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이 추워지면 만화방이 생각나. 더 정확하게는 대학시절 자취했던 역곡역의 어느 만화방에서 끓여주는 라면과 묵은지가 말이야. 요즘 만화카페처럼 깨끗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았고, 골방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아저씨들로 가득했지만, 그곳만큼 맛있는 김치와 라면을 주는 곳은 없었어. 나에게 만화방의 원형 같은 곳이지. 요즘도 부쩍 그곳이 생각나더라고. 각자 좋아하는 만화방의 추억을 꺼낼 수 있게 이번주엔 만화책을 추천해줄게.

충사]로 유명한 우루시바라 유키 작가의 비교적 신작인 [고양이가 서쪽으로 향하면]이라는 만화책이야. 3권으로 아주 짧아서 1시간이면 후루룩 읽을 수 있어. [충사]가 옛 시대를 배경으로 이형의 존재로 나타난 벌레를 잡으러 다니는 한 남자를 따라가는 것처럼, [고양이가 서쪽으로 향하면]은 현대를 배경으로 현실에 나타난 ‘플로우’라는 이상 현상을 진단하고 되돌려놓는 한 남자를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 소재와 시대배경은 완전히 다르지만 작가가 애정을 담아 탐구하는 것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플로우는 인간의 마음에 생긴 작은 사념이 일으키는 이상현상으로, 갑자기 존재하던 건물이 사라진다든가, 늘 지나다니는 갈랫길이 무수히 많아진다든가, 거울 안의 끝없는 세계가 펼쳐진다든가, 내 몸이 여러 개로 분리된다든가 하는 귀여운 변화들을 일으켜. 주인공은 작은 사무소를 운영중인데, 이러한 이상현상이 벌어지면 출동해서 진단을 내리고 때론 문제의 원인인 사람을 찾아 그 마음을 해소시킴으로써 플로우를 없애기도 해. 예를 들면, 옆집 할아버지를 내심 무시했던 젊은 청년의 집이 혼자 높은 절벽 위에 솟아버린다든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만 맞춰왔던 여학생이 플로우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든지 하는 경우야.


이 소박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지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돼. 아마도 우리 각자 품고 있는 마음의 빈틈을 이 만화가 발견했기 때문일거야. 만화에서 플로우를 일으킨 사람은 대부분 자신이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거든. 그 말은 즉 자신 안에 생긴 빈틈을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거지. 우리 삶은 대부분 그런 게 아닐까? 늘 비슷한 상태로 이어져가는 일상이기에 문득 헛헛하거나, 스쳐지나간 상념들을 미처 진지하게 잡아두지 못하고 흘려보내곤 하는 것 같아. 사는 데에 큰 지장을 주진 않겠지만 내가 들여다보지 못한 내 마음의 빈틈은 점점 커지기도 해. [고양이가 서쪽으로 향하면]은 그렇게 커다랗게 변해서 심각해지기 전에 당신 마음은 괜찮냐고 들여다보는 듯했어. 나는 이 만화를 읽을 때 곳곳에서 새어나가고 있던 내 마음의 곳곳을 발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훈훈한 만화책이야. 왜냐면 이 이야기에서 생겨나는플로우는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 해도 반드시 제자리를 찾거든. 얼마나 오래걸리든 결국은 해결된다는 결론이 좋더라고.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하기보다 틈틈이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여줬으면 해. 지쳐보이는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좋을 것 같아. 네이버 시리즈와 리디북스에서도 볼 수 있으니 만화방이 낯선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을거야

소소한 관람포인트1. 제목이 무슨 뜻이야?

바로 플로우를 느끼는 사무소의 사장님이 고양이이거든. 소소한 귀여움을 주는 캐릭터야!

소소한 관람포인트2. 우루시바라 유키 [수역]

우루시바라 유키의 [수역][충사]에 비해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추천할게. 작가 특유의 현실에 기반한 판타지적 요소와 자연친화적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야.

소소한 관람포인트3. 같은 주제 다른 이야기

인간의 마음에 생긴 빈틈에 깃드는 걸 플로우가 아닌 악령으로 표현한 작가도 있어. 바로 사와무라 이치인데, 공포영화 <온다>의 원작소설인 [보기왕이 온다]로 유명해. 시리즈물인 [즈우노메 인형]까지 함께 읽어봐. 비슷한 주제의식이 완전히 다르게 표현된 창작물을 비교해보는 것도 아주 흥미로울거야.
레이지 카우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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