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 주 마감을 맡은 풀칠러 정의로운 민트초코 입니다.

저의 협력업체 파트너에 대한 뒷담화를 준비했습니다. 최근 회사에 일이 터져 수습하느라 꽤 고생했는데, 이렇게 고자질할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100개 남짓한 기업의 담당자들과 연락을 주고 받다보면, 회사마다 특유의 분위기와 일하는 방식이 있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그 특유한 느낌과 일하는 방식은 보통 계승되는데요

일하는 방식에 대한 인사이트를 기대하셨다면 죄송하지만, 메인은 뒷담화 입니다. 뒷담화의 효능으로는 화병을 방지하고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는 점이 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해로 1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는 나의 협력업체 파트너는 일을 대충 하는 습관이 있다. 본인이 결재권을 가진 문서를 대강 읽고, 대부분 문장이 '아마'로 시작해 '~일걸요?'로 맺어진다. 신규 담당자라며 처음 인사하던 그날부터, 몇 번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알 수 있었다. 오, 일 더럽게 하는 스타일이네. 상사에겐 그의 행태를 수시로 고자질해왔는데, 그와 첫 통화를 한 상사는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프로젝트 도중 계획된 일정과 물량을 몇 차례 뒤엎은 전력이 있다. 이미 승인된 계획과 예산이라 반박하자, '그걸 누가 하나하나 읽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메일을 보내면 며칠간 감감무소식이고, 기다리다 전화를 하면 '메일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으니 전화를 하라' 덧붙였다. 전화로 확인을 요청하면, 그는 늘 알아보고 연락주겠다며 말은 잘했다. 다시 연락 주겠다는 약속은 올해 딱 두 번 지켜졌다.

한편 그는 급하게 뭔가를 요청하는 일이 잦았다. 12시 35분경 자료를 보내놓고 늦어도 13시 30분까지 회신 달라던지, 저녁 6시에 메일을 보내놓고 다음 날 오후 2시까지 회신 달라던지. 혹시 날짜를 잘못 쓰신 거냐 물었을 때,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원래는 오전까지 필요한데 오후로 연장해 드린 거예요." 그와 얘기하다 보면 종종 어안이 벙벙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어쨌거나 일은 굴러갔다.

방심했다. 그가 긴 휴가를 떠난 사이 발생한 사고에 대해, 상사는 '천재지변'이라 명명했다. 휴대폰에 침 튀기는 고성, 마른 세수, 비속어 등 회사에서 나오면 곤란한 장면과 말들이 얼마 간 회의실을 떠다녔다.

돌이켜보면 언제부터인가 그의 습관을 방관하고 방치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절대 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전화를 다섯 번 해서 안 받으면 열 번 해야 한다. 치사해도 그의 상급자를 찾아가야 한다. 상대가 소통의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해도, 득달 같이 기록을 남겨야 한다.

몇 해 전, 자로 잰 듯 정확하고 꼼꼼한 파트너와 일을 한 적이 있다.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고, 우리가 함께하는 이 일이 정말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보낸 그 어떤 메일도 대충 읽지 않았고, 먼저 내 실수를 찾아냈으며 더 좋은 방향을 고민했다. 까칠하고 예민하고 까다롭긴 했지만, 그의 말은 숨은 의도가 없었다. 그와 이야기 나눌 땐 나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내가 그에게 그런 파트너가 되었다면 달랐을까. 그가 자세를 고쳐잡고 긴장하도록,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전해졌어야 할까.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몇 달간 준비한 프로젝트는 날아갔다. 직장인이 된 후 알게 된 건데, 세상에 내 계획과 의지대로 되는 일은 의외로 거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나 받아들여야 하는 결과도 있다.

프로젝트 중단이 확정되고, 수십 통의 사과 전화 돌렸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몇 달 간 수십 명의 사람이 함께했다는 걸 그는 알까.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손때 묻은 내 새끼, 그리고 여기에 쏟은 시간과 비용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 말고 그는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둘 중 하나가 퇴사하지 않는 한 아마 내년에도 우리는 함께 일할 것이다.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일하는 방식은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그가 일하는 방식은 그 조직의 관습 그 자체일지 모른다.

우리 팀은 그와 그 조직을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무언가', '안고 가야 하는 제약 조건'으로 명명했다. 상사는 말했다. 그 조직은 안 바뀌어. 그 사람? 안 잘려. 네가 바꿀 수 없는 걸로 스트레스 받지마.

아직 수습할 일이 산더미고, 동료들과 통렬한 회고도 해야 한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정리하며 다음을 준비할 것이다. 바꿀 수 없어서 많은 조직과 사람을 떠나왔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기로 한다.

'떼잉, 또 저러네' 하며 타협 없이 멱살을 잡을 체력은 역시 뒷담화에서 나온다. 타 부서 동료는 '옆에서 같이 욕해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상사는 틈틈이 카드를 쥐어주며, 어울리지도 않는 비속어를 입에 담아준다. 아마 내일도 우리는 궁시렁 거리며 전화기를 들 것이다. '아 또 일 x 같이 하네!'

아매오 :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갈 때마다 가슴이 조금씩 답답해져옵니다. 일정과 내용을 마음대로 뒤흔들지만 그와 관련된 말과 행동은 어쩐지 은근히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을 한 번씩 마주하곤 하죠. 다행히 제 경우엔 이런 사람이 극히 일부였습니다만, 생각해보면 이들은 대부분 상대적 ‘갑’에 해당했습니다. 월급날 퇴근 직전에 이번 달 월급은 ‘조금’ 늦게 지급될 것 같다며 실실 쪼개던(!) 대표, 갑자기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며 ‘예산으로 얼마 정도 잡으면 진행에는 무리없을 것’이라더니 ‘왜 이렇게 무분별하게 지출했냐’며 책임을 추궁하던 상사, 본인 사유로 일정을 변경하게 된 사안에 대해서 거기에 참가 신청한 고객 한 명 한 명 전화를 걸어 사과해 달라는 파트너 등등등. 이러나 저러나 제가 ‘모셔야’ 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었죠(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런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언젠가부터 이런 사람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줄었습니다. 이들은 그 존재 그대로 바라봐야 하는, 그러니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처한 ‘환경’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운 민트초코 님도 말씀하셨듯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무언가', '안고 가야 하는 제약 조건'인 셈이죠. 사실 우리가 받는 스트레스는 보통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바뀌는 상황에서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저 사람도 ‘인간’인데, 다른 면도 있지 않을까? 다른 ‘인간’은 안 그러는데 왜 저 사람만 저럴까? 저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할 수 있을 텐데 대체 왜? 뭐 이런 생각 때문이죠. 그런데 ‘환경’은 어떤가요?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적응해야죠. 여름마다 한반도를 때리는 장마와 태풍을 우리는 해결하려고 하지 않잖아요. 수백년, 수천년에 걸쳐 적응해왔지. 그럴 때가 됐군,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