도 모두 흥미로웠습니다. 툭하면 구겨지고 물에 젖고 불에 타는 종이가 발휘하는 놀랍도록 신비한 마법의 힘이라니요...

오늘 소개된 책 기사를 읽다 보니 그것은 어쩌면 무규칙, 무정형의 마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만난 그림책방 주인은 책방 앞을 기웃거리는 아이 손을 잡아채 바쁘게 걸어가는 부모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아득해질 때가 있다 하더군요. 짜여진 일정을 벗어나는 것을 잠시도 허용하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과연 어떻게 자라날까 궁금해진다면서요. AI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만 시간'이 아니라 종이의 융통성 그리고 해찰할 시간 같은 것들이 아닐까요?

"추천해주신 책 전부 읽어보고 싶어요."
"신기하게도 요즘 관심 갖기 시작한 주제에 딱 맞는 책을 골라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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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책방 42곳의 이야기가 담긴 <모여봐요, 동네책방 문화사랑방 2020>을 지역문화진흥원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네요. 곰씨네 그림책방(남양주), 진주문고(진주), 바이허니(울산) 등 읽는 당신×북클럽에 참여하는 책방들도 수록돼 있다니 관심있는 분들은 이곳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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