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크 탐험 일지
콩크 대원이 직접 공장, 본사에 방문해 제작 과정, 회사의 역사, 현장 뒷이야기 등을 취재해 소재와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심층 이해를 돕는 콘텐츠입니다. 

* 박찬용 작가요기레터를 오마주하여 제작했습니다.
Vol.03 PH우진

이번 탐사는 번의 방문에 걸쳐 이뤄졌다. PH우진은 시공자 대상으로 라임 플라스터 미장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타이밍 좋게 인터뷰 전에 주말 교육을 받아보지 않겠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PH우진의 작업장은 라이브러리에서 차를 타고 10 거리. 직접 바르다 보면 플라스터의 모든 것을 있지 않을까이건 가는 게 손해다, 하는 마음에 덥썩 가겠다고 했다. "플라스터 전문가로 거듭나 있을 다음 주의 저를 기대해 주세요!"라며 팀원들에게 호언장담하고 떠났지만... 시공자와 일반인의 차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도 이날의 수확이라면 수확일까?

수업은 PH우진 대표님이 보이는 시범을 봐두었다가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MDF 실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붓 대신 미장칼을, 물감 대신 라임 플라스터를 쓴다는 것만 빼면 디자인 입시학원을 다니는 것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다. 감탄과 존경의 마음 , ‘ 있는 거 맞아?’하는 의구심 반으로 선생님의 시범을 보는 것까지 말이다.

탐험 현황

일시 23년 첫째 달의 마지막 주말
장소 서울 염창동 아파트 단지 어딘가 지하작업장
획득샘플 플라스터 샘플 21개, 돌(?) 1개
현장상황 플라스터가 가득한 공간에서 플라스터 미장을 배우다

인생도 시공도, 중요한 타이밍

플라스터 시공은 하도 위로 2번에 걸쳐 플라스터를 올린 , 스펀지나 롤러로 패턴을 형성하고, 미장칼로 표면을 눌러 마감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그 후 용도에 따라 왁스 등의 표면 처리를 한. 제일 까다로운 순서는 패턴 위를 미장칼로 누를 때다. 플라스터는 계속해서 굳어가는 중이 때문이다. 타이밍이 늦으면 이미 굳어버린 표면에 자잘한 크랙이 가고, 이르면 애써 만든 패턴이 뭉개진다. 현장과 제품의 특성을 알고 미장칼로 살짝 눌러줄 때인지, 여러 힘을 주어 눌러줄 때인지 타이밍을 잡는 것을 보면 시공자의 숙련도를 짐작할 있다


초짜의 손에서 코뿔소 모양으로 무참히 뭉치고 떨어져 나가던 라임 플라스터는 대표님의 손에서 단단한 콘크리트 느낌이었다가, 색색의 유럽미장 패턴이었다가, 이내 사막의 사구 같은 형상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다가도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미장칼로 슥슥 표면을 밀어주니 찰흙 덩어리에 불과했던 패턴 위로 광택이 비쳤다. 망설임없이 미장칼을 문대는 대표님의 모습에 뒷자리 수강생이완전 아저씨인데.”하 작게 속삭였다.

수업에 사용된 라임 플라스터는 PH우진에서 유통하는 제품으로, 이들의 고향은 알프스산맥이다.

알프스산맥에서 강줄기에 떠내려온 아기 주먹만 한 석회석을 분쇄해 도자기 굽듯이 6일쯤 구우면 불순물과 이산화탄소가 모두 타서 없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물을 넣고 , 물을 빼고 2-3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에 넣었다가 말렸다가하는 과정만 18개월. 알프스산맥의 돌덩이가 천연의 라임 파우더로 변해 건축자재가 준비를 마친다. 재료의 강인함은 기나긴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렇게 얻은 라임 파우더는 유해한 화학물질이나 부산물을 포함하지 않는다.


플라스터하면 바르기 직전 꾸덕꾸덕한 페이스트(paste) 제품이 먼저 떠오르지만, 믹싱 이전의 파우더 형태로 나오는 제품도 있다. 대표님의 말에 의하면 PH우진은 국내 유일의 파우더 형태 플라스터 수입 업체다. 파우더형 제품은 빨리 굳어버려서 시공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지만 페이스트 형보다 견고하게 두께를 올릴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판매의 이유는 아니다. 현장에서 바로 물과 섞어 쓰는 파우더 제품만이 VOC 수치 0.01, 0.001 아닌 제로를 유지할 있기 때문이다. PH우진의 뚝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당신에게 영광의 시대는 언제인가요

아침부터 이어진 수업에 슬슬 집중력이 흐려지던 때였다. 쉬는 시간도 없이 수업을 진행하던 대표님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눈을 빛냈다. “저건 아주 재미있는 패턴이에요. 오늘 정말 새로운 패턴이 나왔네.” 학생이 스프레이로 플라스터 위에 물을 뿌려 이색적인 패턴을 만든 모양이었다. 십년 동안 일한 현장에서 시간째 설명을 반복하고 있는데도 저렇게 즐거운 표정을 지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날 아주 인상깊게 남았던 씬이다. (아쉽게도 어떤 패턴인지 보진 못했다. 학생이 같은 판 위에 뒤의 과정을 진행하면서 전의 작업이 지워져버렸다.)

1975 법학도였던 대표님은 생계를 위해 얻은 아르바이트에서 처음 건축자재를 만났다.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유창한 말발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그의 직장은 바로 특수 페인트 영업 아르바이트였다고 한다.


대표님의 첫 번째 타이밍은 알바로 시작했던 영업직에 10년을 근무했을 때 찾아왔다. 드라이비트와 특수 페인트를 유통하는 특약점을 냈던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건물이 올라가던 80년대였다. “5공 시절 때부터 납품했으니 굵직한 건물들에 전부 들어갔지. 80, 90 때는 매출이 어마어마했다고.” 여러 풍파에도 나름 순항하던 사업은 97 IMF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힌다. 거래처와의 정산문제가 쌓이면서 대표님은 말 그대로쫄딱망해버렸지만 좌절은 잠시였다. 당시 우진페인트 대리점을 운영 중이던 아우에게 합류하여, 눈여겨보던 라임 플라스터로 반등을 꿈꿨다. 그것이 대표님의 두 번째 타이밍이었다. 시간이 흘러 아우는 PH우진의 이사가, 형님은 대표가 되었다.

PH우진이 본격적으로 라임 플라스터 유통과 시공에 뛰어들었던 90년대 극 후반에서 00년대 초반은 국내에 아파트 고급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때다. 지금이야 호텔부터 힙한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사용되는 플라스터지만, 과거엔 고급 아파트의 외벽에 한정적인 색상과 패턴으로 쓰였다. 견고함과 친환경성이 가장 큰 무기였던 시절이다. 이때 주로 유통됐던 제품이 오돌오돌한 표면의 석재 뿜칠이다.


이제 라임 플라스터를 외부에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간이 흐르며 수입 자재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실내에 사용하기 시작하며 어느 표면이든 원하는 무드를 낼 수 있는 다양함과 손으로 내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는 실내마감재로서 사랑받고 있다. 플라스터가 지금처럼 다양한 패턴과 질감을 가지게 것은 공간 내부로 진입한 이후부터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디자이너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레이더를 바짝 세우고 있는 PH우진이다. 이사님의 말에 의하면 지금 디자이너들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스타일은 주거공간의 경우 아이보리나 화이트 색상의 트레버틴, 상공간의 경우엔 거칠고 자연스러운 인더스트리얼 패턴이다. 이런 요구에 맞춰 잔잔한 꺼슬함에 원하는 패턴과 색상을 커스텀할 있는 딜라바토 제품을 들여오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주문한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기존 제품들을 섞어보거나 패턴을 새로 개발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매끈한 돌에 미세한 구멍이 송송송 뚫려있는 질감이 매력적인 STA 라임 플라스터는 어느 디자이너가 가져왔던 해외의 암석을 라임 플라스터로 구현하려다 개발된 제품이다.

프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프로

좋은 시공업자를 만나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축복이다. 현장에서 맡은 바를 군더더기없이 완수하고, 이후에도 문제가 없는지 관심을 가져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할 것이다. 도면을 넘기고 나서는 애정과 시간을 들여 기획한 대로 결과가 나오길 노심초사 기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잊기 쉬운 사실은, 좋은 자재 유통업자와 시공업자라면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현장에 나선다는 것이. PH우진은 자재의 납품부터 현장에서 품질이 제대로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시집간 딸이 사는지 알고 싶은 애타는 마음으로끝의 끝까지 책임진다. 정확하게 제품 교육을 받은 시공자가 제품 시공에 임하게 하거나, 어느 현장에서든 기둥 면에 다른 느낌을 미리 내어 원하는 표현을 선택할 있도록 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대표님은 자재가 유행할 때마다 가품이 자리를 대체하는 모습을, 하자 있는 재료로 부실하게 시공했던 근대의 현장들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그러니 이유가 무엇이든 저품질 재료를 쓰는 것도, 공정하지 않은 시공도 질색이다. PH우진에게 라임 플라스터를 시공한다는 건 친환경성과 시공 이후의 미래까지 모두 생각하겠다는 약속이다라임 플라스터가 VOC 포름알데히드같은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천연소재라는 것은 35 동안 변하지 않는 대표님의 자부심이다.

PH우진에선 라임 플라스터 위에 바르는 액체 금속 제품도 다루고 있는데, 라임과 금속, - 자연 유래의 가지 소재를 모두 다루는 것이 대표님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4 전엔 야심 차게 자연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플라스터 수입을 추진했건만, 한국 시장에서의 유통 문제로 잠시 주춤하는 사이 코로나 사태가 겹쳐 중단되어버렸다. 길다면 길었던 시간이 지나고 마스크 없는 봄이 것이다. 대표님은 올해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플라스터 수입을 추진하려고 한다. 그간의 판매와 시공 경험으로 선택한 플라스터 역시 청정 지역의 원료로 만들어지는 제품이다. 갈망하던 목표를 이루고, 새로운 제품을 국내 시장에 내놓을 생각에 대표님의 마음엔 이미 봄바람이 일렁인다.

도전은 무한히

PH우진에선 자재뿐만 아니라 '패턴 롤러'도 판매하고 있다. 잠시 설명하자면, 플라스터에 패턴을 찍는 데에는 자수천을 이용한 스텐실 기법과 패턴 롤러로 미는 방법이 있다. 스텐실 기법의 경우 롤러 기법보다 세밀하게 패턴을 조정할 있는 대신, 자수천을 잡아가며 시공해야 한다. 옆에서 다른 시공자가 천을 세척하면서 이어붙여주어야 해서 최소 2 이상이 작업해야 한다. 숙련된 시공자에게도 난이도가 상당하다. 반면 롤러를 이용하면 초보자도 혼자서 어렵지 않게 다양한 패턴을 표현할 있다.


PH우진이 유통하는 패턴 롤러는 종류가 무려 300 가지다.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에 너무 많은 아니냐 물었더니, 시공자들이 와서 구경하다 보면 어떤 패턴을 만들어보고 싶다,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겠느냐 되묻는다. 목화씨를 들여오던 문익점도 이런 꿈을 꾸었을까?

PH우진의 샘플실에는 바르고, 말리고, 문지르며 보낸 세월에 비례하는 무수히 많은 샘플들이 저마다 뒤에 번호를 달고 켜켜이 쌓여 있었다. 누군가 먼지 쌓인 창고에서 십년 샘플을 발굴해 PH우진에 문의했을 때, 번호만 알려 준다면 당시의 색과 패턴을 똑같이 재현할 있다. MDF판 위에 소비자가 없는 이유로 나란히 정렬되어 있는 글자들 안에는 색소의 양과 자재의 재고가, 디자이너와 거쳤던 협의가, 연구에 매진해온 세월이 담겨있다. 이는 PH우진 직원들의 집념을 거쳐 크고 작은 현장 위에 현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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