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좋은 날, 인력거를 몰아 큰돈을 번 김첨지는 평소 아내가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건 싸늘하게 식어버린 아내. 김첨지는 죽은 이의 얼굴을 붙잡고 흐느낀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오랜 시간이 흘러도 회자되는 이 문장은 소설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대목이다.
김첨지가 끝내 먹이지 못한 이 설렁탕은 조선 시대에 유래되었다고 알려진 서울의 전통 음식으로, <운수 좋은 날>의 배경인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널리 퍼졌다. 일제가 소를 식량이자 공업 원료로 인식해 도축을 체계화했고, 일본으로 반출하거나 군수 물자로 쓴 뒤 남은 부속 부위는 조선인들에게 돌아왔다. 싼값에 든든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노동자의 애환을 달래주던 설렁탕. 소설 속 음식에는 이런 사연이 담겨 있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지역 음식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데에는 저마다 사회, 지역, 문화적 이유가 있다. 개항과 산업화를 거쳐 정착한 인천 짜장면, 함경도 실향민의 애달픈 삶이 담긴 속초 아바이순대, 다양한 식재료가 모이기 쉬운 지역 특색 덕에 탄생한 전주비빔밥 등이 대표적이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시간과 삶이 담긴 기록물인 셈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라는 소재로 우리 땅과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생활을 소개한다.
며칠 전 물회로 유명한 포항에 다녀왔다. 맛깔난 물회를 한 접시 비우고, 한 할머니에게 그 비결을 들었다. 어부에게 시집와 반세기 동안 바닷가에서 산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생계를 위해 생선 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와 허기진 자식들을 위해 회를 고추장에 쓱쓱 무쳐서 밥상을 차렸다고. 그 동네를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의 손맛이 비슷한 것도 어려운 시절 서로 돕고 나눠 먹었던 게 이유라고 했다.
바닷길을 걸으며 할머니의 인생을 곱씹었다. 저 멀리 바다를 수놓은 배를 바라보자, 어선을 기다렸을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음식과 사람, 시간과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