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여서 가능했다.
청소년이 혼자 사니까… 혹시 뭐가 더 불편할까 봐 챙겨주는 윗집 어르신이 있었다. 밖에서 집 안이 보인다며 어느 날 가림막까지 직접 사 와서 설치해 주고, 주민센터에서 나눠줬다며 종량제봉투를 한 아름 안고 온 분이었다. ‘청소년이니 밤에 깨어 있고 그러면 시끄러워질 수 있지, 하지만 서로 불편하지 않게 좀 더 잘 지내보자’라고 얘기해 주는 옆집 사람도 있었다. 빈곤한 삶이 너무 고단하여 자녀 돌보기를 포기했던 부모가 청소년주거119에서 지원받게 된다고 했더니 이제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자녀의 삶을 같이 돌볼 용기를 갖게 되기도 했다. 가족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게 해서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던 사회에서 가족 돌봄을 가능하게 한 사업이기도 했다.
수월하게 진행되면 의심이 들 정도로 안 된다는 얘기들이 더 많았던 날들이었다. 그런데도 어두운 밤 반딧불이처럼 반짝 만나는 사람들과 기관들이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니, 엄두도 못 내는 일이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힘을 보태어 일 년을 보낼 수 있었다.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아예 시작도 못 하게 된다.
“청소년의 집다운 집,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이젠 좀 그냥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라는 말을 던져줬던 제로님의 말(2022, 지원주택 컨퍼런스)처럼, 걱정하느라 보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이 사회에서 희생되어 살고 있는가. 우리가 모두 조금씩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청소년도 지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상상을 시작할 수 있다.
누구보다 이 사업이 가능하게 했던 청소년들이 있다. 자신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협상도 협력도 하면서 이 시간을 같이 보낸 청소년들 덕분에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었다. 이 사업이 잘 되어서 세상이 청소년 주거권 보장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좀 더 애써보기도 한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부담스럽다며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들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보낸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이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청소년 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함께 애쓰며 서로 돌보는 지역사회는 필요하다. 그런 사회는 어디서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만들고 있다. 함께 애쓴 모든 분께 감사하고 싶은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