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님 안녕하세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과 나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필요 사이에서 갈등하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아이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을 때, 무심코 건네는 작은 손짓이나 말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녹아내리는 걸 느낍니다. 그 짧고도 강렬한 순간이 결국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죠. 오늘 레터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정민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화요일. 

오후 여섯 시가 지나니 마음이 슬슬 조급해져 온다. 지금쯤 갑자기 일이 생기면 낭팬데… 다행히 야근은 없을 것 같다. 늦어도 일곱 시에는 사무실에서 나서야 한다. 직장인들이 쏟아져나오는 퇴근 시간대에 집에 가려면 한 시간은 족히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중간에 내려서 버스로 한 번 갈아타고 꾸역꾸역 집에 도착하면 여덟 시.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늦어도 여덟 시 반에는 차를 몰고 나서야 한다. 아이의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간은 아홉 시다. 

학원에 갈 때는 아내가, 올 때는 내가 데리고 오는 게 매주 화요일의 기본 세팅이다. 둘 중 한 명이  여유가 있을 때는 등하원을 모두 전담하기도 하지만, 그러면 그 한 명은 학원 근처 커피숍에서 대기하며 머무는 두 시간동안 제대로 저녁도 못 챙겨먹는다. 좋게 생각하면 퇴근 후 커피 한 잔이 주는 저녁 시간의 여유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퇴근해서도 또다른 미션을 수행하느라 늦게까지 집에도 못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직장이 상대적으로 더 멀다는 이유로 이 기본 세팅조차 잘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아내에게 염치불구하고 하원까지 같이 부탁해야 할 때면 (분명히 카톡으로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몸뚱이가 나도 모르게 갤럭시 플립폰처럼 오그라든다. 화면 건너에서 '넌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아이 하원도 같이 제대로 못챙기니?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면서?' 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래저래 화요일 저녁에는 약속을 잡지 않게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차 시동을 걸며 학원이 많은 곳으로 이사를 했으면 역시 좀 나았을까? 하는 생각을 매주 하게 되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화요일 하루만 매니저 노릇을 하면 되니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앞으로 이런 날들이 점점 늘면 늘었지 줄 것 같지는 않으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하다보니 금세 학원에 도착했다. 아슬아슬하게 딱 제 시간에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주차장에 빈 공간이 없다! 차들로 꽉 차있는 주차장을 몇 번 돌다보니 초조해진다. 아… 낭팬데? 싶을 즈음 간신히 방금 나가는 차가 비운 공간을 찾아 주차를 했다. 완전 럭키비키잖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땡 하는 소리에 문이 열리니 아이가 앞에 있다. 

“아빠!”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몸은 자랐지만 아주 어릴 적 어린이집 하원할 때 활짝 웃던 표정이 아직 남아있다. 아아, 다행이다. 

토요일. 

낮 열두 시가 지나니 마음이 슬슬 조급해져 온다. 아아.. 이건 시지프스의 형벌도 아니고 매주 너무 빨리 돌아오는 것 아닌가? 여튼 아이의 점심을 챙기고 옷을 입힌다. (왜 본인이 입을 옷을 다른 사람이 코디해줘야 하는가…? 여전히 알 수 없다.) 둘째가 다니는 방송댄스반 수업은 오후 한 시에 시작한다. 열두 시 반에는 출발해야 한다. 늘 10분만 일찍 출발하면 여유있게 주차를 하고 좀 더 정돈된(!) 모습으로 학원에 들어가서 다른 학부모님들과 인사할 수 있을텐데, 현실은 늘 푸석푸석한 얼굴에 대충 입은 티셔츠 차림으로 인사를 한다. 둘째를 데려다주며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인사를 한다. 아빠니까 그나마 덜 뭐라 하시겠지… 라고 자기최면을 건다. 

두 시간동안 근처 순대국집에서 미처 못 챙겨먹은 (내) 점심을 먹고, 식후 커피를 마신다. 지난 주에 메가 커피를 갔으니, 이번 주에는 컴포즈 커피를 간다. 너무 후루룩 마셨더니 수업이 끝나는 세 시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았다. 잘하면 제시간에 딱 맞출 것 같아 근처 교보문고에 가서 사고 싶은 책을 한 권 고른다. 마흔이 훌쩍 넘었는데 한 주에 한 권 보고 싶은 책 사보는 작은 사치 정도는 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또 자기합리화를 한다. 

바로드림 결제를 하고 시간을 보니 아차, 또 아슬아슬하다. 부리나케 가서 다시 학부모님들과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뒤에서 갑자기 나를 부른다. 

“아버님, 이번 달 결제 해주셔야 해서요~”

“아, 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학원비를 카드로 긁고 나니 아까 괜히 책을 샀나 싶다. 사십 대 부모에게 학원비만큼 사악한 게 없다. 일주일에 겨우 한 번 수업하는데 얼마를 내는 거냐 대체… 

한 주 한 주가 비슷하게 쳇바퀴처럼 흘러간다. 이번 주에 그랬던 것처럼, 다음 주에도 어김없이 화요일에는 첫째를 데리러 학원에 갈 것이고, 토요일에는 둘째를 데리러 학원에 갈 것이다. 앞으로 적어도 십 년은 이런 생활이 계속될 것이다. 쑥쑥 자라나는 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과목과 테마는 달라질테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힘 닿는 한 지원하는 매니저로서의 역할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엊그제 집에 왔더니 화장대 거울에 둘째가 쓴 쪽지가 붙어 있다. 

“To 엄마. 1호 팬♡”

와… 역시 이러나저러나 엄마를 이길 수는 없는 거지…? 라고 스스로 볼멘 소리를 좀 했더니, 오늘 아침 출근길 머리맡에 삐뚤빼뚤 손글씨가 쓰여진 책갈피 하나가 놓여 있다. (들은 건가?) 

‘사랑하는 우리 아빠께’ 

부스스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난 둘째가 쿨하게 한마디 하곤 다시 잠든다. 

“아빠는 책 좋아하니까… 이거 가져.”

매니저도 할 만 하네 뭐.

Fathers’ Update

지난 레터(113화 역전 앞)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글이 너무 생생해서 저도 그 공간에 같이 있는 줄요!ㅎ 단톡방을 남편에게 추천해줬는데, 원래 정보 검색은 다 제몫이었는데ㅜ 다른 아빠들이 육아에 열정적인 모습을 봐서인지 뭔가 요즘 육아와 살림에 부쩍 열정적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참, 다름이 아니라 제 주변 친구(남자)가 내년 초에 늦깍이 아빠가 됩니다. 벌써부터 아주 열심히인데 딱히 아빠가 접할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보니 어려워하더락고요. 임산부는 병원에서 엄마수첩이라도 주는데요... 저는 2년전에 자연주의 출산병원에서 <아빠 수첩>을 남편에게 줘서 유용하게 잘 썼는데요, (무려 여성가족부에서 제작!!!) 물어보니 이제 인쇄를 안해서 홈페이지에서 PDF만 다운 받을수 있다고하네여 ㅠㅠ 아무래도 가독성이 떨어지죠... 아빠 출산휴가 육아휴직 제도는 점점 더 활성화를 시키는것 같은데 너무 아쉬운 부분입니다. 썬파클이라면 꼭 이거 종이책으로 부활시켜주실수 있을것 같아요!!!!! 썬파클 영향력이 어마어마..!!ㅎㅎ 혹시 연줄이 있다던가하면, 아니면 이 존재를 공유해주시기만해도 많은분들이 도움받을 수 았을거 같습니다. 감사해여!! (럭키비키)

님, 오늘 보내드린 편지는 어땠나요?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제안/피드백/질문이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