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한 선인장이 말썽이다. 빛, 통풍, 습도 모두 완벽한 조건 속에서 다른 선인장들은 예쁜 꽃을 피워내는데 반해 한 선인장만 요지부동 가만히 있다. 플랜트 톡 (Plant-talk)으로 식물과 얘기하다 보니 이 선인장은 지금 마음이 아픈 상태라는 걸 알아냈다. 동백나무 옆에 화분을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동백나무는 크고 튼튼한 줄기를 가지고 겨울 내내 빨갛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데 반해 자기는 작고 뾰족하고 보잘것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빛과 바람을 쐬어주고, 물을 흘려주어도 어차피 동백처럼 되지 못할 테니 자기를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심지어 나는 단 한 번도 동백나무와 이 선인장을 차별하고 대한 적이 없었지만 선인장이 불평하길 동백나무 줄기는 매일 다듬어 주면서 왜 자신의 가시는 다듬어 주지 않냐고 했다. "그야 너는 가시가 매력인 선인장이니깐 그렇지."라고 답하자 "그런 겉만 번지르르한 말은 믿지 않아."라며 가시처럼 따갑게 되받아쳤다.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 선인장이 미운 한편, 작아진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자신의 몸에서 자라난 꽃을 보면 조금 더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해 선인장에 건강하고 예쁜 꽃을 피워보았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선인장은 자신의 꽃을 다시 바닥으로 떨궈 버리고는 이전보다 더 시들해지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약해진 모습이 금방이라도 생명을 잃을 것 같았다. 놀란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희다에게 달려가 묻자 희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선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동백나무와는 떨어뜨려 놓자. 그리고 너의 진심이 담긴 위로도 약해진 선인장에게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다가가서 그것에게도 너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을 거야. 오늘 네가 억지로 피워낸 선인장의 꽃은 네가 만들어낸 일반적인 꽃이지, 그 선인장의 꽃이 아니야. 슬픔을 겪은 선인장이 앞으로 어떤 꽃을 피워낼지는 아무도 몰라. 아마 선인장은 자신만의 꽃을 찾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그 시간 속에서 겪어야 할 것들을 겪어내면서 결국 그 꽃을 피워낼 거야. 우리는 우리가 원래 하던 대로 빛, 바람과 물 그리고 믿음을 주며 기다릴 수밖에 없어."
나는 이제까지 마법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마음대로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것이 아마 내가 아끼는 것이라 더 그런가 보다. 희다의 말대로 조금은 차분히 기다려 보아야겠지. 선인장의 건강한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본다. 가시 위로 파랗고 건강한 꽃을 피워낸 모습. 기다림의 결과가 이렇게 마냥 해피엔딩일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도 선인장의 선택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