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의 기억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처음 인사한 때가 2021년 8월이었습니다. 약 1년의 시간 서로가 스미며 돌고 돌다가 둥글게 모여 자리한 날이 2022년 6월과 7월이었고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이하 ‘PaTI’)에 설치한 실험 온실 <날씨의 집>에 심은 DMZ의 자생식물 씨앗은 싹을 틔웠고, 참여자 각자가 기억하는 씨앗 음식으로 나눈 <입말음식>은 서로의 기억 안에 자기만의 이름과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지금 이 프로젝트 안에서 함께 나눈 공동의 경험은 어떤 씨앗으로 심어져 훗날 어느 곳에서 싹을 피울까요? 
팩토리2에서는 현재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돌고 돌고 돌고》 전시가 한창입니다. 각 작업에 함께 한 참여자의 인터뷰와 작업 과정을 구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레터로 전합니다.
○ 날씨의 집 / 크리스티나 킴 + 중간공간연구소(김건태, 김보람)

사진. 정해민
<날씨의 집>은 유리 조각을 재사용하여 보자기처럼 패치워크하고, 덧대고 이어 붙인 수선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그늘막이다. 온실 옆 텃밭에는 DMZ 자생식물 50여 종의 씨앗을 심고 돌보며 시간과 노동, 공간의 변화, 우리의 손을 사용하여 자연과 관계할 수 있는 다양한 접점을 살펴본다.
“처음 다 같이 모인 미팅에서 ‘서로에게 너무 압박을 주지 말자’,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다’라고 시작한 것은 저희가 여태까지 작업한 것과는 다른 태도였어요. 작업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고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중간공간연구소)
“사람도 ‘좋은 상태(well)’이어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도 마찬가지예요. 땅, 물, 공기도 온전해야 모두의 ‘웰빙’이 가능하겠죠. 팩토리와 함께 하는 《돌고 돌고 돌고》의 타이틀이 매우 적절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어요. 결국은 모두 흙으로 가잖아요. 우리가 버리는 것과 우리 모두가요. 그리고 흙에서 나오는 식물을 우리는 먹고 살고요. 
우리 할머니가 텃밭도 꾸리셨는데, 상추를 특히 좋아하셨거든요. 10월이 되면 대나무를 반으로 잘라 구부려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요. 추운 겨울에 거길 들어가면 지붕에 맺힌 물방울이 바닥의 지푸라기로 똑똑 떨어져요. 그때의 기분과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돌고 돌고 돌고》에서 만드는 온실도 할머니와 같이 보낸 시간이 생각나서 시작했어요. 다 함께 흙을 만지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고, 같이 나눠 먹다 보면 땅에 대해서, 우리에 대해서 더 알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크리스티나 킴)
○ 밭정원과 DMZ 씨앗일지 / 김수

다양한 장소에 버려지는 오브제와 식물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경험적 순간을 시각화하는 김수 작가는 파주의 기후에서 농작할 수 있는 DMZ 자생식물의 씨앗을 수집하고, PaTI에 설치한 온실 안팎에 이를 심는다. 밭과 산 드로잉은 DMZ 씨앗일지 속의 씨앗이 생장하는 밭정원의 지도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식물은 살아 있는 것이기에, 프로젝트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대상과 함께 일하는 게 중요했어요. 다행히도 파티의 배우미와 수업하면서 농사를 짓게 되었고요. 배우미들이 참고할만한 농사나 식물에 대한 기본 지식을 위해 식물을 심고, 수확하고, 보관하는 시기를 절기를 기준으로 정리해서 <식물의 시간 24번의 계절>이라는 달력으로 시각화했어요. (중략) 프로젝트는 종료가 되어도 저의 역할과 식물이 가진 시간성은 저의 역할과 제 작업에도 계속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 흡수되지 않을까 해요.”
○ 줍줍주의 순환적 생애 / 강은경

사진. 정해민
식경험 디자이너이자 스몰바치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강은경은 지역(서울 인왕산 및 수성동 계곡 일대, 파주 PaTI 및 심학산 일대)과 계절에 대한 감각을 경험하는 <줍줍주의 순환적 생애> 워크숍을 진행하며 이때 채집한 것들로 담금주를 만든다. 워크숍 참여자들은 담금주를 통해 잃어버린 채집의 감각, 음식의 순환, 먹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의 개념을 생각한다.
“처음에는 ‘담금주’라는 굉장히 단순히 음식을 매개로 재활용 병을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병 안에 먹을 수 있는, 먹고 싶은 채집물을 넣어서 그 음식이 익으면 병을 열어서 맛보고 그 이후를 생각해보는, 일종의 음식의 일생을 경험해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중략) 채집물이기도, 표본이기도, 어쩌면 먹을 수도 있는 음식이 되기도 하는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문제적 음식인데요. 채집을 비롯해 음식이냐 음식이 아니냐는 질문은 우리가 지금 시대에 급격히 잃어버린 식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부모, 조부모 세대는 봄에 나물을 뜯고 가을에는 열매를 줍는 게 매우 당연하고 본능적인 행동이었는데, 그 감각 안에는 내 몸이 ‘먹을 수 있다’ ‘독이 있다 없다’ ‘너무 지나서 억새 먹을 수 없다’와 같은 적극적인 감각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그런 감각이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워크숍을 설계했습니다.”
○ 씨앗과 열매 입말음식 / 하미현 (입말: 김송수, 강은경, 여혜진, 이지연, 정애순)

사진. Yolanta C. Siu
하미현은 지역 고유의 음식과 제철 식재료를 찾아다니며 연구하고 발굴하는 ‘입말음식(Spoken Recipe)’의 대표이다. <씨앗과 열매 입말음식>은 다섯 명의 프로젝트 참여자로부터 씨앗과 열매로 만든 음식의 기억과 레시피를 나누고 직접 만들어보는 워크숍을 가지면서 씨앗이 열매로 그리고 다시 씨앗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 프로젝트가) 처음엔 매우 모호하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계절을 거치며 느낀 것은 ‘서로가 스미는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하는 일 자체가 제철 식재료를 담기 위해 시간을 쫓아다녀야 하다 보니 마음이 급했는데, 이 과정을 돌고 돌고 돌면서 ‘함께 하는 시간’을 배웠고, 그뿐만 아니라 제가 항상 했던 일, 즉 남의 밭이나 부엌에서 귀 기울였던 일들에서도 그들의 시간을 기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식물과 발톱 / 정동구

사진. 돌고 돌고 돌고 다큐멘터리 <식물과 발톱> 중에서
<식물과 발톱>은 《돌고 돌고 돌고》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들과 작업의 과정을 담은 영상이다. “하늘지기, 사위질빵, 오랑캐장구채… 이름도 참 낯설고 특이하다. 방치된 땅에 심은 50여 종의 자생식물 중 일부가 어렵게 싹을 틔우자, 텃밭을 돌보는 사람들은 도감 속에서 봤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한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 만들어진 온실을 보며 여러 가지 느낀 점들이 많았는데요. 아무래도 그곳이 출퇴근과 등하교로 오가는 사람이 많다 보니 공적 영역으로서 이미 기능하는 곳이었어요. 온실 자체는 파티(PaTI)가 관리하겠지만, 이게 하나의 건축물과도 같아서 온실 안의 식물을 잘 키우고 수확하는 것을 넘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공재로서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고 지속가능성을 고민할지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턴테이블 / 자리합시다 (김다움, 노윤희, 여혜진) (도움: 대명건장 / 제작 도움: 날씨, 정현석)

사진. <턴테이블 Turn Table> 중에서
‘자리합시다’ 팀은 가구 생산 현장(대명건장)에서 버려지는 목재를 재가공해 접고 펴고 이동이 편리한 롤업 형태의 턴테이블을 제작했다. 턴테이블의 영상 작업에서는 장소(땅과 하늘)를 일시적으로 점유하다가 흩어지며 사람들이 모이기도, 사람을 모으기도 하는 다양한 기능과 상황을 보여준다.
“전체 프로젝트 안에서 ‘자리합시다’ 팀은 작은 단위의 배경이라고 생각했어요. 큰 덩어리인 온실, 씨앗, 음식처럼 프로젝트 전반에서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저희가 만드는 것은 텃밭에서 사용할 자리가 되기도 하고, 경험을 나눌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시간을 나누었어요. 
‘돌고 돌고 돌고’라는 커다란 순환은 한 번에 ‘짠’하고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넘어지기도, 기대기도 하면서 울퉁불퉁한 ‘돌고 돌고 돌고’가 만들어지겠지요.”
○ 일배움 수업, ‘돌고돌고돌고'

사진. 돌고 돌고 돌고 다큐멘터리 <식물과 발톱> 중에서
2022년 봄 학기 동안 PaTI에서는 일배움 수업, ‘돌고돌고돌고'가 진행되었다. (지도스승 이끼, 뿌리 | 배우미 김예진, 정유경, 지문열, 나희원, 이지원, 조수민, 길아름, 박지연, 이두원, 이소연, 엘로디 샤오) 수업에서는 DMZ 식물의 씨앗을 심고 계절에 맞는 채소를 키우며 이 과정을 기록한 관찰일지와 수업의 결과를 담은 전시 <돌고돌고돌고>가 열렸다.

사진. 돌고 돌고 돌고 다큐멘터리 <식물과 발톱> 중에서

사진. 정해민
참여자 각각의 목소리와 작업 이야기는 아래 팩토리2 유튜브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참여 작가 이외에도 프로젝트 전반을 디자인한 유나킴씨, 그리고 진행을 이끌고 도운 팩토리2의 김보경, 이지연, 홍보라 님의 이야기에 더하여, 프로젝트 전체를 조망하며 매 현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 <식물과 발톱>을 통해 《돌고 돌고 돌고》가 만들어진 과정을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손, 땀, 노동, 그리고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앙상블의 순간
《돌고 돌고 돌고》의 시작은 제로 웨이스트를 중심 개념이자 지향점으로 삼아 ‘물질과 재료의 순환을 실험하는 예술 프로젝트’였다. 이후 디자이너, 미술가, 농부, 요리사, 음식문화 활동가, 학생, 기록자, 영상감독, 편집자 등 다양한 창작자가 각자의 입장과 이야기를 품고 배에 하나씩 올라타 서로 배우고 함께 상상하는 시간을 지나오며, 결국 모든 것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이 프로젝트의 영문 제목은 <Turn Turn Turn>이다. 우연히도 미국의 록밴드 더버즈(The Byrds)의 대표곡 의 가사는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구약 중 코헬렛(전도서) 3장의 구절을 반복하고 있다. 비록 우리가 물질과 재료의 순환으로 시작했지만, 그간 함께한 시간, 같이 그려본 상상의 미래가 지금은 씨앗이 되어 땅에 뿌려지고, 땀을 흘리는 노동 후 모여 앉아 나눈 음식과 이야기가 쌓이며 비로소 이 프로젝트의 의미도 계절의 순환과 앙상블의 순간으로 확장되었다. 
(홍보라, <개별적이며 연결된 개인들이 만나 함께 돌고 돌고 돌고> 중에서)
Turn! Turn! Turn! 
To everything (turn, turn, turn) 
There is a season (turn, turn, turn) 
And a time to every purpose, under heaven 
A time to be born, a time to die 
A time to plant, a time to reap 
A time to kill, a time to heal 
A time to laugh, a time to weep 
A time to gain, a time to lose 
A time to rend, a time to sew 
A time for love, a time for hate 
A time for peace, I swear it's not too late 
- The Byrds
전시명 돌고돌고돌고 Turn Turn Turn 
장소 factory2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기간 2022.6.18(토)-7.15(금) 11:00-19:00 (매주 월요일 휴무) 
전시기획 노윤희, 여혜진 
만든 사람들 크리스티나 킴, 강은경, 김송수, 김수, 자리합시다(김다움, 노윤희, 여혜진), 정동구, 중간공간연구소(김건태, 김보람), 하미현, factory2(김보경, 이지연, 홍보라). (feat. 안상수) 
그래픽 디자인 김보경

주최 주관 factory2 
지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획 팩토리2 
에디터 뫄리아
진행 김보경, 이지연
디자인 김유나 (유나킴씨) 
디렉터 홍보라 
팩토리2 드림
팩토리2
factory2.seoul@gmail.com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10길 15 02-733-4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