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막아, 2023년 새해 들어 보내는 첫 번째 편지다. 고막사람 뉴스레터를 진행한지도 어언 반 년.
 
014_하이틴은 아니지만 드림이기는 한 우리의 2023년.
한아임 to 오막
2023년 2월
 
오막아,

2023년 새해 들어 보내는 첫 번째 편지다. 고막사람 뉴스레터를 진행한 지도 어언 반년. 지난번에 게스트의 참여까지 있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특히나 Editor_J의 방송국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전혀 모르는 세계를 접한 것 같아 신난다. 라이브인 것을 라이브 아닌 형태로 인류의 아카이브에 저장하는 편집자라니. 이것은 소설 주인공으로 써야 하는 인물 설정 같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음악에 대한 Editor_J의 사랑이 느껴진다.

게다가 그가 언급하는 우리 셋의 술자리는 나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러니까, 선명하다는 게, Editor_J의 말마따나 “자세한 기억은 알코올과 함께 증발해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선명하다는 뜻이다. 대왕계란말이도 기억한다. 태어나서 그렇게 큰 대왕계란말이는 처음 봤었어…

다음에 나 한국에 있을 때 꼭 공감홀에 놀러 가서 Editor_J의 세상을 직접 경험해 보자. 그다음에 또 술을 마시자꾸나. 과연 우리의 몸뚱아리들이 밤을 새우는 걸 허락해줄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재밌었지 않아, 매번?

아무튼. 편지를 보내준 Editor_J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좀 멋있어. 역시 사람은 자신이 행하는 일에 애정을 드러낼 때 참 멋져.
네 12호 편지를 보고서는 빵 터졌다. 제목부터, “슈방구와 간첩”이라니…!

(오해하는 고막사람들이 있을까 봐 말하건대, ‘슈방구’는 쌍욕이 아니라 독일어로 ‘돼지’인 슈바인과 방구를 합친, 그저 유치한 말장난이다.)

네가 추천한 53 Thieves… Indeed, me like…! 숨조차 박자 타면서 쉬어야 할 것 같다. 완전 내 스타일인데? 역시 오막은 대 프로듀서인 것 같아…! 음악처럼 서로 추천해주면서 모두가 좋은 미디엄이 없는 것 같다. 추천해주는 너도 좋고 추천받는 나도 좋고 추천당하는(?) 뮤지션도 좋고.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운 것 같구나.

게다가 이 뮤지션은 일단 제목에 ‘도둑’이 들어가서 좋네! 고막사람의 시작은 Thievery Corporation이었는데 말이지.

역시 이름은 은근히 중요하다. 앨범 재킷도 그렇다. 음악 외적인 요소들은 음악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한아임 이름 칭찬 감사… H는 영문으로 Aim Han인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겁나 목표지향적일 것 같다.” 그러하다. 사실 엄마 성에 그냥 “I’m 아임.” 즉, ‘나는 나다’라는 뜻이지만, 이런 부가적인 뜻이 생기는 것도 재밌고, 듣기 좋다는 말도 듣기 좋다.

이름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gate 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시는 분의 Out of My Mood라는 노래가 바로 이분 이름 때문에 클릭한 케이스다.
이분 사운드클라우드에 지금 들어가 보면 “Will 김철민”이라고 이름이 되어 있고, 활동 장소는 Baltimore/Seoul이라고 한다. (https://soundcloud.com/will-mccarthy)

이 곡 너무나 하이틴 드림 같고 아름다운데 이분 요즘에 뭐 하시는지 궁금하다.
하이틴스러운 청량한 분위기의 노래가 나왔으니, 하나 더 들어볼까.
캬… 회춘하는 느낌이다.

요즘엔 뉴진스 노래도 자주 듣는다. 여기에 굳이 링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뉴진스는 잘 알려져 있으니, 링크하지 않겠어…! 

그들의 노래는 전부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다. 아무튼 너무 좋다, 이 말이지. 역시 음악은 정신적 보약의 일종이다.
그런데 53 Thieves의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서로 얼굴을 본 적이 없다니. 재밌는 세상이다. 네 말대로 지구’촌’이다. 

그리고, 그래, 그렇다면 진짜 우리도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곡을 만들 수 있을까? 네가 내 목소리를 좋다고 할 때마다 나는 너무 신기하다. 내 목소리가…? 정녕…? 

그리고 네가 나를 ‘당신’이라고 하니까 약간 느끼한데 정감 어리다. 나도 당신을 당신이라 부를까? 고막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하진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 서로 당신이라고 부를까?

이름에 대해 내가 아임 드리밍 팟캐스트 에피소드 11에서 언급했던 부분이 있다.

“목표란 미래에 뭔가를 하고 싶고, 할 거라는 낙관을 나타내는데, 이름 짓기는 더해요. 이름 짓기에는 목적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목적이라고 굳이 말하자면… 그 사람의 존재를 계속해서 함축해서 부를 의향? 그것이 가장 이름 짓기의 근본적인 목표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처음 보고 앞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의 이름을 묻지 않습니다. 그들은 전부 ‘거시기’의 영역에 저절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집에서 키우고 예뻐할 동물을 데려올 때,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 존재는 그냥 어디 길에 있는 ‘거시기’가 아닌 겁니다. 걔는 이름이 있어요. 왜냐? 앞으로도 부를 거니까. 걔가 최대한 늦게 죽었으면 좋겠고, 그때까지 계속 부를 거니까.

인형을 하나 사도, 특히 그 인형이 전부일 시절인 어린아이일수록 인형에 이름을 붙여줍니다. 부를 거니까.

연인들은 상대에게 애칭을 붙여주고 친한 친구들은 서로 별명을 붙여줍니다.

...

이렇듯 뭔가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것을 다시 들춰볼 거라는, 그것이 계속 존재할 거라는, 또한 그것을 부를 나도 계속될 거라는 낙관을 상징합니다.

자신에게 스스로 주는 이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붙여주는 이름이 될 수도 있는데, 이러나저러나, 궁극의 사랑 표현입니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단어이지만서도,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부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측면에서, 이름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

‘당신’이든 별명이든, 내가 어떤 사람이 좋을 때 제일 자주, 먼저 하는 행위가 갖가지 이름 붙이기다. 이 이름들은 대개 나랑 그 사람만 안다. 어쩌면 그게 목적이다. 우리만 아는 언어, 그것도 이름이 생길 때, 사랑이 시작한다.

오막이랑 한아임은 그런 사이는 아닌데 (…) 그래도 내가 너를 본명보다 오막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오막이 네가 택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네가 택한 이름으로 불러줄수록 네가 그 이름을 택하는 데 작용한 그 이유가 네 안에서 더 꽃피울 것으로 생각한다.
임금비 님과 다른 아티스트들의 캐롤도 너무 좋구나.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도 캐롤은 듣기 좋다. 겨울은 1월이 더 본격적이지 않냐.

임금비 님의 908도 너무 좋다. 나는 라이브 영상에서 악기 연주자가 보컬을 쳐다보는 게 너무 좋다. 왜인지. 대개는 보컬은 전면에 나서 있지 않니. 보컬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악기 연주자들은 대개 좀 더 뒤에 있다. 그들은 관객을 볼 때도 있지만, 더 잦은 빈도로 보컬을 보는 것 같다.

그게 왜 그렇게 로맨틱한지. 단순 연인 간의 사랑이라는 뜻에서의 ‘로맨스’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뭐 하는지 바라보는 순간은 연인간의 사랑 이상으로 로맨틱하다. 그래서 사진가가 렌즈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것도 로맨틱한 거잖아.

로맨스 얘기 나왔으니, 상큼한 거 하나 더 듣자.
그런데 나는 오막 생각과는 달리, 오막의 노래가 설렌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네가 말하는 ‘설렘’이 내가 말하는 ‘설렘’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 네 말대로 우리 2023년을 실현의 해로 만들어 보자. 아직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진 않지만, 다 하게 될 것이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본디 좀 미쳤지 않니? 나는 오막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아.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이미 많은 걸 실천하고 있어. 장담컨대 앞으로 더 꽃필 일만 남았다.

이 부분은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든 고막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다.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이미 많은 걸 실천하고 있다고. 사실 뉴스레터에 구독하는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거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보다 극소수다. 이는 비단 뉴스레터라는 매체가 탈중앙화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탈중앙화되어 있어서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보다는, 탈중앙화되어 있으니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거나, 내가 한 스텝, 두 스텝을 더 액션을 취해야지만 구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극소수의 전유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구독한 당신이라면 아마 인류의 적어도 절반보다는 귀차니즘을 잘 극복하는 사람일 것이다. 심지어 절반이 아니라 90%보다 더 귀차니즘을 잘 극복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뉴스레터 구독이 사소해 보일지 모르나, 흔히 ‘소셜 미디어’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마이너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매체인데 (당신의 이메일 인박스로 들어가는 행위를 요하니까), 당신은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마 당신은 높은 확률로, 당신 생각보다 이미 많은 걸 실천하고 있을 것 같다. 그것이 한아임의 추측이다. 그러니 당신은 얼마나 이룰 수 있는 것이 많겠는가.
한아임의 새로운 인생 꼭지점의 일부는 이거다. 지구 어딘가에 대지를 구해, 거기다 집을 짓든 원래 있던 집을 꾸미든 해서, 한아임 친구들이 “나 좀 들를게” 하면 “그래, 얼마든지 들렀다 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오막도 Editor_J도 언젠가 놀러 올 수 있는 그런 공간의 지배자가 되겠다…!

옛날부터 막연하게 했던 생각이지만, 이제 평생에 걸쳐서라도 저 꼭지점을 염두에 두고 살겠다. 다른 건 못 해줘도, 밥이랑 방은 줄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단 말이다.

그러하다. 와서 오막이 음악 작업하고 사진도 찍고 사색도 하고 같이 바베큐 구워 먹으면 얼마나 좋겠냐. 캬. 그렇게 앨범 나오고 사진집도 나오고 글도 나오면, 앨범 재킷이든 책이든 그 구석 어딘가에 내 이름 정도는 써주겠지? 한아임이든 Ithaka든.

나는 우리의 다음 10년이 너무 기대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고막사람들 모두 2023년, 그리고 앞으로가 지금까지보다 더 빛났으면 좋겠다. 이번 뉴스레터의 상큼한 에너지로 모두 쭉쭉 나아가 보자.
- 아임. -
이번 편지를 보낸 한아임은...
아무 데에도 아무 때에도 있었던 적 없는 세상, 그리고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세상 사이의 해석자다. 원래도 괴란하고 괴이하고 괴상하며 해석함 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여러모로 괴하다. 이런 성향은 번역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결과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뭐 하고 사나, 뭘 쓰고 뭘 번역했나 궁금하면 여기로. https://hanaim.imaginarium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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