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온빛 레터 플러스>가 궁금한 독자를 위해~

특별판(2022년 1월 14일)
안녕하세요 님, 가온빛 레터 309호에서 '나의 인생 그림책 설문 이벤트' 참가자 전원에게 <가온빛 레터 플러스 특별판>을 12월 말에  보내드린다고 했었는데 조금 늦어져서 오늘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벤트 참가자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가온빛 레터 구독자 모두에게 보내드립니다(대신 이번 주 가온빛 레터는 한 주 쉽니다).

<가온빛 레터 플러스>는 한 달에 두번 보내드리는 이메일로만 볼 수 있는 유료 뉴스레터입니다(가온빛 레터 플러스 구독 안내 보기). 이번 특별판에서는 16호까지 발행한 콘텐츠들 중에서 일곱 가지 이야기를 발췌해서 보내드립니다. 혹시나 매번 일곱 편씩 발행하나보다 생각하시는 분 계실까봐 미리 말씀 드리자면 <가온빛 레터 플러스>는 매 호마다 2~4건의 콘텐츠가 실립니다.

📖 목차
  1. 칼데콧 메달 vs 우리 그림책
  2. 독자와 소통하는 그림책
  3. 무명으로 살아가기
  4. 그림책으로 만난 사람 : <꼬맹이 언니네> 운영자 천신애 님
  5. 작가 이야기 : 알로이스 카리지에, 자연과 아이들의 친구
  6. 그림책으로 세상을 읽다 : 정의와 공정
  7. 재미있는 그림책 생각하는 그림책
각 콘텐츠별로 발행했던 호수와 발행일 각각 표시해두었습니다.

※ <가온빛 레터 플러스>는 스마트폰에서 보실 때 가장 보기 좋습니다.
※ 본문 내용 중에 보라색 굵은 글씨는 링크가 걸려 있다는 뜻입니다.

칼데콧 메달 vs 우리 그림책
#1. 2021/03/15

우리는 되고 미국은 안 된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칼데콧상과 같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그림책상이 있다면, 칼데콧 수상작들이 우리나라 그림책들과 경쟁해서 그 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미국 시민권이라는 기준만 없다면 우리 그림책이 칼데콧상을 거머쥐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최근 들어 칼데콧상은 점점 더 미국스러운 그림책들에게 메달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미국적인 역사와 문화, 인물 등에 많은 무게를 실어주고 있죠. 반면 우리 그림책은 가장 한국적인 주제나 소재를 가지고도 특정 국가나 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작품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열광하는 것만큼 좋을까?
검색엔진에서 가온빛으로 유입되는 검색어 중 가장 많은 것은 바로 '칼데콧상'입니다. 매년 1월말 경에 '칼데콧상 수상작 발표' 글을 올리면 조회 수가 훌쩍 올라갑니다. 그렇게 열광적으로 찾아보는 칼데콧상 수상작, 막상 보고나면 얼마나 만족스러울까요?

2020년 칼데콧 수상작들을 보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2020년 칼데콧상 수상작
Winner 
우리는 패배하지 않아(콰미 알렉산더, 카디르 넬슨 / 보물창고 / 2020) 

Honor
  •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리처드 T. 모리스, 르웬 팜 / 소원나무 / 2020)
  • 위대한 가족의 고향(켈리 스탈링 라이언스, 다니엘 민터 / 꿈터 / 2021)
  • Double Bass Blues(Andrea J. Loney, Rudy Gutierrez)

2020년 칼데콧상 수상작 네 권 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추천해준다면? 저라면 고민 길게 하지 않고 바로 "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를 추천할 겁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보는 이에 따라 저마다의 관점에서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니까요. 

반면 나머지 세 권은 가슴보다는 머리로 '아 좋은 그림책이구나!', '칼데콧상 받을만 하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림책입니다. 이 책들이 영 별로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메달을 수상한 "우리는 패배하지 않아"는 국내 독자들에게도 이미 친숙한 카디르 넬슨의 압도적인 그림과 빈틈 없는 구성으로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작품입니다. 다만 존 클라센, 맥 바넷, 안녕달, 이지은, 조원희 등의 작가들의 그림책을 읽고 나서의 반응은 안 나온다는 것 뿐입니다. 
'캬~ 역쉬! ○○이네!' 같은 반응 말입니다.

칼데콧상 수상작으로 손색 없는 우리 그림책들


위 네 권의 그림책들은 [2020 가온빛 추천 그림책 Best 101]에 선정된 54권의 우리 그림책 중에서 제 생각에 위의 칼데콧상 수상작 네 권보다 더 재미있고 우리가 훨씬 더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른 작품들입니다. 여러분 각자의 취향대로 고르더라도 54권 중에서 칼데콧상을 받은 네 권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그림책을 선택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우리 그림책 상이 있으면 나아질까?
한국출판문화상이나 황금도깨비상 등 [국내 그림책상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공모전 성격이고, 그나마 독립적인 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출판문화상은 '어린이 청소년' 부문으로 뭉뚱그려서 시상을 하고 있습니다. 유아 도서에서 청소년 도서까지 통틀어 단 한 권의 수상작을 선정한다는 건 누가봐도 이상한 일이죠.

그림책만을 대상으로 좋은 그림책을 선정해서 시상하는 우리 그림책 상이 제정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작가들이 만든 우리 그림책을 그 대상으로 하고, 기존의 분류가 아닌 그림책에 특화된 분류에 따라 각 분야별 수상작도 선정하고, 선정 과정에서부터 시상식까지가 하나의 그림책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는 그림책 상. 그런 상이 있다면 우리 독자들이 더 이상 외국의 상을 수상한 그림책에 열광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2025년까지 아무도 우리 그림책 상을 만들지 않는다면 가온빛이 하렵니다! 🙄
💬 오스카처럼 칼데콧도 로컬일 뿐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그랬었죠. 오스카는 그저 로컬일 뿐이라고. 칼데콧도 마찬가지입니다. 봉감독이 에둘러 말한 '로컬'이란 표현에는 '니네는 니네가 쌓은 장벽에 스스로 갇힌 애들이야'란 뜻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하나 더 '내가 그걸 허물어 버렸지!'라는 뜻도 담겨 있을 테구요. 결국은 우리 그림책도 전혀 다를 것 없으리라 장담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오스카를 휩쓸었듯이 우리 그림책들이 칼데콧상을 받을 날이 곧 오리라는 것을.

독자와 소통하는 그림책
#5. 2021/05/12

독자와 소통하는 작가
어떤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아이들만의 비밀의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그림책 아닐까요? 그 문은 "나니아 연대기"의 벽장처럼 상상의 세계로 연결되는 문일 수도 있고, 상처로 인해 굳게 닫혀 버린 아이의 마음을 열어줄 치유와 위로의 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그림책과 작가에게 있다는 것이고, 이게 바로 작가가 독자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맥 바넷이 '좋은 책이 비밀의 문인 이유'라는 제목으로 2014년에 진행했던 TED Talk에 그 내용이 아주 잘 담겨 있습니다. 맥 바넷은 강연 후반에 자신의 그림책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맥 바넷, 애덤 렉스 / 다산기획 / 2010)를 이용한 아이들과의 특별한 만남에 대해 소개합니다.

책표지에 30일간 흰긴수염고래 무료체험 광고를 냈는데 사연을 담은 편지와 함께 반송용 우표를 보내주면 흰긴수염고래를 보내준다는 내용입니다. 사연을 보낸 아이들에게는 노르웨이에 있는 법률회사의 명의로 통관 문제로 고래가 도착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고래 전화번호를 알려줄테니 고래가 걱정되면 직접 전화를 걸어서 메시지를 남겨도 좋다는 등의 내용으로 답장을 보내줍니다. 그리고 니코라는 아이가 무려 4년 동안 25번이나 '랜돌프'라고 직접 이름 붙여준 자신의 고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니 재미난 아이디어 하나로 맥 바넷은 최고의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된 셈입니다(강연 영상 중에 고래에게 안부를 묻거나 수다를 떠는 니코의 실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엄마 말 안 듣고 말썽만 피우면 흰긴수염고래 데려다 돌보게 한다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 맥 바넷은 흰긴수염고래 무료체험 광고를 통한 독자들과의 소통으로 2차원의 그림책을 3차원의 현실 속으로 꺼내놓았습니다. 고래 친구 랜돌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동안 니코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 천진한 목소리를 들으며 작가 맥 바넷은 또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일방적으로 작가가 독자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작가가 서로의 감동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그림책이 갖는 매력 아닐까요? 

독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그림책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의 내용도 재미있긴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니코와 같은 독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맥 바넷이 이벤트를 통해 보여준 것 아닐까요? 그 이벤트가 없었다면 빌리에게 내려진 흰긴수염고래를 돌봐야 하는 거대한 형벌은 그냥 그림책 속에서나 가능한 시시껄렁한 상상 한 조각으로 끝나고 말았을런지도 모릅니다.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에 아이들은 나도 곧 흰긴수염고래를 돌봐줄 수 있다는 행복한 설렘을 만끽할 수 있었고 수많은 니코들의 진짜 이야기들은 다시 작가의 상상력을 재충전함으로써 더 기발하고 재미있는 그림책을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어줄 겁니다. 
💬 뉴미디어 발달로 저렴해진 소통 비용
맥 바넷이 흰김수염고래 30일 무료체험 광고를 냈던 2009년에 제가 위에서 예로 든 이벤트들을 하려고 했다면 비용이 제법 들었을 겁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기술적으로도 매끄러운 구현은 쉽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이벤트를 열어도 참여율이 저조했을 수도 있구요.

하지만 지금은 뉴미디어 시대. 작가와 출판사에게 의지만 있다면 아주 간편하게 독자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거창한 이벤트도 필요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이 날 테니까요.

무명으로 살아가기
#11. 2021/08/11

친구 : 가온빛은 뭐 하는 곳이야?
   나 : 그림책 놀이 매거진이야.
친구 : 그러니까 그게 뭐 하는 거냐구?
   나 : 그림책 소개하지. 좋은 그림책. 
친구 : 그게 돈이 돼? 
   나 : ......

가까운 친구들이 잊을만 하면 묻곤 합니다. 대화는 늘 저 내용에서 더 벗어나지 못하고 몇 년째 제자리만 맴돕니다. 몇 마디 더 보태지는 게 있다면 '기왕 하는 건데 사업계획 잘 짜서 돈이 되게끔 하는 게 좋지 않아?'라던가 '설명 좀 잘 해봐. 또 알아 내가 투자할지.' 정도? 50대 아재들에게는 그림책도 그림책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도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왜 공을 들이나 싶겠죠.

"
짜장면집에서 나눠준 포도송이에 스티커 열심히 붙이던 생각 나? 포도송이 가득 채워서 탕수육 공짜로 먹던 기분. 국민초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은 참잘했어요 도장만 받았는데 내 공책엔 참잘했어요 도장 밑에 별 도장이 세 개나 찍혀 있을 때의 기분. 가끔씩 내가 쓴 글을 읽은 소감이 댓글로 달렸을 때 기분이 딱 그래. 뉴스레터 잘 보고 있다고, 금요일만 기다린다고 하는 독자들의 답장 받을 때 기분이 꼭 그렇다고!
"
물론 자본주의에 찌들고 가족 부양에 딴 생각 할 틈 없이 살아온 50대 아재들은 이렇게까지 얘기해줘도 잘 모릅니다. 그나마 SNS에 재미붙인 친구들은 좀 공감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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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직원들이 일손이 부족하다며 알바를 뽑아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직원을 차라리 한 명 더 뽑는 게 낫지 않냐고 해도 한사코 알바면 된다고 해서 시간제 근무자를 채용했었습니다. 아마도 자기들이 맘 편하게 허드렛일 시킬 사람이 필요했던 거겠죠. 그렇게 뽑은 친구가 늘 표정이 밝고 일도 잘 해서 다들 좋아했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 친구가 정직원 같고, 정직원들이 오히려 알바 같이 느껴질만큼... 반년 쯤 지나 그 친구가 업무에 숙달된 후로는 직원들 조차 가끔씩 서로의 포지션을 혼동할 정도로 말이죠.

다들 좋아해서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팀장에게 일렀더니 안 그래도 제안을 했었는데 본인이 원하질 않는다고 하더군요. 웃기는 친구네, 성실한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이유가 궁금해서 불러다 직접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음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곡도 하고 가끔씩 노랫말도 쓰기도 하고 생활비 벌기 위해 축가 알바도 하고 근무 시간이 맞으면 음악과 상관 없는 일이어도 이렇게 시간제로 근무하기도 하고. 그땐 인디가수가 뭔지 버스킹이 뭔지도 몰랐었기에 주말이면 거리에 나가 같이 음악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연도 하고 직접 만든 CD도 판다는 얘기들이 딴 세상 일 같더라구요. 제 친구들이 저에게 하는 질문을 저도 똑같이 그 친구에게 했었습니다. '그렇게 길에서 노래하면 CD 몇 장이나 팔려?', '왜 기획사 같은 데에 오디션 안 봐?' 같은...

"
많이 팔릴 때도 있고 적게 팔릴 때도 있죠. 몇 명 안 되지만 트위터 보고 새 노래 들으러 찾아와주는 사람들, 간식 놓고 가는 사람들, CD 사주는 사람들 있으면 '아~ 내가 이래서 음악한다니까~' 해요. 생활비는 알바하면서 아끼고 살면 그럭저럭 지낼만 해요. 넉넉하진 않지만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게 좋아요. 유명해지는 게 꿈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음악을 내가 하고 싶은만큼만 하는 게 꿈이에요.
"

그 친구 이야기를 전부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구나 싶어서 부러웠습니다. 갓 마흔 살이었던 제가 20대 초반의 알바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도 꼭 한 번 이 친구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그래도 그 때만큼 부럽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참잘했어요 도장 찍어주고 칭찬 스티커 붙여주는 독자분들이 있으니 남 부러워할 틈도 없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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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빛은 무명입니다. '가온빛' 하고 이름을 대면 누구나 다 알만한 그런 곳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온빛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그런 무명은 아닙니다. 저 멀리 강원도나 경상도에서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유명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가온빛지기들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네이버나 구글에서 그림책 제목으로 검색하면 대부분 첫 페이지에 가온빛이 보이더라구요. '그림책 강연'을 검색해도 마찬가지구요. 저희가 검색엔진에서 그림책이나 그림책 강연을 검색해 볼 일이 거의 없다보니 모르는 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왠지 좀 멍청해 보이는 건 왜때문일까요? 😅

보통 강연 의뢰는 전에 진행했던 곳에서 소개해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게 연락 주시는 분들은 어디 소개로 연락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그런 언급 전혀 없이 책놀이 프로그램 문의하신 곳이 있어서 가온빛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어봤더니 '검색하니까 제일 위에 나오던데요'라고 하셔서... 검색해봤더니 정말 그렇더라구요. 오~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알게 된 이선주 에디터가 다른 에디터들에게 단톡을 보냈고, 다 같이 '오~' 했다는... 그리고 잠시 후 또 다 같이 살짝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가온빛 홈페이지 방문자 수 급증하면 어떻게 하지? 강연 의뢰 너무 많이 들어오면 어떻게 다 하지? 어떤 건 하고 어떤 건 못한다고 무슨 기준으로 결정하지? 가온빛 레터 플러스 구독자 300명 넘으면 더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평소와 똑같았습니다. 휴가 시즌에 방문자 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것 마저도 똑같았구요. 가온빛지기들은 다들 안심했구요.

십여 년 전의 인디음악하는 알바가 그랬던 것처럼 가온빛도 가온빛지기들이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수준으로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예 욕심이 없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세 명의 에디터 모두 전업으로 가온빛에 매달릴 수 있을만큼은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다만 갑작스레 유명세를 타기보다는 좋은 웹사이트와 뉴스레터로서 좋은 독자들에게 서서히 저희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속도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온빛지기들은 오늘도 무명다운 궁리를 하고들 있습니다. 구독자가 폭증하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가온빛지기들 본인이 즐겁게 매달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내려구요. 그리고 그런 무명스러운 아이디어에 관심 갖고 지지해주는 좋은 독자들이 또 한 분 늘어나길 바라면서요. 

가온빛의 무명으로 살아가기 많이들 응원해주세요! 

그림책으로 만난 사람
<꼬맹이 언니네> 운영자 천신애 님
꼬맹이 언니네 블로그 : https://blog.naver.com/cjstlsdo
꼬맹이 언니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hinae.cheon
꼬맹이 언니네 뉴스레터 : https://blog.naver.com/cjstlsdo/222480153255

#13. 2021/09/08

작가와의 만남, 강연, 전시나 공연, 공모전 등 그림책 관련 프로그램들이 다양하고 풍성해졌습니다. 그림책 관련해서 현재 진행중이거나 곧 시작할 모든 프로그램들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 님은 알고 있나요? 그림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만난 사람>의 첫 번째 주인공은 네이버 블로그 <꼬맹이 언니네>의 운영자 천신애 님입니다.

<꼬맹이 언니네>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꼬맹이 언니네>는 강연, 특강, 공모전, 작가와의 만남, 북토크, 전시, 공연, 굿즈 등 그림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네이버 블로그입니다. 2021년 1월부터 매주 일요일에 뉴스레터도 발송하고 있습니다.

운영자 본인 소개 간단히 부탁 드려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꼬맹이언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꼬맹이 언니네>를 운영하고 있는 천신애입니다. 저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림책 관련 정보 큐레이터’가 아닐까 해요. 그림책 캐릭터 인형을 모으고 있는 컬렉터이자 그림책을 읽고 보는 독자, 그림책을 누리는 향유자이기도 합니다. 

<꼬맹이 언니네> 블로그 시작이 2007년 7월이더라구요.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하셨는데 그동안의 블로그 히스토리나 콘텐츠 변천사에 대해 정리해주실 수 있을까요?
<꼬맹이 언니네>는 크게 놀이, 유아교육, 그림책 세 가지 분야의 콘텐츠를 다루고 있습니다. 블로그 초기에 다뤘던 놀이 교육 콘텐츠는 ‘아빠랑 아이랑 친구되는 행복한 놀이’ 카테고리에서, 유아 교사 및 원장님들을 위한 유아교육 관련 정보 콘텐츠는 ‘유아 교육 정보 큐레이션 서비스’ 카테고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림책에 관한 모든 정보들을 ‘그림책과 관련된 모든 정보’ 카테고리에 열심히 담고 있는 중입니다.

‘아빠랑 아이랑 친구되는 행복한 놀이’는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만든 콘텐츠들인데요. 2007년에 “아빠랑 아이랑 친구 되는 행복한 놀이”(그림 이주연 / 행복한나무 / 2007)를 출간하면서 책과 관련된 소식들, 책 속에 소개된 놀이 콘텐츠들을 주로 소개했었습니다.

‘유아교육정보 큐레이션 서비스’에는 유아교육과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네이버 카페 <유큐>를 운영하면서 수집했었던 정보들이 공유되어 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그림책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그림책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찾은 수많은 정보들을 분류하고 필터링해서 ‘그림책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담아내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올해 1월부터는 뉴스레터도 시작하셨는데 뉴스레터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블로그 특성상 정보를 새로 업데이트할 때마다 기존에 올린 정보들은 계속해서 뒤로 넘어가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이번 주에 확인해야 할 정보들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그래서 2018년 10월 4주부터 <이번 주 그림책 관련 정보>라는 메뉴를 따로 만들어두고 매주 확인해야 할 정보들을 모아 놓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다 매달 참석하고 있는 그림책 모임에서 정보 활용의 변화에 대한 의견들을 주셔서 디자인이나 실용적인 측면에서 좀 더 보기 좋은 형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온빛과 이야기꽃 출판사의 뉴스레터를 받아보면서 제 콘텐츠의 특성상 뉴스레터 형태가 가장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스티비’라는 메일링 서비스를 알게 되어서 2020년 12월에 열심히 준비해 올해 1월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그동안 제 직관으로 선택하고 공유하던 정보들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어요. 뉴스레터 발송 후 오픈율과 클릭률 등의 통계 자료 분석을 통해 저의 직관에 독자들의 반응이나 피드백을 반영시키면서 체계적으로 객관성을 높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덕분에 정보에 조금 더 민감해진 것 같아요.

뉴스레터 한 회분에 정리된 자료의 양이 엄청난데 일요일에 발송하기 전까지 일주일간 어떤 일정을 보내야 이게 가능한 건지 궁금합니다. 자료 수집부터 분류, 필터링, 정리에 이르기까지 뉴스레터 제작 과정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1. 한 주 동안 끊임 없이 정보를 찾고, 찾은 정보는 블로그에 보기 좋게 정리해서 각 카테고리별로 업데이트를 합니다. 이때 해당 정보에 대한 필수 내용을 빠짐 없이 체크해서 정보를 활용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궁금한 점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2. 매주 토요일에 신청이 마감된 정보를 빼내고 이번 주에 꼭 체크하거나 신청해야 하는 정보들을 적소에 배치하는 등 일주일간 업데이트 되었던 정보들을 다시 분류 및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3. 각 정보들을 뉴스레터 템플릿 규격에 맞춰 이미지로 만들고, 표지역할(뉴스레터 맨 위에 들어가는 그림)을 할 그림책의 그림을 골라서 대표 이미지 작업을 합니다. 중간중간에 더 알리고 싶은 정보는 직접 배너를 제작하거나 해당 업체 또는 기관에 제작 요청을 하기도 합니다.

4. 뉴스레터 초안 작업 후 다시 링크가 정확하게 잘 걸렸는지 하나씩 모두 클릭해서 확인을 하고 아무 이상이 없다면 매주 일요일에 발송하게 됩니다.

매주 그림책 한 권씩 골라서 뉴스레터의 표지로 사용하던데 표지에 들어갈 그림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선정된 그림책 속에서 단 한 장의 그림은 어떻게 선택하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기준은 없고요. ^^ 매주 발행하는 뉴스레터다 보니 계절과 그 즈음의 이슈에 따라 거기에 맞는 그림책을 선정하는 경우도 있고, 신간 중에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나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표지로 사용할 이미지는 매번 출판사에 알리고 요청해서 이미지를 받을 수는 없어서 온라인 서점에 홍보용으로 노출된 이미지들 중에서 고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꼭 소개하고 싶은 장면이 없는 경우도 더러 있어서 살짝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뉴스레터를 보면 ‘꼬맹이 언니 추천 정보_이번 주 추천 정보예요!’ 코너가 있던데 어떤 기준으로 추천 정보를 선정하시나요? 프로그램 주최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꼬맹이 언니 추천 정보’에 실릴 수 있는지 살짝 힌트 좀 부탁드립니다.
이번 주에 실을 많은 정보들 중에서 그래도 이 정보는 볼만하다,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것 같다, 특히 더 유용하겠다 싶은 것들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뉴스레터 발행 후 달라진 점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그동안 제 직관에만 의존해서 이 선택을 했었다면 뉴스레터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독자들의 반응과 피드백이 추천 청보 선정에 점점 더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참고로 추천 정보는 적건 많건 한 주에 단 3건만 선정하고 있습니다.
김중석 작가 전시회
<그리니까 좋다 - 헬로우뮤지엄>
ⓒ꼬맹이언니네
이수지 작가 전시회
<여름 협주곡 - 알부스갤러리>
ⓒ꼬맹이언니네
블로그에 ‘다녀온 이야기’라는 코너가 있던데 주로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나요?
‘다녀온 이야기’는 주로 전시나 공연, 그림책과 관련된 공간 등에 직접 다녀온 이야기를 담는 곳입니다. 블로그에 소개한 정보들은 제가 궁금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해서 가능하면 직접 가보려고 합니다. 다녀와서 보면 사실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지만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부분이 다를 수 있기에 최대한 주관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쓰는 편입니다. 단 아주 기본적인 부분이 지켜지지 않았거나 할 경우 느낀 아쉬움들은 꼭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매일, 매주 가고 싶은 곳들이 정말 많은데 다녀오면 찍은 사진들을 모두 정리하고 다녀온 이야기 쓰는 것도 만만치는 않답니다. 그래서 살짝 부담이 될 때도 있지만, 새로 생긴 그림책 공간이나 새로운 전시들은 가능한 놓치지 않고 다녀오고 있습니다.

<꼬맹이 언니네>를 오랜 기간 동안 운영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으셨을텐데 기억에 남거나 보람을 느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좋아서 시작한 일들이라 사실 힘들거나 좀 지칠 때 뭐라고 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나름의 제 수고를 알아주시고 온/오프라인에서 인사해 주시는 분들에게 가장 감사하답니다. 도움이 되셨다는 분들의 이야기에 또 보람도 느끼고요.

처음엔 콘텐츠 제작을 위한 공부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저도 모르게 그림책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 일들을 시작하고 생긴 여러 기회들(여기에 가온빛 인터뷰도 포함되겠네요. ^^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 일들로 만난 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인터뷰를 하거나 자신의 책을 내면서, 또 팟캐스트에서 그림책과 관련된 유용한 정보를 볼 수 있었다며 <꼬맹이 언니네>를 소개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잊지 않고 챙겨주신 이분들의 마음이 무엇보다 기억에 남고 참 고마웠습니다.

인스타그램에 ‘마들린느, 가정방문 가요!’라는 게 있던데 새로 시작하시는 프로젝트인가요? 어떤 건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림으로 글쓰기> 수강생들의 모임인 ‘그림으로 글쓰기 동문회’ 모임에 매월 참석하고 있는데요. 이번 8월 모임에서 제가 “이 세상 최고의 딸기”(하야시 기린, 쇼노 나오코 / 길벗스쿨 / 2019)의 그림책과 인형을 소개했거든요. 마지막에 모임의 주최자이기도 하신 김난령 선생님(<그림으로 글쓰기> 강사님이기도 하고, 제가 존경하는 분이랍니다)이 아이디어를 주셨답니다.

코로나로 모임이 어려운 시기이니 인형이 각 선생님들 집으로 놀러가면 어떻겠냐고요. 그림책의 이야기를 빌리면 다양한 인형들로 재미난 이벤트를 해 볼 수 있겠다고 의견을 주셔서 첫 번째로 마들린느 인형을 마들린느 티세트와 함께 발송해 보았어요.

제가 보내드리는 그림책과 인형을 자유롭게 즐기시고 다음 분께 택배로 보내주시면 또 다음 분이 즐긴 후 그 다음 분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모두가 즐긴 후 마지막에 저희 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겁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이야기들과 재미난 상황들을 SNS로 공유한다면 독특한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재미있지 않나요? ^^

✅ 마들린느, 가정방문 가요!
  • 프로젝트 인스타그램은 [여기]
  •  해시태그 : #마들린느가정방문가요 #그림책 #그림책굿즈 #그림책인형 #그림책캐릭터인형 #씩씩한마들린느 #루드비히베멀먼즈

그림책 관련 정보 콘텐츠 이외에 새로 준비중이거나 구상중인 새 프로젝트가 있나요?
현재 그림책 굿즈와 관련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을 계획중이긴 합니다. 제가 작년에 이사를 오면서 홈스타일링을 받았는데 결정 장애가 있는 제가 이 서비스로 많은 도움을 받았었거든요. 그래서 이걸 그림책 굿즈에 적용한 아이템을 구상중입니다.

제가 그림책 캐릭터 인형을 정말 좋아해서 수집하고 있는데 저처럼 어떤 공간이나 공간의 한 부분을 캐릭터 인형을 포함한 그림책 굿즈들로 꾸미고 싶어하는 분들을 도와드리는 거랍니다. 개인이 될 수도 있고, 그림책방이나 도서관 같은 단체나 기관이 될 수도 있겠죠? 예산과 공간에 맞게 굿즈들을 선정하고 구입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도와줄 수 있도록 준비중입니다.
<천신애 님의 그림책 굿즈 컬렉션>
ⓒ꼬맹이언니네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림책과 관련된 모든 정보’와 함께 ‘그림책 굿즈’가 <꼬맹이 언니네>의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가 되는 건가요?
네. 기회만 된다면 그림책 인형 가게를 해보고 싶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대중성이 낮기 때문에 고정비용 등 운영에 대한 부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쉽게 결정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서 그림책 굿즈, 주로 캐릭터 인형을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하나씩 블로그에도 소개하다 보니 인형을 수입하시는 분을 알게 되면서 판매 대행을 잠시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블로그에서 ‘삐삐 롱스타킹’ 캐릭터 인형들을 판매하고 있어요.

✅ 삐삐 인형, 원숭이 닐슨 씨, 말 인형, 악당이나 경찰 등의 피규어를 구경하고 싶은 분은 [여기]에서 확인하세요. 

앞으로 꿈이나 목표 또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아직은 목표를 따로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으로 지금처럼 즐겁게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그림책과 관련된 더 재미있는 일들, 이왕이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찾아보고 있어요. 수익이 생긴다면 좀 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양질의 정보들을 찾을 수 있을테니까요. 

그림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꼬맹이 언니네>에서 ‘그림책과 관련된 모든 정보’ 콘텐츠를 운영하게 된 계기와 함께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림책을 처음 접한 건 20대 때였습니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는데, ‘아동문학교육’ 시간에 그림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보통 유아교육기관은 1:1이 아닌 대/소 그룹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여러 명의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매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림동화, 막대동화, 융판동화 등 각 그림책에 어울리는 적절한 방법을 연구하게 되죠. 톨스토이의 글에 헬린 옥슨버리가 그림을 그린 “커다란 순무”(시공주니어 / 1996)는 융판동화를 제작하면서 처음 보게 된 그림책이었습니다.

그 후 유아교사가 되어 현장에서 대그룹수업인 동화수업을 할 때는 ‘월별 생활주제”에 맞게 선정한 그림책을 매주 한두 권씩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책과 조금 더 가까워진 건 놀이학교에서 근무했을 때였는데요. 제가 근무했던 곳이 ‘동화로 배우는 놀이교육’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곳이라 전보다 더 많은 그림책을 볼 수 있었어요.

줄곧 유아교육 관련 사이트 운영이라던지 그림책과 미술을 접목한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하는 곳들에서 일을 계속 해왔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림책은 다양한 교육 매체 중 하나로만 여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림책보다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러다 그림책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본격적으로 그림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요. 어디에서 뭘 배워야 할지 막막해서 일단은 ‘그림책’이란 키워드가 들어간 모든 정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닥치는대로 경험하고 습득하려고 애썼습니다. 이때 찾았던 정보들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꼬맹이 언니네>가 되었고요(참고로, ‘맘스쿨’이란 학부모 커뮤니티의 운영관리를 맡아서 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이 지금 하는 일에 기초를 마련해 준 것 같아요).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 한 줄 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 초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이란 제목으로 제 그림책 이야기를 들려드릴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뽑았던 세 권의 그림책을 소개해 드릴께요.

춤을 출 거예요
강경수 | 그림책공작소 
(2015/03/30)
그림책 속 소녀처럼 나는 '그림책이 좋으니까' 어떤 상황속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다 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요?

달에 간 나팔꽃
이장미 | 글로연
(2020/10/01)
그림책 속 개미처럼 지금은 아주 작고 작은 존재이지만 누군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물었을 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 태어날 거예요!
고마가타 가츠미 | 보림
(2015/05/29)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가 아주 능동적으로 태어난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한 책이 또 있을까요?
끝으로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있다면 해주세요.
주변에 그림책을 새롭게 만난 분들이나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든 분들이 계신다면 <꼬맹이 언니네>를 소개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저는 처음 그림책을 배울 때 강사님이 <가온빛>을 소개해 주셨답니다. 성균관대 그림책 전문가 과정 수업 중 연혜민 교수님이요. ㅎㅎ)

아직 <꼬맹이 언니네> 뉴스레터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모르는 분들이 없도록’ 주변 분들에게 소개 많이 부탁드려요.
💬 어설픈 초보 인터뷰어의 첫 인터뷰에 기꺼이 인터뷰이가 되어주신 천신애 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 중에서 아직 신청하지 않은 분은 꼭 <꼬맹이 언니네> 뉴스레터 구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작가 이야기
알로이스 카리지에, 자연과 아이들의 친구

#14. 2021/09/23

2년에 한 번씩 시상하는 안데르센상은 1956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처음엔 글 작가에게만 시상을 하다 1966년부터 그림 작가에게도 시상을 했는데, 그림 작가를 위한 첫 번째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바로 오늘 작가 이야기의 주인공인 알로이스 카리지에(1902 ~ 1985)입니다.

카리지에는 스위스 그라우뷘덴(Graubünden) 주의 트룬(Trun)에서 열한 명의 형제자매중 일곱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라우뷘덴은 높은 알프스 산맥의 장엄한 계곡들과 아름다운 강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곳으로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다보스도 이 지역에 있습니다. 스위스의 공용 언어인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 중 프랑스어를 제외한 세 가지 언어가 모두 사용되는 독특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언어를 기반으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문화가 알프스의 험준한 자연 환경과 자연스레 어우러졌을 테고 그것이 결국 그림책을 포함한 카리지에의 창작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특이하게도 카리지에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1935년에 개봉한 <Jä-soo!>라는 영화인데요. 배우이자 코미디언이었던 동생 Zarli Carigiet의 부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본인이 동생을 졸랐을 수도 있겠죠? ^^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삶은 취리히에서 시작했습니다. 광고회사 그래픽 디자이너로 견습생부터 시작한 그는 여러 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명성을 얻게 되었고 자신의 아틀리에를 열고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상업 및 정치 광고 포스터, 교육용 포스터와 벽화, 인쇄 매체를 위한 삽화와 풍자 캐리커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1937년 파리 국제박람회에서 스위스 전시관의 디오라마와 1939년 취리히에서 열린 스위스 국민 박람회 '란디'의 디자인, 벽화, 공식 포스터 등이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한 삶
어린 시절의 추억 탓인지 전성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30대 후반에 취리히의 사업을 내려놓고 고향 인근 지역에 농가를 얻어 자신만의 예술 활동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전기나 수도조차 없는 농가에서 살며 산간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스케치하거나 동물들을 관찰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카리지에가 취리히의 터전을 버리고 시골 생활을 시작한 건(1939년~) 어쩌면 2차 세계대전의 영향일 수도 있습니다. 영세중립국으로 유럽의 국가 중 유일하게 침략을 당하지 않은 스위스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나치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기 힘들었던 현실 속에서 현업을 계속 유지할 경우 정치적 선동에 자신의 재능이 동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말년에는 트룬으로 거처를 옮기고 삶을 마감할 때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고향 마을 곳곳에는 그가 남긴 벽화들이 여전히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는군요. 카리지에가 안치되어 있는 마을 성당 영안실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걸려 있고,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자신의 묘비가 세워진 그의 묘역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카리지에의 삶의 마지막 25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고향 마을, 스위스에 가게 된다면 꼭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지는군요.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아이들
카리지에를 그림책의 세계로 이끌어준 사람은 역시나 스위스 산간 지역에서 태어난 아동 작가 셀리나 쇤츠입니다. 1940년에 "우즐리의 종소리"에 그림을 맡아달라고 처음 부탁을 했고, 책이 나온 건 1945년이니 카리지에가 선뜻 수락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몇 년의 고민 끝에 어렵게 수락을 한 그는 셀리나 쇤츠의 고향에 몇 주 동안 머물며 풍경과 건축물들을 관찰하고 스케치를 했고, 그 작업이 그대로 그림책의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카리지에는 "우즐리의 종소리"에 이어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 "눈보라 치던 날"까지 제가 알프스 3부작 이라 이름 붙인 세 권의 작품을 셀리나 쇤츠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고향에 대한 감성,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삶에 대한 교감이 꽤 깊었던 덕분이겠죠.

알프스 3부작 세 권과 "자작나무 마을 이야기"까지 한글판으로 나온 네 권의 그림책에 담긴 공통된 코드는 바로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아이들입니다. 알프스 산골의 아름다운 자연, 그 안의 식물과 동물들, 그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아이들은 별개의 종이 아닌 동일한 종입니다. 산과 강, 구름, 나무와 동물, 그리고 아이들이 친밀하게 소통하고 서로 어루만지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소박하고 온화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각박한 현실에 베이고 또 베였던 마음 속 생채기들을 누군가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듭니다. 

대표작

전업 그림책 작가가 아니기도 했고 중년에 접어들어서야 그림책 작업을 시작한 탓에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45년 첫 그림책 "우즐리의 종소리"를 시작으로 1969년 "Maurus und Madleina"까지 여섯 권의 그림책이 그의 대표작들입니다. 이중에서 네 권은 한글판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첫 세 작품은 셀리나 쇤츠와 함께 작업을 했고, 후반 세 작품은 혼자서 글과 그림을 모두 작업했습니다.

  • 1945. Schellen-Ursli (우즐리의 종소리, 2007)
  • 1952. Flurina und das Wildvögelein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 2002)
  • 1957. Der Grosse Schnee (눈보라 치던 날, 2006)
  • 1965. Zottel, Zick und Zwerg
  • 1967. Birnbaum, Birke, Berberitze (자작나무 마을 이야기, 2007)
  • 1969. Maurus und Madleina

알로이스 카리지에는 1902년생이지만 첫 그림책을 40대에 낸 덕분에 15 ~ 30년 늦게 태어난 우리가 잘 아는 작가들과 작품 활동 시기가 겹칩니다. 특히 타샤 튜더(1915년생), 바버러 쿠니(1917년생)와는 그림체는 서로 다르지만 담고자 했던 메시지는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즐리의 종소리
셀리나 쇤츠, 알로이스 카리지에 | 비룡소
(2007/02/16)
스위스 산간 지방 중에서도 로만슈어와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봄맞이 행사인 샤란다마르츠 축제를 소재로 한 그림책입니다.

샤란다마르츠는 마을 소년들이 카우벨(소 목에 거는 종)을 들고나와 울리며 겨울의 기운을 몰아내고 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행사라고 해요. 소년들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종을 울리면서 노래를 불러주는데 이때 어른들은 종 안에 온갖 먹을 것을 담아준다고 합니다. 우리의 지신밟기와 의미나 형식이 비슷해 보이네요.

스위스의 카우벨은 종류가 다양하고 크기도 제각각인데 아마도 덩치가 큰 아이들이 큰 종을 차지해서 간식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나 봅니다.

마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렸던 주인공 소년 우즐리는 덩치 큰 아이들에게 밀려 제일 작은 종을 받게 됩니다. 커다란 종을 받은 녀석들이 '딸랑딸랑 꼬맹이'라고 놀리는 소리에 자존심이 상한 우즐리는 산꼭대기에 있는 여름 목장용 오두막에 아빠가 걸어둔 아주 크고 멋진 종을 가지러 혼자 산을 오릅니다. 꼬마 우즐리의 모험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여름 산 아이 플루리나
셀리나 쇤츠, 알로이스 카리지에 | 아이세움 
(2002/04/10)
플루리나는 우즐리의 여동생입니다. 가족을 따라 여름 목장 생활을 시작한 플루리나는 여우에게 어미를 잃은 새끼새 한 마리를 구해주고 닭장 안에서 키우게 됩니다.

플루리나의 보살핌 덕분에 무럭무럭 자라는 새끼새. 문제는 자라면 자랄수록 새끼새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려 하고 플루리나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품 안에 새끼새를 가두려고만 한다는 겁니다.

이제 제법 어른스러운 날갯짓을 해대는 새끼새를 숲 속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주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가족들. 플루리나는 새끼새를 떠나보낼 수 있을까요? 오빠 우즐리는 동생을 어떻게 도와줄까요?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고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 그 안의 다른 생명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임을 일깨워주고, 자연을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과 만남 뒤엔 이별이, 또 그 이별 뒤엔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음을 가르쳐주는 그림책입니다. 

눈보라 치던 날
셀리나 쇤츠, 알로이스 카리지에 | 비룡소 
(2006/01/31)
알프스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인 이 그림책의 소재는 한겨울 아이들의 썰매 축제입니다.

썰매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자신의 썰매를 장식하느라 여념이 없던 우즐리는 동생 플루리나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이웃 마을에 사는 실짓는 할머니네서 썰매를 장식할 예쁜 털실들을 얻어오라는 거였죠.

플루리나가 출발할 때만해도 곧 그칠 것 같았던 눈은 점점 더 굵어지더니 결국은 눈보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눈보라에 갇힌 플루리나는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요? 우즐리는 한겨울 눈덮인 숲속에서 동생을 구할 수 있을까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알프스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방식, 그리고 멋진 썰매 축제의 장관은 이 그림책이 주는 덤입니다.

자작나무 마을 이야기
알로이스 카리지에 | 비룡소
(2007/02/16)
셀리나 쇤츠의 글에 그림을 그리던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첫 번째 그림책입니다. 이전의 알프스 3부작이 셀리나 쇤츠의 고향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이 그림책은 카리지에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장소들을 그림 속에 담아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자작나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아 각자 자기 몫의 일들을 해가며 살아가는 단란한 한 가족의 모습을 담아냈고, 그 배경으로 계절이 변하고 그에 따라 식물들과 동물들은 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는지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무 쓸모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베어버릴까도 싶었던 매발톱나무가 딱새 가족의 안전한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연과 그 안의 모든 것들 중 어느 하나 쓸모 없는 것이 없음을, 세상 만물 모두 제 자리 제 역할이 있음을 가르쳐주는 그림책입니다.
💬 알프스 산골 풍경을 자연 그대로 담아낸 작가
산골 마을에 집을 짓고 살아가며 알프스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동식물과 사람들의 모습을 오랜 세월 깊이 관찰한 덕분에 알로이스 카리지에의 그림들은 알프스의 풍광 그 자체입니다. 계절과 함께 변하는 형태와 색깔들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그려냈습니다. 덕분에 독자들은 그 속에서 알프스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특별할 것 없는 그 안에 우리가 꼭 지켜내야 할 삶의 소중한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한글판으로 나온 네 권을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그 책이 이 책 같고 이 책이 저 책 같이 느껴질만큼 심심합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심심함보다는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마음 한 켠 구석자리로 밀려났었던 아련한 것들을 떠오르게 해줍니다. 급하게 나를 몰아붙이던 것들로 인해 미뤄둘 수밖에 없었던 내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도록 인도해줍니다.

산골 마을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살았던 작가의 삶을 닮고 싶어집니다.

그림책으로 세상을 읽다
정의와 공정

#16. 2021/10/27

'나는 왜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지 못했을까?' 생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렇다면 나는 열심히 살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무능했던 걸까?' 이런 자괴감 마저 들게 됩니다. 그들은 정말 나보다 몇십 배 더 열심히 산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지금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빵 냄새 도둑에 대한 속시원한 판결

샌지와 빵집 주인
로빈 자네스, 코키 폴 | 비룡소
(2001/08/26)
아침마다 아래층 빵집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빵 냄새를 맡으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던 샌지. 그런데 빵집 주인은 이런 샌지를 자신의 빵 냄새를 훔쳤다며 도둑으로 몰고 빵 냄새 값을 받아내기 위해 고소를 합니다. 재판관은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요?

‘빵 냄새의 적절한 값’은 ‘은닢 다섯 냥이 내는 소리’라는 재판관의 명판결은 못된 빵집 주인때문에 답답했던 독자들의 가슴을 뻥 뚫어줍니다.

이 그림책을 다 보고 난 후 가슴 깊은 곳까지 후련하게 느껴지는 건 지금 우리의 현실 탓 아닐까 싶습니다. 상식을 벗어나 있는 특정 집단들의 편향된 행동을 지켜만 봐야 하는 현실 말입니다. 특정 집단이란 언론, 경찰, 검사와 판사, 그리고 국회의원들, 바로 우리 사회의 정의와 공정을 지켜야 할 사람들입니다. 시민들이 그들을 믿고 안심하고 살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님은 이들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고 계신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판사 하나만 올바르면 그나마 멍청한 언론과 부패한 검경, 그리고 자기들 잇속만 챙기는 국회의원들 모두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빵 냄새의 적절한 값은 은닢 다섯 냥이 내는 소리라는 명판결을 내린 "샌지와 빵집 주인"의 재판관과 같은 멋진 판사만 있다면 나머지 것들이 아무리 설쳐대도 잘잘못을 엄중한 판결로 처벌함으로써 이 사회가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히 지킬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캄비세스의 재판

The Judgement of Cambyses(Gerard David, 1498)
'캄비세스의 제판'은 B.C. 6세기의 페르시아를 배경으로 돈을 받고 판결을 내린 시삼네스라는 재판관이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로부터 끔찍한 처벌을 받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두 장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그림 속에는 다시 또 두 가지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위 그림을 누르면 좀 더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좌측 그림은 재판관 시삼네스가 법정에서 체포되는 장면입니다. 자세히 보면 좌상단에 시삼네스가 뇌물을 수수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와 대칭을 이루는 우측 그림엔 체포된 시삼네스에게 살가죽을 벗기는 가혹한 형벌이 집행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우상단에는 시삼네스의 살가죽과 같은 색깔의 커버가 씌워진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시삼네스의 아들이고 그가 깔고 앉은 것은 바로 제 아비에게서 벗겨낸 살가죽입니다.

캄비세스 왕은 돈을 받고 판결 장사를 한 재판관 시삼네스에게 산채로 살가죽을 벗겨내는 끔찍한 형벌을 내렸고, 벗겨낸 살가죽을 시삼네스가 앉아 있던 의자에 깔게 한 뒤 시삼네스의 아들을 불러서 말합니다. "지금부터 네가 재판관이다. 네 아비의 가죽 위에서 네가 어떻게 판결할지 항상 고민해라."라고.

전국에 있는 모든 법정에 이 그림 두 장을 걸어놓는다면 판사들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법을 정의롭고 공정하게 지켜낼 수 있을까요?

나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면
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님에게 주어진다면 님은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가요?

저라면 단 한 번의 기회를 법원을 바꾸는 데 쓰겠습니다. 언론이 아무리 진실을 호도하고 국민 분열을 일삼더라도, 경찰과 검찰이 국민들이 쥐어준 칼 끝을 도리어 국민들을 향해 겨누더라도, 국회의원이나 기타 정치인들이 국가와 국민이 아닌 자기 일신의 이익을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리더라도 법원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자기 자리를 지킨다면 이 사회의 정의와 공정은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요.

어떻게 바꾸냐구요? 현직 판사들을 검증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소모할 필요 없이 단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몰아내고 이제 막 로스쿨을 마친 새내기들로 교체하면 되지 않을까요? 올바른 정의와 공정, 그리고 시삼네스의 살가죽으로 덮인 판사의 자리의 엄중함 이 세 가지만 한 달 또는 일년 내내 교육시킨 후 법정에 앉혀놔도 지금껏 권력에 빌붙어 자리보전하며 법조인 행세 해왔던 수십 년 경력의 판사들보다 훨씬 더 정의롭고 공정한 그래서 국민들 마음 속시원하게 해줄 판결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현실적이지 않다구요? 당연하죠. 현실은 이상에 근접할 수는 있어도 도달할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그들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정의롭고 공정하게 행동하게끔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바로 그들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눈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위기의 민주주의
<위기의 민주주의 : 룰라에서 탄핵까지>는 브라질에서 벌어진 소위 검찰 쿠데타의 과정을 담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입니다. 현직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 등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임기를 다 마치지도 않고 사퇴한 우리의 현실과 맞물려 다큐멘터리임에도 인기가 꽤 높았습니다. 물론 <오징어 게임>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자격은 커녕 깜냥도 안 되는 자들이 나와서 설쳐대는 걸 지켜보면서 문득 9년 전 겨울이 생각났습니다. 2012년 12월 19일 수요일, 공교롭게도 제18대 대통령선거 투표일과 영화 <레미제라블>의 개봉일이 같았습니다. 바로 다음날 아내와 십대 딸아이와 함께 꿀꿀한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봤고, '민중의 노래'가 다 끝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이 사회의 정의와 공정을 지키는 것은 우리 시민의 몫이란 생각에 또 꿀꿀해집니다.

재미있는 그림책 생각하는 그림책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

#16. 2021/10/27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
이수애 | 한울림어린이
(2015/12/24)
나뭇잎 손님이 숲속 미용실을 찾아갔어요. 무거워진 머리를 멋지게 다듬을 생각이었는데… 애벌레 미용사가 정성스럽게 손질해 준 머리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아요. 멋있고 화려할 거 같다고 생각해 자른 양버즘나무 머리는 너무 뾰족해서 친구를 긁을 거 같고 짧게 자르고 빨간색으로 염색한 단풍나무 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까다로운 나뭇잎 손님의 요구대로 애벌레 미용사는 갉아먹고 물들이고 갉아먹고 물들이기를 반복하며 손님의 머리를 손질합니다. 그렇게 여러 번 다듬다 보니 결국 나뭇잎 손님의 머리는 아주 조금 밖에 남지 않았어요. 으앙 울음을 터트리고 만 나뭇잎 손님, 애벌레 미용사는 까다로운 나뭇잎 손님의 요구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아기자기 사랑스러운 숲속 미용실 풍경
미용실 메뉴판에 등장하는 다양한 모양의 나뭇잎 머리 모양, 커다랗고 둥근 모양의 나뭇잎 손님의 머리가 변해가는 모습과 애벌레 미용사와 나뭇잎 손님의 표정의 변화가 재미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해가는 숲속 계절 변화도 눈여겨보세요.

마음을 사로잡는 주인공, 기발한 설정, 탄탄한 이야기 구조, 반복을 통한 리듬감 형성, 긴장감 있는 전개, 만족스러운 결말, 다음 장면에 대한 기대감, 아름다운 색감으로 그린 그림,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의 요소를 두루두루 갖추고 있어요.

진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여곡절 끝에 마음에 드는 머리를 했지만 이번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쏟아져 머리를 망치고 맙니다. 결국 지쳐 잠이 드는 나뭇잎 손님. 따뜻한 바람이 불 무렵 잠에서 깨어난 나뭇잎 손님에게 짜잔~ 새로운 나뭇잎 머리가 생겨났어요.

예쁘다 생각한 나뭇잎 머리를 모두 합치고 나서야 나뭇잎 손님은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었지만 결국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어요. 비가 오자 모두 망가져버리고 말지요. 지쳐 울다 잠이 든 나뭇잎 손님, 새봄 새롭게 돋아난 새잎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 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가진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 아닐까요.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내 안에 있는 본래 모습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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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손님이 진짜 아름다움을 찾은 것처럼,
이 책의 독자들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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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 : 나뭇잎 손님과 애벌레 미용사의 태도
잔뜩 기대하며 갔던 미용실에서 한 번쯤은 실망스러운 머리를 했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다음 페이지에서 나뭇잎 손님의 머리모양이 어떻게 변했을지 기대를 하며 넘깁니다. 내가 보기엔 이만하면 좋아 보이는데 다양한 이유로 머리 모양에 만족하지 않는 나뭇잎 손님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날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하지요.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이 있는지 한 번 물어보세요. 그림책을 읽어준 부모님도 같이 생각해 보세요. 분명 나 스스로 결정했음에도 결과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어떻게 행동했나요. 상대를 탓했는지, 아니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 한 나 자신을 책망했는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눠보세요.

인터넷 서점에서는 유아용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초등 3,4학년 아이들이 가장 많은 반응을 보여주었고 가장 재미나게 함께 읽었던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의 재미난 의견들중 몇 가지 소개합니다.
  • 나뭇잎 손님이 많이 까다롭긴 하지만 애벌레 미용사가 조금 더 설명을 잘해주었으면 좋았을 거 같아요. 저렇게 계속 자르고 염색을 여러 번 하면 머리가 다 망가지잖아요. ‘손님, 그 머리를 더 자르면 너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어요.’라거나 ‘염색을 여러 번 하면 머리카락이 상해요.’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머리가 다시 자라려면 오래 걸리잖아요.
  • 손님이 우선이니까 애벌레 미용사는 손님이 말한 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저는 애벌레 미용사가 곤란했을 거 같아 불쌍해 보였어요.
  • 진상 손님을 빨리 보내려고 하다 애벌레 미용사가 골탕 먹은 이야기 같아요. 나뭇잎 손님도 울다 지쳐 잠들었지만 애벌레 미용사도 밤에 엄청 피곤했을 거 같아요.


놀이 1. 숲속 미용실 놀이

준비물
  • 나뭇잎 손님 도안 : [다운 받기]
  • 가위, 물감, 면봉, 색연필, 펜 등

1. 나뭇잎 손님 도안을 다운 받은 후 색칠하거나 물감을 찍어 나뭇잎 손님 머리를 꾸며 주세요. 나뭇잎 손님의 표정도 그려주세요.

2. 그림책을 읽고 아이들과 숲속 미용실 놀이를 해보세요. 우리가 애벌레 미용사가 되어 나뭇잎 손님의 머리를 직접 꾸며주는 거예요. 크레파스, 색연필, 등등 다양한 그리기 도구로 색칠도 하고 무늬도 그려주세요. 물감을 불거나 면봉으로 찍거나 예쁜 스티커를 활용해도 좋아요. 나뭇잎을 과감하게 잘라 스타일을 만들어 보아도 재미있어요.

3. 어떻게 꾸민 머리인지, 또 이 머리 모양의 이름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보세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즐거운 시간을 직접 체험해 보세요.


놀이 응용하기 : 말린 나뭇잎으로 나뭇잎 머리 만들기

나뭇잎을 직접 따거나 주워 책갈피 사이에 말려 나뭇잎 손님 머리를 꾸며 보세요. 그려서 만든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집니다. 완성한 나뭇잎 머리를 편지, 솔방울, 말린 꽃 등 자연물과 함께 엮어 모빌로 만들어 보세요.


놀이 2. 그림책에 등장하는 나뭇잎 찾기 

나뭇잎 손님이 요구한 화려한 양버즘나무, 빨간 단풍나무, 오리 발자국 같은 튤립나무 외에 미용실 메뉴판에 등장하는 은행나무, 떡갈나무, 신나무, 상수리나무, 계수나무 나뭇잎을 찾아 아이들 손잡고 공원 산책 나가보세요. 동네 가까운 곳에서 가을을 직접 온몸으로 느껴보세요. 

산책길에서 주운 예쁜 나뭇잎에 날짜와 시간을 써서 코팅하면 추억을 간직한 멋진 나뭇잎 책갈피가 완성됩니다.


놀이 3. 그림책으로 생각해보기

  1. 나뭇잎 손님은 무슨 나무였을까요? (처음 미용실을 찾아온 나뭇잎 손님이 ‘머리가 너무 둥글고 무거워요’라고 말한 점, 미용실 메뉴판에 나온 계수나무 나뭇잎 모양과 비슷해 보이는 걸로 보아서 나뭇잎 손님은 ‘계수나무’로 추정됩니다.) 
  2. “따뜻한 바람이 불 무렵, 나뭇잎 손님은 긴 잠에서 깨어났어요.”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봄이 찾아와 나무가 겨울잠에서 깨어났음을 의미합니다.)
💬 가을비를 맞고 나뭇잎 머리가 땅에 떨어지자 상심한 나뭇잎 손님, 울적하게 잠자리에 듭니다. 그렇게 한숨 푹 자고 나니 어느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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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람이 불 무렵,
나뭇잎 손님은 긴 잠에서 깨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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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싱그런 표정으로 연초록 새잎을 달고 웃고 있는 나뭇잎 손님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때론 내 생각대로 안 되는 날도 있다고, 그럴 땐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자고. 그렇게 내 마음에 봄을 불러옵니다.


Inside 가온빛
  • 지난 12월부터 Zoom으로 하는 유료 책모임 <그림책, 나를 만나는 시간>을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유료 프로그램을 몇 가지 더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가온빛 유료 프로그램 참가시 <가온빛 레터 플러스> 구독자들은 참가비를 할인해 드리고 있습니다. 12월에는 오픈 기념으로 참가자 전원에게 20% 할인 혜택을 드렸고 <가온빛 레터 플러스> 구독자들에게는 1만원을 추가로 할인해 드렸습니다. 1월부터는 <가온빛 레터 플러스> 구독자만 20% 할인해 드리고 있습니다.

  • <그림책, 나를 만나는 시간> 진행 전 이선주 에디터 책상 상태입니다. 최근 노트북 교체를 하고 '아라키스'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여주었고, 함께 구입한 보라색 마우스는 '프레드릭'이라고 부르고 있는 중입니다. 자신의 물건들에 이름 붙여주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이선주 에디터 답죠? 👽 마우스 바로 위에 보면 수업 진행 중간중간 복용하는 엠앤엠즈 초콜릿바 밀크쵸코맛입니다. 편의점에서 2+1 행사가 끝나서 요즘 많이 아쉬워 하고 있다는 후문이... (참고로 '아라키스'가 영화 'Dune'에 나오는 사막행성에서 가져온 이름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운명을 밝게 비춰주는 항성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번 특별판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21호는 1월 26일에 발송합니다.
가온빛 레터 플러스
가온빛 | 그림책 놀이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