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DSM을 말하다

추적단불꽃이 지속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지금’을 조명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지금]

모든 성범죄 피해자는 지원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범죄 피해자를 탓하는 시선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피해를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 운동이 여성 인권 신장 운동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 고발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성폭력 피해자 중 특히나 고발이 어려운 피해자는 바로 ‘BDSM’ 성향자다. BDSM은 지배와 복종, 가학과 피학 등 성적 성향을 말한다. BDSM은 한국 사회에서 소수 변태 문화, 혹은 음지의 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는 지난 2년간 성범죄 피해자에게 묶인 ‘피해자다움’이란 족쇄를 끊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BDSM 성향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고발조차 어려운 현실에 놓인 이유와 구조를 추적했다. 본 기사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성범죄 피해자는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한다.

BDSM이란?

BDSM 본디지(Bondage), 훈육(Discipline), 지배(Dominance), 복종(Submission), 사디즘(Sadism), 마조히즘(Masochism)

이해를 돕는 사진. ⓒ 추적단불꽃

BDSM은 본디지(Bondage), 훈육(Discipline), 지배(Dominance), 복종(Submission), 사디즘(Sadism), 마조히즘(Masochism)의 약자다. BDSM 성향에는 가학-피학을 즐기는 성향, 구속-속박을 즐기는 성향, 스팽킹을 즐기는 성향 등 다양한 성향이 존재한다. 비디에세머들이 BDSM 행위를 하는 것을 ‘플레이한다’라고 표현하는데, BDSM 플레이를 하기 전 서로가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플레이의 기본이다. BDSM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건 바로 SSC(Safe, Sane, Consensual, 안전한, 제정신의, 상호합의)다. 플레이에 앞서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세이프 워드’(Safe Word) 혹은 ‘세이프 시그널’(Safe Signal)이다. 이것은 BDSM 플레이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경고 신호다. 그러나 세이프 워드와 세이프 시그널 설정이 안전한 BDSM 플레이를 100%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플레이어가 세이프 워드를 뱉을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세이프 시그널을 줄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어, 상대의 상태를 지속해서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음지에서 다뤄지는 BDSM

지난해 8월,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나다움 어린이 책 교육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정된 몇 도서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책에서 성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학생들의 ‘조기 성애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이었다. 해당 사업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개선하고자 만들어진 사업이었지만, 논란이 된 지 이틀 만에 여성가족부에서는 지적된 책을 전량 회수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렇듯 보편적 성에서도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BDSM은 차마 입 밖에 꺼낼 수조차 없는 이슈다. 그렇기에 이 관계 안에서 벌어진 성폭력은 고발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 BDSM 관계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연락을 종종 받았지만,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공론화에 있어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슈가 음지에 있으면 있을수록, 피해자는 피해를 고발하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여 우리는 국내 비디에세머(성향자)들이 놓인 폭력의 실태와 그 실체를 파헤치기로 했다.

그러나 BDSM에 대한 이해도를 쌓기 위한 정보를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국내에서 BDSM을 다룬 서적이나 논문 등 정제된 정보는 찾기 어려웠고, 종류 역시 많지 않았다. BDSM 성향에 이제 막 눈을 뜬 입문 비디에세머들과, BDSM이 궁금한 이들 대부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무분별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BDSM 안에서 성폭력이 발생할 때

우리는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 외에, 최근에 번역된 BDSM 관련 책인 클라리스 쏜의 <S&M페미니스트>를 찾을 수 있었다. 국내 포털사이트에 ‘SM’, ‘BDSM’, 등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유일무이한 책이었다. BDSM 성향자이자 책의 저자 클라리스 쏜은 BDSM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5가지로 요약했다. “SM은 사악하다, 비정상적이다, 정신적이거나 감정적인 불안정의 증후다, 원래 폭력적이다, 반페미니즘적이다” 저자는 이런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어 BDSM 관계 속에서 학대받은 사람들은 특히 고발하기를 꺼린다고 설명한다. 책에서는 “한 여성이 강간을 고발하려 할때 합의 하에 뺨을 맞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보라”를 예시로 들었다.

우리는 BDSM을 경험한, 혹은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증언이 필요했다. 그들이 직접 느낀, 사회가 바라보는 BDSM은 어떠한지 듣고자 함이었다. 우리는 트위터를 통해 인터뷰에 참여할 참가자를 모집했다. 각자가 경험한 피해는 달랐지만, BDSM과 연관된 피해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시 연인이 BDSM에 흥미가 있었다는 A씨, 그는 성적으로 연인을 맞춰주기 위해 관련 커뮤니티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A씨는 성향자가 아닌 터라 BDSM 플레이에 두려움만 느낄 뿐이었다. 어느 날 A씨는, 낯선 이로부터 자신의 애인이 그의 집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애인은 A씨에게 낯선 이와 함께, 셋이 플레이하자고 말했다. A씨는 모멸감과 패배감을 느끼면서도, 애인의 취향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강박으로 원하지 않은 플레이를 해야 했다. 오래된 일이지만, A씨에게는 아직도 그 사건이 큰 상처로 남아있다.

B씨는 BDSM 성향자로, 트위터에서 만난 이와 플레이를 진행했다. 그러나 B씨의 상대는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행위를 하며 플레이 내내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B씨는 그에게 싫다고 말하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게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피해자 모두, 외부에 자신의 피해를 알릴 수 없었다.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이란 사회의 인식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피해를 입었고, 현재도 그 상처가 있다. 이들이 BDSM 성향자이든 아니든, 또 BDSM 행위 자체를 했든 하지 않았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한 건 피해자가 ‘성향자’라는 이유로, 혹은 플레이를 했다는 이유로 성폭력을 고발하기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쉐리 슬릭 박사(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는 BDSM 관계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수사관들 자체가 BDSM과 폭력의 차이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피해를 입더라도 BDSM을 이해하지 못하는 수사관들에 의해 그저 이례적이고 혼란스러운 성행위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관계 내에서 합의를 어기는 것 자체를 범죄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BDSM 커뮤니티의 폭력 피해자가 쉽게 범죄를 신고할 수 있도록 경찰 수사관들 역시 BDSM 관계와 폭력의 차이점에 대해 교육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취약한 성향자

비디에세머는 불법 촬영 범죄에 더 취약하다. BDSM 플레이 중에는 상대의 눈을 가리고 하는 플레이도 있어 상대가 나를 찍는지 확인할 수 없는 때도 있다. 또한 주종관계의 경우, 합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로 주인이 시키는 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발생하는 불법 촬영도 있다. 이렇게 촬영된 피해물은 피해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포되기도 한다. 플레이 중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일을 겪은 순간, 피해자가 발생한다. 피해를 입으면 그에 합당한 국가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성향자의 위치에서 피해를 고발하기엔 여전히 BDSM을 인식하는 사회의 벽이 너무 높았다.

BDSM 문화가 음지화된 결과, 애초에 연인관계가 아닌 상대를 구할 땐 인터넷 카페나 SNS 등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상대가 안전한 사람인지 완벽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고 만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인터뷰한 피해자 중에도, 온라인에서 만난 BDSM 관계 내에서 불법 촬영 및 비동의 유포 피해를 본 이가 2명이나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은 미성년자 피해자 C씨다. C씨는 트위터에서 만난 이와의 플레이 이후,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았다. “혹시 박**씨 아세요? 그 사람이 불법으로 A씨랑 성관계 영상을 찍은 것 같은데 경찰서 한 번 오셔서 확인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C씨는 전화를 받는 순간 철렁했다. 경찰의 입에서 나온 피의자 이름이 트위터를 통해 만났던 낯선 이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는 초소형 불법 카메라를 집안 곳곳에 설치해 플레이를 촬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해당 사건은 박 모 씨와 만난 다른 사람이 그의 집 안에서 불법 초소형 카메라를 발견, 이를 신고하면서 그의 범행이 발각된 것이다. 심지어 트위터에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할 때 그는 본인을 30대라고 소개했지만, 알고 보니 40대였다. 경찰이 피해물 유포는 안 됐다고 말했지만, C씨는 여전히 유포될까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경찰의 연락을 받을 때까지 불법 촬영 사실을 몰랐던 C씨와는 다르게, D씨는 관계 내에서 불법 촬영물로 지속적인 협박을 받았다. D씨는 “그때는 합의를 한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저 심리적 지배에 의한 강압적 관계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D씨가 플레이를 거부하면 신상을 가지고 협박하며, SNS를 통해 주변 지인들에게 불법 촬영물을 뿌리겠다는 협박을 일삼았다고 한다. 온라인상에서 만난 낯선 이의 협박은 D씨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피해 이후 수년이 흘렀음에도, D씨는 지금도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 7월에도, 성향자이면서 피해를 입은 이의 연락을 받았다. 디지털 성범죄를 겪었지만, 성향자라 어디 밝히기도 힘들다며 우리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피해자는 불법 촬영을 비롯한 폭행, 협박 등을 겪은 상태였다. 우리는 피해자에게 법률지원을 비롯한 심리 및 의료지원을 안내했다. 불법 촬영은 누구에게나 괴롭고 끔찍한 피해지만, BDSM 성향자에게 있어 불법 촬영과 비동의 유포는 더 잔혹하다. 불법 촬영된 성관계 영상에 그간 숨겨 왔던 본인의 성적 지향까지 타인에게 유포되기 때문이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