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리다] : (속되게)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쪽팔리는 걸 참 싫어했다. 조금만 시선이 집중돼도 얼굴과 귀가 빨 개지는 특성 때문에 나의 쪽팔림은 곧장 들춰지곤 했는데, 그건 더 싫었다.
그래서 나의 대부분의 선택은 ‘도망치기’였다. 애초에 쪽팔릴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팔 힘이 약했는데, 친구들끼리 팔씨름하는 분위기가 생 기면 다른 반 친구에게로 도망쳤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쪽팔림에서 도망치면 삶은 더 큰 쪽팔림을 보냈다. 마치 똑바로 마주하라는 듯이.
팔 힘이 약하다는 쪽팔림에서 계속 도망치는 내게, 체력시험 마다 악력을 측정하거나 팔굽혀펴기를 하게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나는 계속 도망쳤다. 운동을 해서 팔힘을 키우기보다, 어떻게든 그 순간을 빠르게 흘려보내고 모른 척 덮어두었다. 친구들이 몇 개 했냐 물어보면, ‘아깝게 통과 못했다’며 넘겼다.
아침 체력 단련 때에도 팔굽대 앞에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아등바등하지 않을 만큼만 당기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런 도망침은 결국 나에게 엄청난 불안을 가지고 왔다.
팔굽혀펴기가 종목 중하나인, 임관 종합평가 전날이었다. 3급 기준인 48개를 채우지 못할 경우 한 학년을 꿇고 후배들과 임관해야 하는, 너무나 굴욕스러운 일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지금 기억하기로 당시의 나는, 당장 정자세로 48개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라면 48개가 얼마나 달성 가능한 개수인지 알 거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도아니고,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임관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굴욕스러운 예감이 나를 불안의 동굴로 밀어 넣었다.
웬만한 일들에 잘 불안해하지 않는 나지만, 이날은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고요하고 까만 방 안에서, 혼자 글을 쓰며 몇 번이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심시킨 후에야 겨우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거대했던 불안함과는 다르게, 나는 ‘무난하게’ 임관 종합평가에 합격했다.
평가관이 아니라, 후배들이 카운트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무난함이었다. 부끄럽게도, 후배들이 숫자를 더 세줬다. 한 번을 해도 2,3개씩 개수를 올린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부끄럽게도, 부끄러움보다 안도의 마음이 더 컸다.
이후로는 더 이상 쪽팔리지 않기 위해 임관 전까지 열심히 운동했고 쪽팔릴 일이 없어졌다고 하면 완벽한 스토리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도망치던 나는 임관 후 공병학교에 들어가고서야 드디어 도망침을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도망치던 내가 공병학교에서는 어떻게 바뀔 수 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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