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문 4호 2025년 7월 12일 토요일
ヽ`、ヽ``、7월 주제 <소설과 나>ヽ`ヽ`、、ヽ
안녕하세요. 이 지긋지긋한 아름다운 세계에서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따금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대체 무엇일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 사람이 품는 한 세계가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초조해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보기도 하고, 여러 번 곱씹기도 하다가… 마음대로 나와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노라고 믿어버리기도 합니다.  
이 ‘오해’를 기꺼이 끌어안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이번 주 김혜빈 작가님의 글에는 이러한 삶의 과정에서 생기는 빈 자리들을 채우는 것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자 하는 힘, 기꺼이 여러 번 오해하고, 그것을 다시 자신만의 언어로 채워보고자 하는 마음… 어쩌면 삶은 이러한 마음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방문자님만의 방식은 무엇인가요? 이 지난한 세계를 끌어안고 나아가게 하는, 자신만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
코미디언

김혜빈

언젠가 밝혔듯, 나는 열 살 때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그 소설은 한 남자가 어두운 도시를 떠도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말하는 가로등에게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던 그는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채 인파에 떠밀려 사라진다. 나는 이후 두 편의 엽편소설을 더 썼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대신 일기를 썼다. 내 펜티엄4에 깔린 한컴 오피스 97을 이용해서. 그리고 완성된 글들을 플로피 디스켓에 저장해 여행용 모자 아래에 숨겨두었다.


분명 글을 쓰는 동안 여러 계절이 지났을 텐데 당시의 나를 떠올리면 배경은 항상 여름이다. 책상과 침대 사이의 비좁은 틈으로 의자를 넣으면 정강이가 책상 서랍에 닿았다. 컴퓨터 본체를 집어넣을 수 있는 기다란 장에는 엄마가 붙여둔 열대어 스티커가 붙어 있어서 한동안 그걸 떼어내려고 애썼다. 해가 지면 할일을 찾아 나서다가 방에 딸린 베란다에 서서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정에는 문을 잠그고 창틀 위로 올라갔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내주기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늦은 밤 아파트 창문에 매달린 여자아이를 발견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이어지는 기억을 떠올리면 조금 슬프다. 열린 창을 의식하지 못하고 세탁실에서 옷을 갈아입었을 때 옆 동 남자아이들이 지르던 환호성, 윗집 대학생이 오빠 집에서 빵 좀 구워달라고 부탁하던 때가 곁에 와 머문다. 내가 원하지 않는 순간마다 나는 발견되고, 내가 그토록 원하는 순간에는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이 나를 소설로 이끌었을까?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린 시절 내가 쓰던 방은 부모님이 젊을 적 모아둔 책들로 가득했다. 나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그것들을 만화책처럼 옆에 쌓아놓고 읽었다. 오래된 책들에서는 언제나 달콤한 냄새가 났다. 마마Mama의 냄새였다. 부모님에게서 나는 것과는 다른, 이상향의 냄새. 파우더 같기도 하고 먼지 냄새 같기도 한 향을 찾아 색 바랜 책들 위로 코를 박았다. 그 사이로 박완서와 소소생笑笑生, 헤르만 헤세와 양귀자, 시드니 샐던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공존했다. 잔인하거나 다정하고, 불온하거나 격정적이었다. 거기다 『금병매』라니. 내 유년기가 안개와 관능에 휩싸여 있지 않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만약 내 어린 시절의 탈출구가 음악이었다면 내 관능이 피아노로 향했을지, 미술을 좋아했다면 조각가를 꿈꾸게 됐을지 궁금하다. 고민해도 잘 모르겠다. 유년의 탈출구가 소설이었기에 지금까지 그 그림자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늘의 나는 소설을 통과하는 과정에 진심이다. 특히 소설 자체보다는 소설을 통과하는 일에. 글을 쓰며 알게 되는 누군가의 안타까운 사정, 목소리, 떨림 들이 좋다. 언젠가 그것들을 끊을 수 있는 때가 올까? 그때의 난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확실한 건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소설로 정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일은 내게 너무 버겁다. 사람들의 불안과 연약한 자아, 습관적인 떠보기, 분노 같은 걸 느낀 날이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지친다. 석 달 전의 일이다. 배우자인 M과 떠났던 해외여행에서 한 젊은 남자가 노인을 기둥으로 밀치는 모습을 보았다. 보도 위에 주저앉은 노인은 바닥에 앉아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구하지 않았다. 저 남자는 어떻게 저리 무서운 눈빛을 할 수 있는지, 노인은 또 왜 저리 무력한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그쪽으로 다가가려고 하자 M이 나를 막아섰다. 두 번 더 시도했고, 그때마다 손목이 당겨졌다. 가자. M이 말했다. 그날 M과 웃으며 시간을 보내면서도 계속 노인을 떠올렸다.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다. 의문이 생겨서였다. 맞고 있는 사람을 구할 때는 마찬가지로 맞을 걸 각오해야 할까? 그를 말렸다면 그 남자가 나도 때렸을까? 내가 그 노인을 구한 대가로 어딘가 크게 다쳤다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나?


소설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통과하는 것만이 내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식이고, 그 사랑을 도무지 끝낼 수 없다면, 그런데도 내가 누군가의 삶에 직접 개입했다면, 그가 소설보다 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같은 개입은 사랑을 넘어선 어떤 감정, 조금은 통제 욕구가 작용한 행위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이 무슨 짓을 했든 간에 역 복판에서 맞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목 놓아 외치는 일이 언제나 옳은 일은 아닐 테니까.


내가 M과의 일화를 떠올리며 알 수 있는 건 내가 집착하는 대상은 소설이 아니라 언제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할 때가 있다. 특히 소설을 열렬히 사랑하는 작가들을 보면 조금 기가 죽는다. 나도 그들처럼 내 작업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어질 만큼. 생각해보면 내가 소설에 느끼는 감정은 열정과는 항상 거리가 있었다. 결국 나는 네게 돌아왔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던 유년기를 지나서 다시 찾아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당연히 소설은 답이 없다. 그래도 자문이 끝난 다음에는 매번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다. 계속 도전해도 실패하기만 하는 영역이 삶에는 꼭 필요한데, 그게 내게는 어쩌면 소설인 것 같다고.


소설은 공허를 해결해준다. 허무감을 붙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그중에서도 나를 단단히 붙들어주는 소설은 보통 이런 종류다. 야, 들어봐. 사는 게 별 의미 없기는 해. 그런데 난 인생을 롤러코스터나 산에 비유하는 멍청이는 아니야. 삶의 낙차를 줄이는 게 우리에게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거야. 그냥 인생은 존나 어둠이야. 넌 앞도 못 보면서 거기를 더듬으면서 가는 거지. 개같이 넘어지고 뒹굴면서. 누가 널 어둠 속에서 더듬고, 킬킬대고, 뒤통수를 치고 지나가도 뭐 어쩌겠어. 그럴 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만나고 가능하면 섹스도 하자고. 커피도 마시고, 산책도 하고, 절친이랑 깨졌다가 다시 붙고, 복권도 좀 사고. 그냥 버티는 데 하루를 소비하지 말란 말이야. 그런 사람, 비정해 보이지만 속 깊은 인물을 소설에서 만나면 숨통이 트인다. 공원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비싼 값을 치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쉬고, 사유하고, 가끔은 울 수도 있는 소설. 나는 그런 글을 좋아하고 나 역시 그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내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작가에게 그랬듯이, 내 글을 읽으며 구덩이에 떨어지는 것 같은 아득한 유대감을 느끼기를, 내 음습한 부분마저 사랑해주기를 기도한다.


소설에는 표정도 주름도 없다. 목소리와 색깔 역시 부여해야 한다. 때로 하나의 세계를 채워나가는 동안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 사이에 오해도 생긴다. 그래도 그 오해마저 즐기다 보면, 뭘 더하고 뺄지, 또 뭘 찾고 찾아내지 못했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하나의 값으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해진다. 이십 대 중반의 나는 문학을 계속할 만큼 충분히 열정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의 나는 미적지근한 것보다 조금 더 뜨겁게, 오래 불타는 중이다. 그리고 소설은 모두의 각기 다른 속도를 끝내 포용해준다고 믿는다. 영화 만들기를 완전히 그만둔 뒤로 영화를 몹시 사랑하게 된 지금처럼, 문학에서 여러 번 멀어지고부터 문학을 향해 계속 걷게 되었다.


그러니 당분간은 지금 상태로도 괜찮을 것 같다. 친구들이 나를 보고 웃어줄 때도 가시지 않는 외로움을 소설을 통해 풀 수 있을 테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사람과 포옹하고, 이해받거나 무시당하겠지. 내 잃어버린 플로피 디스켓 속 글들처럼 표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삶마저 그릴 수 있는 게 소설이라면, 그래, 계속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이제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됐다.(*)

₊⁺⊹ⅽ[ː̠̈ː̠̈ː̠̈] ͌
°𓅪 티테이블을 정리하며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제법 큰 공원이 있다. 여름이면 공원의 인공 연못에 노란 붓꽃이 피고 맹꽁이가 운다. 며칠 전에는 밤 산책을 하다가 연못으로 향했는데, 발소리를 들은 맹꽁이들이 갑자기 울음을 멈췄다. 맹꽁이를 찾으려고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건 없고 발길을 돌리고 나서야 울음이 다시 시작됐다.

그 전전날에는 폴라포 기프티콘이 생겨서 집 앞 편의점에 갔다. 걸어가는 동안 저 편의점에 폴라포가 없으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반대 방향으로 가 다른 지점에 들러야겠구나,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는데 폴라포를 곧바로 발견해버려서 냉동고 앞에 한동안 멈춰 있었다. 폴라포를…… 어렵게 얻고 싶었다.

앞으로 나는 이런 일들을 레터에 적게 될 것 같다. 가까워질수록 핵심에서 멀어지고, 바라는 일을 너무 손쉽게 이뤄내 실망하고 만 이야기들을, 잇따른 공허를. 그리고 맹꽁이가 맹꽁맹꽁 울지 않고, 한 맹꽁이가 맹맹맹 하고 울면 다른 맹꽁이가 꽁꽁꽁 울어서 맹꽁이가 됐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홀로 웃을 것이다.

여름이다. 여름에는 여름의 방식으로 인사를 해야지.
이봐요, 속이 아릴 정도로 차가운 보리차를 드세요.
그리고 드문을 읽으십시오.
웃거나 울고, 공유하세요.
플리즈 리드 어스, 러브 어스, 위드 어스.

p.s 참고로 개구리가 우는 소리는 개개개 우는 개구리와 굴굴굴 우는 개구리 소리가 합해져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대충격.
방문자님, 오늘 다회도 즐거우셨나요?
아래는 이전 호를 읽고 보내주신 의견들입니다.
함께 감상해주세요. 



✎・.。.:*남겨진 쪽지들 *.:。*


˖◛⁺˖ "넌 내 사랑의 원본이야, 내가 앞으로 누굴 만나게 되든 그건 카피본일 뿐이야" 이 문장이 한동안 마음에 콕 박혀 머무를 것 같습니다!

☞⋆。˚ 안나 작가님의 연애 편지에 저만 심쿵한 게 아니었군요!! : )  몇 살 때 찾아오는 사랑이든, 그리고 그 사랑의 엔딩이 어떠하든, ‘사랑의 원본’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진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독자 님의 연애편지엔 어떤 구절이 실려있었을까, 살짝 궁금해지네요 : ) 마음에 콕 박힌 문장, 나누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읽으면서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특히 작가로서의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이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고요. 오래전 썼던 연애편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실패한 순간들, 타인의 무심한 발언에 상처받았던 날이 불쑥 제 안에 자리잡기도 했습니다. 이게 바로 레터의 묘미겠죠? 잊었던 순간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거요. 한때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언젠가는 그때는 그랬었구나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안나 작가님의 글을 마음 깊이 품어봅니다. 레터 정말 잘 읽었습니다!   

☞⋆。˚ 기억이란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은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무심히 흘려버린 일상의 한 장면이 사진처럼 오래 각인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의 나를, 힘들었던 순간을 그때보단 조금 너그러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이 ‘세월이 주는 선물’ 같기도 합니다. 안부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종종 가볍게 들러주세요 : )



이번 호에 보내주실 의견들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래에 다음 모임에 관한 짧은 힌트를 남겨두었어요.
7월 16일의 티타임을 기대해주세요.
<어느 ADHD인의 시작서書>

"여전히 소설이 주는 아름다움과 질척임과 찐득거림과 더러움과 슬픔과 기쁨과 고통과 그 모든 뒤엉킴과 틈새와 이해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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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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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티타임 때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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