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스물여섯 번째 흄세레터
안녕하세요. 흄세 편집자 ‘랑’입니다. 늦여름에 이 이름을 받았는데 겨울이 되어서야 처음 인사드리네요.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오늘 레터는 작품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번 시즌부터 합류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느낀 바를 먼저 나눌까 해요. 님은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는 편인가요? 저는 그러지 못해요. 그래서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요. 평소에도 주변과 사람과 여러 상황을 살피느라 과부화된 삶을 살거든요(INFJ 특). 새로운 회사,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분야의 원고…… 적응하느라 정말 분주하네요!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어서 초등학교로 이후로는 처음으로 9시 전에 잠들 정도랍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의 에너지를 빼앗아간 건 바뀐 환경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보셨나요? 요즘 저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는 이 영화 속 대사를 검색해 다시 읽는 것인데요. 저는 영화 속에서 남편이 울부짖듯 말하는 대사를 가장 좋아해요. 저도 시즌3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모두 세워두고 이 말을 얼마나 외치고 싶었는지 몰라요.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친절해야 한다는 거야.

제발, 친절하게 대해줘,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중에서

고백하자면 저는 ‘질투와 복수’를 테마로 하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얘기를 빠뜨리지 않을 정도예요. 그런데도! 솔직히 고함, 비명, 힐난, 증오에 조금은 지쳤습니다. 이런 심경을 점심시간에 토로했더니 “만일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도를 선하게 받아들였다면, 시즌3 같은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라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지, 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해봤어요. 우선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에게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은 되지 않을 거예요!”라고 대놓고 외치는 것처럼 반면교사가 있겠네요.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주인공 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복수를 향해 돌진하는데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늘 생각해봐야 한다는 걸 알게 해주었답니다.


님 혹시 《동 카즈무후》의 제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모호하진 않나요? ‘카즈무후’의 사전적 의미 중에는 ‘골나서 말하지 않는’이란 뜻이 있는데요, 책을 읽다보면 이 제목을 수긍하게 된답니다. 저는 스스로를 많이 돌아봤어요. 종종 대화 없는 침묵으로 화를 내곤 하거든요. 이를 다시 한번 반성하며…… 《동 카즈무후》라는 제목의 문턱만 넘으면 놀라운 흡입력으로 읽는 사람을 끌어당길 거라는 편집장님의 말을 남길게요. 


카타르시스에 대해 짧게 얘기할까 해요. 레터가 벌써 많이 길어졌는데, 저의 시시콜콜함이 허락되는 처음이자 마지막 레터이니 용서…… 해주세요. 과거 그리스 비극 작품에서 등장인물이 겪는 비극을 경험한 관객이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들이 사는 세상과 화해했을 때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다”라고 했다네요. 초록창에서 찾은 단어의 어원은 “응어리진 감정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되는 순간이고요.

 

《폭풍의 언덕》에서 삼대를 이어온 복수의 사슬을 캐서린과 헤어턴과 함께 끊어내는 장면이 있어요. 이야기의 후반부에 나오는데, 저는 그 문장을 읽을 때 카타르시스를 경험했답니다. 다정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요.

"저들은 두려울 게 없겠군.”

내가 창문 너머로 다가오는 그들을 지켜보며 투덜거렸다.

“둘이 함께라면 사탄이 군대를 모두 끌고 와도 용감히 맞서 싸우겠어.”


〈폭풍의 언덕〉 중에서

아, 그리고 정말 열렬히 응원했던 복수도 있어요. 《미친 장난감》의 주인공은 특정 대상을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지 않고 사회와 돈에 복수심을 발휘하는데요. 원고 중반부터는 그의 복수가 어떻게 치닫든 응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저는 분노를 무기력으로 만들어 가라앉는 사람이지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대리 만족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님. 저는요. 질투심과 복수심을 들키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칼날 위를 걷는 무당처럼 보여요. 언제 베일지 모를 발바닥으로 매 순간 살아야 하는 아슬아슬함은 너무 아찔하고, 또 복수심이 막 들끓을 때는 무당이 살을 날리는 장면이랑 겹쳐 보이거든요.


《밸런트레이 귀공자》의 두 주인공인 형과 동생이 서로 대화할 때 딱 그랬어요. 그들의 입속에서 끓어오르던 복수심에 저까지 얼얼함이 가시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동생의 복수심에는 슬픈 면이 있어, 솔직히 저는 동생을 지지했습니다. 형이 동생에게 하는 말 좀 보세요!

“내가 죽으면 너는 어떻게 되겠니?

내 아버지, 네 아내(너도 잘 알다시피 나를 사랑하는 네 아내 말이야)

심지어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네 아이까지 모두 내 죽음에 복수하겠지!

그 생각은 해봤니, 소중한 헨리야?”


〈밸런트레이 귀공자〉 중에서

저는 여름을 닫고 가을은 연다는 마음으로 첫 출근 했어요. 지난 계절의 옷을 입고 새로운 계절을 보내면 안 된다는 마음, 일종의 결의 같은 것도 품었답니다. 정말 오랜만의 출근이었거든요.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시작점에서 시즌3을 선보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한 해의 막바지로 접어든 시간 속에서 시즌3과 함께 지난 순간을 돌아보며 여닫을 것을 고를 수 있길 바랄게요.

 

휴머니스트 시즌 3. ‘질투와 복수’의 다섯 작품은 비정하고 축축한 삶의 단면들에 대한 거침없는 서사를 보여줍니다. 시즌3을 읽은 후 님이 지어 보일 표정이 궁금하네요. 블로그, 인스타그램, 온라인 서점, 트위터 등 어디든 좋으니 감상을 남겨주세요. 저는 환한 표정을 하고 찾아갈게요.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 황유원 옮김
동 카즈무후 마샤두 지 아시스 | 임소라 옮김
밸런트레이 귀공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이미애 옮김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 이재형 옮김
미친 장난감 로베르토 아를트 | 엄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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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시는 레터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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