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의 노력을 의심하거나 난임을 가볍게 이야기하는 순간, 혀끝까지 이 질문이 차오른다. 가끔은 억울하다. 가운만 입고 작은 골방에 누워 시술 순서를 기다릴 때의 쓸쓸함. 아침저녁으로 숙제하듯 질정을 넣을 때의 귀찮음. 피 뽑은 자리의 지혈 밴드를 뗄 때의 찌릿함. 정기적으로 챙겨 먹어야 할 약을 깜빡했을 때의 가슴 철렁함. 이 모든 과정을 오직 내 몸으로만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아를 치밀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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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넌 지금까지 한 게 뭔데?”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전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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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우리는 크게 다퉜다. 남편은 시험관 시술 중에도 집안일을 하고, 무알콜 맥주를 찾고, 티 한 잔을 마시면서도 임신에 영향이 있는지 찾아보지 않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물론 내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의심당했을 땐 정말 화가 났다. 같이 챙겨주면 될 것을, 꼭 내가 무책임한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했으니까. 그래서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빠 넌 아이를 갖기 위해 뭘 하고 있는 건데?” “맞아. 그냥… 하기 싫어서 미뤘어.” 이기적이고 뻔뻔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땐 그랬다고 했다. 얄미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솔직함이 조금 고마웠다. 이렇게 빨리 인정해버리니, 나 역시 내 잘못을 조금 더 쉽게 인정하게 됐다. 맞아, 우린 완벽한 인간들이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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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카페나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이야기가 있다. 시술날 정액을 채취하는 남편들이 얄밉다는 것. 아내는 온몸으로 시술을 감당하는데, 남편은 골방에서 한 번으로 역할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다. 그런데 남편에게 물어보니 생각이 달랐다.
“별 감흥 없어. 진짜로.” 오히려 현자 타임이 더 심하게 온다고 했다. 골방 같은 공간에서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묘한 기분, 수치가 안 좋아서 다시 하라고 할까 봐 괜히 더 긴장된다고.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남편을 내 기준으로만 재고 있었던 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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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생각하는 자신의 역할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주사 잘 놓기. 두 번째, 와이프의 변덕 견디기. 마지막으로 가만히 버티기. 뭐…? 변덕…? 나를 공격하는 건가? 남편의 설명을 들어보니 꼭 나쁜 뜻만은 아니었다. “너는 어쩔 때는 아이를 갖는 것에 의욕적이다가도, 어쩔 때는 낙담하잖아. 나는 그걸 덜 하려고 하는 거지. 나라도 항상 잔잔하게 있으려고. 낙담해 있는 사람 옆에서 ‘힘내, 파이팅!’ 하는 것도 좀 그렇고… 시술이나 약은 내가 겪는 게 아니니까.” 난임 과정을 10으로 봤을 때 비중을 나눠보자고 했다. 남편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9대 1. 너가 9.” 그래서 물었다. “그럼 역할 바꿀 수 있어?” 남편은 바로 답했다. “아니. 나는 지금 내 1을 아주 잘하고 있거든.” 얄미웠다. 그런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1을 끝까지 맡아줄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비중은 1일지 몰라도, 남편이 말한 그 세 가지 역할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남편 역시 난임의 당사자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어쩔 때는 남보다 더한 남이 되기도 한다. 완벽한 이해가 아니어도 괜찮다.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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