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근무를 마치고 침대에 눕는다. 편한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벌써 릴스를 넘기기 시작했다. 누가 어디서 뭘 먹고 어디로 여행을 갔는지, 갖가지 영상들이 정신 없이 지나간다. 의식을 붙잡고 세어 보니 열 개 중 다섯 개가 ‘광고’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었다.
옛날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면, 요즘 마케팅의 모든 길은 인플루언서로 통한다. 주방세제도, 유산균도, 점심 메뉴나 여행 패키지도 결국 누군가의 피드나 릴스에 포장되어 온다. 로마는 정복한 땅에 세금을 매겼다는데, 요즘 것들은 정복한 우리한테 협찬 광고를 판다.
몇 년 전 회사 동료 중에 인플루언서에 도전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퇴근 후엔 릴스를 찍고 주말엔 기획안을 짠다고 했다. 회의 시간엔 늘 반쯤 의식을 잃은 듯한 동료였는데, 점심시간에 “오늘 조회수 3만 넘었다”는 말을 할 땐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그 순간 젓가락질을 멈추고 3만 짜리 영상을, 사실은 그의 얼굴을 조금 오래 쳐다봤던 것 같다. 부캐가 본캐보다 생기 있어 보이는 사람을 마주치면 이상하게 할 말이 없어진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그’가, 본인이 원하는 자신은 아닐 것 같아서. 어쩌면 출근하는 그가, 부캐 역할을 수행하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다음으로 넘어간 릴스엔 ‘사기꾼이 되기엔 정직하고 인플루언서 하기엔 끼가 없어서 오늘도 출근하는 나’라는 영상이 등장했다. 어디, 끼만 없을까. 신사역 길 한가운데에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면 ‘저것도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마도 끼가 있다고 믿는 재능과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꾸준히 하는 재능이 있어서라고.
그 뒤로도 수 백 개의 릴스를 넘기고 나서야 스마트폰을 덮었다.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잠들기 전에 계정 이름을 몇 개 떠올렸다. 프로필 사진도 골라보고, 나의 정체성을 축약한 문구도 떠올렸다. 릴스 하나가 빵 터져서 하룻밤 사이에 팔로워가 잔뜩 유입되는 달콤한 상상까지도 했다. 어느 브랜드에서 먼저 연락이 왔고, 몇 번의 견적 씨름 끝에 광고 협업을 수락했다.
알람이 울렸다. 잠시 망상에 빠졌을 뿐인데, 아침이라니. 폰을 마구잡이로 눌러대며 알람을 껐다. 인플루언서가 될 만한 끼도, 꾸준히 할 재능과 그럴 의지조차 없는 나는 꾸역꾸역 출근 준비를 한다. 지하철에서 어제 점찍어둔 계정명을 ‘나에게 보낸 카톡’에 올려봤다. 구려서 못해먹겠단 생각에 백스페이스를 연타하곤 가뿐하게 포기했다.
마침 출근 직후부터 해치워야 할 업무가 인플루언서에게 섭외 메일을 보내는 일이었다. 메일은 늘 ‘평소 즐겨보고 있다, 애정하는 분과 협업할 기회가 생겨 몹시 기쁘다’로 시작한다. 말미에는 역시나 ‘팬으로서 모쪼록 협업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으니 긍정적인 회신을 기다리겠다’로 끝을 맺는다. 물론 이 메일을 쓰기 직전까지도 이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일이니까. 메일을 받은 사람이 기분 좋게 회신을 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는다.
[발송] 버튼을 누른다. 로마로 가는 길은 내가 걷지 않는다. 그저 그 길 위를 걷는 사람한테, 잘 좀 봐달라고, 이왕이면 내가 파는 물건을 뽐내며 걸어달라고 메일을 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