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 피해자 남성성의 시발점
• 한국사회에서 이용되고 있는 ‘역차별 피해자 남성’ 서사의 현실

‘피해자 남성성’, Why & How ?

날 만나주지 않는 여자들, 아예 내 밑에 굴복시키겠어!

다들 ‘일베(일간베스트)’ 알고 계시죠? 국내에서 2010년부터 주로 여성혐오 표현과 행동으로 사회적 논란을 만들어온 온라인 커뮤니티인데요, 캐나다에도 이와 비슷한 게 있다고 해요. 비자발적 순결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약자인 ‘인셀(incel)’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소개해드릴 국외 연구는 이 커뮤니티 상의 9,062개의 게시글을 분석해서 ‘피해자 남성성’의 특성과 그것이 여성혐오로 이어지는 방식을 살펴보았어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인셀 이용자의 구성을 살펴보면, 2022년 기준으로 이용자의 82퍼센트는 18세에서 30세 사이의 남성이고, 인종으로 따져보면 절반 이상은 백인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회 계층으로는 약 60퍼센트가 중산층에 속했고, 3분의 1은 하위 계층에 속했어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 피해자 남성성의 시발점

인셀 이용자들 사이에서 공유하고 있는 두 가지 주요 이데올로기는 ‘블랙필(black pill)’과 ‘레드필(red pill)’ 이데올로기입니다. ‘red pill’ 이데올로기란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을 뜻합니다. ‘black pill’ 이데올로기는 red pill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채 흑화한 사람들로, 자신들은 절대로 이성과 로맨틱한 혹은 성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거고, 영원히 혼자일 거라는 믿음을 가집니다. 이때, black pill 이데올로기의 핵심 기저에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외모지상주의의 피해자로 인식하면서, 외모가 여자와 관계를 맺기 위한 최우선이자 유일한 요소라고 믿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평생 여자를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피해자로서 정체성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죠. 그들은 좋은 성품이나 경제-사회적 지위는 결코 외모라는 특성에 견줄 수 없으며, 운동, 자기계발, 혹은 성형과 같은 노력은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어요. 선천적으로 타고나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요소, 특히 큰 키와 인종(백인)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말이죠. 

💡남성 밑에 여성을 종속시킴으로써 보호하는 그들의 남성성

그들의 피해자 남성성은 기존의 가부장적 남성성과 결탁하며 새로운 남성성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인셀 문제’, 즉 자신들과 같은 남성들이 여성과 평생 관계를 갖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적인 행동과 집단적 목소리 개진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공통적으로 여성을 남성의 밑에 종속시키는 방식을 보였습니다. 개인적 실천으로는 잘생긴 남성으로 프로필을 속여 여성들을 유인해 그들에게 성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고 그것을 커뮤니티에 자랑스레 전시하고 공유하는 방식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집단적 목소리는 과거와 같이 여성의 권리를 다시금 축소시키고 결혼-연애 시장을 규율해서 인셀 문제를 겪는 남성들을 위한 ‘성적 재분배(sexual redistribution)’를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들이 말하는 해결책에서 주목해야하는 건 그들은 자신이 남성 집단 내 낮은 위치에 속해있는 상태를 전복시킬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여성 전체를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종속시킴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높게 보전하고 싶어했다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피해자 남성성과 기존의 가부장적 남성성이 결합된 새로운 남성성이 가능해진 이유이자, 그러한 남성성이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작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신자유주의 + 플랫폼 자본주의 = 무한 피해 경쟁의 시대

앞선 소개의 인셀 이용자들은 단지 일부 남성들의 특수한 사례일 뿐일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국내 논문은 피해자 정체성을 얻기 위한 경쟁은 경기 후퇴 속에서 신자유주의 질서가 공고해지면서 강화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피해자 남성성의 등장과 확대가 그저 ‘실패한 몇몇 남자들’만의 예외적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죠. 자, 그럼 이제부터 신자유주의 질서가 ‘피해 경쟁’을 유발하는 이유와 플랫폼 자본주의로 인해 현대사회에서 계속해서 피해 남성의 서사가 부상하는 이유를 알아볼까요? 

💡피해를 주장하는 능력의 중요성, 그리고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는 피해의 목소리들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개인의 역량과 능력을 가장 중요한 자질로 강조하는 능력주의 담론과 사회구조적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문제 해결의 초점을 개인에게 지우는 신자유주의적 엄벌주의를 특징으로 합니다. 그러면서도 기존에 구조적 불평등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됐던 차별, 평등, 피해와 같은 개념을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특권적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한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권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위협하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위협’받았음을 주장하면서 ‘피해’의 개념을 전유하고 ‘전략적 피해자’의 위치를 점하려 하는 것이죠. 

이러한 ‘피해’개념의 재배치는 국지적 현상도, 역사적으로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20세기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탈식민 등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자신의 고통을 주장하는 능력과 전략적으로 피해자 서사를 구축하는 건 중요했었죠. 이와 동일하게, 경제 성장 후퇴기에 들어서면서 생계부양자 모델을 기반으로한 가부장적 남성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남성들에게도 ‘전략적 피해자’ 위치를 점하는 게 중요해진 겁니다. 

그러나 한 연구자는(2021)는 최근 남성 피해자화 현상은 특별히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맥락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플랫폼 산업이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들의 선호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추적하기 어려운 선호 대신에 ‘이용시간’을 추적의 대상으로 삼고 이것을 늘리기 위해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들을 진열하고 있는데요. 경기 후퇴 속 박탈감과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플랫폼은 주의를 끌고 참여를 유도하기 쉬운 ‘피해’와 ‘고통’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그게 무엇이든 장려하고 확산시키고 있다는 거예요. ‘피해 남성’으로서의 목소리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을 중심으로 힘을 키우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위 같은 주장의 유효성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이용되고 있는 ‘역차별 피해자 남성’ 서사의 현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역차별 피해자 남성’ 서사가 2021년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를 기점으로 거대 양당이 ‘피해’라는 기표를 전략적으로 소비한 맥락 속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2021년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에서 승리한 야당 정치인들은 여당의 패배 요인을 ‘2030 남성들의 분노를 무시했기 때문’이라 규정하기도 했죠. 이후 2022년 대선 과정에서 거대 양당은 ‘페미니즘에 의한 남성 피해’ 서사와 ‘페미니즘을 얹어 상대방 흠집내기’를 통해 격렬히 부딪히며 정치적 어필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과거 가부장적 기득권을 누렸던 남성 세대와 구별되는 ‘남성 약자’ 혹은 ‘남성 피해자’라는 새로운 남성성을 청년 남성들에게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것의 효과는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청년 남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총체적 삶의 불안정성의 원인을 페미니즘의 탓으로 돌리며, 정치권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면서, 이들의 분노와 박탈을 정치적 상품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플랫폼 산업은 그들의 증오와 원한을 증폭시키며 이윤을 획득하고 있으며, 언론은 그런 플랫폼의 논의들을 여과없이 보도하며 ‘피해’개념을 권력집단의 이해에 봉사하는 전략적 기표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죠. 그러나 그러한 서사에는 청년 남성의 삶조차 개선할 방안은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 팀원이 되면? 

1. 두 달에 1~2번 폴리버리레터를 직접  작성해요.
2. 매달 정기적으로 한 차례 회의를 가져요. 소개할 논문을 선정하고, 작성해온 레터에 대한 의견을 나눠요.
3. 폴리버리레터는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라 금전적 보수는 따로 지급되지 않아요. 그러나 지원받는 소정의 활동비로 매달 회의를 마치고 맛있는 음식을 팀원들과 함께 즐기고 있답니다. 비슷한 관심사에 대해 읽고, 쓰고, 대화하는 작지만 알찬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 팀원이 되려면?

1. 젠더/청년/노동/정책이라는 키워드에 진심어린 관심을 가진 분들이 지원하시길 추천드립니다.
2. 글쓰기를 좋아하시고, 글에 대한 피드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실 수 있는 분을 찾고 있어요.
3. 현재는 사회학과 대학원생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요. 그러나 학력이나 전공이 같지 않아도 관련 주제의 논문을 찾고, 독해하고, 풀어쓸 수 있다면 누구든 환영합니다.

• 지원 방법: poliveryletter@gmail.com 으로 지원해주세요. 마감 기한 따로 없으나, 적절한 팀원이 선발되면 자동으로 마감될 예정입니다. 예상 충원 팀원 인원은 약 1~2명 정도입니다.

• 2022년 4월 15일 폴리버리가 발행한 'MZ세대 공무원, 그들의 성평등 의식은?' 레터 기억 하시나요? '성 주류화'를 위해서 정책 행위자인 공무원의 성평등 의식이 중요하지만, 한국의 경우 정책 행위자들의 성인지 의식과 젠더 거버넌스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연구를 소개한 레터였어요. 최근 한 지자체에서 만든 생활체육 행사 영상과 관련한 이슈로 공무원들의 성인지 의식이 여전히 문제적인 현실이 드러났습니다. 해당 기사와 함께 지난 레터도 다시한번 읽어보시길 제안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