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중대한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1990년대 대규모로 공급된 공동주택들이 준공 30년을 넘기며 본격적인 노후화 단계에 진입했고, 국민의 주거환경 개선 요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동시에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 개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경기 둔화로 신규 건설 수요는 감소하고, 건설산업의 성장 동력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환경 속에서 리모델링은 단순한 건축기술을 넘어 주거복지, 환경, 산업구조 전환을 아우르는 전략적 수단으로 부상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여전히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구조안전성 검토 제도다. 현재 리모델링 사업은 전문기관의 1·2차 구조안전성 검토와 안전진단을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지만, 과도한 실험과 검증 절차로 인해 사업 추진에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첨단 구조공학 기술의 발전 가능성과 현장 적용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리모델링 기술을 제도적 틀 안에 가두고 있다.
선진국들은 공학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에 대해 동료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해법을 모색하는 ‘피어 리뷰(peer review)’ 방식으로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반면, 국내의 리모델링 구조안전성 검토는 통과 여부에만 초점을 두고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이나 협의 없이 형식적인 검증 절차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정부와 전문기관의 과도한 개입은 민간 기술자의 창의성과 책임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법제화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승인된 단지는 단 두 곳뿐이다. 이제는 구조안전성 제도의 실효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구조안전성 검토를 받은 단지 수, 재심사 횟수, 심사 소요 기간 등의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명확한 심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오늘날 건설기술은 정밀 센서 기반 구조 모니터링, 시공 후 피드백 설계 등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시공부터 유지관리까지 통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정부는 ‘안전’을 명분으로 리모델링 시장 전반에 획일적이고 과도한 규제를 적용하며, 첨단 기술의 현실 적용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이는 기술 기반 산업의 자율성과 성장 가능성을 정부 스스로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수직증축이나 세대 간 내력벽 철거 등 기술적으로 검증된 고도 리모델링 방식들이 제도 경직성에 가로막혀 산업화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현실은,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정부가 스스로 시장 창출의 기회를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리모델링은 노후 주거지 정비에 그치지 않고, 탄소중립 실현과 지속가능한 건설시장 재편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 그에 걸맞은 기술 정책과 제도적 결단이 지금 절실하다.
정부는 이제 ‘구조안전성’이라는 명분 뒤에 머무르지 말고, 기술 발전을 견인하고 시장을 여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실증 기반 검토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 건설산업을 내다보는 리모델링 기술정책이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행력 있는 제도적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