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는 해부로 알 수 없다


브랜드 지식을 쌓고 싶다며 더 많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메일이 더러 온다. 그때마다 나는 두 가지로 답한다. 브랜드를 공부하려면 브랜드 바깥의 책을 넓게 읽으라고 권하고, 브랜드를 런칭하려면 차라리 브랜드 책을 덮으라고 조언한다. 많은 브랜드 전문 서적이 이미 성공한 사례를 중심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식의 독이다. 의심하는 힘, 곧 대상을 입체적으로 보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독이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 성공 사례마저 정확하게 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반 페이지, 길어야 한 페이지로 사례를 인용할 뿐이다. 특히 브랜드의 창세기라 할 만한 런칭의 동기와 영감, 그리고 그 출발을 가른 특별한 사건에 대해서는 너무 비마케팅적이라는 이유로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브랜드의 대부분은 브랜드 전문서가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전에 이미 세상에 존재했다. 그렇다면 브랜드를 런칭하고 키운 사람들은 책도 없이 어떻게 브랜드를 학습했을까. 지금도 성공한 브랜드를 세운 사람들을 보면 의외로 브랜드 책을 접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브랜드 책이 전혀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은 브랜드 전문서가 없어 읽지 못했을 뿐, 브랜드의 영감을 길어 올릴 만한 책은 충분히 읽었다.


그렇다면 전문서가 아닌 책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과 인터뷰하면서 나는 지금의 브랜드 전문서가 거의 다루지 않는 특별한 영역을 발견했다. 그들에게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직관 지능이 있었다. 그들은 브랜드와 무관해 보이는 책에서도 브랜드를 보았다.


브랜드와 관련된 대부분의 책은 브랜드를 잘 이해하도록 쓰여 있다. 마치 책대로 따라 하면 혼자서도 런칭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단계별로, 항목별로 친절하게 정리해 두었다. 그래서 따라 하면 위험하다.


많은 브랜드 책은 살아 있는 브랜드를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 성공의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해부가 끝난 자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각 부분의 모양이지,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했던 생명이 아니다.

브랜드를 만든 사람의 결핍, 우연히 만난 사람, 어느 날 들은 한 문장, 시장의 작은 균열, 버리지 못한 집착과 끝까지 밀어붙인 신념은 분석표 안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브랜드는 바로 그런 비정형의 사건에서 시작된다.


개념화되고 논리화된 지식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본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들고, 다시 만들 수 없는 것을 복제할 수 있는 공식처럼 보여 준다.

2000년대 초반까지 나온 많은 브랜드 책을 펼쳐 보면 사실은 마케팅 책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성공 사례는 주로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어 있었고, 브랜드 전략은 마케팅 전략의 한 귀퉁이에서 다루어졌다. 그리고 그 책들이 성공의 표본으로 호명하던 기업 가운데에는 지금 사라졌거나 이름만 남은 곳도 있다.


이후 ‘브랜딩, 영혼, 진정성, 가치’ 같은 단어가 은유로, 혹은 새로운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브랜드와 매체에 의해 기존의 마케팅 법칙이 계속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마케팅 책에서는 핵심으로 다루지 않던 관계, 사랑, 철학, 선한 뜻 같은 비마케팅적 요소에 의해서 말이다.


브랜드란 무엇인가.

그 정의는 지금도 논쟁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산업마다 다르고, 시대와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달라진다. 아직 완전히 정의되지 못한 것을 위해 과연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나는 오래전 브랜드의 복잡성과 확장성을 우주의 이미지로 풀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적이 있다. 우주 팽창과 브랜드 팽창의 닮음을 설명한 것인데, 핵심은 단순하다.


우주는 멈추지 않고 팽창한다. 별은 생성되고 폭발하며 또 다른 별의 재료가 된다. 시장도 닮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어떤 브랜드에 의해 하나의 시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그곳에서 수많은 브랜드가 태어나고, 그중 어떤 브랜드는 한동안 시장을 점유하다가 또 다른 브랜드에 의해 밀려난다.


창조, 팽창, 파괴, 소멸, 그리고 또다시 창조.

물론 우주의 법칙과 시장의 법칙이 같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주를 바라보는 상상력으로 시장을 보면, 브랜드를 단순한 상품이나 마케팅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생성과 소멸의 생명체처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세상을 브랜드로 이해하고, 브랜드로 느끼고, 브랜드로 지어진 세계로 보고자 했다. 그래서 한 지점인 브랜드를 알기 위해 전체인 우주를 보는 눈으로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브랜드를 알기 위해 브랜드 책만 읽는 것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브랜드는 인간의 삶과 정신, 문화와 역사, 기술과 제도, 욕망과 관계 속에서 태어난다. 더 넓은 개념에서 관찰해야 하고, 사람과 얽히고 감정과 엉켜 있어 그 반응이 대단히 복잡하다. 인류학과 역사와 뇌과학, 그리고 우주적 상상력으로 동시에 바라볼 때 브랜드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브랜드는 해부로 알 수 없다.

가까이에서 조각낼수록 생명은 사라진다. 우주를 읽듯 멀리서 전체를 보고, 흩어진 지식과 경험을 하나의 직관으로 꿰뚫을 때 비로소 브랜드는 살아 있는 제 모습을 드러낸다.

비슷하면 가짜다.


비슷한 쌀국수집, 비슷한 노래방, 비슷한 옷가게, 비슷한 포토샵.

그 비슷한 가게들 가운데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어디인가. 그리고 왜 그곳이 기억에 남는가.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 있다면, 그 매장은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다.


기업의 브랜드 런칭이든 개인의 창업이든 가장 흔한 실수는 잘되는 브랜드와 매장을 그대로 옮겨 오는 것이다. 해외에서 본 가게, 유명한 거리에서 발견한 매장, 다른 동네에서 줄을 서는 식당을 그대로 베끼면 그 성공도 함께 옮겨 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매장은 옮길 수 있어도, 그 매장을 태어나게 한 이유까지 옮길 수는 없다. 브랜드에는 보이지 않는 국경선이 있다. 간판과 메뉴와 인테리어는 그 국경을 넘을 수 있지만, 그 브랜드를 태어나게 한 이유와 시간은 쉽게 넘어오지 못한다.


내가 모방하고 싶을 만큼 좋은 매장이었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도 좋아 보였을 것이다. 곧 비슷한 간판과 메뉴와 인테리어가 거리를 채운다. 모두가 같은 것을 베끼는 순간, 가장 먼저 베낀 가게조차 차별성을 잃는다. 모방으로 시작한 가게는 결국 자신을 모방한 가게들 사이에서 사라진다.


윤시온이 벤치마킹에서 저지른 실수도 여기에 있었다. 그는 가게의 외형은 옮겼지만, 그 가게를 태어나게 한 사람과 시간을 옮기지 못했다. 윤시온은 성공한 가게를 보았지만, 성공이 만들어지기 전의 시간은 보지 못했다.


결과는 가져왔지만 원인은 가져오지 못했다. 물론 모든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보고 배우며, 배운 것을 반복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문명과 문화도 모방 없이 이어질 수 없다.

그러나 모방 뒤에 재창조가 없다면 그것은 끝내 흉내에 머문다.

진짜 벤치마킹은 원본을 얼마나 정확하게 복사했는가로 결정되지 않는다. 원본에서 무엇을 발견했고, 그것을 자신의 조건 안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나게 했는가에 달려 있다.


벤치마킹의 힘은 얼마나 잘 베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보았느냐에 있다. 그렇다면 윤시온은 무엇을 보지 못했을까. 그의 모방은 어디에서 재창조되지 못하고 흉내로 떨어졌을까.이제 그의 가게로 들어가 보자.


한 편의 만화로 보기에는 분량이 많고 길다는 피드백을 받아, 만화책 형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람은 브랜드를 따라 산다


우주만큼 광활한 공간이 우리 안에도 있다. 사람의 뇌다.

인간의 뇌에는 약 860억 개로 추정되는 뉴런이 있다. 그 광활한 신경의 우주에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거울 뉴런’이라는 이름의 반응이다.


어떤 사람이 팔을 움직일 때 그의 운동 신경계가 반응한다. 그런데 그 행동을 바라보는 사람의 뇌에서도 움직임과 관련된 일부 영역이 반응할 수 있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을 바라보는 일이 단순한 관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하나의 단서를 보여 준다.


사람은 보는 것을 닮는다.

손흥민 선수가 수비수 둘을 제치고 골문을 향해 내달릴 때, 우리는 소파에 앉아 있으면서도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가 공을 차는 순간 숨을 멈추고, 골망이 흔들리면 우리가 골을 넣은 것처럼 주먹을 쥔다.

물론 우리는 손흥민처럼 공을 몰아 골망을 흔들지 못한다. 그러나 그를 닮는 더 빠른 길은 있다. 그가 신는 신발과 입는 옷을 사고, 그가 사용하는 브랜드를 소유하며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따라 살아 보는 것이다. 바로 그 따라 살기의 대상이 브랜드다. 어쩌면 최고의 찬양은 닮으려는 마음이다.


사람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을 닮고 싶어 하고, 자신이 속하고 싶은 세계의 언어와 옷과 물건을 따라 한다. 브랜드는 그 욕망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브랜드를 산다는 것은 물건 하나를 들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일부를 내 삶 안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필요한 것보다 갖고 싶은 것을 산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동차는 한 대면 족하지만, 갖고 싶은 자동차는 수십 대일 수 있다. 필요한 신발은 몇 켤레면 충분하지만, 닮고 싶은 삶이 많아질수록 신발도 많아진다.


사람은 필요한 물건만 원하지 않는다. 불필요하지만 자신을 다르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을 원한다. 그것이 욕망이며, 브랜드 확장의 중심축이다.


브랜드 시장이 우주처럼 팽창하는 이유도 결국 사람 안에 있다. 사람은 보고, 공감하고, 모방하고, 다시 자기 방식으로 창조한다. 거울 뉴런이 그 모든 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은 바라본 것에 반응하고, 반응한 것을 닮아 간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하나의 단서다.


시장의 빅뱅은 매체의 발달이었다. 매체는 스타를 낳았고, 스타는 대중이 닮고 싶어 하는 대상이 되었다. 신문과 잡지, 영화와 텔레비전은 소수의 사람을 스타로 만들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그 구조를 뒤집었다. 이제 매체는 스타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까지 스타이자 매체로 만든다.


한 사람의 옷차림이 콘텐츠가 되고, 한 사람의 식사가 라이프스타일이 되며, 한 사람의 취향이 수많은 사람의 구매가 된다. 더 많은 매체와 더 많은 스타가 태어날수록 닮고 싶은 삶도 많아지고, 브랜드는 그만큼 더 빠르게 증식한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통해 삶을 사는 법을 익힌다.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일하고, 어떻게 쉬고, 어떤 가치에 동의해야 하는지를 브랜드가 보여 준다. 그렇게 계층과 계층 사이에서,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모방과 창조가 반복된다.


스마트폰이 처음 세상을 바꾸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쉽다. 하나의 기기가 공통의 주제가 되고, 그것으로 생활이 바뀌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그룹을 이루었다. 급기야 사람들의 말투와 행동, 세상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달라졌다.


결국 브랜드는 상품(commodity)을 넘어 공동체(community)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문화의 파생물이 아니라 문화를 만드는 중심이 되었다. 같은 브랜드를 쓰는 사람끼리 같은 세계에 속해 있음을 확인하며 묘한 친밀감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다.


그래서 브랜드는 더 이상 상품이 아니라 삶이다. 소비자는 브랜드를 사지(buy) 않고 함께 살고(live) 있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집 안에 들어와 물건으로 머물지 않는다. 습관이 되고, 취향이 되고, 언어가 되고, 관계가 된다. 어느 순간 사람은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가 제안한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질문이 남는다.

나는 브랜드를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삶이 브랜드를 선택하게 한 것일까.

사람은 브랜드를 따라 산다.

그리고 오래 따라 살다 보면,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브랜드를 닮는다.

타스의 브랜드 편지는 시즌 1 [유니타스브랜드], 시즌 2 [엔텔러키 브랜드], [아내가 창업을 한다], [브랜드의 탄생], [거리에서 브랜드를 배운다]를 비롯해 지금까지 발행한 브랜드 관련 서적과 자료, 그리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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