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랑하지만 누구나 갖기 어려운 것

2022년 마무리를 생각하다가 문득 2021년에 어땠는지 돌이켜봤어요. 2021년 12월에 쓴 일기가 남아있더라고요. '올해에는 아주 매력적이고 닮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래서 행복했다'는 이야기가 써 있었습니다. 읽고 나니까 생각이 나더군요. 감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앞으로의 이정표가 되어줄 친구들. 물론 우린 아주 다르니까 그쪽으로 무작정 따라갈 순 없겠지만, 어딘가에는 저런 따뜻함이 있다는 걸 계속 곁눈으로 확인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작년의 기억이 줄줄이. 2021년은 그야말로 매력으로 가득한 한 해였습니다. 
반면 올해는 안타깝게도 반면교사를 많이 만났어요. ‘싫다’ 보다는 ‘안타깝다’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죠. 모두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생판 남인 내 눈에도 그 사실만은 명확한데 저들은 왜 조금의 호감도 일으키지 못하는가… 남을 마구 평가하는 심술이 이젠 좀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에는 그 미운 마음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혀를 쯧쯧 찼습니다. 저 자신을 향한 끌탕이기도 했겠죠. 새로 만난 사람도 밉고 원래 알던 사람도 새롭게 밉고 사실은 그런 내가 제일 좁고 미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아마 연말쯤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올해는 정말 마음에 여유가 없었거든요. 새로 적응할 일도 많고 내 자리를 확보하느라 늘 긴장 상태였기도 했습니다. 긴 핑계는 다음으로 미룰게요. 
아무튼 작년과 올해, 극단적인 2년을 보내면서 ‘매력이란 대체 뭘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족이 길었죠. 어차피 이 레터 자체가 아주 길고 많은 사족 같은 거잖아요…

한동안 ‘리더십’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팀장을 맡은 이후였던 것 같아요. 당연하지만 학교 다닐 때 반장 좀 해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은 준비도 예고도 없이 닥치는 걸요. 아무튼, 그때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같은 건 정말 없구나. ‘동정 리더십’이라도 발휘할 수 있으면 진짜 다행이구나… 
‘동정 리더십’이라는 웃긴 말로 부르긴 했지만 그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점에서 그리 틀리지 않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을 도와주고 싶고, 이 사람이 잘 되었으면, 행복했으면, 우리가 함께 멋진 일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일을 하나라도 더 되도록 만드는 거니까요. 어느 수준 이상의 인성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할 때 그 뒤의 리더십은 곧 매력 싸움이 아닐까 싶을 정도죠. 코에이 삼국지에서도 매력이 엄청 중요한 스탯이지 않습니까. 
요즘 다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현 대통령입니다. 한번도 대통령을 좋아하거나 응원해본 적은 없지만 (사실 늘 싫어하는 편이었죠) 이번 대통령은 정말 신기해요. 사람이 어쩜 저렇게 매력이 없지? 국민을 죽이고 괴롭히고 탄압했던 이전 대통령들도 전부 악마같은 매력은 있어서 ‘까’에 못지 않은 ‘빠’를 몰고 다녔는데, 이번 대통령은 그런 매력조차 없어 보입니다. 사람이 정말 멋대가리가 없고 전혀 따르고 싶지 않은 무색무취무미의 느낌이 흐르죠. 어느 때보다 영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데에도 이 영향이 없지 않을 거라고 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대통령 욕이 되어버렸는데요, 정치에 대한 비판도 아니고 무턱대고 ‘사람이 매력이 없어’ 이러는 게 참 부당하기는 합니다. 게다가 매력은 굉장히 불공평한 자원이라고 알려져 있죠. 누군가는 그냥 태어날 때부터 양손에 잔뜩 쥐고 있잖아요. 같은 장난을 쳐도 어떤 어린이는 ‘으이구~’ 하는 작은 타박으로 넘길 수 있는 반면 어떤 어린이는 경을 치게 됩니다. 매력은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깨닫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죠. 

매력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입니다. ‘매혹할 매(魅)’ 자를 쓰는 데 이 글자는 ‘도깨비 매’ 자이기도 해요. 매혹하고, 홀리고, 한마디로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라는 뜻이겠죠. 결국 상대방을 웃게 만들고 무장해제 시키는 힘, 이성과 합리로는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어떤 마법 같은 능력으로 느껴지네요. 사소한 장난으로 경을 친 어린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매력이야말로 노력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력, 통솔력, 무력 같은 것들보다 훨씬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거나 어떤 이득을 준다-줄 것이다-라고 믿게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건 인간이라는 종이 생겨났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던 사실이겠죠. 
다시 돌아가서, 그러므로, 최소한 20대 중반,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할 정도의 시점엔 자신의 매력에 대해 남탓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40살이 넘어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처럼 어른인 우리는 자신의 매력에도 책임이 있어요. 어린이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혼쭐이 났지만 이제는 주저앉아서 불공평하다는 불평만 하고 있으면 안 될 거라는 말입니다. 매력은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이고, 그래서 ‘매력 없다’는 말은 불공평한 만큼 잔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함께하되 의존하지 않고, 배려하고, 많이 웃으면 그게 곧 매력이 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진짜 매력있는 사람은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인생의 아이러니죠. 함께는 안온하고 혼자는 쓸쓸하지만, 그래서 혼자는 강하고 매력적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후천적 매력은 지독한 혼자의 시간을 거쳐온 사람만 얻을 수 있는 훈장일 겁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매력이 있습니다. 카리스마도 매력의 일종이고(코에이 삼국지에서 한때 ‘매력’을 ‘카리스마’로 표기했듯이^^) 귀여움도 아주 강력한 매력의 일종이죠. 사람들은 언제나 이 수많은 종류의 매력을 찾고, 갖고 싶어하고, 사랑해요. 다들 외롭고 힘든가봐요. 편안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뭔가가 필요하고요. 
매력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언제일까요? 누군가 그 힘을 기꺼이 남을 위해 사용할 때일 겁니다. 카리스마로 더 큰 연대를 이끌 때, 귀여움으로 어두운 곳을 비출 때, 삶에 절실하게 따뜻함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때. 그래서 큰 권력을 지닌 사람에게 매력이 없거나 큰 매력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이상하게 낭비하면 재앙이 벌어지나봐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외면과 남용은 모두 무책임한 일이니까요. 왠지 정상회담의 누군가가 떠오르는데 그 장면은 너무 익숙하고 그만큼 그런 자리에서는 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기에 아직도 소화가 덜 되었답니다…
저는 늘 어제보다 뭐라도 나은 사람이, 내년엔 올해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 시절에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보다 최근에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냉탕 온탕을 오락가락 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냥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을 때로는 닮고 때로는 피하면서,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면 ‘이쯤 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까요? 더 많은 매력을 매력적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걸 내년 목표로 삼아볼까봐요.


오늘은 자랑할 일도 있습니다. 구독자 100명이 넘으면 넣을 거라고 했던 메인 이미지! 드디어 생겼죠. 대학 때부터 같은 동아리 친구들의 말도 안 되는 요청과 떼(?)를 다 들어주던 친구가 작업해줬어요. 처음 만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안 변했습니다. 제가 대충 느낌적인 느낌을 말하면 친구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상상도 못한 결과물을 내어주는 모습이 그렇죠. 한편 우리는 꽤 많이 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충분친 않지만 그래도 나름의 작업료를 지불할 수 있는 직장인이 되었고 친구는 예쁜 눈썹과 선한(’착한’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눈동자를 쏙 빼닮은 아기까지 낳았으니까요. 
이 이미지는 무려 4가지의 베리에이션으로 제작되었는데요. 그날의 글에 맞추어 골고루 사용할 예정입니다. 옷 골라 입는 건 너무 귀찮은데 메인 이미지 고르는 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여러분도 예쁜 이미지 많이 칭찬해주세요.  
쏘영, 킹받는 발주 및 피드백 견뎌내고 멋진 작품 만들어줘서 고마워>.<
  
이민해
allthatliberty@gmail.com
서울 02-6461-4143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