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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도 좋아하는 앱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혹시 거대한 서체나 투박한 구성부터 생각나지 않으셨는지요. 어르신이 사용하기 쉬운 디자인은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읽기 쉬운 큰 글씨, 터치하기 쉬운 큰 버튼이 최선이라고 믿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UI 디자이너이자 컴퓨터 공학과 교수인 제프 존슨Jeff Johnson은 이런 생각은 업계 미신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물론 더 잘 보이고, 더 간단하게 구성된 디자인도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고령의 사용자가 경험하는 디지털 접근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이죠. 그 해답은 바로 멘탈 모델mental model의 차이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성혜, 미션잇 리서처

멘탈 모델, 기술을 이해하는 사고의 모형

멘탈 모델이란, 기기나 시스템의 작동방식에 관한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머릿속에 형성된 일종의 사고 모형입니다[1]. 멘탈 모델에 따라 처음 접하는 기기나 시스템이라도 작동 구조를 추측할 수 있고, 추측한 내용에 따라 결정을 내리며, 이를 행동으로 옮겨 기기나 시스템을 실행할 수 있죠[2]. 예를 들어볼게요[3]. 어느 웹사이트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무슨 일부터 하시나요? 비슷한 웹사이트를 이용했던 경험과 웹사이트의 기본 구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메뉴가 있을만한 위치를 추측하겠죠. 웹사이트의 모든 메뉴명을 하나씩 순서대로 읽는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또 원하는 메뉴를 찾았다면 어느 버튼을 선택해야 할지, 이것을 클릭하면 어떤 결과가 이어질지 어느 정도 예상한 상태로 메뉴를 실행합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의 머릿속에 저장된 멘탈 모델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 기술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디자이너와 사용자의 멘탈 모델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 Donald Norman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아날로그 세대의 멘탈 모델

제프 존슨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기고한 <고령자와 디지털 기술에 관한 오해Myths about digital technology and older adults>라는 글에 따르면 아날로그 세대 사용자는 디지털 세대와 서로 다른 멘탈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전자제품을 사용하며 자랐기 때문에 기술에 관한 이해와 경험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죠. 우리의 멘탈 모델은 보통 전두엽[4] 발달시기인 10세부터 25세까지[5] 형성되며 이 시기에 어떤 기술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멘탈 모델의 구조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두 멘탈 모델 간에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바로 탐색 단계에서 나타납니다. 현재 50세 이상인 사용자는 아날로그 카세트 플레이어, 터치 화면이 없는 유선 전화기 등을 사용하며 자랐습니다. 이런 제품의 인터페이스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디지털 시기 이전에 만들어진 제품에는 ‘탐색’의 개념이 없습니다. 모든 기능이 하나의 인터페이스 상에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기능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었죠. 또 기기의 버튼은 보통 기기의 상단이나 전면에 모여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인터페이스 안에서 ‘위치’의 개념도 따로 없었던 거죠.  


제프 존슨에 따르면 전자책도 고령자의 멘탈 모델과 일치하는 좋은 디자인이다. 목차, 내용 등이 물리적인 책과 유사하게 구성되어 별다른 탐색이 요구되지 않는다. 전자책 리더기 킨들Kindle 앱은 종이책 페이지를 넘기는 듯한 애니메이션 옵션도 제공한다.    

그에 비해 오늘날 디지털 기기와 앱, 웹사이트는 어떨까요?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 공간[6]을 사용자가 직접 탐색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상위 메뉴 안에 하위 메뉴가 숨겨져 있고, 하나의 인터페이스 대신 여러 개의 화면이 연속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죠. 내용이 많을 경우 스와이프 제스처를 이용해서 탐색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50세 이상 사용자의 멘탈 모델은 아날로그 인터페이스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멘탈 모델에 저장된 '탐색'이나 '위치'의 개념은 조금 다르죠. 예를 들어 아날로그 세대에게 익숙한 전자 제품은 전원버튼이 보통 기기의 후면이나 측면에 달려있습니다. 손으로 딸깍 누르면 켜지고 꺼졌죠. 하지만 아이폰 전원버튼은 어떤가요? 좌우 측면 버튼 두 개를 2-3초간 눌러야만 화면에 전원끄기 기능이 나타나고, 화면을 다시 손가락으로 밀어야만 전원을 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손으로 만져볼 수 없고, 한 번에 파악할 수도 없는 정보 공간이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생소할 수 밖에 없겠죠.


고령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앱 사용성 테스트를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테스트 진행자가 물었다. “지금 어디쯤 계세요?” 앱 메뉴 중 어디를 보고 있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사용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답했다. “어디긴 어디에요,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잖아요?"[7]



고령자가 선호하는 UI 디자인은, 고령자의 멘탈 모델과 일치하는 디자인입니다. 아날로그 세대에게 익숙한 전자제품 인터페이스를 차용한 디지털 기기, 탐색 과정을 최소화한 단일 화면의 앱 등이 있죠. 휴지통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물과 유사한 아이콘, 컴퓨터와 똑같은 방식으로 파일을 정리하고 저장할 수 있는 문서앱, 물리적인 책의 구성을 그대로 유지한 전자책 등도 바람직한 예시라고 합니다. 제프 존슨은 이런 디자인도 충분히 세련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고령자의 디지털 기술 사용 경험과 이들이 겪는 고충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어르신들이 눈이 잘 안 보이거나 소리가 잘 안 들리고, 새로운 내용을 학습하기 어려워한다는 사실만 다루고 있죠. 연령에 따른 멘탈 모델의 차이를 전제한 연구나 디자인은 보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현실과 연구 간의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멘탈 모델에 비해 신체기능상의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측정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제프 존슨은 말합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그동안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사용자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디까지 와있는지 다시한번 돌아봐야할 때입니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사람은 느리게 변합니다. 디자인의 기본 원칙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나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원칙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 돈 노만 -

“Technology may change rapidly, but people change slowly. The principals [of design] come from the understanding of people. They remain true forever.”

- Don Norman -

각주

[1] Johnson & Henderson. (2011). Conceptual models: Core to good design. Synthesis Lectures on Human-Centered Informatics, Vol. 4(2): 1-110.

[2] Nielson. <Mental Models>. Nielsen Norman Group.

[3] Harley. <What Is a Mental Model?>. Nielsen Norman Group. 

[4] 전두엽은 기억력과 사고력을 주관하고 각종 정보를 조정하여 문제해결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전두엽>

[5] Arain et al. (2013). Maturation of the adolescent brain. Neuropsychiatr Dis Treat, Vol. 9: 449–461.

[6] 정보망이나 각종 정보 기술의 복합적 결과의 발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공간. 표준대국어사전<정보 공간>

[7] Johnson. (2022). Myths about digital technology and older adults. Nature Aging, Vol. 2: 1073-1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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