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MT나 총회, 미팅에서도, 회사의 회식에서도 늘 함께해 온 술은 언제나 맥주와 소주 그리고 어쩌다 막걸리였습니다. 맥주와 소주 내에서도 큰 변화 없이 양대 산맥 격의 두세 가지 브랜드가 독식해왔던 지난 십 수년, 코로나와 맞물려 지각변동의 전조가 느껴졌습니다. 코로나로 다수 인원은 집합 금지를 당하고, 그나마도 10 - 11시면 문을 닫던 술집들과 재택근무, 원격 수업 등으로 인해 술자리 문화도 차츰 바뀌게 되었습니다. 우르르 많은 인원이 모여 부어라 마셔라 했던 지난날의 술자리 관행이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술을 마시더라도 소규모의 인원이 원하는 만큼의 술만 마시고, 술 마시는 자체가 중심이 되기보단 누구와 어떤 목적으로 만나는지가 주가 되자, 단순히 값싸고 취하기 위한 술을 찾기보단 의미 있고 즐길 수 있는 술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외부 출입에 제약이 생기며 또 한 가지 생긴 음주문화의 특징은 혼술이었습니다. 집에서 내 기호에 맞게 내가 원하는 만큼만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자 ‘그럼 나에게 맞는 술은 무엇일까?’, ‘내가 먹는 음식과 어울리는 술은 무엇일까?’, ‘술을 어떻게 마시면 더 맛있을까?’와 같이 술에 대한 접근도 다양화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추듯 새로운 맥주, 소주, 막걸리 등 다양한 주류가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등장하게 됩니다. 오랜 기간 선택권이 제한적이었던 맥주 시장에 등장한 테라와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MZ 세대를 겨냥해 돌아온 진로이즈백, 술도 건강하고 라이트 하게 마시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들의 기호에 맞춰 출시된 각종 제로 슈거 주류 제품들, 값은 싸지만 알코올 향이 강한 희석식 소주 대신 깊고 진한 향을 자랑하는 증류식 소주와 같은 제품들이 대거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MZ 세대를 공략한 이 주류 브랜드들은 새로운 상품 출시와 함께 팝업스토어 같은 행사 공간을 만들어 제품의 출시를 알리는데 힘을 씁니다. 이에 화답하듯 팝업을 반기는 2-30대들은 긴 줄로, 다양한 인증샷으로 살아있는 바이럴 매체가 되길 자처합니다.

일례로 가수 박재범이 출시한 ‘원소주’는 론칭 후 일주일간 첫 단독 판매를 실시했던 더현대에서 오픈과 동시에 웨이팅을 마감시킬 정도의 인파를 몰리게 하며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후 편의점 GS25, 자사몰에서도 제품을 완판시키며 브랜드 파워를 입증합니다. 또,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해 초도 물량인 5만 병을 입점 하루 만에 완판시키기도 하며 그 저력을 드러냈습니다. 론칭 이후 6개월간 100만 병 이상의 판매로, 하루 평균 6,000여 병의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이들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월드컵 한정판으로 대한민국 축구팀을 응원하는 아티스트 샘바이펜 디자인 '원소주 스피릿 특별 패키지' 판매, 밸런타인데이 에디션 발매, 게임 ‘리니지’와 패션 브랜드 ‘디젤’과의 컬래버레이션 등을 통해 주류 브랜드의 확장 가능성을 여념 없이 드러내며 소비자에게 다각도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맥주 브랜드로 더  잘 알려진 ‘블랑제리뵈르’는 사실 버터를 판매하는 브랜드로 시작했습니다. 이 브랜드에서 발매한 부드러운 거품과 달달한 향의 버터맥주 ‘BEURRE’는 더현대 팝업을 시작으로 성수 GS25의 팝업 스토어 ‘도어투성수’에서 또한 큰 반응을 얻으며 최단기간 100만 캔 판매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립니다. 이후 이들은 시그니처인 버터 향을 막걸리, 소주와도 결합해 알코올 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도쿄의 트렌디한 브랜드만 모아둔 몰 ‘PARCO’에서도 일본 론칭 기념 컬래버레이션 팝업을 진행하며 많은 이들을 불러 모아 새로운, 트렌디한 주류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과 애정이 국내에서만 있는 특수한 현상만은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버터 맥주 구매 고객의 86%가 2030인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이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주류시장이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해당 고객 층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는 신제품을 출시할 때도, 프로모션을 할 때에도 단순히 싸거나 도수가 높거나, 새로 나왔다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이 세대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흐름에 가담한 것이 메이저 맥주와 소주 브랜드만은 아닙니다. 술이 단순히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흥미를 가지고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고, 배워볼 수 있고, 다양한 영역이 있는 하나의 취미 카테고리로 인지되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젊은 세대들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그래서 미지의 영역에 머물렀던 ‘전통주’ 시장도 각광받기 시작합니다. 전통주는 소주를 포함한 청주, 탁주 등의 술을 통칭하는 말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은 이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다양한 공간을 양산합니다. 전통주만 셀렉 하여 편집하는 보틀숍, 수십 가지의 막걸리를 취급하는 막걸리 전문점, 안주와 어울리는 전통주를 페어링 해 추천하는 음식점들이 생기기도 하며 확장하는 전통주 시장에 걸맞은 숍들도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토끼소주는 이런 전통주 시장 활성화의 신호탄을 알린 격의 제품입니다. 토끼소주를 만든 툴킷 대표 브랜 힐은 대학시절 룸메이트를 통해 소주를 처음 접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위스키를 만들고 와인을 담그던 부모님 사이에서 자란 그는 맥주, 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취미로는 맥주 양조를, 직업으로 맥주 컨설팅을 하며 지내오던 중 뉴욕에서 한식당을 차리는 지인의 부탁으로 한식과 어울릴 술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희석식 소주보다 더 깊은 맛의 증류식 소주에 매료되어 이를 뉴욕에 소개하고자 직접 한국에 와 전통 주조법을 배워 미국으로 돌아 가 소주를 만든 것이 ‘토끼소주’의 시작입니다.

쌀과 누룩을 이용한 한국 전통 방식의 주조법에 현대 증류 기술을 도입하고, 오크통에 숙성한 라인을 별도로 갖춘 이 소주는 태생부터 전통과 현대가, 동양과 성양이 잘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술의 라벨과 로고 또한 한국 전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이들의 웹사이트나 인스타그램은 모두 영문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어 ‘도대체 이 브랜드는 뭐지?’하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찹쌀로 증류해 달달한 끝 향이 매력적인 이 소주는 일반 소주보다 가격대도 높고 아무 편의점이나 술집에서 판매하지 않지만, 외국인이 만든 전통주라는 스토리와 구하기 쉽지 않다는 희소성, 다른 소주들과는 다른 특수성 덕분에 늘 특별함과 새로움을 쫓는 MZ 세대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왔습니다.

홍대의 젊은 감성을 담은 라이즈 호텔에 위치한 ‘토끼바’는 토끼소주를 전문적으로 마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공간은 낮과 밤이 다른 분위기로, 낮에는 자연광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공간을 밝혀 자연스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으며, 밤에는 토끼가 나올 법한 달이 뜬 모양의 원형 조명이 은은하게 공간을 밝힙니다. 모던한 분위기의 바인데다가 외국인 바텐더가 맞이하는 이 공간에서 소주를 판매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토끼소주를 메인으로 한 이곳에서는 진, 보드카로 만나볼 양주 라인인 선비주와 함께 이들의 술을 다양하게 변형시킨 칵테일, 그리고 이와 함께 곁들일 수 있는 음식까지 판매합니다.

전통주라고 하니 왠지 전통적인 음식이랑 페어링 해야 할 것 같다는 선입견도 이곳에선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스테이크는 물론, 스파게티, 칼라마리와 같이 소주와 같은 선상에 오를 일 없을 같은 이름의 음식들이 이들의 메뉴판을 채웁니다. 가장 좋은 평을 받는 안주 메뉴 중 하나인 올리브오일 케이크와 함께 서브되는 리몬 첼로 또한 토끼 소주로 만든 레몬향 리쿼로 이곳에선 소주를 기반으로 한 술의 모든 버전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미국 버진 오크통에서 숙성해 세계 3대 주류 대회로 인정받는 ‘샌프란시스코 월드 스피릿 컴피티션’에서 최고 상인 ‘더블 골드 메달’을 수상한 토끼소주 골드라벨도 이곳에선 잔으로, 하이볼로, 병으로 주문할 수 있어 위스키 바 못지 않은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쌀로 만든 라거와 토끼소주 블랙을 섞어 샷으로도 판매하는 등,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소주 혹은 전통주의 시음 방식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술을 즐길 수 있어 새로움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미국에서 온 한국 전통주 토끼소주는 미국과 한국에서의 인지도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전통주를 세계적으로 알리고자 세계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막 싱가포르에 정식으로 진출을 앞두고 있는 이들의 행보는 앞으로를 더 기대하게 될 수 밖에 없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