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을 하는 일잘러들의 참고서
2024.11.29 | 824호 | 구독하기 | 지난호
이번 주 초 제 눈을 의심하는 기사가 떴습니다. ‘노스볼트 파산.’ 놀라 찾아보니 올해 7월부터 이상 징후가 감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노스볼트는 빠지지 않던 기업이었습니다.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스웨덴 국적의 기업, 노스볼트는 유럽의 자존심이었거든요.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던 2020~2021년, 노스볼트는 유럽 완성차 기업을 중심으로 배터리 공급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면서 한국, 중국 기업의 경쟁자로 급부상합니다. 

천문학적인 투자를 받았고, EU의 지지까지 받았던 기업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현장의 이야기가 궁금해 국내 배터리 3사 중 한 곳에서 일하는 한 엔지니어와의 인터뷰도 급하게 준비해봤어요. 

노스볼트의 파산과, 배터리 산업에 미칠 영향. 빠르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Today's index
  • 유럽의 맹주, 노스볼트
  • 노스볼트의 파산, 그리고 뒷이야기
  • CES 디브리핑 세미나
  • 배터리 엔지니어 인터뷰(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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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볼트 스웨덴 공장 전경 [사진=노스볼트]

유럽의 맹주(였던)

노스볼트

 

노스볼트는 2016년 9월, 테슬라에서 일하던 두 명의 스웨덴인, 피터 칼슨과 파올로 세르루티가 설립한 기업입니다. 테슬라에서 공급망(구매)을 담당했던 두 사람은 향후 전기차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노스볼트를 설립합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대형 배터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일본의 파나소닉,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에 불과했어요. 원자재는 중국이 장악하고 있었고요. 이 상태로 산업이 발전해 나간다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유럽은 뒤처질 게 뻔했습니다.


칼슨은 이를 우려했습니다. 2017년 인터뷰에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유럽은 아시아 공급망에 완전히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유럽은 에너지 독립을 위해 행동할 기회가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안 됩니다.” 정말 멋진 말이죠. 그리고 그의 생각이 실제로 맞아떨어졌고요. 그렇게 노스볼트는 유럽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배터리 자체 생산에 도전합니다.


노스볼트의 목표는 2020년부터 배터리 생산을 본격화하고 2023년까지 연간 생산량을 32GWh(기가와트시)로 확대하는 것이었어요. 단순 계산으로 이는 아이오닉5와 같은 전기차 30~40만대에 탑재할 수 있는 배터리 생산능력이에요. CEO의 이력, 꿈, 이들의 예상. 모두 적중입니다. 문제는 '돈'이었죠.


당시 노스볼트는 32GWh의 공장을 짓는데 필요한 돈이 약 40억 달러, 우리 돈 5조59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한 바 있습니다. 단순히 공장을 짓는 데만 필요한 돈입니다. 연구시설은 물론 기술개발 등에 필요한 돈을 합하면 수 십 조원의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2016년 노스볼트는 스웨덴의 전력회사인  Vattenfall AB 등으로부터 1400만 달러, 우리 돈 약 200억원을 투자받습니다. 적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스타트는 좋았어요. 이듬해부터 이들은 본격적인 투자 유치에 나섭니다. 투자는 힘을 받습니다. 2017년 진행된 시리즈A 라운드에서 스웨덴 정부 기관을 중심으로 1330만 달러를 투자받았고 2019년까지 유럽투자은행 등으로부터 4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받아요. 온 유럽이 노스볼트를 돕기 시작합니다.


2019년 진행된 시리즈B에서 폭스바겐그룹과 골드만삭스 등이 대거 참여하면서 10억2000만달러, 우리돈 1조4000억원이라는 엄청난 자금 조달에 성공합니다. 

투자라운드는 이어집니다. 2020년 폭스바겐,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또다시 6억달러에 달하는 시리즈C 투자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2021년 27억 달러, 2022년 11억 달러, 2023년 12억 달러 등 총 150억 달러, 우리 돈 20조원에 가까운 투자를 받습니다(이 금액에는 대출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렇게 노스볼트는 사람을 채용하고 공장을 지으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노스볼트 지분. 유럽 완성차 기업의 자존심, 폭스바겐의 피해가 상당히 커 보입니다... [자료=블룸버그]
노스볼트의 CEO 피터 칼슨. 테슬라의 구매 담당자였던 그는 노스볼트를 설립하고 주목받는 CEO가 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구매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며 회사는 파산에 이릅니다. [사진=노스볼트]

노스볼트의 파산
그리고 뒷이야기

 

2023년 3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노스볼트의 공장 르포 기사의 서두에 이런 표현을 합니다. “지금까지 노스볼트는 비판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꾸준히 증명해왔다. 공장은 가동 중이며 건설이 계속 진행되면서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주식 시장 상장을 논의 중이며 아마 내년(2024년)에 그렇게 될 것이다.”


노스볼트는 나아갑니다. 2021년 스웨덴에 연구시설 ‘노스볼트랩’을 지었고 계획을 뛰어넘는 40GWh 규모의 공장도 건설합니다. 2021년부터 배터리 생산을 시작했으며 2022년부터는 고객, 즉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했어요. 노스볼트가 사전에 계약한 배터리 규모는 550억 달러, 우리 돈 76조원 규모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하더라도, 공장이 잘 건설되고 생산만 원활히 이뤄졌다면 76조원을 벌 수 있던 상황이었던거죠.


2023년부터는 공장 증설에 나섭니다. 생산 규모를 40GWh에서 60GWh로 늘리고 독일에 두 번째 공장 건설 계획도 발표합니다. 2024년 1월, 유럽투자은행은 노스볼트가 아시아 외 지역에서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 생산 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이유로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지원키로 합니다. 


하지만 2024년 6월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작은 BMW의 계약 취소였어요. BMW는 노스볼트와 계약한 20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취소한다고 발표합니다. 이유는 ‘공급 지연’이었고요. 이와 함께 노스볼트의 수율이 상당히 나쁘다는 소문이 업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갑니다(이전부터 이런 소문은 퍼져 있었다고 해요). 이어 노스볼트는 독일, 캐나다 등에 공장을 지으려던 확장 계획을 취소하고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긴축 경영을 시작합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노스볼트의 파산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이를 ‘북유럽 누아르 스릴러’라고 표현했는데요, 짧게 정리해 볼게요.


일단 수율입니다. 지난해 노스볼트가 생산한 배터리 양은 그들이 계획한 양의 불과 1%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2023년에는 1GWh에도 미치지 못하는 배터리를 생산했다고 해요. 전기차 수십만 대에 들어갈 배터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불과 1만7000여대에 넣을 수 있는 배터리만 생산했다고 합니다.


이에 계약한 물량 공급이 어려워지고, 이는 재정적인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습니다. 이미 올해 노스볼트의 인력은 7000명이 넘어선 만큼 인건비만 해도 상당했거든요. 


배터리 건설과 관련된 장비 밸류 체인이 한국, 중국에 갖춰진 만큼 현장에는 한국과 중국인들이 많았다고 해요. 수율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노스볼트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과의 의사소통 문제도 컸다고 합니다. 


제조 공장 건설 과정에서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노스볼트 공장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공장이 중단되면서 생산이 멈췄고, 이는 고객 공급 지연으로 이어졌고요. 올해 초 21억 달러의 현금을 가지고 있던 노스볼트의 상황은 빠르게 악화됐습니다. 이달 파산 신청 당시에는 3000만 달러만 있었다고 해요. 부채는 58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중국 잘못이냐, 노스볼트 잘못이냐

공장 건설 과정에서 노스볼트의 부족한 경험도 드러납니다. 중국 장비 기업이 노스볼트와 이야기할 때 구글 번역기를 썼다는 이야기부터 배터리 셀 생산도 어려운 상황에서 재활용은 물론 차세대 배터리 개발, 양극재, 음극재 생산 등 많은 것을 한 번에 해내려는 ‘오만’도 드러납니다(물론 실패했기에 오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요). 


배터리 제조 공장이 ‘첨단’이긴 하지만 화학물질이 많이 사용됩니다. 스웨덴이 가진 높은 환경 기준에 이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어요. 

올해에만 3명의 직원이 숨졌는데, 모두 퇴근 뒤 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외에 공장에서 근무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아 보여요. 스웨덴 공영방송에 따르면 화학물질 때문에 노스볼트 공장에서는 47건의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생산 지연에도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노스볼트는 배터리 공장 건설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일거라고 생각지 못한 듯 합니다. 칼슨은 "우리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해 지나치게 야심적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음모론’까지 등장합니다. 중국의 장비업체 ‘우리시드’가 배터리 제조 기계를 공급했는데, 이 과정에서 문서의 일부가 지워졌고, 시스템에 대한 정보는 전혀 공개되지 않으면서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노스볼트를 망하게 한 뒤 중국이 파산한 공장을 매입, 이후 배터리를 생산할 것이라는 얘기죠.


너무 앞서나간 음모론 같긴 한데요, 노스볼트가 우리시드에 많은 것을 의존한 것은 맞는 듯 해요. 배터리 제조를 해본 적이 없는 유럽의 기업이,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있는 기업과 협업은 불가피했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우리시드가 첨단 장비가 아닌, 20년도 더 된 낡은 장비를 공급했다는 의혹도 있고요.


노스볼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스웨덴 욘쾨핑 국제경영대학의 크리스티안 샌드스트림 교수는 스웨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스볼트는 중국 우리시드에 너무 많은 의존을 해왔다. 몇 년 전 한국 기업을 거의 선택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중국 업체와 거래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웠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 교수는 노스볼트의 파산 한 달 전, 노스볼트는 실패했다면 그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는데 의미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의 발언을 짧게 정리해 볼게요. 


  • “자본 조달의 상당 부분은 부채였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부채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쌓이면 채권자가 문을 두드리고 파산이 빠르게 올 수 있다.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 “정부는 녹색 거품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만들었다. EU는 많은 돈을 제공하면서 위험이 크지 않은 환경을 만들었다. 아무도 비판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 합의 문화가 생겨난다. 너무 늦었을 때까지 말이다.”
  • “이러한 모델이 터무니없지만 정치적 자본가에는 기회다. 그린 프로젝트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은 스웨덴 기업 중 일부는 마케팅과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한 성공전략(Playbook)을 만들었다.
  • 프로젝트 초기에는 카메라 앞에 서고 싶어 하지만 지금은 주목받지 않으려 한다. 노스볼트 CEO는 지난 9월 직원들에게 언론인과 대화하지 말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노스볼트는 총체적 난국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배터리 공장을 짓는게 이렇게 어려울까요.


미라클레터와 함께하는
CES 라이브 세미나

세계 최대 IT 쇼인 CES가 2025년 1월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데요. 올해는 '뛰어 들어라(Dive In)'를 주제로 AI, 스마트 홈, 모빌리티 등에 대한 첨단 제품들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유키 쿠스미 파나소닉그룹 CEO 등이 키노트 스피커로 나서는데요. 팀 미라클레터가 CES와 함께합니다. 먼저,


한 해 테크 트렌드를 조망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미라클레터가 'CES 2025 디브리핑 라이브 세미나'를 준비했습니다. 만약 바쁜 일정으로 CES를 못가시는 경우라면, 꼭 알아야 할 테크 트렌드 정보만 쏙쏙 요약해 분석해 전달해 드립니다. 온라인 랩업뿐 아니라 스페셜 리포트를 PDF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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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터 라스베이거스까지 동행하고, 전문 테크가이드가 현장 투어를 진행하는 패키지입니다. 항공 숙박 식사 포함! 출발 전에 사전 브리핑을 해드리고요. 빅테크 기업 C레벨 강연도 듣고 네트워킹도 할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 MK CES 포럼에 참여합니다. 다녀와서는 미라클레터 필진이 참여하는 온라인 CES 디브리핑으로 랩업을 하고, 보고에 참고할 수 있도록 스페셜리포트를 드립니다. (👉궁금하시면 클릭)


오는 2025년1월7일(화)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로 호텔에서 MK CES 포럼이 열립니다. 세일즈포스, 시스코, 스토리테크 대표와 임원들이 연사로 나서, 미래 테크 트렌드에 대해 강연합니다. CES에 오시는 분들께 빅테크 기업의 트렌드도 듣고 네트워킹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스페셜 리포트를 함께 드립니다. (👉궁금하시면 클릭)
배터리 엔지니어의 모습을 그린 AI. 물론 현장에 계신 분들은 "여기가 무슨 실험실이냐!"라고 하시겠죠... [사진=챗GPT]

배터리 엔지니어
인터뷰(익명)

 

어렵게 모셨습니다. 국내 3대 배터리 기업 중 한 곳에 재직 중인 책임급 엔지니어예요. 27일 통화 연결이 됐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한 분의 인터뷰가 배터리 산업 전체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분도 그것을 인정했고요. 다만 분위기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기자 = 안녕하세요. 배터리 공장에서 근무하신다고.
👨‍🔧익명 = 네. 아침부터 일을 많이 했더니 힘드네요. 배터리 업계가 좋지 않네요 요즘.


🧐원기자 = 노스볼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익명 = 현업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요. 관련 기사를 공유하기도 하면서요.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시는 거죠?
🧐원기자 = 네 맞습니다. 
👨‍🔧익명 = 그럴만한 게 있을까 모르겠는데... 노스볼트의 위상은 대단했죠. 수조 원을 투자받았잖아요. 그리고 유럽 입장에서 배터리를 만드는 유럽 기업도 필요했고요. 유럽도 도와줘, 유럽 완성차 기업도 도와줘. 모두가 도와주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저희끼리 가끔 이런 얘기를 했어요. 단기간에 수율을 잡을 수 있을까? 단기간에 배터리 공장 가동이 가능할까?


🧐원기자 = 결국 배터리 공장 운영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봐야겠네요. 
👨‍🔧익명 = 맞아요. 배터리 공장, 공정 하나하나가 엄청난 노하우를 필요로 해요. 제가 담당하지 않는 공정은 저 역시 비전문가입니다만. 수율이라는 게 결국 품질이잖아요. 품질은 공정 단계별, 작은 실수나 오류가 없어야 유지되는 거고요. 처음 공장을 짓고 나면 정말 별별 일이 다 생깁니다. 그걸 하나둘 잡아나가는 게 현장의 역할이고요. 이게 상당히 어렵습니다. 정말로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모두 무려 20년이 훌쩍 넘는 배터리 제조 개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CATL도 2011년 설립됐지만 배터리 제조는 1999년 시작합니다. BYD도 1997년부터 배터리를 만들어왔고요.


  • 일반적으로 배터리 공장은 전극, 조립, 화성, 팩과 같은 단계로 이어집니다. 전극은 양극과 음극을 알루미늄, 구리 포일에 얇게 바르는 과정이에요. 도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양극과 음극의 성질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즉 배터리 수명, 용량이 떨어집니다.
  • ‘조립’ 단계는 전극과 분리막을 쌓은 뒤 포장하고 전해액을 부어주는 단계에요. 역시 제대로 조립되지 않으면, 배터리 성능은 저하되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이어 ‘화성’이라 불리는 단계가 진행됩니다. 화성은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알맞은 화학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일정한 온도, 습도를 유지하고 충·방전을 통해 내부 안전성을 확인합니다. 품질검사도 이뤄지고요.
  • 마지막 팩 단계에서는 배터리셀을 연결하고 모듈화하는 과정이 진행돼요. 짧게 정리했지만 각 단계에서는 수많은 공정이 진행됩니다.


🧐원기자 = 인력이 중요한가요, 인프라가 중요한가요. 
👨‍🔧익명 = 둘 다 중요하죠. 배터리 공장은 자동화가 잘 되어 있어요. 그 자동화는 사람이 셋팅합니다. “AI 이용하면 후딱 되는 거 아니냐” 혹은 “현장에서 죽치고 앉아 있으면 수율 잡히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아닙니다. 한 공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걸 잡고 다시 라인을 돌려요.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불량품이 나옵니다. 다른 공정도 봐야죠. 


🧐원기자 = 국내 배터리 기업은 여러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이미 수율이 높은 공장을 그대로 본떠서 옮기면, 수율도 잡히는 거 아닐까요
👨‍🔧익명 = 모르시는 소리. 기계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고. 이 모든 것이 영향을 미칩니다. 디지털 트윈, 디지털 트윈 하는데 현장에 계신 분들한테 그 얘기해 보세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한다고 핀잔 줄거에요. 여기 있는 공장을 똑같이 본떠서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게 왜 어렵냐. 어려워요. 한국에서는 됐는데 해외에서는 안 돼요. 분명 똑같이 했는데. 그냥 안 돼요. 왜냐고 묻지 마세요. 안 돼요. 


🧐원기자 = 수율 잡는 게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있을까요. 
👨‍🔧익명 = 몇 해 전 해외 공장 라인을 처음 가동한 날이었어요. 수율이 90% 이상이 나온 거예요. 좋아했죠. 근데 그런 느낌 아시죠? “뭔가 이상하다” “첫 가동에 이렇게 잘 나왔다고?” “우리가 뭐 잘못했나?” “이러다가 내일 갑자기 70%로 떨어지는 거 아니야?”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이런 게 경험이라고 봅니다. 우리도 잘 모르지만, 이미 우리에게 내재화되어 있는, 말로 설명하고 가르친다고 가르칠 수 없는, 단순히 따라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요. 현장에서 구른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여전히 갈 때 마다 새로워요. 오늘은 또 뭔 문제가 발생할까, 하는 마음이랄까요.


노스볼트 파산, 한국 기업에게는 득?


🧐원기자 = 노스볼트에 납품하는 중국기업이 사양을 지워서 줬다, 이런 기사와 음모론도 있고. 노스볼트에서 제대로 된 발주를 내지 못했다, 이런 기사도 있어요. 
👨‍🔧익명 =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노스볼트에 전문가가 부족한 게 아니었나 싶어요. 장비 제작하는 쪽에 구매 사양서를 발주 내려면 ‘사양서’를 '잘' 써야 합니다. 상당히 꼼꼼하게, 그게 다 비용이고 경험이에요. 노스볼트 인력의 경험이 부족했다는 기사도 본 기억이 나네요. 공장 짓고 수율 잡을 때는 어떠한 단계에서 문제가 있는지 면밀하게 파악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문제가 발견됐을 때 단순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발주를 다시 해야죠. 노스볼트가 경험이 있는 한국, 중국 등의 엔지니어를 많이 채용한 이유예요. 그런데도 수율이 안 잡혔죠. 마지막에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여기서 문제, 저기서 문제, 장비는 다 깔려 있는데,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고, 해결은 안 되고. 돈은 계속 나가는데 배터리는 안 만들어지고... 파산이죠. 


🧐원기자 = 노스볼트의 파산,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요
👨‍🔧익명 = 저희끼리 경쟁자 한 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니 배터리 제값 받기가 가능해질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현재 배터리 가격 구조가 좀 희한하거든요. 분명 원자재는 고정가로 받았는데, 배터리 가격이 요동쳐요. 수요 공급 영향도 있겠지만요. 이번 일이 국내 배터리 기업에는 좋을 수 있겠죠. 다만 노스볼트에 장비를 납품해야 했던 국내 중소, 중견 기업의 경우 단기적인 타격이 있을 거예요. 


🧐원기자 = 한중전, 시작인가요?

👨‍🔧익명 = 한국이 유리한 고지에 오를까, 중국이 더 유리할까. 정답은 모르죠.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봐요. 한국은 NCM 분야에서 더 압도적인 기술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고. 중국은 LFP를 중심으로 저렴하게 유럽 시장을 공략할 거고요. 


🧐원기자 = NCM과 LFP, 뭐가 더 좋아요?
👨‍🔧익명 = 어느 하나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않을 겁니다. LFP가 시장을 휩쓰니까 우리 기업도 따라가야 한다, 이런 주장에는 동의하지 못해요. 개인적 견해입니다만. NCM과 LFP의 장점, 단점이 어느 정도 명확하니까요. 두 분야로 갈리겠죠. 다만 재활용을 생각한다면 NCM의 경쟁력이 더 크다고 봐요. NCM도 단점인 가격을 낮추고 있고, LFP도 주행거리와 같은 단점을 보완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원기자 = 지금 우리 기업이 해야 할 일은 뭘까요.
👨‍🔧익명 = 유럽의 대응을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요. 노스볼트에서 배터리 받기로 했던 완성차 기업의 움직임도요. 한국과 중국 기업의 수주는 지금보다 늘어날 거예요. 그렇다면 결국 기술력인데. 결국 이 시장에서 누가 더 신뢰를 쌓아 나아가느냐의 싸움일 거 같아요. 회사의 C레벨 급은 파산 몇 달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누가 어딜 갔다, 누구를 만난다고 하더라, 와 같은 ‘카더라’ 소식도 많아요.


🧐원기자 = 배터리 산업, 앞으로 어떨까요.
👨‍🔧익명 = 어디 공장 무슨 라인이 쉬고 있다, 가동을 멈췄다, 이런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저희도 그런 상황이고요.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 조정에 나서면서 배터리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2020년 이후 워낙 증설을 많이 했으니까요. 당장은 안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기차 시대로 가지 않을까요. 성장세는 줄었지만 성장은 지속되고 있어요. 

맺음말  
1972년, 엑손모빌에서 일하던 영국의 스탠리 휘팅엄 박사가 최초의 리튬 기반 이차전지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미국의 존 구디너프 박사가 한단계 나아가 전압을 높인 이차전지를 개발합니다. 이어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 박사가 리튬이온을 활용, 배터리의 내구성, 안전성을 높여 이차전지 상용화에 성공합니다. 이 세 사람은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노벨 화학상을 받습니다.

영국, 미국, 일본. 유럽과 미국, 아시아 과학자들이 사이좋게 이차전지를 개발한 셈이에요. 그런데 상용화 성공은 일본이 가져갑니다. 이후 일본은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을 석권합니다.

非중국 기준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을 살펴보면 중국(CATL, BYD, CAL, Farasis 등) 34%, 한국(LG엔솔, 삼성SDI, SK온) 46.4%, 일본(파나소닉, PPES) 12.5%에요. 

이차전지 개발의 시작은 유럽, 미국에서 시작해 아시아로 넘어갔는데, 결국 아시아만 남은 이유가 뭘까요.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아시아의 ‘돌격 앞으로!' 문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고, 제조업 경험, 노하우도 있을 테고요. 

연구개발 측면에서는 유럽과 미국은 우리가 ‘전고체 전지’라 부르는 분야에 일찍이 초점을 맞추면서 뒤처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상용화하기에 어려운 분야에 너무 일직 투자했다는 거죠. 한국은 일본을 따라 리튬이온 전지에 뛰어들며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되었고요. 

현시점에서 보면 아시아 배터리 기업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유럽은 상용화도 실패하고, 노스볼트의 파산으로 생산도 실패합니다. 당분간, 아니 상당히 오랜 기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아시아 기업의 존재감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한중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요.

훗날 한국 기업이 이날을 회고하며 “선택이 옳았다”라고 말하려면, 우리 기업은 과연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배터리 직종에 계신 분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시기일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 식사 뒤 후식으로 식용 배터리로도 사용이 가능한 유제품을 챙겨드시는 게 어떠세요?

한 연구에 따르면 달걀, 우유, 요구르트에 많은 ‘리보플래빈’을 이용해 식용 배터리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제품 드시면서 배터리 산업에 대한 고민을😅 

이제 2024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녁 약속이 많아지고, 보고할 거리도 점점 늘어나는 연말. 쏟아지는 업무에, 일 제대로 못했다고 혼나도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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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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