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나중에 혜린이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릴 때,

엄마가 재밌었다는 기억이 남았으면 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육아를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개그를 참 많이 했습니다.
돌아보면 제 육아의 80%는 개그였던 것 같아요.
아이가 아주 어릴때는 너를 잘 키워야지 보다 우리 같이 재밌게 놀자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래요.

저는 1분 안에 혜린이를 깔깔 넘어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게 제 유일한 장점이에요. 참고로 이 능력은 혜린이한테만 통해요.
신랑한테 똑같이 했다가는 서로 기분만 상합니다. ㅎㅎ


근데 이게 가능했던 건, 제 기분이 괜찮았을 때였어요.

기분이 가라앉은 날은 달랐습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웃음이 안 나왔어요.
여유가 없으니까 아이한테 쉽게 날이 서고, 그러면 또 미안해지고. 그 악순환을 겪으면서 깨달았어요.

좋은 육아의 시작은 좋은 기분이라는 걸요.


저는 어릴 때 부모님 눈치를 많이 봤습니다.

두 분 다 감정이 참 많은 분들이었어요.
기분이 좋은 날은 집 안이 환했고, 기분이 안 좋은 날은 공기가 달랐습니다.
어린 저는 집에 들어가기전에 먼저 눈치를 봤어요.

오늘은 어떤 날일까. 들어가도 되는 날일까.

감정 기복이 많은 부모님이었고, 저는 그 감정의 파도 안에서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거예요.


그 기억이 제 육아 철칙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내 눈치를 보지 않게 하자.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엄마가 되지 말자.
기분이 왔다 갔다 하지 말자.
혜린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오늘 엄마 기분이 어떨까를 단 한 번도 걱정하지 않게 하자.

이건 의지만으로는 안 되더라구요.
훈련이 필요하고, 시스템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는 나만의 기분 관리 버튼을 만들었습니다.

버튼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있어요.

기분은 그냥 좋아지길 기다리는 게 아니에요.
의도적으로 끌어올리는 겁니다.
제가 어떤 것들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오랜 시간 관찰하고 찾아낸 것들이에요.
그걸 버튼처럼 필요할 때 누르는 거예요.


기분도 에너지예요.
에너지는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냥 좋은 날을 기다리는 사람과, 의도적으로 좋은 상태를 만드는 사람은 결과가 달라요.
저는 후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저의 버튼들을 소개할게요.

첫 번째는 아침 루틴입니다.

저의 아침은 거의 정해져 있어요.
삶은 달걀, 과일, 견과류, 그리고 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믹스커피. 등등
이게 제 아침이에요. 매일 거의 똑같아요. 스토리에서 보시죠?^^

아침으로 먹는것들이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간단하고 건강한 음식이 가장 좋더라구요.
어느 순간 이게 저한테 엄청난 안정감을 준다는 걸 알았어요.
아침부터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결정 피로가 없어요. 하루의 시작이 조용하고 안정적이에요.
특히 사춘기 아이들 아침에는 날이 서있잖아요. 저라도 제 자리를 찾고 있어야죠.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침 루틴 하나가 하루 전체의 기분을 잡아줍니다.

두 번째는 립스틱입니다.

혜린이가 아주 어릴 때 얘기예요.
그때는 하루 종일 아이 곁에만 있었어요.
나를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육아가 전부였고, 나라는 사람은 조금씩 지워지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제가 분기마다 한 번씩 스스로에게 립스틱을 사줬어요.
비싼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하나.

그게 저한테는 선언이었어요.
나는 아직 나야. 엄마이기 전에 나라는 사람이야. 이 사람을 잊으면 안 돼.

바르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나를 위한 것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 그 시절의 저를 많이 살렸어요.

지금 육아로 지쳐있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에요.
나를 위한 아주 작은 것 하나, 지켜보세요.


세 번째는 산책입니다.

저는 운동을 잘 못 해요.
헬스장도 오래 못 다니고, 홈트도 작심삼일이에요.
근데 산책만큼은 거의 매일 합니다. 새벽에도 하고, 밤에도 해요. 시간 날 때마다 나가요.

기분이 처지는 날이면 지금도 혜린이랑 밖으로 나갑니다.
특별한 곳을 가는 게 아니에요. 그냥 동네를 걸어요.
과자 하나 들고 둘이 나란히 걷는 거예요.

그냥 걸어요. 바람 맞고, 햇빛 받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고.
돌아올 때쯤 되면 신기하게도 기분이 달라져 있어요.

몸이 먼저 회복되면 마음이 따라와요. 이게 산책이 주는 선물이에요.


네 번째는 반신욕입니다.

저는 몸이 좀 차요. 손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에요.

그래서 따뜻한 물에 들어가 있으면 몸이 스르르 풀리면서 기분이 같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거기다 좋아하는 음악까지 틀어두면, 그 시간이 진짜 행복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에요.
엄마도 아니고, 크리에이터도 아니고,

그냥 따뜻한 물 안에 있는 몸 지지는 아줌마… ㅎㅎ


다섯 번째는 향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향이 있어요.
핸드크림도 향 때문에 5개씩 쓰고, 공간에도 좋아하는 향을 둡니다.
향은 생각보다 빠르게 기분을 바꿔줘요.
좋아하는 향을 맡는 순간, 잠깐이지만 뭔가 리셋되는 느낌이 있어요.

과학적으로도 후각이 감정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감각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걸 몰랐을 때도 이미 본능적으로 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외에 좋아하는 간식들 리스트가 5개 정도 됩니다.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쌓여서 하루의 기분을 지탱합니다.


마지막은 루틴이 아니라 태도의 얘기예요.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혜린이 독서 교육에 한창 몰입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저는 의도적으로 육아 관련 SNS 계정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다른 엄마들의 육아를 보면, 나도 모르게 비교가 시작되거든요.
저 집 아이는 저걸 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저 엄마는 저렇게 하는데, 나는 왜.

비교는 기분을 가장 빠르게, 가장 깊게 망가뜨립니다.

내가 잘 가고 있는데도 불안해지고, 내 방식을 의심하게 만들어요.
성과가 보이는 날도 남의 것을 보면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비교의 함정이에요.

그래서 저는 의지로 비교를 안 하려는 게 아니라, 환경을 설계했어요.
보이지 않게. 흔들리지 않게.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기분 관리의 일부입니다.


기분은 컨디션이에요.

운동선수가 경기 전에 컨디션을 관리하듯, 엄마도 매일 기분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게 사치가 아니에요.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이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내가 어떨 때 기분이 좋아지는지, 한번 들여다보세요.
거창할 필요 없어요.
따뜻한 커피 한 잔일 수도 있고, 좋아하는 향초일 수도 있고, 혼자 걷는 20분일 수도 있어요. 

그 버튼들을 몇 개 찾아두세요.
그리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 의도적으로 눌러보세요.

기분 좋은 엄마가 최고의 육아입니다. 오늘도 나를 잘 돌봐주세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