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조건을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그다음, 그 마음의 조건을 파악합니다. 이때의 조건은 실제 자기 삶 속에서 파악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조건이어야 합니다. 어떤 대상을 만났을 때 이 마음이 일어나는지, 현재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조건(건강 상태, 주변 상황)과 과거의 조건(어릴 때 부모와의 관계, 중요한 과거 경험)은 무엇인지, 또 과거에 꾸준히 일으켰던 마음이 현재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등등, 자기 삶 속에서 실질적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조건을 파악하다 보면 이 번뇌가 한 두 번의 반조로 쉽게 제거되는 것인지, 꽤 오랜 시간 수행을 해야 제거될 수 있는 깊은 번뇌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그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지혜와 방편들도 더 현실적이고 정교해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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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을 얻으려면 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욕망마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은 철학적 딜레마처럼 여겨졌습니다. 실제 보통의 인간 삶에서 증명할 수 있다거나 실현할 수 있는 수행이 아닌 그저 교리의 완결성을 추구하려다가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정도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분명 인간에게는 기존의 자기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는 초월적 에너지가 있(을 수 있)다고는 하나 청정한 마음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저에게 ‘탐욕이 없는 마음’ 같은 소리는 인간 마음의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관념적인 소리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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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 또한 탐욕으로부터 시작됐었습니다. 저는 어느 때부터 생·로·병·사, 희·로·애·락이라는 물질적, 정신적 인생의 회전목마를 돌고 돌며 자신의 삶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저 자신을 보며 강한 회의와 환멸을 느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모든 사람의 견해와 시대의 패러다임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답,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하지만 그 진리는 저와 같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한 범부가 찾을 수 있는 답이 아니었습니다. 더 논증할 수 없는 자신의 경험과 사고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면서 저는 ‘의미 있는 인생’에 대한 강한 존재에 대한 갈애만큼이나마 강한 비존재에 대한 갈애에 사로잡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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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강렬한 허무감과 회의감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인간의 삶은 고작 순간순간의 쾌락으로 연명하는 비루한 삶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하게 됐습니다. 도대체 그동안 어떻게 긍정적으로 살아올 수 있었는지 그 방법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시금 전처럼 털어버리려고 해도 이런 낙천성 또한 그저 천박한 생존 본능에 불과했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사로잡히면서 제 번뇌의 악순환은 이어졌고 저는 점점 생에 대한 의지를 잃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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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정에서 다시금 생에 대한 강한 의지를 촉발하게 했던 것은 선원장 스님의 법문이었습니다. 불교에 대해 알지는 못했지만 한 시간 남짓 말씀하시는 생에 대한 통찰은 제가 몇 년 동안 사고해왔던 것들이 포함돼 있는 건 물론이었고, 그에 비하면 제 사고는 조잡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불교를 접하게 되면서 이걸 통해 제 사고를 계속해서 넓혀 나갈 수 있다는 데에 다시 욕망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그 의지가 수승한 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떠한 사상도 해결해 내지 못한 인간 실존에 대한 명확한 답과 방법론을 제시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가는 일이므로 수행은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다고 여겼습니다. 불교는 제 존재에 대한 갈애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자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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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적으로 만이라도 진리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도감이 아주 컸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안도감이 주는 마음의 이완이 제가 이제껏 ‘나’이라고 생각해오며 답을 찾고자 내달려왔던 이제까지의 자신을 부정하는 일로 여겨져 법을 만난 이후에도 과거 사유해오던 방식으로 강박적으로 반조하며 수행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자체를 문제로 여기고 이를 해결하려는 방식으로 자신을 내몰았습니다. 당시엔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자신을 몰아가는 수행을 해오던 저에게 스승께서 마음을 쉬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셔도 앞에서는 ‘네’ 하면서도 그렇게 찾아 헤매던 진리를 이제서야 겨우 만났는데 어떻게 바보같이 쉴 수 있나, 적어도 나는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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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행은 단거리 마라톤이 아닌 장거리 마라톤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빠르게 내달려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지치게 돼있었습니다. 저는 안 그래도 부족한 바른 기억의 힘이 약해질까 강박적으로 반조해오면서 반조의 주기가 타이트해져 있었습니다. 그 부작용으로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치고 나서야 제 수행 방법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제서야 스승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제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습니다. 저는 제 삶에 대한 욕망이 수행방법을 왜곡시키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이때까지 수행해온 과정들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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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신심, 정진, 기억, 삼매, 지혜라는 오력(五力)을 기준으로 제가 어느 쪽에 치우쳐 있고 어느 쪽에 소홀히 했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치를 숫자로 체크했습니다. 그러자 스승의 말씀처럼 삼매를 닦는 일을 소홀히 했으며, 오력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지 못한 것의 부작용들이 저에게 일어난 것임을 이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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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반조 방법을 다시 점검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그 마음이 일어나게 한 외부 조건과 내부 조건을 분석하면서 나의 어떤 경향성과 어떤 기억들이 이 경향성을 강하게 형성했는지 나아가서는 내가 어떤 것을 강하게 나라고 집착하고 있는지를 찾아갔습니다. 이런 방법도 반조 과정 중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워낙 혼자 사유해오던 경험으로 인해 반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지금처럼 자유 형식이었기에 스스로 경험하면서 동시에 법으로 환원해서 칠각지(七覺支) 혹은 팔정도를 닦는 안전한 툴에서 반조하지 못했고 그 부작용으로 번뇌에 매몰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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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반조 방식이 부처님의 견해를 빌렸으나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엔 제 사견과 경향성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이해하고 이후부터는 느낌이 일어날 때 이 느낌을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구조에 맞추어 반조했습니다. 그러자 내가 성냄을 반조하느라 이 성냄이 일어났던 원인인 탐욕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낮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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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성냄이 일어나는 원인이 됐던 탐욕의 내용들을 관찰해 보니 세 살배기 애가 떼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내가 이제껏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한 게 맞았던가 싶을 정도로 저는 ‘이렇게 돼야 해’,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해’라는 식의 당위적인 욕망들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확인하고서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무상, 고, 무아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고 철석같이 확신했으면서도 내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은 그에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내가 이제껏 뭘 해왔던 걸까 수치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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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이 작용하는 기본값 자체가 탐욕을 실현시키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성냄을 일으키면서 괴로워하며 집착하고, 이루어지면 탐욕이 충족되면서 만족스러워하며 상태를 유지시키거나 더 큰 욕망을 실현시키려 집착하는 그릇된 방향임을 확인하면서 가슴 깊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조언과 출가자들 저마다의 덕목들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며 제 사고의 그릇된 점을 교정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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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의 것’이라 거머쥐어 집착해왔던 견해들이 형성한 탐욕을 반조하는 것은 실제 자신의 서사를 통해 그 탐욕의 내용을 확인함으로써 이런 탐욕이 얼마나 집착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인지 이해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나, 나의 것’이라 집착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을 ‘나, 나의 것’이라고 강하게 거머쥐었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라는 무아의 지혜를 성장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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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지자 마음의 일어남과 사라짐의 무상함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사라지는 마음을 그동안 ‘나’로 동일시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에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돌아보며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인 신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마음이 일어났을 때 즉시 무상함을 알아차리면서 내려놓는 법을 조금씩 연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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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에 와서 저는 다시 한 번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욕망마저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을 떠올려봅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탐욕이 빛 바래 가는 마음을 스스로 경험하게 되면서 탐욕에 끌려 살아가는 것이 인간 생존본능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여겨왔던 과거의 어리석은 마음을 놓게 됩니다. 교리의 완결성을 추구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생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인간 마음의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다는 오히려 존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제 어리석음으로 일어난 자만이었음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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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한 존재의 의도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반조하고서도 저는 여전히 누군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한편 그 사람이 제 탐욕을 충족하는 데에 방해가 될 때면 제거하고 싶은 적의도 함께 일어납니다. 존재의 소멸이라는 목적을 향하는 수행을 이어 나가면서도 저를 온전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제 자신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울컥 일어납니다. 윤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임을 알면서도 다음 생을 함께 기약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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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이런 생의 모호함, 존재의 모순이 고성제의 지혜인 존재의 불완전함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 우리를 윤회하게 한 고질적인 번뇌인 존재에 대한 갈애 그리고 그로부터 일어나는 수많은 번뇌들은 선원장 스님의 말씀을 빌려 긴 템포로 보아야 하는 것임을 이제는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저는 어쩌면 이제껏 그 생의 모호함을 견딜 수 없어 그토록 힘들어했던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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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느끼며 살아만 왔던 사람은 욕망을 이해하고 빛 바래게 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존재를 느끼며 살아만 왔던 사람은 존재를 이해하고 갈애를 빛 바래게 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자만만 가득했던 제가 법을 만나 이제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게 됐다는 것에 천만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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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冬安居) 수행이 끝나고 세속으로 돌아가던 날 스님께서 ‘발 닿는 곳마다 진리가 드러나게 하라’는 말을 쥐어 주셨습니다. 그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고성제의 지혜가 삶에 드러나는 이제서야 저는 이해하게 됩니다.

🌷 주간별 공양및 기타 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