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산성 근육을 키워주는 당근메일 당근메일 #289 | 2026년 9월 14일 - WEEK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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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AI 회의록 도구는 무엇이 달랐을까?
— AI 시대 좋은 제품의 조건은 AI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AI 입니다.
진대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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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회의록 춘추전국시대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AI 회의록을 봤습니다. 네이버의 클로바노트, 실시간으로 글자가 올라오는 티로, 노션에 기본으로 들어간 AI 회의 노트, 타임리스, 스펠러까지. 해외로 가면 Otter·Fireflies·Fathom이 있고, 줌과 구글 미트와 팀즈는 아예 회의 프로그램 안에 요약 기능을 넣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AI로 회의를 받아 적는다」는 것 자체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 비슷한 모델에, 녹음을 텍스트로 바꾸는 기술 역시 어디에나 널려있고, 요약은 프롬프트 몇 줄이면 됩니다. 흔히 말하는 해자(moat)가 없는 시장이죠.
그런데 그 시장에서 그래놀라는 올해 3월에 1억 2,500만 달러를 투자받으면서 기업 가치 15억 달러를 인정받았습니다. 1년 전 시리즈 B 때 2억 5,000만 달러였으니 1년 만에 6배가 된 것이죠. 고객사 목록에는 Asana, Cursor, Lovable, Mistral 같은 회사들이 있습니다. AI를 누구보다 잘 아는 회사들이 회의록만큼은 그래놀라를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그 답이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사람에게 남기고, 무엇을 AI에게 넘겼는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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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그 회의에서 '뭣이 중헌디' 모릅니다
기존 AI 회의록의 방식은 거의 같습니다. 회의가 시작되면 봇이 들어오거나 녹음이 켜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AI가 듣고, 끝나면 AI가 정리합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그게 장점으로 보였죠.
그런데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AI는 그 회의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요함은 말 속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회의를 들어도 저에게 중요한 것과 옆자리 동료에게 중요한 것은 다릅니다. 지난주에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 이 사람과 저번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지금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에 따라 같은 문장의 무게가 달라지죠. AI는 그 맥락을 모른 채로 「골고루」 정리합니다. 그래서 다 적혀 있는데 정작 내가 찾는 건 없는 회의록이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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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각해 보면 우리는 원래 회의 내용을 전부 기록하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회의 중에 우리가 노트에 적는 것은 잊으면 안 되는 것 몇 줄이었죠. 결정된 숫자, 누가 언제까지 하기로 했는지, 그리고 상대가 말하는 동안 떠오른 내 생각. 그 몇 줄이면 충분했고, 부족한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적느라 대화를 놓치거나, 대화에 집중하느라 못 적거나. 둘 중 하나를 늘 포기해야 했다는 것이죠.
그래놀라는 이 두 지점을 엮었습니다. 그래놀라를 켜면 봇 회의에 직접 들어오지 않습니다. 화면에는 그냥 메모장 하나가 뜹니다. 회의 중에 우리는 평소처럼 중요한 것만 몇 단어씩 적습니다. 전부 적을 필요가 없으니 대화에 집중할 수 있죠.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AI가 녹음된 전체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적어 둔 몇 줄을 기준으로 살을 붙입니다. 내가 「예산 확정?」이라고 적어 놓았으면 그 부분의 대화가 자세히 풀리고, 내가 적지 않은 잡담은 뒤로 밀립니다. 즉 무엇이 중요한지는 사람이 정하고, 그 중요한 것을 빠짐없이 채우는 일은 AI가 하는 것이죠.
제 노트 하나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8월에 했던 커피챗입니다. 회의 중에 제가 적은 것은 상대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도의 짧은 줄 몇 개였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그래놀라가 그 줄들을 정리된 문장으로 채워 놓았고, 아래로는 제가 적지 않았던 주제들이 따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줄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 줄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뜹니다. 그 대목의 대화 요약과, 상대가 실제로 한 말이 화자와 시각과 함께 붙어 있죠. 「이 문장을 AI가 왜 이렇게 썼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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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커피챗의 그래놀라 노트. 제가 적은 한 줄에 마우스를 올리면 그 줄의 근거가 된 대화 요약과 원문 발언(화자·시각)이 뜹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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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자 크리스 페드레갈(Chris Pedregal)은 이 차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그래놀라가 집중하는 것은 '내가 쓴 것 같은' 좋은 노트를 만드는 일입니다. 다른 AI 노트 앱과 우리가 다른 점은,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메모장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회의 중에는 여러분이 메모를 하고, 회의가 끝나면 여러분이 적은 내용을 기준으로 우리가 그 메모에 살을 붙입니다."
— 크리스 페드레갈, Creator Economy 인터뷰 (2025)
그는 AI봇에 대한 생각도 분명했습니다. 봇이 회의에 들어와 있는 것은 "세련되지 못하고, 사람을 지우는 존재"라고요. 그래서 그래놀라는 처음부터 컴퓨터의 시스템 오디오를 쓰는 쪽을 택했습니다. 회의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내 메모장이 함께 듣고 있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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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놀라 홈페이지 첫 화면. 「회의를 위한 AI 메모장. 노트, 액션, 메모리 — 회의 봇 없이.」 제품이 스스로를 봇이 아니라 메모장이라고 부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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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세 가지 부채
AI를 쓰면 편해지는 만큼 어딘가에 빚이 쌓입니다. 올해 3월에 소프트웨어 공학자 마거릿앤 스토리(Margaret-Anne Storey)가 ACM Queue에 쓴 글이 그 빚을 셋으로 나눴습니다.
원래는 개발 이야기지만 AI 회의록 결과에도 겹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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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부채 — 결과물 자체에 쌓이는 빚입니다. 대충 만든 코드, 대충 정리된 회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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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부채 — 결과물을 이해하지 못해 사람의 머릿속에 쌓이는 빚입니다. 결과물은 있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자신 있게 설명할 사람이 없어지는 상태죠. AI가 정리한 회의록을 읽기만 한 사람은 그 회의를 「아는」 게 아니라 「읽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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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 부채 — 결과물 어디에도 「왜 이렇게 했는지」가 적혀 있지 않은 빚입니다. 목표와 제약과 이유가 없는 상태. 회의록은 정리되어 있지만 어떤 의도로 정리된 건지 전혀 모르는 상태를 말하죠.
생성형 AI가 결과물을 사람이 이해하는 속도보다 빨리 만들기 때문에, 기술 부채는 줄어들 수 있어도 인지 부채와 의도 부채는 오히려 빨리 쌓인다고 말합니다.
이 셋 중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놓치는 것이 의도 부채입니다. AI가 정리한 회의록을 나중에 다시 열어 보면 이런 순간이 옵니다. 이 항목은 왜 여기 있지? 이건 왜 중요하다고 표시돼 있지? 그 회의록에는 답이 없습니다. AI가 왜 그렇게 정리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AI도 우리의 의도를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미리 지침을 심는 방식으로 풀어 왔습니다. 시스템 프롬프트를 쓰고, 「우리 회사는 어떤 회사인지, 회의록은 어떤 템플릿 형태를 가지는지, 담당자 및 부서명은 어떤지」와 같은 선행 정보를 미리 전달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침은 모든 회의에 똑같이 적용되는데, 회의마다 중요한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놀라는 다른 길을 골랐습니다. 의도를 미리 심는 대신 그때그때 사람이 심게 했습니다. 회의 중에 내가 적는 몇 단어가 곧 그 회의의 의도입니다. 「이게 중요하다」, 「이건 다시 확인」, 「이 부분 나중에 반박」. 이 정도를 적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방향만 잡아 주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 방향 위에서 AI가 나머지를 채우면, 회의록에는 자연스럽게 「왜」가 남습니다. 내가 적은 것이 곧 이유이기 때문이죠.
구글의 엔지니어 애디 오스마니(Addy Osmani)는 같은 개념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에이전트는 의도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의도는 반드시 당신에게서 나와야 하는 단 하나의 입력이기 때문입니다."
— 애디 오스마니, 「The Intent Debt」 (2026)
그래놀라가 만든 것은 결국 의도를 입력하는 가장 가벼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놀라운 회의록이 나온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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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기능 대신 AI와의 연동을 택하다
그래놀라가 잘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노트 자체만이 아니라 제품 전체를 AI 친화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제품은 단순하게 둔다. 복잡한 기능을 만드는 대신 사용자가 이미 쓰는 AI에 연결해서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그래서 올해 2월에 나온 것이 그래놀라 MCP(Model Context Protocol)입니다. Claude·ChatGPT·Cursor·Claude Code에 그래놀라를 꽂으면 내 회의 노트가 그 AI 안에서 그대로 읽힙니다. 「지난달 A사와 한 회의에서 가격 이야기 정리해 줘」라고 Claude에게 물으면 그래놀라 노트를 뒤져서 답합니다. 회의록 앱 안에 검색 기능, 질문 기능, 요약 기능, 액션 아이템 추출 기능을 하나씩 만드는 대신 그 일을 이미 잘하는 AI에 연결해 버린 것이죠. 그래놀라 블로그의 표현을 빌리면 "기능을 안에 쌓는 대신, 당신이 이미 매일 쓰는 AI 앱에 연결한다"입니다.
편의성도 같은 방향으로 더했습니다. 7월에는 애플 워치 앱이 나왔습니다. 걸으면서 하는 1:1이나 커피챗처럼 노트북을 열 수 없는 자리에서 손목을 한 번 탭하면 녹음이 시작되고, 끝나면 아이폰으로 넘어가 노트가 됩니다. 폰을 꺼내 들고 「녹음 중입니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그리고 이번 9월에 32개 언어. 한국어가 들어온 것은 이 흐름의 가장 최근 한 조각입니다.
정리하면 그래놀라는 노트 앱으로서는 최대한 단순하게 있고, 나머지는 AI와 기기에 맡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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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더 좋은 제품의 조건
해자가 없는 시장에서 그래놀라는 어떻게 선두가 됐을까요. CEO 페드레갈 자신의 답은 이렇습니다.
"AI는 소비자 앱의 근본적인 차별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차별점은 여전히 모델이 아니라 UX입니다."
— 크리스 페드레갈, Invest Like the Best (2025)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AI 시대에 좋은 제품의 조건은 AI 그 자체가 아닙니다. 모델은 누구나 같은 것을 씁니다. 차이는 그 모델을 어떤 기능에 어떤 자리에 위치시키느냐에서 납니다.
그래놀라가 한 일을 다시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원래 우리가 하던 방식에서 부족하고 귀찮았던 부분을 보강했습니다. 우리는 원래 회의 중에 몇 줄을 적었고, 그 몇 줄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그래놀라는 그 방식을 바꾸지 않고 부족한 부분만 채웠습니다. 둘째, 사람의 취향과 의도와 주관은 사람에게 남겼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남길지는 여전히 내가 정합니다. AI는 그 결정을 대신하지 않고 그 결정 위에서 일합니다.
즉 가장 인간다운 증강입니다.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던 일을 사람이 계속 하게 두면서 그 일이 잘되게 만드는 것이죠. 페드레갈은 지금의 AI 인터페이스를 핸들이 없던 1세대 자동차에 비유했습니다. 막대 하나를 돌려서 차를 몰던 시절이라고요. AI와 함께 일할 때의 핸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발명하지 못했다고도 했습니다. 그래놀라(Granola)의 메모장은 그 핸들에 가장 가까운 것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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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는 언제나 나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AI가 다 해 준다」는 제품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살아남는 쪽은 「AI가 다 해 준다」가 아니라 「내가 하던 대로 하면 AI가 나머지를 한다」는 제품이었습니다. AI 시대에 더 인간을 위한 UX와 UI가 성공하는 제품의 새 법칙이 되고 있는 것이죠.
AI 요약에는 있는데 내 세 줄에는 없는 것, 그리고 내 세 줄에는 있는데 AI 요약에는 없는 것. 그 차이가 곧 「내 의도」입니다. 다른것은 AI와 함께하더라도 모든것을 AI에게 넘기진 마세요. 의도마저 AI가 가져가면 어느새 AI가 우리에게 가스라이팅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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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회의록은 다 적어 주는데 정작 내가 찾는 것이 없습니다. AI는 그 회의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 ✍️ 그래놀라는 중요한 것을 사람이 몇 줄 적게 하고, AI가 그 몇 줄을 기준으로 나머지를 채웁니다. 의도는 사람이, 완성은 AI가 맡는 구조죠.
- 🧭 AI 시대 좋은 제품의 조건은 AI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하던 방식을 지키면서 부족한 곳만 채우는 「가장 인간다운 증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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