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사랑하는 세랑 님, 안녕하세요? 오늘로 벌써 네 번째 편지! 이전 편지는 모두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편지의 주인공은 마치 헤르미온느의 모래 시계를 가진 것 같았죠! 작가, 번역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정소연 작가의 편지에 보내 주신 마음들을 살짝 소개할게요. 💬 [그래도 한다] "긴 망설임이 그래도 한다! 라는 다짐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니. 저는 여태 미루고 망설이는 삶만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래도 한다!' 를 해야겠어요. 얼마나 멋진 걸 얻게 될까요?" "'결과를 알지만 그럼에도 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 정말 좋아해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절 속절없이 무너트리고 울게 만드는데요. '머뭇거리지만, 그래도 하는 것.'
머뭇거리지만 그래도 한다는 건 용기있는 행동이라서 전 그런 이야기들을 사랑한 거 같아요." 작가의 인터뷰가 감동적인 만큼 독자의 응수도 그에 못지 않아요! 😭 말과 글을 통해 누군가와 이어진다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요? 솔직하고 소중한 마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순간들을 이 편지, 그리고 책으로 나올 인터뷰집에서 더 많이 만나게 되실 거라고 믿어요. 💬 [눌린 자국이 있는 우리들이] "정소연 작가님의 여성 캐릭터에 대한 단락이 특히 좋았습니다..♥" "눌린 자국이 있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이겨내고, 서로를 응원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여성 인물을 만들 때면 어떻게든 눌린 자국이 있다는 말에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해 주셨어요. 이 자국은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모아 이 억누르는 힘에 맞설 수 있게 하는 증표이기도 하지요! 💪 오늘 편지의 주인공 작가님은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많죠. 재난과 슬픔 속에서도 귀여움과 유머를 잃지 않는 세계를 따뜻하게 그리는 작가, 정세랑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곧 나올 인터뷰집 단행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 최근 드라마 작업을 맡으셨다는 기사를 봤어요. 『보건교사 안은영』도 넷플릭스에서 드라마가 되었죠. 각본을 맡으셨고요. 드라마 등 협업을 할 때는 혼자 쓸 때와 어떻게 다른가요? 협업은 끝없는 회의로 이루어져 있어요. 팬데믹 이후로 온라인 회의를 매주 했던 것 같아요. 소설만큼 모든 디테일을 제가 결정할 수는 없지만 외부의 아이디어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줄 때 찾아오는 상쾌함도 분명 있습니다. 덕분에 소설에 대화 부분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원래도 대화 부분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더더욱 늘었습니다. 인물들의 구체적인 동선에 대해서도 계속 떠올리게 되고요. 소설이 영상물에 스며들고 영상물이 소설에 스며들어서 자꾸 섞이는 중인데 몇 년 더 지나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 글쓰기에 번아웃되지 않기, 또는 계속해서 쓰기 위해 주의하는 점이 있나요? 갑작스러운 기획에는 되도록 합류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근사하고 신선한 기획이라도 단기간에 진행되는 일들은 결국 무리가 되더라고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천천히 논의하며 제 리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일들이 좋아요. 💭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걸러 내려면 자기 확신도 꽤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라는 직업은 어느 정도 책이 나오기 전에는 확신이나 인정을 얻기가 쉽지 않고요. 일 년에 단 한 편의 좋은 단편을 써도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길이가 짧든 길든 완성의 경험을 한 사람은 다 작가라고 여기고 있어요. 주변의 인정과 경제적 자립에 작가의 정체성을 연결시켜 버리면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책이 나와도 대단한 보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가벼이 평가해 버리니, 다른 사람의 인정 같은 것은 애초에 신경 쓰는 범위 바깥으로 밀어내 버리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제 경우도 겨우 몇 년 전에야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라는 걸 인정받은 것 같아요. 오래 걸렸고 주변의 인정을 받기 전에는 마음 상할 일이 많았어요. 마음이 덜 상하려면 방점을 두어야 할 곳은 완성의 경험 그 자체인 듯해요. 어떤 이야기가 나를 완전히 통과했고 끝났다는 느낌요. "제 리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일들이 좋아요." 💭 어떤 시점에 글이 ‘끝났다’고 느끼나요? 요철 없이 읽힐 때, 혹은 적당한 요철만이 남아 있을 때요. 처음에 단편을 투고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끝냈다는 감각을 느꼈어요. '이제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 하고 봉투에 넣으면서요. 그런데 그 완성의 감각 자체도 시간이 지나면 또 희미해지는 것은 같습니다. 책이 나올 때는 완성되었다 싶은데, 몇 년 지나면 생각이 달라져서 고치고 싶어지니까요. 그럴 때 개정판을 만들 기회가 오면 기쁩니다. 수정을 자주 하지만, 작품의 주제 자체는 시간이 지나도 늘 유효한 것 같아요. 답을 찾기 어려워 오래 곱씹는 질문에 관해 쓰기 때문에, 표현은 바꾸고 싶어도 뼈대를 바꾸고 싶을 때는 잘 없습니다. 다른 작가분들 책을 읽을 때도 집요하게 오랜 주제를 파고드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한 주제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쓰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고집 세고 끈질긴 사람들이 글을 쓰게 되는구나.' 감탄해요. 💭 세랑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어떤 모습인가요? 언제나 단어를 천천히 고르는 온화한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온화함을 미지근하다고 저평가하지만, 격한 감정으로 쉽게 치우치는 시대에 온화한 사람들이 귀하지 않나 생각해요. 말하기보다 읽기와 쓰기가 편한 분들일 거라고도 상상해요. 저도 순발력이 좋지 않아서 말을 두서없이 하는 편인데, 읽기와 쓰기에서 안정을 찾아요. 비슷한 성향의 분들이 많이 읽고 많이 쓰시면 좋겠어요. "디스토피아를 쓰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원치 않기에 쓴다고 생각해요." 💭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셨는데, 작품에 어떤 영향이 있는 것 같나요? 사람들이 어떤 어려운 순간에 기대보다 굉장히 빛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확신이 있어요. 역사에 기록되어 있으니까요. 끔찍한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인간성을 보여 준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다.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애정도 있어요. 간혹 인류를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하게 그린다는 오해를 받곤 하는데, 문명의 방향을 비판하는 것이지 인류 자체를 불신하지는 않습니다. 디스토피아 소설을 여러 번 써서 오해를 받는 걸까요? 기본적으로 저는 디스토피아를 쓰는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원치 않기에 쓴다고 생각해요. 보통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쓰지 않나 짐작해봅니다. 저는 디스토피아에서도 삶의 방식이 계속되는 느낌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상황이 크게 바뀌어도 인류의 한 측면이 계속되면 좋겠어요. 인류는 매우 좋은 관찰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만큼 왕성하게 알고 싶어 하고 관찰하고 싶어 하는 종도 또 없지 않나요? 물론 모두가 항상 그렇진 않고, 파괴적인 면도 많죠. 인류의 양면성을 계속 생각하게 돼요.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고,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요. 누구는 처음 발견된 개구리를 보존하고 싶어 하고 누구는 습지를 밀어버리고 싶어 하죠. 늘 양쪽이 다 있다는 걸 알아요. 끝내는 관찰하고 사랑하는 쪽이 더 강해졌으면 좋겠어요. 한쪽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써요. 요즘 과학자분들을 만날 일이 많은데 생명을 아끼는 사람들끼리의 표정이 닮아 있더라고요. 확산하는 사랑은 있는데 비대한 욕망은 없는, 그런 맑은 얼굴이 인류 전체의 얼굴이면 좋겠다고 바라게 됩니다. 픽션의 세계에서라도 주인공의 자리를 자꾸 주고 싶어져요. 💭 스스로 기이한 이야기를 쓴다고 하셨어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 원인이나 과정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재인, 재욱, 재훈』의 초능력은 그냥 생기죠. 편지의 정체도 알 수 없고요. 『덧니가 보고 싶어』에서도 용기의 몸에는 그냥 문장이 생기고요. 『보건교사 안은영』의 은영의 능력도 이유가 없습니다. 생략을 좋아합니다. 이 텍스트 위의 세계에서는 그렇다고 하자, 하고 약속하고 나면 그렇게 되는 것들이 늘 신나요. 보드게임의 규칙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재인, 재욱, 재훈』의 초능력 관련된 부분도 일부러 생략한 부분이죠. 누가 초능력을 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그걸 모르는 쪽이 주제에 적합해 보였어요. 인물이 자기 역할을 스스로 파악하고 의지대로 움직이려면요. 독자분들이 그 생략에 동의해 주셔서 좋더라고요.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어떤 일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누가 친절히 설명해 주는 일은 잘 없지 않나요? 그냥 세계에 던져져서 모호함 속에서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죠. 세계를 잘 모르고 확신도 없지만 어쨌든 이렇게 행동할 거야, 하고 움직이는 인물을 좋아해서요. 💭 어쩌면 이유를 몰라도 다음으로 가는 것이 여행자의 마음가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삶을 모험하는 주인공이고요. 고전적인 판타지 구조에서는 고향으로 돌아와야 하잖아요. 혹은 SF와 판타지를 구분할 때, 돌아오는 이야기인지 가 버리는 이야기인지 나누기도 하죠. 세랑 님 소설에는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다른 세계로 훌쩍 떠나는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가 버리는 쪽의 이야기 같아요. 네, 돌아오는 이야기를 좋아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네요.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이 커서일까요? 성큼성큼 가 버리는 쪽이 재미있습니다. 다른 세계로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항상 쓰고 싶어요. 어느 쪽이 낫거나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라, 타고난 취향입니다. 어릴 때 읽었던 책에서도 모험을 떠났던 주인공들이 굳이 돌아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새로운 세계에서 그냥 살아 버렸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네버랜드에 살고, 나니아에 살고, 신선들이 복숭아를 주면 그냥 눌러앉아 버리고, 엘프들이랑 배를 타고 가버리면 좋겠다고요. 이사는 많이 다녔지만 아주 멀리 떠나보지는 않은 사람인데 그런 충동은 어디에서 올까요? 좀 더 파고들어 봐야겠네요. 어쨌든 완전히 떠나 버리거나, 공간적으로는 그대로 위치하더라도 본질은 바뀌어 버리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외계인이랑 연애하는 SF 읽어 봤어?💕 “바보 같다고 생각 안 해. 한 번도 너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넌 같은 자리에 있는 걸 지키고 싶어하는 거잖아.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난 너처럼 저탄소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거 알아? 내가 너한테 반하는 바람에, 우리 별 전체가 네 꿈을 꿨던 거?" 💬 휴, 너무도 로맨틱한 이런 사랑 고백을 받는다면...... 지구인이 아닌들 어떠하랴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 지구를 정말 사랑하는 지구인 한아와 그 지구인을 정말로 사랑하는 외계 생물(?) 경민의 사랑 이야기 『지구에서 한아뿐』입니다. SF가 딱딱하다고만 생각했던 분들에게 'SF 로맨스'라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 드려요! '환생'이라는 이름의 작은 의류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아. 그에게는 11년을 사귄 경민이라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소위 자유로운 영혼인 경민은 이번에도 캐나다로 유성우를 보러 간다고 훌쩍 떠나고, 하필 그곳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뉴스에도 연락이 되지 않네요. 다행히 무사한 모습으로 돌아온 경민.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언제나 한아를 서운하게 하던 태도가 싹 사라지고,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한아에게 집중합니다. 처음에는 기뻤던 한아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급기야 국정원에 남자친구를 신고하게 되는데요...... 정세랑 작가가 스물여섯 살에 썼던 이 장편 소설이 2019년, 십 년만의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정세랑 월드의 주요 기둥인 연애와 환경을 절묘하게 SF로 풀어낸 이 사랑스러운 작품을 꼭 만나 보세요! 💘 『지구에서 한아뿐』 (난다, 2019) 오늘의 편지는 어떠셨어요? 의견을 알려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