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아침밥은 드셨나요? 무더운 여름엔 요리하기가 왜 이리 귀찮은지, 저는 요즘 쌀밥에 열무김치를 곁들여 간편하게 식사를 때우곤 합니다.
며칠 전 밤이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 거리에서 식당을 찾는데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올 법한, 어두운 나무판자로 된 식당이 있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는 주방 옆 메뉴판에 ‘삼계탕’이 있길래 ‘와, 너무 뜨끈하고 맛있겠다’ 흥분하며 주문했죠. 그런데 아저씨가 손질된 생닭을 끓는 냄비에 넣자마자, 갑자기 닭이 몸부림치며 커다란 냄비 위로 튀어 오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기괴한 광경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이런 요상한 악몽을 꿀 때면, 대체 그 원흉(?)이 뭔지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몇 달 전 청소하다 그 뿌리를 짐작하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때 만든 문집을 발견했는데, 그때 제가 낸 글이 동화책 ‘마당을 나온 암탉’에 대한 독후감이었지 뭡니까. 좁은 케이지에서 알만 낳다 버려지는 늙은 암탉들, 그리고 자유를 찾아 떠나는 ‘잎싹’이란 닭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25년쯤 지났을 텐데 이렇게 꿈을 꿀 정도로 ‘동물권’이 제 안에 무섭게 각인되다니, 동화의 지독함이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치킨을 놓지 못하는 저도 참 지독합니다.)
배재고 뉴스에 달린 고등학생들에 대한 댓글들을 보며 ‘닭 꿈’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어린 시절 ‘5·18 민주화운동’을 역사나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한 인간의 생’으로 느낄 기회가 있었다면,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성공을 거둔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동화로 이 역사를 만났다면. 그럼 어쩌면 광주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고민하다 꿈에까지 나올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요. 사람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삶은 추상적 단어만으로 상상하기 힘드니까요.
1980년 5월23일 광주 동구에서 군인들이 쏜 총에 두 눈을 잃고, 구십 평생 빛을 보지 못하고 산 할머니 강해중씨는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학살 현장에서 자녀들을 보호하려다 눈에 총탄을 맞았지요. 배재고 학생들에게 비난 댓글보다 문학을 보내면 어떨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한 주를 맞이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