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지하철을 탄 날 / 아픈 선인장에게
처음으로 지하철을 탄 날

2020년 2월 1일

지구에서 빗자루를 타면 사람들의 이목이 모두 집중된다. 심지어 어제는 9시 뉴스에도 등장했다. 뉴스 앵커가 "오랜만에 돌아온 따스한 날씨에 마녀도 나들이를 나와 즐겁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라며 비행하는 내 모습을 허락도 없이 방송에 송출했다. 나들이는 무슨. 그때 나는 빗자루 위에서 떨어뜨린 블루투스 이어폰을 찾느라 매우 짜증이 난 상태였다. 역시 미디어는 함부로 믿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니깐. 


그런  시선을 몇 주째 받고 있자니 조금은 피곤해져서 오늘 처음으로 서울의 지하철을 타보았다. 내부의 커다란 창문 밖으로는 까만 벽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한강 다리를 건널 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미세먼지 때문인지 회색빛 안개뿐이었다.  사람들은 다 약속이나 한 듯이 핸드폰만 바라보거나 졸거나 둘 중 하나. 그 시간이 무료해진 나는 최근에 공부 중인 디지털 마법 연습 겸 창문 밖으로 산타모니카 해변의 영상을 10초 정도 틀어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핸드폰 화면에서 드디어 눈을 떼고 창문  밖을 보더니 "뭐야 뭐야?" , "전광판인가?" 하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핸드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여러 개 찍어대더니 SNS에 그것들을 공유했다. 지구인들은 언제부터 자신의 일상을 저렇게 열심히 공유하고 싶어 진 거지? 문득 '빗자루 타는 나의 모습은 이들의 SNS에 얼마나 공유되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방금 #빗자루마녀라고 검색해보았다. 으- 난 지구에 온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관련 게시물이 5000개가 넘게 뜬다. 아래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드는 오늘 밤.


  

   ☑️ 지하철이 비록 재미는 없어도 나의 프라이버시를 위하여 종종 타야 함  

   ☑️ SNS 인플루언서가 되어볼까? 빗자루만 올려도 팔로워 5000명은 모을 듯


아픈 선인장
2020년 2월 10일

정원에 한 선인장이 말썽이다. 빛, 통풍, 습도 모두 완벽한 조건 속에서 다른 선인장들은 예쁜 꽃을 피워내는데 반해 한 선인장만 요지부동 가만히 있다. 플랜트 톡 (Plant-talk)으로 식물과  얘기하다 보니 이 선인장은 지금 마음이 아픈 상태라는 걸 알아냈다. 동백나무 옆에 화분을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동백나무는 크고 튼튼한 줄기를 가지고 겨울 내내 빨갛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데 반해 자기는 작고 뾰족하고 보잘것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빛과 바람을 쐬어주고, 물을 흘려주어도 어차피 동백처럼 되지 못할 테니 자기를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심지어 나는 단 한 번도 동백나무와 이 선인장을 차별하고 대한 적이 없었지만 선인장이 불평하길 동백나무 줄기는 매일 다듬어 주면서 왜 자신의 가시는 다듬어 주지 않냐고 했다. "그야 너는 가시가 매력인 선인장이니깐 그렇지."라고 답하자 "그런 겉만 번지르르한 말은 믿지 않아."라며 가시처럼 따갑게 되받아쳤다.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 선인장이 미운 한편, 작아진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자신의 몸에서 자라난 꽃을 보면 조금 더 밝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마법을 사용해 선인장에 건강하고 예쁜 꽃을 피워보았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선인장은 자신의 꽃을 다시 바닥으로 떨궈 버리고는 이전보다 더 시들해지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약해진 모습이 금방이라도 생명을 잃을 것 같았다. 놀란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희다에게 달려가 묻자 희다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선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동백나무와는 떨어뜨려 놓자. 그리고 너의 진심이 담긴 위로도 약해진 선인장에게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다가가서 그것에게도 너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을 거야. 오늘 네가 억지로 피워낸 선인장의 꽃은 네가 만들어낸 일반적인 꽃이지, 그 선인장의 꽃이 아니야. 슬픔을 겪은 선인장이 앞으로 어떤 꽃을 피워낼지는 아무도 몰라. 아마 선인장은 자신만의 꽃을 찾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그 시간 속에서 겪어야 할 것들을 겪어내면서 결국 그 꽃을 피워낼 거야. 우리는 우리가 원래 하던 대로 빛, 바람과 물 그리고 믿음을 주며 기다릴 수밖에 없어."


나는 이제까지 마법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마음대로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것이 아마 내가 아끼는 것이라 더 그런가 보다. 희다의 말대로 조금은 차분히 기다려 보아야겠지. 선인장의 건강한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본다. 가시 위로 파랗고 건강한 꽃을 피워낸 모습. 기다림의 결과가 이렇게 마냥 해피엔딩일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도 선인장의 선택일 것이다. 

희다가든   |  heedagarden@naver.com  |   수신거부 Un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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