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펀지로 빚어낸 즉흥적 몸짓

여성 예술인이 쓰는 재료를 리뷰하고 이야기합니다.

분명히 만져지는데, 없다고 치부되는 공간이나 감정을 사냥하는 김성혜 @foams_of_wave 작가님의 툴을 소개합니다.

💬 안녕하세요,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만드는 김성혜입니다. 작업에 임할 때 세상에 지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흙을 만지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분명히 만져지지만 없다고 치부되는 공간 혹은 감정을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제 작품들은 이성적이고 계획적이기보다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즉흥성을 표현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툴은 스펀지입니다.

💬 모두가 아는 친근한 스펀지는 표면에 구멍이 나 있으며 수분을 흡수하여 머금고 있는 특징이 있죠. 천연 해면 스펀지, 합성수지, 인공 소재의 스펀지, 나무 막대가 달려있어 손잡이가 있는 스펀지, 용도에 따라 모서리가 날카롭게 가공된 스펀지, 탄성과 밀도가 좋은 스펀지, 철 수세미에 버금갈 만큼 거친 스펀지까지. 종류가 다양하며, 어디서나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소재입니다. 어렸을 적에 스텐실과 실크스크린 기법을 간편한 키트로 체험할 때도 스펀지를 사용했어요. 모양 틀에 대고 물감을 적신 스펀지를 쿵쿵 찍어대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Untitled, 2022, 잉크젯 프린트 위에 아크릴, 김성혜 x 조현진, 59.4 x 84.1 cm

Red, 2020, 종이에 수채, 14.8 x 21 cm

모르거나 이미 떨어지는 사람과 지켜보는 나비, 2018, 종이에 크레용과 수채, 29.7 x 42 cm

💬 현재의 제가 스펀지를 사용하는 방식도 어릴 때와 다르지 않아요. 물감에 적신 스펀지를 손에 쥐고 문지르거나, 큰 동작과 함께 쿵쿵 찍어 누르며 작업합니다. 또 스펀지를 사용하는 것은 스케치하거나 연습을 할 수 없는 즉흥의 일이기에 순간에 집중해 몸을 가누며 정도를 조절해 나가는 과정에서 몸짓의 율동감과 함께 고요한 흥분, 쾌감으로 고조되곤 합니다.

굽은 아이, 2015, 종이에 연필과 아크릴, 17 x 17 cm

Field, 2019, 도자기에 세라믹 페인트, ∅12 x 11 cm

💬 페인팅뿐만 아니라 도예 작업을 할 때도 유약이나 안료를 스펀지에 적셔 초벌 된 도자기 표면에 채색하거나, 한 번도 굽지 않아 유연한 상태의 흙 표면을 스펀지로 찍어누르고 부드럽게 문질러주어 시각적인 효과와 더불어 촉감으로도 느낄 수 있는 질감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스펀지가 지나간 곳은 적나라하고 솔직합니다. 고대의 유물이나 동굴 벽화에서 느껴지는 거침없는 날 것의 느낌, 까슬함을 떠올리곤 해요. 유아적이지만 동시에 무척 원초적이기에 알 수 없는 권위가 엄습해 오기도 하는 이중적이고도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