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은 점점 올라가고 인상은 찌푸려지는 계절이네요. 기쁨만큼 슬픔도 소중한 감정인 것처럼, 여름이라서 더 좋은 것들도 있지요. 시원한 커피 한 모금, 초록이 짙어진 잎사귀, 청량한 멜로디의 노래로 위안 받으며 "여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양배추 레터의 첫 번째 편지는 양의 첫 동료에게 보내는 글입니다. 여러분도 첫 일, 첫 동료가 있으시지요? 일의 정의나 형태, 의미는 모두 다르겠지만 스스로 기억하는 첫 일, 그리고 그 일을 통해 만난 첫 동료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떤 인상이 떠오르시나요? 지금도 연락하시나요? 나의 어리숙함, 반짝이는 열정, 고군분투의 과정을 아는 동료와 여전히 인생의 고민을 나눌 수 있다면 정말 근사할 것 같아요. 그런 동료 한 명, 있다면 꽤 든든할 것도 같고요. 그런 동료를 생각하며 읽어주세요.

그리고 아주 짧은 답장도 좋습니다. 첫 동료에 대한 당신의 단상이 궁금해요. 같이 나눠요, 우리.
24.07.03.  첫 번째 편지.

D,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의 정착은 잘 하고 있으신가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당신이기에 그리 큰 걱정은 들지 않습니다. 가끔씩 안부를 물으며 ‘나는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만 전했던 것 같은데, 새삼스레 당신에게 편지를 쓰자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우리의 편지가 '지역'과 '일'이라는 주제로 좁혀졌을 때, 나의 첫 동료인 당신이 바로 떠올랐어요. 그렇게 해서 이 편지를 씁니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 즈음 우리는 만났죠. 지역에서 문화기획이란 걸 해보고 싶어 기웃거리던 저와 당신과의 만남을 지금 떠올려보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납니다. 아티스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작정 공연을 기획하고, 홍보물을 만들고, 그러다 판이 커져 엉겁결에 전국 단위의 행사를 만들어 보기도 했네요. 그때 우당탕탕 지나온 경험이 저에게는 강한 잔상으로 남아 초심을 잡아주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마음이 많이 흔들릴 때면 그때의 기억을 슬쩍 꺼내보곤 합니다. 그때는 제가 참 기획서를 못 썼는데 당신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지금의 저는 어떤가요? 이제 좀 치는 사람 같나요? (웃음)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때때로 이 업계의 일과 생태계를 버텨낼 자신이 없어 의기소침해 있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당신이 건네준 '일단 그렇게 해보는 거다.' 등의 말이 지금까지 제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순간순간에는 당신의 시니컬한 피드백이 밉기도 했지만, 그 속에 따뜻한 격려가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참 감사했습니다. '나에게도 친밀한 후배가 생긴다면 꼭 당신처럼 해주리라-'라는 생각도 자주 했지요. 당시 혼란스러운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데, 1시간도 넘는 저의 한탄을 군말 없이 받아주신 점 이제서야 감사 인사드립니다.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당신의 진심 어린 의견을 이야기하면서도, '네 마음대로 할 거면서 왜 물어보냐?'라는 장난기 어린 말에 얼마나 찔리고 웃기던지. 업무에 있어서 그 시절의 저를 당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당신에게 많이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이곳, 부산의 당신이 맺어준 인연은 모두 그대로인데 당신만 이 지역에서 떠나 없군요. 어떻게든 이 지역에서 무언가 배우거나 성장하고 싶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신은 '돌파구가 없다.'라는 짧은 평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버렸지요. 한 번도 당신에게 왜 떠났는지, 깊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일하다 보면 많은 기획자들이 그런 순간에 많이 부딪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애정하는 이 도시에 남아 무언가 계속해 볼 것인지, 혹은 성장의 기회가 많아 보이는 곳으로 옮겨갈지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말입니다. 저 또한 이런 고뇌의 시기가 있었지만 부산에 남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떠난 곳에 남은 저는 당신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에 목말라하고, 시원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지만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제가 또 한 번의 갈림길 앞에서 결정을 내렸을 때, '지금 네가 한 선택 정말 멋있어'라고 응원해 주신 당신의 말 때문에 더 이 악물어보려 합니다. 뭐- 결과와 상관없이, 무언가 시도하는 과정과 저의 존재 자체가 이미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요.

지금 당장은 우리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우연히 당신과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중간지점에서 만났을 때, 서로에게 잘 버텨왔노라고 격려해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 참, 이 편지를 쓰며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하나가 있는데, 당신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으신가요? 지난 8년간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더군요! 다음번에 만난다면 우리 함께 꼭 사진을 한 카트 찍기로 해요.

그럼 D, 당신에게 언제나 행운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안녕.

Comment
편지를 읽다 보니 어느새 양과 D의 서사에 너무나 몰입한 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가까이서 서로를 응원하는 듯한 두 분의 우정을 응원합니다. 👏 서울이나 수도권 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어 보이는 장점들이 있지만, 서울을 벗어나야만 보이는 것도 있는 듯해요. 저 또한 서울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지만,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선택을 했기에 정말 멋지고 소중한 동료들을 만나게 됐고, 이렇게 재미난 레터도 시작할 수 있지 않았겠어요? 🤭     -배-
어쩌다 서울에 있는 저는 양의 마음도 D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되네요. 🥹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순 없을까, 고민해 보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저마다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 고생이 많다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우리 존재 화이팅🙌) 그나저나, 이런 동료를 처음 만났고,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니! 흔치 않은 일인데... 진짜 부럽다. 둘 다 복받았다요!🍀     -추-
P.S.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은 오늘의 노래
🥬 양's pick
       부산의 찐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부산찬가 - 윤시내(1984)

수평선 바라보며 푸른 꿈을 키우고

파도 소리 들으며 가슴 설레는

여기는 부산 희망의 고향

꿈 많은 사람들이 정답게 사는 곳

갈매기떼 나는 곳 동백꽃도 피는 곳

아아 너와 나의 부산

🥬 배's pick
       화려하고 신나는 부산 바이브를 느끼고 싶다면

다이나믹 부산 - 원대한(2023)

아름다운 부산의 밤

축제의 부산 추억의 부산 깊어가는 부산의 밤

해운대 동백섬 화려한 밤바다 다시 찾아온 내 사랑

사랑의 속삭임 설레는 내 마음 사랑의 향기에 취하고

광안대교 찬란한 불빛 낭만을 노래하네

부산의 밤은 아름다워라

🥬 추's pick
       부산 인디 신의 묵직함을 느끼고 싶다면

문제없어요 - 김일두(2011)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담배뿐 아니라 락앤롤도 끊겠어요

15번 버스 타고 특수용접 학원에도

지하철 타고 대학입시 학원에도 다닐 거예요

그대가 날 사랑해 준다면

그대가 날 사랑해 준다면

✨ 매월 3일, 양배추 레터를 만나보세요! ✨
💌 피드백, 질문, 하고 싶은 말 모두 좋아요! 💌
  
🥬 양배추 시스터즈 🥬
🐕 미래 @rice_come • ⚔️ 은혜 @o_vvozll_ • 👀 가영 @orothy_y
cabbagesisters0331@gmail.com | 수신거부 |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