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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스레브와 쉬린 <사진=위키피디아>
에코스 구독자님, 혹시 이런 화풍의 그림을 본 적 있으신가요? 그림을 본 느낌은 어떠셨나요?

그림을 잘 볼 줄 모르는 저는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그림은 마치 현실 세계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한 장면을 '순간포착'했다기 보다는 화가가 그리고 싶은 대상들을 한 종이 안에 다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이 그림은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을 말을 탄 남자가 훔쳐보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이슬람 문화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보통 훔쳐보는 사람을 그린다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풀숲에 숨어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는 장면을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말을 탄 남자가 목욕하고 있는 여성을 훔쳐본다기 보다는 대놓고 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맞습니다. 여기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 그림은 거리에 따라 그림의 크기를 조정하여 다르게 표현하는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요. 당시 오스만제국의 사람들은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으며, 오히려 원근법을 금기시하고 배척했습니다. 오스만시절 그려진 이 그림 역시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고요.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은 바로 서양 문화가 유입되던 오스만제국 시기, 궁정 화가들이 겪는 혼란을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답게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오스만제국의 예술, 생활양식, 가치관 등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책의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의 전개방식으로 낯선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 저는 이 책을 읽으실 여러분들을 위해 《내 이름은 빨강》 독서 가이드를 제공해드리려고 합니다.

① 등장인물 소개 👨‍👩‍👧‍👦

② 세밀화와 원근법 🎨

술탄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인 에니시테는 어느날 술탄의 명을 받아 밀서를 제작합니다. 밀서의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며 밀서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는 세밀화가 황새, 올리브, 나비조차도 자신이 그리는 그림이 어떻게 사용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죠. 그저, 에니시테의 요구에 따라 특정한 위치에 크게 또는 작게 그림을 그릴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비밀리에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이 밀서가 당시에는 금기시되던 서양 화풍인 ‘원근법'을 사용해 만들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스만제국 시절 화가들은 실제 대상을 똑같이 그려내기 보다는 장인들이 그린 그림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중요한 대상, 특히 위대한 지도자 술탄을 그릴때는 크게 그리는 것을 철칙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근법을 사용해서 실제 세계를 똑같이 묘사해내는 서양의 미술이 이슬람에 소개되었을 때 당시 이슬람 화가들은 굉장한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그림의 주인공이 원근법에 따라 작게 그려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밀서를 제작하던 인물 중 한 명이 사라지고 우물에서 주검으로 발견이 됩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살인범은 밀서가 원근법을 사용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밀서 제작에 참여하던 사람을 죽인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리고 곧이어 원근법을 사용하여 밀서를 그리도록 지시한 에니시테도 그 살인범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

원근법 하나로 인해 사람이 둘씩이나 죽다니… 오늘날에는 너무나 당연한 원근법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인 기법으로 다가왔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③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 'N인칭 시점' 👀

    이 소설은 매 장마다 이야기를 하는 화자가 바뀌고 그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래서 매 장의 소제목은 나는 ~입니다' 라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카라, 세큐레, 에니시테, 살인자, 황새, 올리브, 나비, 심지어 그들이 그린 그림인 개, 나무와 색깔들까지각 장의 화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관점으로 사건을 해석하고 이해합니다.

    서양 문학의 경우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요. 그러다보니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아니면 이야기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 마련이죠또 독자들은 글을 읽을때 철저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주인공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요. 그러다보니 가끔 이야기 속 조연들의 행동이 다소 이해가 안 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의 독특한 전개방식은마치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존재가 다 주인공이고 다 중요한 존재야’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각 인물들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그렇게 이야기 속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심지어 살인범도 자신의 입장에서 살인을 정당화하죠.
    <사진=yes24>
    에디터 총평: ★★★

    우리에게는 우주만큼이나 낯설게 느껴지는 이슬람 문화, 오스만 제국의 문화를 알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리해가는 과정에서 당시의 예술세계는 물론 결혼제도, 직업, 계급, 생활양식 등 오스만제국의 거의 모든 문화적 측면을 간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세밀화가들이 서양 화풍을 처음 접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요? 저는 이 책을 처음 읽을 때 굉장히 낯설었어요. 독특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이죠. 처음에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답니다. 글을 다 읽고 난 후에야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는 낯설고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 전개를 통해 이야기 속 세밀화가들이 느꼈을 새로운 문화에 대한 충격과 반감을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겪어 보았으면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Editor 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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