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 시인의 시집을 가져왔어요. 안녕하세요! 우비☔예요.
오늘은 일본 시인의 시집을 가져왔어요. 시인 미야자와 겐지는 교육자이자 동화작가로도 활동했는데요. 특히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의 원작인 『은하철도의 밤』을 쓴 장본인이기도 해요.🌌『봄과 아수라』는 그가 생전 출판한 유일한 시집인데요. 출판사 읻다에서 심혈을 기울여 번역 출간했답니다.
그럼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만나러 가 볼까요?
※파랑 칸 안에 있는 문장은 책의 구절을 인용한 문장입니다!
※추천 노래를 들으며 뉴스레터를 읽어보세요! 뉴스레터의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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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봄과 아수라
작가: 미야자와 겐지
출판사: 읻다
장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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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들은 스물두 달이라는
과거로 감지된 방향으로부터
종이와 광물질 잉크를 엮어
(전부 나와 함께 명멸하고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것)
지금까지 이어온
빛과 그림자 한 토막씩을
그대로 펼쳐놓은 심상 스케치입니다.
-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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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가 시집의 서문으로 적어놓은 시예요. 맨 마지막 행에 나온 말 그대로 이 시집은 ‘심상 스케치’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세상이 겐지의 내면에서 어떤 풍경으로 나타나는지를 언어로 스케치한 것이죠.
고이와이 농장, 히가시이와테 화산, 오호츠크해 등 구체적인 장소에 대한 시가 있는가 하면 무지개, 구름 등 자연물에 대한 시가 있기도 해요. 자연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공물도 종종 등장하는데요. 만물을 경이로운 풍경으로 보고 느끼는 것에서 겐지의 시가 출발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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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것은 오직
끝없이 펼쳐진 구라카케산의 눈뿐입니다
들판도 숲도 엉망으로 망가져
조금도 의지할 것이 없기에
그야말로 효모처럼 생긴
아슴푸레 흩날리는 눈보라지만
실날같은 희망은
구라카케산의 눈뿐입니다
(하나의 고풍스러운 신앙입니다)
-구라카케산의 눈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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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자연의 풍경은 그에게 숭배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정도예요. 겐지는 “구름은 쉬이 변하는 카복실산(38p)”과 같이 과학 용어를 통해 자연물을 정의하려 하곤 하는데요. 하지만 경탄할 만큼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감동은 자연 현상을 과학적 산물 이상의 무언가로 만들죠. 자연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숭고함이 그의 시에 잘 나타나 있어요.
그에게 있어 인간은 풍경의 일부이고, 현상의 결과에요. 우주에 속한 나머지 존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죠. 그는 때로 인간을 풍경처럼 묘사하는가 하면 자연물에 인격을 부여하기도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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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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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의 리메이크 버전으로 더욱 알려지게 된 양희은의 <가을 아침>이란 곡이에요. 새들의 노랫소리에 잠을 깨면 창문 가득 들어오는 햇살과 서늘한 냉기가 맞이해요. 창밖엔 학교 가는 아이들이, 집안에는 밥 짓는 어머니와 게으른 아들이 있죠. 파란 하늘과 고추잠자리 하나,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 등의 자연물과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가을 아침의 총체적인 풍경이 그려져요.
이 모든 풍경을 화자는 커다란 기쁨으로 받아들여요. 어투는 조금 다를지언정, 바라보는 풍경과 그 풍경을 대하는 자세가 『봄과 아수라』 속 시들과 유사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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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의 시를 읽다 보면 그가 보는 풍경이 상상돼요. 시인의 묘사와 비유를 따라 시의 대상이 하나 둘 생명력을 얻고 재현되죠. 조금씩 움직이는 풍경화를 보는 기분이에요.
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 풍경을 조금이라도 기록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요. 간단하게는 사진도 찍어보고, 영상을 남겨보는 것에서 조금 공을 들이면 일기나 시를 쓰기도 해요. 하지만 언제나 풍경 그 자체는 물론이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경이가 잘 담기지 않는 거 같아 아쉬워하곤 하는데요. 겐지의 시를 읽으면서 이 시인처럼 풍경을 수집할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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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도 다소 해쓱하게
오그라진 산맥 흰 구름 위에 걸려
열차 창문 모서리 한 부분이
프리즘 되어 햇살을 반사하며
초원에 스펙트럼을 던진다
(구름은 아까부터 유유히 흐른다)
-사할린 철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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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라는 소재로 산맥과 열차 창문을 연결하며 원근감을 자유자재로 다뤘어요. 독자가 자신이 본 풍경을 위화감 없이 함께 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 걸 보며 감탄했어요. 열차 창문 모서리에 비친 햇빛까지 놓치지 않는 시인의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인 부분이기도 하죠.
큰 풍경에서부터 아주 작은 자연물까지 들여다보는 시인의 관찰력과 그 모든 것들로부터 계속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느끼는 시인의 감각, 그리고 어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표현력이 이 시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의 스케치 능력이 빛을 발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인용하며 이번 주 뉴스레터 마무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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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로
밝고 우아한 안개입니다
자작나무도 싹이 트고
메귀리도
농가의 지붕도
서성이는 말도 그 모든 것들이
환하고 눈부셔
(잘 아시겠지만
햇살 아래 청색과 금색
낙엽송은
확실히 분비나무를 닮았습니다)
너무 눈이 부셔서
공기조차 살짝 아플 지경입니다
-우아한 안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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