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람이 사망하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
'하필 그 불이 가연성 방음터널에 옮겨붙어 순식간에 불이 번졌다면,
불이 난 차량의 운전자가 화재 진압을 포기하고 터널 밖으로 대피했다면,
관제실 직원들이 제때 대응 조치를 하지 못했다면,
사고 수습을 책임지는 본부가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그 결과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면 이 사고는 누구의 책임일까.'
과천 방음터널 화재 사건의 2심 재판부가 마주한 질문입니다.
이번 주 월요일, 선고 전 마지막 공판이 있었습니다.
이제 재판부의 판단만 남았습니다.
* * *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한 피해자 유가족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몇 차례 인사를 주고받은 적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저희 유가족들이랑 저기 앉아 있는 피고인 중에 누가 더 억울해 보여요, 솔직하게"
질문을 받고 조금 놀랐습니다. 저는 "당연히 유가족 분들이 더 억울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묻자 아래와 같은 답을 들었습니다.
"저 사람들(기소된 도로 관제실 직원들)은 자기가 불을 낸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어서 억울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유가족 입장에서는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옆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스쳤습니다.
사고 당시 도로 관리 업체 소속이었던 피고인들은 회사의 교육 부재, 훈련 부재 등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합니다. 총책임자가 속한 고속도로 운영 법인에 중대한 책임이 있음에도 피고인들이 소속돼 있던 위탁 업체만 수사를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날 재판이 끝나갈 무렵 피해자 유족 측이 발언했습니다.
여동생을 잃은 한 유가족은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난 뒤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고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보며 "이 세상이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고도 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유가족들이 법정 앞에 서 있었습니다. 법정 밖을 나서던 검사는 유가족들에게 2심 선고를 전후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상고심(2심 선고에 불복할 경우 상고할 수 있고, 대법원에서 사건을 심리합니다) 절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검사가 입에 발린 말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검사가 재판을 잘, 별 탈 없이 끝내는 것을 넘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에 큰 열의를 갖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검찰 측은 잘못 제출된 증거를 2심에 이르기까지 검토하지 않다가 피고인 측 변호인과 재판부로부터 지적을 받고 나서야 다시 증거를 확보해 조사했습니다.
이후 추가 증인을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증인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뭔가를 새롭게 알아내기 위한 질문을 하기보다는 이미 밝혀진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한 질문을 했습니다.
재판을 통해 모든 사실을 밝힐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제 선고만을 앞둔 시점임에도 많은 부분이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이 재판에 대해 갖고 있는 의구심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재판부는 공판을 마치며 "이 사건은 검토가 많이 필요해 선고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습니다. 두 달 뒤로 선고 기일을 정했습니다. 판결이 나오면 소식을 전해보겠습니다.
(이 레터는 김주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