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떻게 '졸속 군대'로 세계 최강 영국군을 무찔렀을까?
홍자병법 No. 99

조지 워싱턴이 '오합지졸' 군대로 독립을 이뤄낸 3가지 비결
 
우리 군대의 군기 부족은 심각합니다. 언제 우리를 공격할지 모르는 적 앞에서 이 군대를 새롭게 조련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고 또 위험합니다.”
 
나의 능력과 군사적 경험으로 이 중요하고도 광범위한 신임에 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77572, 미국 대륙회의로부터 총사령관으로 임명받아 처음으로 대륙군(미국 독립군)과 영국군이 맞서 싸우고 있는 전장에 도착한 조지 워싱턴이 부대를 둘러본 지 일주일 만에 대륙회의 의원인 리처드 헨리 리에게 보낸 편지 속에 담겨있는 절망 섞인 문장입니다.
 
조지 워싱턴, 역사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분이더라도 그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미국, 그리고 세계 역사상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실 텐데요.
 
1732년 버지니아주의 평범한 농장주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토지 측량사로 일하면서 토지 투자로 부를 이뤘고 이후 프렌치 인디언 전쟁’(오하이오강 주변의 영토를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에 영국 측 민병대 지휘관으로 참전합니다.
 
민병대장직을 사임한 1758년 이후에는 지금으로 치면 재벌집 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여성과의 결혼으로 미국 최고의 갑부 중 한 명으로 거듭나죠

(300명이 넘는 노예와 17000 에이커의 토지를 소유했던 여성과의 결혼이었지만 정략결혼은 아니었고 결혼 생활도 원만했습니다.)

1758년부터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774년까지 이 16년의 기간 동안 그는 자신의 부와 명성을 바탕으로 치안판사버지니아 주의회 의원을 지냈습니다.

역사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이 시기의 워싱턴은 중요한 문제들을 다룰 때 그의 의견이 존중되기는 하지만그 스스로가 의정을 이끄는 지도자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언제나 관대한 태도로 자신의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사익이 아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게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였죠

그리고 이런 평가와 버지니아 민병대장으로서 수년간 군을 지휘한 경험 덕분에 그는 미국 13개 주가 독립을 위해 결성한 대륙회의로부터 신생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받게 됩니다

서로 독립적인 여러 개의 주들이 모여서 만든 일종의 연합군인만큼 원만한 성격과 공정한 태도야말로 군사적 역량만큼이나 요구되는 자질이었기 때문이었죠.
 
나를 이 일에 복무하도록 한 것이 일종의 운명이었다면, 나의 임무 수행이 어떤 좋은 목적에 봉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총사령관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은 워싱턴이 남긴 말인데요. 하지만 그는 얼마 안 가 절망을 맛보게 됩니다. 미국 보스턴 인근 케임브리지에서 그저 처음 마주친 그의 부대는 군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떨쳐 일어난 독립군이라고 하면 비록 무장과 보급은 변변치 못 하지만 투지와 사기만큼은 그 누구보다 높은바르고 강한 군대라는 이미지를 갖고 계실 거 같습니다

일제시대에 청산리와 봉오동에서 일본군과 맞서 승리를 이끌어낸 한국의 독립군처럼 말이죠.

하지만 워싱턴의 눈앞에 놓인 군대는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한 번도 군사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민간인들을 긁어모아 급조한 졸속 군대였기 때문이죠.
 
병사들은 입대 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로 행동하는 데다가 상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머릿속에 없었습니다이런 이들에게 오와 열을 맞춰 질서 정연하게 행진하는 걸 기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많은 수의 병사들이 총도 제대로 쏠 줄 몰랐고또 어떤 병사들은 아무 때나 자기 기분에 따라 공중에 총을 발사하기 일쑤였죠그냥 궁금해서 한번 쏴봤다는 이유로요.
 
총과 군복 자체를 지급받지 못해 맨몸으로 있는 인원들도 적지 않았을 정도로 보급도 엉망이었죠식량과 물자 보급의 부족은 8년 동안 그를 가장 괴롭힌 문제였고요.

워싱턴이 전선에 도착한 이후 내렸던 명령 중 하나가 병사들이 적과 잡담을 나누지 못하도록 하라였던 걸 보면 그 당시 대륙군의 상태가 어땠을지 쉽게 짐작이 되실 텐데요.  

그에 비해 그가 병사들을 이끌고 맞서 싸워야 하는 레드 코트’(붉은 군복 때문에 붙은 영국군의 별칭)는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였습니다직업 군인들로 이뤄진 영국군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전사들이었는데요.

3열 밀집대형으로 모여선 채 1, 2, 3열이 차례로 총을 발사한 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총검을 앞세워 달려 나가는 용맹한 모습 앞에서 유럽의 여러 강국들도 백여 년 동안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으니까요.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는 이름뿐인 군대와 세계 최강 레드코트의 대결승리의 여신은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영국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조지 워싱턴은 어떻게 이 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리고서 미국의 독립을 이뤄낼 수 있었던 걸까요지금부터는 조지 워싱턴이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미국의 독립을 이뤄낸 3가지 비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쟁자들과 비교해 언제나 적은 인력과 자원만으로 더 큰 성과를 내야만 하는 모든 분들께 큰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라고 자신합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버트 미들코프가 쓴 <미국인 이야기 123>에 담긴 내용들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최고의 지휘관은 보급을 먼저 생각한다

조지 워싱턴이 승리를 거머쥔 첫 번째 비결은 평범한 지휘관은 전투를 생각하지만 최고의 지휘관은 보급을 생각한다충분한 식량과 물자를 공급한 지휘관만이 병사들에게 규율과 용맹을 요구할 수 있다입니다. 

1778년 2월 6일 워싱턴은 자신의 일기장에 병사들이 굶어 죽고 있다고 적었습니다열흘 뒤인 2월 16일에는 그들이 기아’ 상태라고 말했고요총사령관의 말처럼 그의 군대는 병사들이 굶어 죽을 지경에까지 몰렸죠.
 
이때는 대륙군이 영국군과의 저먼타운 전투에서 패배하고 포지 계곡에 틀어박혀 재정비를 하던 기간이었는데요비단 이때뿐만이 아니라 식량 보급의 부족은 8년여의 전쟁 기간 동안 워싱턴과 그의 군대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문제였습니다.  

단일한 중앙 정부의 지휘를 받는 군대가 아니라 13개 주에서 파견한 대표들이 모여서 이뤄진 회의체인 대륙회의의 통솔을 받는 군대다보니 그만큼 보급 체계도 복잡했고행정 절차도 까다로웠습니다

이러다보니 대륙군의 보급 체계는 계속해서 엉망일 수밖에 없었죠.

다른 명장들과 마찬가지로 워싱턴은 군대에 있어서 보급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명확히 알고 있는 장수였습니다병사들에게 충분한 식량과 물자를 공급해줘야만 그들에게 규율과 투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가 1775년 처음으로 총사령관직에 오른 뒤 부하 장교들에게 내린 첫 번째 명령 중 하나가 빵이 쉬었고 맛이 없다는 병사들의 불만에 대해 조사하라는 것이었으니까요

워싱턴의 명령에 따라 장교들은 각각 자기 부대 병사들이 어떤 식사를 하고 있고어떤 환경에서 그 음식들이 조리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앞서 말한 포지 계곡의 기아 사태 때는 워싱턴 역시 최소량의 식사만을 하며 병사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려 했고요.

대륙회의 소속 식품부의 보급만을 기다릴 수 없었던 워싱턴은 직접 병사들을 보내 식량을 조달했습니다여기서 쓴 조달이란 표현은 군대가 민간인에게서 물품을 강제로 거두는 징발(徵發)과는 다른 의미인데요.
 
포지 계곡에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아는 대륙회의 의원들은 워싱턴에게 주변 민가들에서 식품을 징발하라고 권유했지만 워싱턴은 이를 거절합니다

자유와 독립을 위해 일어난 대륙군이 민간인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건 혁명의 원칙을 거스르는 일일 뿐 아니라 대륙군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끊어버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보급 담당 장교와 사병들을 포지 계곡에서 멀리 떨어진 뉴저지펜실베이니아델라웨어미국 남부주들로까지 보내 식량을 구입해오도록 합니다.

물론 그의 군대도 정말로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민간인들로부터 물자를 징발 혹은 압수하기는 했지만 이럴 때에도 약속 어음으로나마 값을 치르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렇듯 식량 보급을 위해 백방으로 뛴 노력 덕분에 포지 계곡에서 기아 상태에까지 몰렸던 그의 군대는 한 달여만에 다시 살이 오르기 시작합니.

부대의 열악한 환경이 군기 위반의 핵심적인 이유였다만약 병사들의 생활조건이 향상된다면 그들의 위법 행위는 대부분 근절될 수 있었다.”
 
그러나 식량과 의복의 보급이 충분치 못했으므로 범죄 행위가 충분히 억제되지 못했다.”
 
(로버트 미들코프 <미국인 이야기중에서)
 
포지 계곡에 머물던 워싱턴의 군대를 묘사한 역사책의 문장 속에서 강한 군대를 만들길 원한다면 지휘관은 먼저 병사들의 복지와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껏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의 병사들이 충분히 생활할 만한 환경을 마련해준 지휘관이야말로 비로소 병사들에게 규율과 투지를 갖출 것을 요구할 수 있는데요

조지 워싱턴은 병사들의 사소한 행동들을 바로잡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군대의 기강을 다잡아 갑니다

(분량 관계상 뉴스레터에는 IT/스타트업 전문 매체 <아웃스탠딩>에 기고했던 원고의 3분의 1가량만을 옮겨실었습니다. 조지 워싱턴의 다른 두 가지 원칙

둘째, 조직의 시스템은 사소한 원칙들을 준수하는 데서 시작한다. 건강한 조직을 만들고 싶다면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나가라
 
“셋째, 앞서 나가는 조직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때로는 조직의 기초를 다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외부 전문가의 조언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본문 중간의 사진이나 아래 본문 읽기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사소한 이야기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꽤나 오랜만에 뉴스레터로 찾아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바쁘더라도 일주일에 한 편씩은 보내드리는 게 목표였는데 최근 한 달 보름 동안은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그러질 못 했었네요.    

비록 작디작은 1인 기업이지만 사업체를 하나 운영하다 보니까 이런저런 해야 될 일, 신경 쓸 일들이 참 많네요.     

다행히도 최근엔 여기저기서 찾아주시는 클라이언트사들이 많아졌는데 핑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수주한 프로젝트들을 처리하는 게 1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보니 따로 책을 읽고, 이를 정리해서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었습니다.     

꽤나 바쁜 한 달 보름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이에 운동은 좀 열심히 했습니다. 어느 날 거울을 봤더니 살이 너무 찐 거 같아서 바로 그날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는데요. 

지난 2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두 달 정도 열심히 했더니 살을 10킬로그램 정도 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배에 매달고 다니던 지방으로 된 10킬로그램짜리 아령 하나를 떼어내고 나니 요즘은 일할 때도 운동할 때도 몸과 마음이 더 가볍고 상쾌하네요. 역시 체력이야말로 모든 일의 기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상대적으로 단기간 동안 살을 꽤나 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네 가지인데요.     
1. 시간이 날 때마다 복싱장에 가서 격렬하게 운동을 한다.      

대학생 때부터 복싱을 해왔기에 아무래도 처음 권투를 배우시는 분들보다는 더 격렬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편인데요. 확실히 복싱이 체중 감량에는 효과가 좋은 거 같습니다.      

2. 하루에 만 걸음 이상 걷고,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한다.     

꾸준한 걷기 역시 체중 감량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가급적 많이 걸어 다니려 노력했고요. 또 허벅지와 다리 근육 강화를 위해 위로 올라갈 때는 거의 계단을 이용했습니다. 저희 집도 8층이고 사무실도 8층인데 그동안 올라갈 때는 거의 대부분 걸어 다녔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는 건 무릎에 부담이 많이 되기 때문에 내려갈 때는 평소와 똑같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고요.     

3. 평소 먹던 양의 절반만 먹는다     

저의 복싱장 관장님이 세계 챔피언도 키워내셨던 트레이너 출신이신데 항상 하시는 말씀이 ‘다이어트는 운동이 30, 식단 조절이 70’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더라도 운동만으로는 살을 빼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요. 평소 먹던 양의 절반 정도만 먹으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니까 살이 금방 쑥쑥 빠지더라고요. 
     
대신 먹는 양 자체는 줄이더라도 근육량 유지를 위해서 소고기, 돼지고기 뒷다리살‧갈빗살, 우유, 계란 같은 단백질은 평소보다 더 자주, 많이 먹었습니다. 체중 감량을 한다고 너무 안 먹으면 근육도 많이 빠져버리기 때문이죠.     

4. 하루에 양파를 한, 두 개씩 먹는다     

저는 양파야말로 ‘신이 내린 식재료’라고 생각하는데요. 양파는 다른 데도 좋지만 특히 지방 분해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채소입니다. 예전에 MBC 신인왕을 했었던 제 친구도 대회를 앞두고 체중 감량 때는 양파를 꼭 챙겨 먹었었고요.      

생양파를 그냥 먹으면 너무 매워서 많이 먹을 수가 없어서 양파를 식초에 절인 양파 초절임을 만들어서 이걸로 양파를 하루에 한, 두 개씩 먹었습니다. 양파 껍질은 깨끗하게 씻어서 차로 끓여서 먹었고요. 양파껍질차 역시 지방 분해와 피부 미용에 매우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이 네 가지가 제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살을 뺄 수 있었던 이유인데요.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참고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지난 한 달 보름 동안은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는데 앞으로 다시 열심히, 자주 보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상쾌하고 청명한 봄날을 마음껏 만끽하시면서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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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 중에서는 금융투자업계 임직원 분들이나 기업체 콘텐츠 담당자 분들이 많으신 편인데요. 

회사 콘텐츠 채널을 통해 일반 독자 분들에게 회사가 취급하는 금융상품 등에 대해 쉽고, 정확하게 소개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번 글을 읽으시면 제가 어떤 경력을 쌓아왔고, 지금 저희 회사가 어떤 실적을 거두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한 창업을 준비하고 계신 분들께도 제가 이번 글에서 말씀드리는 내용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실 거 같습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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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대표
경제/금융 교육 스타트업 레드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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