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내가 쓰는 화학물질? 적당히 안전하겠지, 뭐

한 눈에 보는 주간 환경 이슈

💀내가 쓰는 화학물질? 적당히 안전하겠지, 뭐

국내 화평법과 화관법, 최근 이슈가 되는 이유?

지난 8일, 대한민국이 일본의 백색국가에서 제외된 이후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환경·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인허가 기간 단축 등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기업들은 소재·부품 국산화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의 환경 규제를 대폭 완화시켜달라는 요구를 하고있습니다.

이런 요구는 많은 시민단체들로부터 '이번 문제로 엉뚱하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개념인 화평법과 화관법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이 된 화평법과 화관법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화평법과 화관법?

최근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등으로 인해 화학물질 규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있습니다. 정진호 한림원 의약학부장(서울대 교수)은 화학물질 사고를 보며 “큰 고통을 당하고 나서도 흉내만 냈을 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비판하며 동시에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다부처 유기적 통합관리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국민안전과 화학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화평법과 화관법이 제정·개정되었습니다.

각각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화평법) : 신규화학물질 또는 연간 1t 이상 제조ㆍ수입되는 기존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심사를 의무화

>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 화확물질에 대한 통계조사 및 정보체계구축, 유해화학물질 취급 및 설치 운영기준 구체화 등의 안전관리 강화, 화학사고 장외영향평가와 화학사고 대비 대응 등으로 구성

<최근 발생한 화학물질 사고 한눈에 보기>

- 가습기 살균제 2011.4~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수 백명의 사람들이 폐손상 및 폐질환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제재나 피해자에 대한 구제 대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있습니다.

- 구미 불산 사고 2012.09

근로자 5명의 목숨을 빼앗아 간 불산 가스 누출 사고는 회사 경영진의 화학물질 관련 안전에 대한 안일한 생각과 감독 당국의 허술한 관리 등의 문제점을 보여줬습니다.

- 라돈 침대 파문 2018.5

2018년 5월 한 방송사가 매트리스에서 1급 발암물질인 라돈이 검출됐다는 보도로 시작된 파문은, 매트리스 뿐만 아니라 여러 생활 밀접형 제품에서도 라돈이 검출되며 확산됐습니다.

왜 화학물질 규제 완화를 요구하나요?

지난 6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 규제 완화를 요구했습니다. 경총은 “그동안 우리나라 화학물질 규제 법률은 선진국보다 과도하게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며 “이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제한이 됐으며, 특히 지난 2일 일본 수출 규제가 확정되면서 양국 간의 무역 거래에 큰 차질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로 인한 어려움이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일본 수출 규제 사태 이후, 정부는 이미 화학물질 인허가 기간 단축 등 경제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경총의 입장입니다. 또한 국내 화학물질 규제가 선진국의 규제보다 강력하다는 논리를 펼치며 규제 자체를 대폭 완화하는 법률 개정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국내 화학물질 관련 규제가 정말로 해외보다 강력할까요?

해외 화학물질 관련규제

- 유럽 REACH : "No data no market (정보가 없으면 시장도 없다)"

유럽 REACH(Regul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는 화학물질로부터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입니다. REACH는 해당 산업(제조업자와 수입자)에 화학물질의 위험 관리 및 관련 안전정보 제공에 대한 책임을 둡니다. 유럽은 2007년에 REACH를 도입한 이후 European Chemical Agency(ECHA)에 등록되지 않은 화학물질이 사용된 제품의 유통은 원천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제품들은 모두 REACH의 높은 기준에 맞춰서 납품을 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유럽 내에서 이렇게 까다로운 기준의 적용으로 인해 해당 산업 성장이 타격을 입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유럽 화학산업은 REACH 도입에 관계없이 지속 성장 중으로, 2017년에 REACH가 도입된 2007년 대비 매출액(3% 증가), 수출액(46% 증가), 무역수지(53% 증가) 등 화학산업이 큰 폭으로 성장했습니다. 오히려 REACH를 통해 화학물질의 특성 및 용도 등 향상된 정보 제공, 위해성 관리·통제가 용이해지고, 산업공정의 위험관리 개선 및 예측성 향상, 더 안전한 대체물질 및 제품의 연구·기술개발 확산 등에 따른 편익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 식약청 및 독성학회(SOT)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1957년 독일제약사는 입덧을 줄이거나 막아주는 신약 탈리도마이드를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복용한 전 세계의 많은 임산부들은 유산 혹은 팔, 다리가 없는 기형아를 출산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식약청(FDA)의 대처는 매우 신속했습니다. 제약회사와 고위관리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약물의 시판을 불허했습니다.

미국 식약청의 대처는 전 세계 임상시험에 대한 과학계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효능을 가진 약품도 안전하지 않다면 절대로 승인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설정한 것이지요.

이 사건으로 미국 과학계는 1961년 미국독성학회(SOT)를 설립하고 엄격한 기준으로 전 세계 독성평가 기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1938~1965년 허가된 기존 의약품을 전부 재평가했고 그 결과 기존의 40%에 달하는 의약품을 퇴출시켰습니다. 그 이후 화학물질 안전성평가시스템을 꾸준히 혁신하며 현재까지 큰 사고 없이 생활 속 화학물질을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특정 산업에 타격이 간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적 차원의 적절한 대안과 배려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소비자들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는 화학물질 규제의 장벽을 무너뜨릴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화학물질의 안전보장'이 우리가 가져야 할 유일한 기준이고, 이 기준은 결코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업 경쟁력이라는 성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옳은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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