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오월의 청춘, 그리고..

안녕하세요, 님의 깊이있는 찍먹을 위한! 영화 소스 디핑입니다. 🎬🍟 

12월에 보내드렸던 연말 특집에 이어서, 1월에는 한동안 소홀했던 한국 영화 특집 기획을 마련했어요. 이번 특집은 공통적으로 영화를 핑계로 한 그 이면과 바깥의 이야기에 주목해 보려고 해요. 디핑이 좋아하고, 또 잘 하는 이야기들이죠... 😇😎

두 번째로 보내드리는 소스. 2017년 개봉했던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로 풀어보았습니다.



🍟 화려한 휴가, 오월의 청춘, 그리고..

영화 <명량> 공식 포스터
최근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다루는 미디어 콘텐츠가 꽤 있었습니다. 그 시발점이라고 해 볼까요, 오늘 이야기 할 영화 <택시운전사>는 2007년 작 <화려한 휴가> 이후 약 10년만에 개봉하여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대중의 기억에 다시금 강하게 남긴 작품이에요. <택시운전사>가 그려낸 재현이 다른 작품들과 달랐던 점은 무엇일까요? 작년 <오월의 청춘>은 극찬받고 올해 <설강화>는 욕을 먹었던 까닭,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디핑🍟이 짧은 식견을 적어봤습니다.

 •  <택시운전사>의 '보여주기' 방식
 •  그 드라마(만) 욕 먹은 이유


<택시운전사>의 '보여주기' 방식
영화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세계에 알린 실제 외신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극중 그와 광주 행을 함께하는 만섭(송강호 분)은 당시 실제 개인택시 기사였던 김사복 씨를 모델로 한 인물이에요.

영화 <택시운전사> 공식 스틸컷
<택시운전사>가 여타 민주화운동 시기를 그려낸 작품들과 다른 점은 여러 가지입니다. 말씀드린 바처럼 단순히 당시의 역사적 배경만을 따온 것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인물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요. 그 외에도, 디핑🍟이 영화를 보며 생각한 의미있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영화가 우리에게 극을 '보여주는' 방식이에요.

<택시운전사>는 철저하게 관찰자 시점에서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베스트 드라이버 만섭이 이끄는 택시의 여정은 그들 스스로만 모를 뿐 출발부터 불안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이상 관객들은 예매도 전에 자신이 어떤 결말을 마주할 것인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앉게 되니까요. 또한, 일행의 광주행은 광주 시민들과는 달리 그들 각기의 분명한 사적 목적을 가지고 시작됩니다. 힌츠페터는 기자로서의 사명이 있었다 치더라도, 만섭에겐 분명 모처럼 걸린 장거리 운행 건수에 불과했을 거예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한 서울의 만섭은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었지요. 그런데 마주친 상황이, 그랬습니다.
기지를 발휘하여 삼엄한 군인들의 경계를 뚫고 들어간 광주에서 맞닥뜨린 모습들은 참혹했지만, 만섭은 시위대의 연대와 닮은 주먹밥을 먹으며 오열하면서도 결국에는 광주 바깥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만섭의 초록색 브리사 택시는 투쟁이 벌어지던 광주에서 끝끝내 철저히 분리된 제 3자이자 관찰자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택시운전사>의 신기한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이러한 분리의 장치가 오히려 '오늘날' 우리들의 입장과 닮아있다는 부분 말이죠. <택시운전사>는 만섭이라는 관찰자를 통해, 정치적 각성이 아닌 정서의 공유를 겪게 함으로써 관객들의 동조를 이끌어냅니다. 죽음을 불사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했던 수많은 익명의 광주 시민들이 있죠. 영화에서도 희생을 자처하며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를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인물들이 그려지고요. 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무엇을 해도 그 광주 시민들과 일체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를 통해 역사를 되새기고, 기억하고, 가슴 아파하는 우리는 결국 '일시적으로' 영웅이 되었다 깨어나는 택시운전사 만섭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우리가 영화 속 만섭의 여정에 더욱 몰입하고, 그와 같은 부채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의도된 한계에서 비롯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라는 극적인 매체가 가질 수 있는 한계이자, 역설적인 효과라고도 할까요. 🎬

🔍 디핑 TMI, 영화 속 실화 바로 알기!
영화 속에서 한 달 월세에 가까운 금액인 10만 원을 준다는 점에 솔깃한 만섭이 다른 기사의 손님이었던 힌츠페터의 콜을 가로챈 것으로 그려지는 것과 달리, 실제 인물이었던 김사복씨는 당시 광주 상황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힌츠페터와도 '동지적 관계'로 움직였다고 해요. 힌츠페터는 당시 독일 공영방송의 도쿄 특파원이었는데, 그가 한국에 입국하기 전부터 서울에서 광주로 그를 안내할 사람은 김사복으로 정해져 있었다네요. 5.18 이전인 1975년부터 사적으로 교류해왔었다는 큰아들의 주장도 있고요👉인터뷰 기사특히 일제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내 일본어와 기본적 영어 회화가 가능했던 만큼, 외신 기자들을 비롯한 외국인 손님들을 예약제로 받는 기사였대요. 힌츠페터와 같은 거목을 우연히(!) 태우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사실.

영화 <택시운전사>의 픽션과 팩트, 더 깊이있는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디핑🍟이 참고한 월간조선의 👉관련 기사를 남겨드려요.


그 드라마(만) 욕 먹은 이유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택시운전사>를 필두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그린 작품들이 많아졌다고 체감됩니다. 여기에는 민주항쟁의 기억과 메시지 자체를 그려내기 위한 정치적 재현작 또한 있지만(개인적으로 <1987>을 꼽아봅니다), 그 시기의 역사와 아픔을 배경으로 당시 민중들의 안타까운 삶과 사랑을 담아낸 일종의 시대물도 많았습니다.

드라마 <오월의 청춘>, <설강화> 공식 포스터
대표적으로 작년에 방영한 드라마 <오월의 청춘>이 있죠. 풋풋한 청춘 남녀의 로맨스가 시대의 아픔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슬픔에 함께 가슴아파 한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월의 청춘>은 실제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연상케 하는 무리한 설정을 고집하는 대신,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그려내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주제 영화인 <택시운전사>가 '주변에 설 수밖에 없는' 관찰자의 시각을 택하여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낸 점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방식이었죠.

반면에... 최근 뜨거웠던 또 하나의 드라마, <설강화>가 있었는데요. 해당 작품을 둘러싼 논란 자체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익히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남녀 주인공의 설정을 통해 북한 간첩과 신군부 정권을 미화하고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한다는 것이 요지였어요. 다만, "보고 이야기해라!" 라며 배짱 좋게 연속 방송을 밀어붙이던 방송사 측의 믿는 구석이 아예 없진 않았던 모양입니다. 5화 이후부터는 극중 여자주인공이 재학중인 호수여대 기숙사를 배경으로 하는 인질극을 중심으로 극의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당초 우려되었던 역사 왜곡 논란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나름대로 장르물으로서의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평입니다. (사실 저도 안 봐서 이렇다 말씀드리기가.. 😷.)

결국 올해의 문제작 <설강화>만이 욕을 먹었던 까닭은 어찌보면 속단이었습니다. 결과론적으로는 단편적인 설정만을 두고 극 전체를 넘겨짚고 우려한 셈이니까요. 실제로 최근 SNS나 각종 커뮤니티 등을 통해 강해진 여론의 권력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기검열하도록 작동하고 있다는 요지의 기사들도 다수 올라오면서, 역사 왜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줄어든 자리를 드라마를 '보지도 않고' 비판했던 대중을 지탄하는 목소리들이 다시 또 채우고 있기도 해요.

다만... 디핑🍟은, 그럼에도 대중문화에 있어 비난이 아닌 '비판'이란 존재 그 자체의 의의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창작물이 상상력이라는 이름을 들어 현실의 중요한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는 실화와 상관 없는 전혀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면 더욱 당연할 이야기가 되겠지요. 현재의 우리가 있게 한 시대의 의미를 그릇되게 만들 여지가, 맥락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역사를 그리는 작품의 설정이 실제와 얼마나 같고 다르며, 그것은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대중문화의 시작과 끝에 선 우리들이 당연히 논의할 만한 의제가 아니겠어요? 😇.

giphy @mighty-oak 제공
오늘의 소스, 모처럼 위험한(?) 생각들을 가득 담아봤는데요. <택시운전사><오월의 청춘>의 재현 방식이 무조건 옳았다거나, 그 드라마가 절대로 모든 면에서 잘못되었다는 의미의 글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뭘 잘 했다는 의미도 딱히 아닙니다만) 그보단 앞으로 제 2, 제 3의 <설강화>가 있게 된다면- 그 때에도 이러한 날카로운 시선이 마땅히 존재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방영 전, 최소한 여주인공의 이름과 배경이 되는 여대의 이름이 고쳐질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보지도 않고 물어뜯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일 테니까요.
⚖ 창작의 자유냐, 가치의 수호냐. 이 저울은 우리가 걸어온 역사의 길 위에서 다른 가중치를 따라야 함이 마땅할까요?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디핑🍟에게 오늘 소스를 읽고 느낀 감상과 의견을 남겨주세요. 다음 소스를 통해 디핑러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



오늘의 디핑 소스🍟는 여기까지입니다.
한국 영화 특집의 두 번째 편,
<택시운전사> 등 최근의 여러 작품들로 살펴본 역사적 재현에 대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다음 주에는 드디어! 2019년 한 해를 풍미했던 그 영화, <기생충>을 디핑에서 다룹니다.
다만 영화 얘기를 깊게 할 건 아니고... 마찬가지로 이상한 소재를 들고 올 거예요. 😎
힌트: "오스카는 로컬이잖아" 🎬🏆
그리고, 지난 주 소스에 남겨주신 소중한 피드백을 소개할게요.
•  많은 영화에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디핑에서 꺼낸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이야기가 반가웠다는 감사한 의견 있었고요,
•  CJ ENM의 사명이 CJ E&M으로 잘못 적힌 것 또한 지적해 주셨습니다 (새벽에 편집하다 졸았나봐요... 🌿🙏 더 꼼꼼히 보겠습니다!)
피드백에 힘입어, 앞으로도 당근 물고 채찍 줄넘기 하는(?) 디핑이 되겠습니다! 💪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또 뵙겠습니다 🍟💌
더 나은 소스 제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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