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과학계의 고전 가운데에 '이중나선'이 있습니다. 유전물질(DNA)의 결합 구조가 이중나선 구조라는 사실을 1953년 밝혀 1961년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의 회고록입니다. 뜨내기 젊은 미국인 연구자였던 왓슨이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와서 한참 연상인 동료 프랜시스 크릭을 만나 공동 연구를 통해 20세기 생명과학 최대 발견에 성공하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묘사돼 있습니다. 특히 괴물 같은 존재감을 드리우던 미국의 구조화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과 경쟁 끝에 먼저 수수께끼를 푸는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서술돼 있죠. 

그런데 책에는 논란이 된 대목이 있습니다. 영국의 구조생물학자로 DNA 시료의 X선 회절 사진을 촬영한 로절린드 프랭클린의 연구 결과를 당사자 몰래 참조한 듯 서술한 부분입니다. 남의 연구 결과를 대담하게(?) 도둑질했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였죠. 이 언급으로 왓슨은 비난을 받았고, 프랭클린은 연구 업적을 부당하게 도난 당한 여성 연구자로 과학사에 기록됩니다. 왓슨이 책에서 프랭클린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많았던 것도 이런 인식을 공고히 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데, 실체는 이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사료 연구 결과 밝혀지고 있습니다. 프랭클린과 왓슨, 크릭은 실은 사이가 좋았고, 문제의 DNA X선 회절 사진을 몰래 본 것도 아니었으며, 본 뒤에도 구조 예측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극적 효과를 위한 왓슨의 거짓말에 불과했다는 거죠. 

대신 프랭클린이 수행한 다른 연구 데이터가 도움이 됐고, 이 데이터는 공개돼 있었습니다. 데이터 출처도 논문에 언급했습니다. 프랭클린은 이중나선 구조 해석에 큰 기여를 했고 노벨상 공동수상 가능성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1957년 요절해 수상자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왓슨의 '도둑질'로 공로가 묻힌 것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를 후대에 남겼거든요. 사실 프랭클린은 이중나선 분야에도 큰 공헌을 했지만, 그 직후 주 연구 분야를 바이러스 구조로 옮겼고 다시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습니다. DNA나 '이중나선' 책이 아니어도 실력파 연구자로 과학사에 이름을 충분히 남길 수 있는 대단한 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1957년 요절했고, 과학사에는 주체적인 과학자가 아닌 왓슨에 의해 업적을 도둑 맞은 여성 학자로만 남게 됐습니다. 

이제라도 정당한 몫을 찾아주기 위해 학계가 나서고 있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20세기 과학계 최대 스캔들이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통념을 깨는 휴먼 드라마를 구조생물학자의 해설로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