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0 11호
 근황
 열흘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네요.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대통령상 받은 고기도 먹고 귀여운 전시회도 봤어요! 강아지 그림이 심플한데 넘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구입까지 했지 뭐예요. 어서 배송되면 좋겠어요>_<
 아무튼 지옥은 그냥 뭐 이번에 읽은 책이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고문하는 기분이었어요. 사실 책 선정은 별 생각없이 구입한 순서나 책장에 꽂힌 순이나 다운로드 받은 순서 등 아무튼 온갖 순서를 따르는 편인데 하필 지난 사형수 이야기에 이어 또 사형인데 좀 더 절망적인 그런.. 심지어 다른 책도 괴로운 그런... 책장 덮고 진짜 열이 올랐는지 얼굴이 엄청 뜨거웠어요ㅠ0ㅠ
 하야미 가즈마사 <이노센트 데이즈>
 早見和真 <イノセントデイズ> 新潮文庫/<무죄의 죄> 박승후 옮김 비채
 전 남친의 부인과 어린 두 딸을 방화로 살해한 죄로 사형을 앞둔 30세 여성 유키노의 삶을 나열하여 어떤 경위로 유키노가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따라가고,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2부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에요. 각 장의 제목이 '책임감 없는 어린 엄마에게 태어나' '양부의 폭력에 시달려' 대충 이런 식으로 판사가 판결문을 읽을 때 나오는 그 말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가 흔히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묘사할 때 나오는 말이 붙어 있어요. 이미 구성부터 괴롭지 않나요ㅠ0ㅠ
 지난번에 이어 또 얘기하지만 사형수가 나오면 사연 있는 범죄자거나 누명이나 자기 희생일 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범죄에 대한 진실 여부는 사실 초반에 이미 간접적..? 아니 직접적으로 알려주었다고 생각해요.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유키노가 이런 상태가 된 과정에 있어요. 앞서 말한 '불우한 환경'이 범죄의 시발점이 되었다면, 그런 환경을 만들어 냈으면서 익명 뒤에 숨어 진실을 밝히지도 않고 유키노가 죽기만 기다리는 가족, 친구, 애인 등의 주변 인물이야말로 죄가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어릴 때야 차치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남에게 의존만 하는 유키노는 정말 본인의 삶에 죄가 없는가? 그리고 뒤늦게 유키노를 구하러 나선 친구들의 행동은 정말 유키노를 위한 것인가? 등등을 생각해보게 한다는 거예요.
 유키노는 진짜 어릴 때부터 속된 말로 세상이 억까한다고 싶을 정도로 비극적인 인물이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나쁜 일은 다 겪는데요, 요코하마에서 물장사 하는 할머니의 남자로 한국인이 등장했을 때는 요코하마를 배경으로 한 모 야쿠자 게임이 잠깐 생각나서 그 동네는 진짜 동양 조폭은 다 모이는 동네인가 하고 잠깐 유체이탈해서 생각했네요. 왜냐면 이렇게 굴러들어온 남자가 더 어린 여자애가 있으면 무슨 짓을 하는지 그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요...ㅠ0ㅠ
 아무튼 위에 썼던 인물들의 문제 외에도 자수하여 진술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를 확신하는 사법 행태나 어린 소녀가 성장하며 꾸준히 폭력에 노출되어 왔는데 보호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 타인의 사정을 멋대로 단정짓고 보도하는 언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십처럼 소비하는 사람들 등을 서술해서 정말 쉽게 읽을 수는 없는 작품이었어요.
 특이한게 초반에 재판을 방청하는 게 취미인 여성이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도관 시험까지 보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이 사람이 수감된 유키노를 꾸준히 관찰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것과 실제 인간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리고 무엇도 선입견을 갖고 보이는 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것이 아마 작가가 말하려는 바가 아닐까 싶어요. 
 아시자와 요 <죄의 여백>
 芦沢央 <罪の余白> KADOKAWA/<죄의 여백> 김은모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딸을 키우던 남성은 어느 날 딸이 학교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어요. 슬픔을 견디지 못하던 그는 문득 딸의 일기를 발견하는데 거기에는 꾸준히 '절친들'에게 괴롭힘을 당해온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는 이야기예요. 이미 줄거리부터 괴로움.
 물론 딸이 학폭에 시달린 이야기라서 복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게 주된 쪽은 아니에요. 시점이 계속 바뀌는 방식으로 아빠는 물론이고 가해 학생의 이야기가 같이 전개돼서 세상 절박한 피해 가정과 재미로 한 일에 본인의 미래를 망칠까봐 그게 더 걱정인 가해 학생이 대비되어서 하.. 작가님.. 제발 사이다 좀.... 하고 저절로 빌게 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와중에 스쿨 카스트가 묘사되면서 두 명의 가해 학생 사이에서도 권력 관계가 드러나는데 이 관계가 마지막 결말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참 씁쓸했어요.
 이 작품의 특징은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외부의 관찰자가 등장하는데요. 아빠의 직장 동료예요. 이 여성은 표정이나 말에 숨은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알고 싶어 심리학을 연구하다 교수까지 된 인물이에요. 그래서 언제나 눈으로 직접 본 것으로만 판단하고 절대 다른 방식으로는 해석하지 않아요. 우리가 흔히 복수와 관련된 이야기를 볼 때 복수에 의미가 있는지, 혹은 가해자를 반성시킨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가해자만 편해지는 일이 아닌지 생각하게 되잖아요. 이때 이 여성은 외부인이기에 모든 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닌 상태로 피해자와 그 가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줘요.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어떤 것이 더 나은 방향일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근데 이 소설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몰린 상황에서 갑자기 충동을 못 이기고 성관계를 시도하는 묘사를 넣는 건 볼 때마다 이유를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어서 뇌가 자극을 추구하느라? 아니면 뭐 자포자기했다는 상징? 아니면 이성을 유지하는 것조차 아슬아슬해진 상태였다는 뜻? 대체로 이런 건 꼭 남자 캐릭터가 그러는데 여자 쪽은 동의 없는 폭행이나 마찬가진데 꼭 이러면 성모처럼 또 받아주거나 사실 나도 좋아했어..! 이러면서 합리화하는데 이런 장면이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유를 알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다음 모임 예고
 다음 책은 고문 주간을 지나 좀 가벼운 마음()으로 아키요시 리카코의 <혼활중독婚活中毒>을 읽어볼게요. 혼활은 결혼을 위한 활동인데 뭐 '만남 중독' 정도 될까요? 우리나라에는 <결혼기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작품이에요. 부제가 '운명적인 만남을 원하면 목숨을 걸어라'네요. 그럼 다음 모임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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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 번역가 이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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