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작가의말 #정희지 #시 #전욱진
당신의 가장 가까운 문학 친구, 차차
13호  |  2025년 6월 25일 수요일
안녕하세요. 친구님의 가장 가까운 문학 친구 차차입니다. 

독서할 때 혹은 글을 쓸 때 음악을 들으시나요? 편지를 읽기 전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있어요. 웨스 몽고메리의 기타 연주입니다. 차차는 지금 ‘🎵Here's That Rainy Day'를 듣고 있는데요. 오늘 배달해 드릴 시에 웨스가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엄지손가락만으로 기타를 연주했던 연주자의 터치를 전욱진 시인은 ‘안에서 바깥으로 부드러운 피부가'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시와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을 느껴보세요.


정희지 그림책 작가의 말을 들으실 땐 머릿속에 우산을 펼쳐야 해요. 그동안 차차는 우산을 비를 막아주는 도구라고만 생각했는데요. 글을 다 읽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우산은 은신처고 아지트고 나만의 세계일 수 있구나! 커다란 우산을 방안에 펼치고 이불을 덮으면 텐트가 되고 작은 집이 된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요? 글 하나, 이미지 하나로 인식이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해보세요.      



그림책 작가의 말 정희지 「비가 오든 안 오든」
전욱진 「물방울무늬와 달빛」

비가 오든 안 오든


 어릴 때 몇 번이고 돌려 본 애니메이션 비디오 중에 『눈의 여왕』(1957년)이 있다. 기억해  보면 애니메이션 초반부는 이러했다.


 두꺼운 책들 사이에서 엄지손가락만큼 조그만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어린이 정희지는 그를 요정이라 믿었다.) 할아버지는 우산을 쓰고 둥실 떠오르듯 내려온다. 책상에 발을 디딘 뒤, 알록달록한 무늬의 우산을 동그랗게 펼쳐 보인다. 그리고 우산을 점차 빠르게 돌리며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우산 무늬는 처음엔 단순한 도형이었는데, 조금씩 복잡해지더니 『눈의 여왕 속 주인공들이 사는 풍경으로 변한다. 나는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세계로 빠져든다.


 눈동자에 얼음 파편이 박힌 뒤 차가운 소년이 된 카이는 주인공 겔다를 떠나 눈의 여왕을 따라간다. 여왕이 모는 마차는 카이를 태우고 밤하늘을 선회하며 점점 높이 올라간다. 별과 달이 흐르는 하늘도 함께 빙글빙글 돈다. 하늘이 멀어지고 보니, 그 밤하늘은 우산에 수놓인 그림이었다. 할아버지가 여전히 우산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다른 세상에 들어갔다가 나오게 한다니. 우산은 꽤 대단한 도구였다.


 메리 포핀스는 우산을 들고 하늘을 날았다. 해리 포터의 친구 해그리드는 우산 안에 마법을 숨겼다. 나도 낯선 공기를 향해 날고 싶었다. 우산 안에 중요한 걸 하나쯤 숨겨 두고도 싶었다.





 우산은 때때로 나를 현실로부터 숨겨 주었다. 집에 우산을 펼쳐 놓고 쏙 들어가곤 했다. 그 위에 이불을 덮어 아늑한 은신처로 만들거나, 우산 여러 개를 연결해 침입 불가 요새를 만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집 안에 있는 게 아니었다. 유성우가 쏟아지는 우주 정거장이나 티라노사우루스와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뛰어다니는 교실 안에 있었다. 그 세계는 “밥 먹어라!”소리에 허무하게 무너지곤 했다. 가끔 친구나 동생이 함께 들어왔다.


 어린이 정희지는 각자 우산이 있어도 함께 쓰는 걸 좋아했다. 비 오는 등하굣길이면 내 우산을 친구의 우산 아래로 살짝 포개어 썼다. 우산대가 중심을 잡아 서로의 자리를 지나치게 빼앗지 않게 해 주었다. 스며든 빗방울이 가끔 어깨를 적셔도 대수롭지 않았다.


 우산을 겹치는 순간, 친구의 눈은 커다래졌고 얼굴에는 곧 장난기가 떠올랐다. 우산을 포개는 건 친구와 나의 작은 세계를 합체하는 일 같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부럽지 않은, 우리만의 방을 지니고 다니는 기분을 누렸다. 그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고, “나 머리꼭지에 비 맞았어.”, “어제 레고 밟았잖아.” 별것 아닌 이야기들도 오래 귀에 남았다.


 무엇이든 될 것 같던 우산은 어느새 그냥 비를 피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걸로 끝난 줄 알았는데, 나는 우산을 가지고 온갖 상상을 하는 책을 냈다. 출간을 준비하는 동안 우산을 손에 쥘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우산이 필요한 날마다 사람들과 책을 통해 연결될 것 같았으니까. 등장인물들이 반소매를 입고 시원하게 놀아서 그런가. 실제로는 거의 여름에만 책이 나갔다.


 무늬를 그리고 시를 짓고 이야기를 상상하는 지금의 모든 행위는 어쩌면 어린 시절 그 우산을 만드는 일 같기도 하다. 나는 『눈의 여왕』 속 할아버지가 부럽다.


 아쉽지만 내가 만드는 우산에는 마법이 없다. 할아버지는 작지만 힘이 세서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았는데, 나는 우산을 돌리다 자주 멈칫거린다. 물렁거리는 몸으로 근력 운동을 해 본다. 살이 바람에 꺾이면 펴 보고 지지대를 보강하거나 이음새를 바꿔 본다. 삐뚤빼뚤하다. 어깨나 머리꼭지가 젖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잠깐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다. 비가 오든 안 오든, 이 우산은 계속 펼쳐져 있을 것이다.


차차 이 글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희지 처음에는 지금 쓰고 그리는 이야기를 꺼냈어요. 동시집과 그림책들이 서로 얽혀서 재밌는 글이 나올 줄 알았지만, 막상 써 보니 동시 에세이에 가까웠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우산 놀이』를 두고 새로 썼어요. 숨김없이 솔직하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차차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나 음식점을 소개해 주세요.
희지 <📍닥터 로빈>. ‘통 단호박 콩 크림 수프’를 좋아해요. 들뜬 마음으로 집에 가져온 수프는 리필까지 해 와도 금방 사라져요. 남은 단호박에 허브 솔트를 뿌리면 바비큐 맛이 나요. 먹고 나면 괜히 사치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요. 제 손을 못 믿겠지만요.



글쓴이 정희지

동시와 그림책을 창작하며, 공예 디자인 스튜디오 ‘퀸지 오브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국민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을 공부했으며, 「안녕하세요?」 외 9편의 동시로 제15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림책 『우산 놀이』를 쓰고 그렸다.

@heejeejung


차차 이 시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요?
욱진 이 시는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 웨스 몽고메리의 전기에서 영향을 받아 쓰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그의 연주곡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Polka Dots and Moonbeams>에서 따왔어요. 시에 쓴 대로, 어느 날 형으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은 웨스는 밤낮으로 혼자 연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초기에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클럽에서 연주를 한 시기가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이웃이 깨지 않도록, 엄지손가락만으로 기타 연습을 했다고 하고요. 그 방식은 곧 웨스만의 독창적인 연주법이 되었고 그는 결국 대가의 반열에 올라 여전히 회자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야심한 밤, 자신의 악기와 그것이 내는 음향에 매료된 이의 모습과 그이의 갸륵한 마음에 관해 쓰고 싶었습니다.

차차 시를 쓸 때 자주 듣는 음악이 있나요?
욱진 혼자 있을 때 항상 음악을 듣는데요. 집에 턴테이블이 있어서 LP판 모으는 것이 취미입니다. 턴테이블로 음악을 재생하면 소리에 질감이 더해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사운드가 보다 풍성하게 느껴지고요. 그 덕분인지 재즈를 곧잘 듣고 있습니다. 시를 쓸 때도 쓰지 않을 때도 자주 듣습니다.


글쓴이 전욱진

시 쓰고 LP판 뒤집는 사람. 시집 『여름의 사실』, 산문집 『선릉과 정릉』이 있다.


오늘의 편지 어떠셨나요?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글을 나누는 마음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새삼스럽지만 문학 친구가 있어 차차는 행복하네요.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된다고 해요. 멋지고 튼튼한 우산 속에서 씩씩하게 걸어가세요. 


 차차의 친구 

안녕하세요. 소설가 정용준입니다. 정희지 그림책 작가님의 글을 읽고 우산의 안쪽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익룡과 나비가 하늘을 날고 기차가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있는 세계. 비를 막아주고 세상의 한계와 법칙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자유로운 아지트.  ‘한 손에는 흰 돌을/한 손에는 우산을/들고 있다/우산 밖에는 비가 온다.’ 좋아하는 시인 신해욱의 시 <천사>를 읽을 때 밑줄을 그었어요. ‘우산 밖에는 비가 온다.’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시가 주는 시적인 감각 덕분에  비가 내리지 않는 우산의 안쪽을 잠잠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의 안쪽. 나의 세계. 나의 상상. 나의 꿈. 나의 언어. 나의 기억. 나만의 아지트. 친구들은 비를 막아주는 우산의 안쪽 같은 나만의 아지트가 있나요? 저는 싱거운 대답 같지만 여전히 책인 것 같아요. 마음이 어둡고 외롭고 불안하고 힘들 때 억지로라도 책을 펼치고 글자를 읽어주면 폭풍과 비바람이 잠잠해집니다. 책이 나를 보호해주고 책이 보여주는 세계가 나를 환대하는 느낌이 들어요. 친구들의 아지트도 제게 알려주세요!




래서팬더 🐼 최진영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는데, “부끄러움 때문에 체한다”는 말이 왠지 저한테도 쏙 들어왔어요. “내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부끄럽다”는 문장은 특히 마음이 아릿했어요. 저도 가끔 그래요. 들키면 안 될 마음들을 조심스럽게 품은채,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는 아이처럼요. 그래서 “혼자이고 싶으면서도 혼자이기 싫다”는 말이 너무 공감됐어요. 나도 그 사이 어딘가에 늘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사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차차 꼭 만나고 싶은데, 사전 예매를 놓쳐서 못 가게 됐어요.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더 아쉽고, 차차가 조금만 일찍 알려줬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이렇게 마음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차차도 제 편지를 보고 꽃다발 받은 사람처럼 기분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
 ➡ 앗.. 차차가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였어야 했는데!! 이렇게 소중한 독자님을 못 만나다니요.. ㅠㅠ 아쉬운 마음에 차차의 눈매와 입꼬리도 주르륵 내려갔지만 정성스럽게 남겨준 친구의 편지에 고마운 마음으로 가득 차버렸어요. 고마워요! 내년에는 차차가 좀 더 재바르게 움직여 볼게요 ~

돌살이 🗻 제겐 올 여름 짜파게티 말고 콩국수를 함께 먹고 싶은 친구가 있어요. 얼마 전 그 친구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는데요, 친구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제가 뭔가를 많이 원하고 기대했던거 같아요. 내심 먼저 알아주고 다가와주길 바라다가 혼자 실망했고 이런 속좁고 욕심 많은 내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서, 그냥 조용히 멀어져야 하나 고민하느라 괴로운 며칠을 보냈답니다. 그래서 최진영 작가님 소설 읽었을 때 이해받는 기분이 들었고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진 적은 없다. 나의 진심에는 이렇게 따뜻한 마음도 있다. 그렇다면 따뜻한 마음을 써 보자."는 문장을 되뇌며 자고 났더니 아침에 마음이 좀 순해진 거 같아요ㅠ 그리고 제 비밀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요, 는 뻥이고 도서전에 귀여운 차차를 만나러 갈 거지만 돌살이인 건 비밀로 할 거예요!
 ➡ 콩국수를 함께 먹고 싶은 친구라니! 어른이 버전일까요! 최진영 작가님의 문장이 마데카솔처럼 친구의 마음을 살짝 가라앉게 해준 것 같아서 차차도 기뻐요! 이번 도서전에서 차차를 만났나요! 차차는 돌살이 친구가 어떤 분일까 너무 궁금하답니다 .. ㅎㅎ

조재 🐯 짜파게티를 읽고 별안간 사무실에서 눈물 참는 사람이 되었다,,, 차차야 좋은 글 고마워
 ➡ 토닥토닥. 조재의 진심에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걸 차차는 알고 있어! 

초여름 🌿 최진영 작가님의 <짜파게티>를 읽으며 스스로를 미워했던 마음을 누군가 쓰담쓰담, 토닥토닥 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는 나의 못나고 비겁한 조각을 다 알고 있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내가 부끄럽다.'에서 출발해, '나의 진심에는 이렇게 따뜻한 마음도 있다.'로 도달하다니. 좋은 글이란 이렇게 점점 넓어지고 뻗어나가서 기어코 빛나는 진짜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마음으로 이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사해요!
 ➡ 앗, 위 조재 친구에게 전달하고 싶은 편지에요. 차차와 차차의 친구들 모두가 공감할 것 같아요! 


친구님

오늘 차차의 편지는 어땠나요?


1분만 시간을 내서 차차에게 후기를 보내주세요. 큰 힘이 된답니다 :)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차차 또 만나요. 안녕!


당신의 가장 가까운 문학 친구, 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