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혼, 재혼을 위한 '혼전계약서' 우리도 가능할까? by 허미숙 변호사 헐리우드 배우들의 이혼, 최근 빌게이츠의 이혼 소식과 함께 언급되기도 하였듯이 미국에서는 부부 사이의 재산관계와 관련해 혼인 전 합의(prenuptial agreement), 즉 혼전계약서가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혼전계약서는 전통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재혼하는 사람들이 전혼에서 출생한 자녀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망 시의 상속관계, 이혼 시의 재산 문제를 규율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전계약서’가 우리도 가능할까요? 민법과 판례의 입장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민법에서 부부 사이의 재산관계를 어떻게 규율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의 재산관계는 부부가 계약으로 정하는 ‘부부재산계약’과 법이 규율하는 ‘법정부부재산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우리 민법은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면 법정부부재산제에 의하도록 하여 양자를 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부부 사이에 부부재산계약이 체결되는 예가 아직까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현행 민법은 제829조「부부재산의 약정과 그 변경」으로 혼인 전에 ‘부부재산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결혼 전 각자의 재산을 정하고, 관리하고, 등기를 해 부부의 승계인 또는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칠 뿐 미국의 ‘혼전계약서’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판례도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청구권은 이혼이 성립한 때 비로소 발생하고, 협의 또는 심판에 의하여 구체화되지 않은 재산분할청구권을 혼인이 해소되기 전에 미리 포기하는 것은 그 성질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고, 상속과 관련하여서도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고, 상속의 승인이나 포기는 상속개시 후에만 가능’하며, ‘민법에서 정한 방식에 의한 유언의 효력’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현행 민법 하에서 부부재산계약에 부부간의 생활수칙, 아이의 양육권, 상속, 이혼 시 재산분할청구권의 사전 포기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을 기재하더라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혼전계약서에 대한 관심의 증가 그러나 결혼 전 영끌, 빚투로 형성한 재산과 채무관계, 전통적인 급여·사업소득, 부동산 수입뿐만 아니라 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 유튜버, 인플루언서 활동으로 인한 수입 증가, 결혼이나 재혼 후 각자의 수입과 자산을 각자 관리하고자 하는 부부의 증가 등으로 ‘혼전계약서’의 관심 또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필자도 단순히 투잡이라 하기에는 주업과 부업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입을 얻고 있는 의뢰인, 재혼으로 복잡해지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의뢰인 등으로부터 ‘혼전계약서’ 자문을 의뢰받기도 하였습니다. 부부재산계약서 내용의 현실적인 한계 현행 민법은 부부재산계약의 방식과 내용에 관하여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부부재산계약서 또는 혼전계약서는 민법상의 기본원리, 혼인의 본질적 요소나 부부 평등의 원칙에 반하지 않아야 하고, 재산의 소유관계, 관리처분관계, 책임관계, 청산관계 등을 주된 내용으로, 판례에서 인정하고 있지 아니한 재산분할청구권의 사전 포기 등을 고려하여 관련 내용을 작성해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부부재산계약이 혼인 종료 후 법률관계를 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행 법리상 한계와 달리 부부재산계약 또는 혼전계약서를 작성하고자 하는 부부들의 가장 큰 관심은 부부재산계약이 혼인 종료 후 법률관계를 정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부부재산계약의 실제 사용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부부재산계약이 혼인 종료 후 법률관계를 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법원이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할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례의 입장은 부부재산계약 또는 혼전계약서 작성 사례가 늘어나고, 이에 대한 법원의 구체적 판단이 어느 정도 쌓인 후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결혼, 이혼, 재혼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혼전계약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고, 부부재산관계를 새롭게 규율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계약서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현실적인 내용들이 법률적 효력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