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시.사 레터 16회 (2021.08.04.)

안녕하세요,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의 점장 손정승입니다. <우리는 시를 사랑해>에 초대받아 여러분께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뻐요. 양질의 책을 선별하여 판매하는 일을 6년째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시집은 늘 어려운 친구였습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친해질 방법을 몰라 주변만 맴돌았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 있으시지요. 시가 제게는 그런 친구입니다. 그렇다보니 시집을 손에 쥘 때면 조금 더 긴장하고, 조금 더 예의를 차리게 되는 듯해요. ‘이 친구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지, 오해하지 말고 제대로 받아들여야지하면서요.
 
처음 <우리는 시를 사랑해>에 초대받고선 시를 모르는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시를 모르니까 할 수 있는 말이 있겠다 싶었어요. 레터를 받아보시는 분 중에도 분명 저 같은 분이 있겠지요. 시인이 이 시를 쓴 의미, 감정, 자세를 제대로 받아들이면 가장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시의 단 한 구절이라도 제 삶에 옮겨온다면 그것으로도 시를 쓴 시인은, 그 시는, 읽은 저는 기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에 발 도장을 꾸욱- 남긴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손정승 점장이 사랑하는 첫번째 시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티브이에 춤추고 노래하는 내가 나온다
생선을 바르다 말고 본다 이 무대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할 댄스 가수 얼굴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술 취한 자들의 노래만큼 엉망이었지 흥얼거리다 사라질 이름인데 너무 오래 쓴 거야 돌려주긴 그렇고 버리는 것이지
나도 잃어버린 것을 주워다 썼으니까
코러스 없이는 노래를 못해요 무반주는 아주 곤란해요 악보 볼 줄 몰라요 춤은 자신 있어 함성 질러주면 노래 열심히 안 해도 될 텐데
무거운 가발을 벗으면서 묻기를, 시작하는 게 두려워? 끝내는 건? 남겨진 질문에 흔들리는 귀걸이의 큐빅으로 대신 말한다
잘 모르겠어 모르는 게 많아 신비로울 줄 알았던 텅 빈 해골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고 내장까지 꽉 찬 헛기침으로 구름을 걷고
내가 누군가의 기분이 될 수 있으리라 당신의 흥미를 비틀거리게 하리라
하지만 난 신의 오르골이 되었지 이쯤 해둘까 끝나지 않는 인터뷰 말미에는 말하게 될 것
무대를 떠나겠다고, 내가 남긴 노래 내가 남긴 말, 나의 춤보다 먼저 늙어버릴 육신!
질 좋은 무대의상이 있었지 출처도 모를 협찬이었지만 전 재산을 바쳐 그것을 걸쳐 입고 마지막 무대에 올라선다
밥상 밑에서 맨발을 긁적거리며 하얀 생선살을 가지런하게 바르고 있었다
노랫말처럼 살다 간 사람이 있었다네 베스트 앨범에선 아직 분장을 지우지 않고 잠든 이가 깨어나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손정승 점장의 감상💡  
친한 거래처 담당자와 점심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시를 가까이 두는 그분과 우연히 시집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당시 문학동네시인선의 가장 최근작이었던 서윤후 시인의 시집까지 이야기가 가닿았습니다. 긴 제목이 순간 기억나지 않았던 그분은 뭐더라, 『밤새 돌아가는 미러볼』이었던 거 같은데라고 말하고, 저는 또 그에 , 맞는 거 같아요라고 신나게 맞장구를 쳤더랬지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찾아보니 틀린 제목이면서도 또 아주 틀리지는 않은 제목이라 둘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렇게 관심이 생겨 펼쳐든 시집 속, 시집 제목과 같은 제목의 시를 어떻게 그냥 넘기겠나요.
 
그렇게 읽은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는 생의 끝을 이야기하는 듯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결코 끝에 다다라 있지 않습니다. “시작하는 게 두려워? 끝내는 건?”이라는 시구는 지금의 제게 굉장히 죽비 같은 질문이었어요. 저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출처도 모를 질 좋은 무대의상을 협찬받아 좋은 날들을 남기고, 오래 쓴 제 이름을 내려놓고서 텅 빈 해골로서 사람들의 찬사(부디 찬사이길 빕니다)를 받는 날이 오겠지요. 그러고서 지나간 노랫말처럼 그런 사람이 있었다정도로 몇몇 친구들이 저를 기억하겠지요. 이 시를 한 줄씩 따라가다가 마침내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을 켜는 장면에 다다른 순간, 어쩐지 정말 잘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 막간 우.시.사 소식김훈과 안도현이 PICK한 시집!
김훈, 안도현 작가님이 읽은 장혜령 시집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를 소개합니다! (도서 이미지를 클릭하면 장혜령 시인의 미니 인터뷰가 뿅!😉)

김훈💬 
장혜령의 이미지는 저절로 이어지는 또다른 이미지들을 빚어내고, 그 이미지들이 이야기의 신산스러움을 추스르며 흘러가는 모습은 자연증식하는 생명체와 같다. (전문 보러 가기🔍)

안도현💬 
한 편을 몇 번 더 읽으며 여름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 덧없음과 서늘함과 따스함이 자욱한 시. (전문 보러 가기🔍)
💜 손정승 점장이 사랑하는 두번째 시
레몬스웨터블루(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준이치, 그때 우린 궁금해하지 않았지 홀연히 사라지는 재주에 대해서, 서로 단추 없이도 잠기고 라켓도 없이 받아치는 게임을 하면서. 그때 나는 셔틀콕이 걸린 나무가 되어 흔들리고 싶었지 흔들림을 눈여겨봐야 하는 제자리에서 본 우리 얼굴은 지나치게 젊고 초라했어
 
오래된 노래에 한 시절을 묻고 멀리 와버렸지 준이치, 너와 내가 열렬했던 음악이 우리의 입술을 베꼈다는 착각에 간주를 아슬아슬하게 반복했지 우리는 어떤 노래와도 어울리지 않아 다만 노래가 될 수 있을 뿐 흥얼거림만으로 선명할 수 있는 채도로, 서로를 물들이고 물드는 게 재난임을 모르고
 
소복이 내리는 눈, 자발적으로 닫힌 문. 오래된 대만 영화가 시작되고 우리는 자막보다 앞서는 대화를 읊조리고 있었어 이게 다예요 전부였어요 말하지 않는 네게서 많은 걸 받아 적은 날엔 귀가 먹먹해졌지 악보엔 영영 할 수 없는 말들이 새겨져 있었잖아 이것을 연주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우리의 뒷모습뿐이라는 것을
 
준이치, 네가 떠난 의자에 앉아 생각해 불장난 같았거나 벽난로였거나, 쬐기 좋았던 불씨가 더는 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해 눈길이 미끄러울 때도 습관처럼 네 이름을 부른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곳을 찾아 누웠지 도형을 온몸으로 익히며 어지러운 우리의 전개도를 헤맸지 충분히 방황한 줄 모르다가
 
우리는 따뜻해 죽을 수도 있는 열대어를 취급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지 때로는 내버려두면 스스로 질겨지는 돼지가 되어 가장 크게 울고 싶었지만, 우리는 아무도 돼지가 되고 싶지 않은 세련됨이 멋인 줄 알고 준이치, 나는 생각해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턱을 괸 다음, 무너질 일 없는 의자에 앉아 하게 될 말이란 무엇일까
손정승 점장의 감상💡
시를 읽다보면 제 마음 깊은 곳으로 자꾸만 가라앉습니다. 시인이 짧은 글에 얼마나 많은 마음과 시간을 압축했을지를 생각하면 허투루 읽을 수가 없어 모든 걸 차단한 침대맡에서야 시집을 읽곤 하는데요, 그렇게 저와 시만 남겨질 때면 흘러간 인연이 떠오르고야 맙니다. 이 시의 한 구절 오래된 노래에 한 시절을 묻고 멀리 와버렸지는 순식간에 저를 수 년 전 언젠가로 데려다놓았습니다. 많은 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변하는 건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어린 날의 제 모습과 그 앞에 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이내 가수 이상은의 <언젠가는>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저는 기어이 이 시를 그 친구에 대한 기억과 엮어 읽고야 말았습니다.
 
말하지 않는 네게서 많은 걸 받아 적은 날엔 귀가 먹먹해졌지 악보엔 영영 할 수 없는 말들이 새겨져 있었잖아 이것을 연주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우리의 뒷모습뿐이라는 것을을 읽고서는 그 친구와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날을 떠올립니다. 이미 제가 아는 눈이 아닌 그 눈으로 저를 겨우 마주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시는 마주칠 수 없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눈.
 
어지러운 우리의 전개도를 헤맸지를 읽을 때엔 저와 그 친구가 함께 그린 전개도를 떠올렸어요. 입체도형의 전개도를 무척 잘 보는 편이라 이 모서리를 이렇게 잡으면 어떤 모형이 된다는 걸 빨리 파악하는 저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전개도는 어디와 어디를 맞붙여야 하는지, 이 전개도를 다 이어붙이면 무슨 모양이 되는지를 몰라 자주 헤맸어요. 그 모양을 빨리 알고 싶어서 초조해하기도 했고, 그 전개도가 필요 없어진 후에도 시작과 끝 지점을 찾지 못해 필요 이상으로 그 전개도 위에 오래 머물렀던 것 같아요.
 
때로는 내버려두면 스스로 질겨지는 돼지가 되어 가장 크게 울고 싶었지만, 우리는 아무도 돼지가 되고 싶지 않은 세련됨이 멋인 줄 알고 준이치……어린 날의 저는 슬픔을 잘 숨기고 참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와의 작별 앞에서도 여러 이유를 대며 슬픔을 안으로, 안으로만 집어넣었어요. 하지만 이제 알아요. 실컷 슬퍼하고 실컷 표현하는 게 더 건강한 어른의 모습이라는 걸. 그때 실컷 슬퍼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오래도록 앓아야 했던 그때의 저에게, 애 많이 썼다는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꼭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슬퍼서 좋은 것도 있더라고요. 제게는 이 시가 그렇습니다.
 💌땡스북스를 소개합니다!
2011년 3월 오픈하여 올해로 10년째 홍대 앞에 자리한 큐레이션 서점입니다. 땡스북스는 홍대 앞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분야별 주목할 만한 책들을 선별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출판사와 함께 주제가 있는 기획 전시 및 여러 코너를 통해 디자인과 콘텐츠가 잘 어우러지는 책을 소개합니다. 
💖 다음주 시믈리에를 소개합니다
다음주 <우리는 시를 사랑해> 시믈리에💛
김개미 시인

다음주에 아름다운 시 두 편을 추천해줄 분은 김개미 시인입니다. 김개미 시인이 여러분께 권하는 시 두 편을 기대해주세요. 그럼, 다음주 수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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