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리더십’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팀장을 맡은 이후였던 것 같아요. 당연하지만 학교 다닐 때 반장 좀 해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은 준비도 예고도 없이 닥치는 걸요. 아무튼, 그때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같은 건 정말 없구나. ‘동정 리더십’이라도 발휘할 수 있으면 진짜 다행이구나…
‘동정 리더십’이라는 웃긴 말로 부르긴 했지만 그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점에서 그리 틀리지 않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을 도와주고 싶고, 이 사람이 잘 되었으면, 행복했으면, 우리가 함께 멋진 일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일을 하나라도 더 되도록 만드는 거니까요. 어느 수준 이상의 인성과 실력을 갖추었다고 할 때 그 뒤의 리더십은 곧 매력 싸움이 아닐까 싶을 정도죠. 코에이 삼국지에서도 매력이 엄청 중요한 스탯이지 않습니까.
요즘 다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현 대통령입니다. 한번도 대통령을 좋아하거나 응원해본 적은 없지만 (사실 늘 싫어하는 편이었죠) 이번 대통령은 정말 신기해요. 사람이 어쩜 저렇게 매력이 없지? 국민을 죽이고 괴롭히고 탄압했던 이전 대통령들도 전부 악마같은 매력은 있어서 ‘까’에 못지 않은 ‘빠’를 몰고 다녔는데, 이번 대통령은 그런 매력조차 없어 보입니다. 사람이 정말 멋대가리가 없고 전혀 따르고 싶지 않은 무색무취무미의 느낌이 흐르죠. 어느 때보다 영부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데에도 이 영향이 없지 않을 거라고 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대통령 욕이 되어버렸는데요, 정치에 대한 비판도 아니고 무턱대고 ‘사람이 매력이 없어’ 이러는 게 참 부당하기는 합니다. 게다가 매력은 굉장히 불공평한 자원이라고 알려져 있죠. 누군가는 그냥 태어날 때부터 양손에 잔뜩 쥐고 있잖아요. 같은 장난을 쳐도 어떤 어린이는 ‘으이구~’ 하는 작은 타박으로 넘길 수 있는 반면 어떤 어린이는 경을 치게 됩니다. 매력은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는 걸 아주 어릴 때부터 깨닫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죠.
매력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입니다. ‘매혹할 매(魅)’ 자를 쓰는 데 이 글자는 ‘도깨비 매’ 자이기도 해요. 매혹하고, 홀리고, 한마디로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 이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라는 뜻이겠죠. 결국 상대방을 웃게 만들고 무장해제 시키는 힘, 이성과 합리로는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어떤 마법 같은 능력으로 느껴지네요. 사소한 장난으로 경을 친 어린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매력이야말로 노력을 통해 차근차근 쌓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력, 통솔력, 무력 같은 것들보다 훨씬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거나 어떤 이득을 준다-줄 것이다-라고 믿게 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건 인간이라는 종이 생겨났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던 사실이겠죠.
다시 돌아가서, 그러므로, 최소한 20대 중반,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할 정도의 시점엔 자신의 매력에 대해 남탓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40살이 넘어가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처럼 어른인 우리는 자신의 매력에도 책임이 있어요. 어린이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혼쭐이 났지만 이제는 주저앉아서 불공평하다는 불평만 하고 있으면 안 될 거라는 말입니다. 매력은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이고, 그래서 ‘매력 없다’는 말은 불공평한 만큼 잔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함께하되 의존하지 않고, 배려하고, 많이 웃으면 그게 곧 매력이 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진짜 매력있는 사람은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인생의 아이러니죠. 함께는 안온하고 혼자는 쓸쓸하지만, 그래서 혼자는 강하고 매력적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후천적 매력은 지독한 혼자의 시간을 거쳐온 사람만 얻을 수 있는 훈장일 겁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매력이 있습니다. 카리스마도 매력의 일종이고(코에이 삼국지에서 한때 ‘매력’을 ‘카리스마’로 표기했듯이^^) 귀여움도 아주 강력한 매력의 일종이죠. 사람들은 언제나 이 수많은 종류의 매력을 찾고, 갖고 싶어하고, 사랑해요. 다들 외롭고 힘든가봐요. 편안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뭔가가 필요하고요. 매력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언제일까요? 누군가 그 힘을 기꺼이 남을 위해 사용할 때일 겁니다. 카리스마로 더 큰 연대를 이끌 때, 귀여움으로 어두운 곳을 비출 때, 삶에 절실하게 따뜻함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때. 그래서 큰 권력을 지닌 사람에게 매력이 없거나 큰 매력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이상하게 낭비하면 재앙이 벌어지나봐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외면과 남용은 모두 무책임한 일이니까요. 왠지 정상회담의 누군가가 떠오르는데 그 장면은 너무 익숙하고 그만큼 그런 자리에서는 볼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기에 아직도 소화가 덜 되었답니다…
저는 늘 어제보다 뭐라도 나은 사람이, 내년엔 올해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한 시절에는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보다 최근에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냉탕 온탕을 오락가락 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냥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을 때로는 닮고 때로는 피하면서,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면 ‘이쯤 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까요? 더 많은 매력을 매력적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걸 내년 목표로 삼아볼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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